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36화 (36/69)

푸욱!

용사는 괴로운 얼굴로 마물을 베어 넘겼다.

그렇지만,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무려 상급 마족 두 명이 수험생들을 노렸으니까.

그러나 상급 마족은 등장하지 않고 간간이 마물과 하급 마족만이 숲에서 나타났다.

그 주기도 아주 드물었고, 원래라면 적의를 가지고 몰려들었던 중급 마족조차 무언가 의지를 잃고 방황하기만 했다.

마치 마족들에게 지시를 내릴 머리를 잃어버린 마냥.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다.

“...상급 마족이 그냥 사라질 이유가 없을 겁니다.”

분명 악의를 가졌다.

무조건 누군가 죽이겠다는 악의를.

그렇다면, 남아있던 상급 마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수험생 중에 누굴 죽이고자 움직였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대상은?

오래 생각하지 않더라도,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

“프랑, 아르갈.”

가장 위협적인 마법사 두 명.

아르갈은 사실상 무력화가 된 상태이고, 프랑은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상급 마족에게 노려지기 좋은 상황이다.

용사는 불안했다.

두 명이 죽어서 돌아온다면, 그 무엇보다도 끔찍했다.

그녀는 그런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용사는 몸을 돌려 수험생들에게 말했다.

포격이 터진 이후로, 그녀는 뿔뿔이 흩어진 수험생들을 모으며 그들을 보호했었다.

그 숫자가 금방 늘어나서 지금 보면 절반 넘게 모았다고 볼 수 있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떠나더라도 괜찮겠습니까?”

“어디로 갈려고?”

“용사, 네가 없으면 좀 힘들 수밖에 없단 말이야….”

용사에게 지켜지고 있던 수험생은 별로 반기지 못했다.

몰려드는 마물의 강함이 약하더라도, 용사가 있어야만 사상자 없이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용사가 뒤이어 꺼낸 말에 모두가 태도를 바꾸었다.

“아르갈하고 프랑을 구하러….”

“뭐 해? 당장 안 뛰어가고?”

“다른 건 몰라도 그 녀석은 살아야지.”

“못 버틸 정도는 아닌데, 용사가 여길 지키는 건 과한 감이 있긴 해.”

그걸 보고 용사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를 붙잡으려는 모습을 보인 게 맞는가?

지금은 아예 빨리 가라고 재촉을 할 지경이다.

덕분에 용사는 부담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

기꺼이 가라고 하는 수험생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말로 꺼내지 않더라도, 아르갈이 하였던 희생을 여기 있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부디 버텨낼 수 있기를.”

“고작 해봐야 마물 몇 마리 나오는데, 설마 그것도 못 막겠어?”

“우리 걱정하지 말고 빨리 갔다 오기나 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뛰어갔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까 봐.

그녀의 뜀박질이 점차 급해져 가기 시작했다.

방향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커다란 힘의 폭풍이 어느 한쪽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아르갈이나 프랑이 상급 마족을 퇴치한 것인가?

...그래도 하나 확신이 가는 게 있다면.

이 일의 끝맺음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렇기에 신에게 기도했다.

부디, 안 좋은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여태껏 생존한 모두가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

계약을 취소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교수는 아주 능숙하게, 악마를 불러들여서 밀당을 하다가 적절한 합의 아래에 내 목숨을 거두는 대신, 교수가 제시한 유물들을 가져가기로 결정 났다.

근데 그러기에는 좀 아쉽지.

내가 호구 계약을 놓칠 사람으로 보이는가?

침묵하는 악마의 좋은 점은, 내가 말은 못하더라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계약 취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악마를 붙잡았다.

그리고 악마에게 이중계약을 제시했다.

내 목숨을 예정대로 가져가는 대신 교수에게 받은 유물을 나에게 주는 것으로 계약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대신 목숨을 가져가는 시기는 내가 정하고.

악마는 뭐든 좋다는 듯, 이중계약에 수락했다.

의미 없는 목숨을 가져가는 대신, 교수가 지급한 유물이 나한테로 오는 것이니.

오히려 창조적인 이득을 봤다.

이번에 못 죽은 걸로 아쉬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았는가 교수? 이게 악마와 계약하는 법이다.

그런 배경을 모르는 프랑이나 베시아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다시 살아났으니까.

게다가 베시아의 치유력이 얼마나 강력했으면, 거의 반죽음에 가까웠던 내가 입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제 그만 치유해도 된다.”

“아르갈…!”

“깨어났나요?!”

말을 꺼내자마자 두 소녀가 달려들었다.

아니, 깨어난 건 맞는데 그렇게 껴안으면 내 몸이 아작날 것 같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은 마당에, 두 명의 근력을 버텨내질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두 여인의 시선이 살벌했다.

서로가 날 껴안으려 하는데, 두 명이 한 명을 안기에는 뭔가 이상 하잖는가.

“거기, 손 안 떼요?”

“오랜만에 보는 사람한테 양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양보는 무슨, 조금 전까지 아르갈이 죽는 줄 알았던 저한테 양보하는 게 맞죠!”

“...이러다 정말 죽을 거 같으니까 그만하자.”

그러건 말건 베시아는 내 목을 꽉 조르며 살벌하게 말했다.

“정말 죽어? 그럼 진짜 죽는 게 뭔지 보여줄까? 저번에도 그렇게 몸을 던져놓고 또 그랬어? 뒤지려고 진짜?”

“끄으윽.”

“그만 해요! 그러다 진짜 죽겠어요.”

안 그래도 상태 안 좋은 내 몸이 견딜만한 폭력이 아니었다.

그만큼, 베시아가 진심으로 분노를 하고 있던 것 같다.

바스락, 바스락.

그렇게 한창 투덕거리던 사이에 숲속을 헤쳐 나오던 사람이 있었으니.

프랑은 마족인가 싶어서 싸울 준비를 했으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라인하르트인가요?!”

“그래.”

“게다가 아셀도 있네요?”

“우으으….”

검성, 그리고 창성까지.

내가 원했던 데로 검성은 창성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우릴 찾아온 거지?

검성이 용사처럼 감지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찾아온 건가 라인하르트.”

“폭발이 일어났을 때, 너희가 날아간 방향을 외웠다.”

...확실히 예상을 뛰어넘는 인간이다.

방향을 외워서 찾아갔다고?

이게 사람이냐.

“그, 그게 가능한가요?”

“그것만으로 가능하겠나? 방향만 대충 알아낸 거지, 너흴 찾을 수 있던 건 아주 소란스러운 폭음이 들려서 그런 거다.”

“아하….”

프랑은 자신이 했던 융단 포격을 떠올리며,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베시아는 처음 보는 인물인 검성을 바라보며 말한다.

“넌 누구야?”

“그러는 너는 누구지? 수험생 중에 사제는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어, 그러게요? 어떻게 결계를 뚫고 들어오신 건가요?”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검성하고는 다르게, 프랑은 그렇게까지 경계심을 지니진 않았다.

베시아는 날 치료했고 교수는 내 목숨이 걸린 악마 계약을 취소해 주었으니. 프랑은 저들을 신뢰했다.

물론 신뢰는 신뢰이고, 물어봐야 할 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결계를 뚫었고, 저들의 이름과 신분 같은 의문점을 해소하고 싶겠지.

교수는 그런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건지 집요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장이라도 극의를 내놓지 않는다면 악마 대신 자기가 목숨을 취하겠다는 태도인데, 저러니 더 주기 싫어진다.

뭐, 목숨 하나 정도는 가져가라, 어차피 무한인데 그 정도야 저렴하네.

결국 입장을 내놓아야 할 교수 대신 베시아가 해명을 했다.

“나는 사제 베시아, 그리고 옆에 있는 건 교수 오필리아. 결계를 뚫을 수 있어서 들어오긴 했지만, 한계가 있어서 딱 두 명만 들어왔어.”

“그렇다면 구조대라는 소리인데…. 꽤 늦었군, 상황이 다 끝나고 온 셈이니.”

“늦기는 무슨? 최대한 빨리 온 거란 말이야.”

베시아는 억울해했지만, 검성은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치료사로선 충분한 타이밍이다. 죽을 뻔한 사람을 살렸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검성은 피범벅으로 가득한 내 옷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건, 두 눈으로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베시아는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저렇게 재수 없어 보이는 인간한테 뭘 했길래, 너한테 호감이 넘쳐 보인다?”

“...글쎄.”

나도 모르겠다.

이젠 회귀 전 검성이란 존재란 사라졌다 봐야 할지.

원래 저러던 인간이 아니라서 나도 어색하다.

“우와악!”

우당탕-!

다리에 힘이 풀린 창성이 언덕을 내려가려 하자 바로 바닥을 굴러버렸다.

그래도 언덕이 낮은 편이라 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그녀의 표정이 한층 더 음울해지기에는 충분했다.

“너 때문이야….”

“또냐.”

“너 구하려고 필살기를 두 번씩이나 써서 몸에 힘이 아예 없잖아….”

창성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그래 너는 그러는 게 낫겠다.

혐성들이 참 인성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한 명 정도는 과거 그대로 유지하는 게 더 낫겠지.

게다가 찾아온 손님이 이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베시아도 알아본 모양.

“요, 용사?”

“얼굴을 잘 알고 있나 보네?”

“용사야 당연히 교회에서 자라나고 생활했으니, 교회 소속으로서 모를 수 없어.”

확실히 용사라면 교회와 무척이나 밀접한 관계를 지녔다.

어릴 때부터 신에게 선택받고, 교회에서 길러지는 게 용사다.

그렇기에 사제인 베시아가 용사의 얼굴을 몰라볼 수 없을 거다.

피범벅인 내 모습을 본 용사는 어두운 얼굴을 했지만.

“죽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살아있기에 기뻐했다.

그녀의 침울한 얼굴과 미소 지은 입술을 보니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모양.

“...이제 돌아가야겠지. 용사.”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내 몸은 움직이기 어려운지라 누가 부축하길 원했는데, 이번에도 프랑과 베시아 둘 다 달려드니 곤란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넌 체격이 작으니까 아르갈이 불편해할걸?”

“으으윽, 그런 게 중요한가요? 사람의 진심이 중요한 거지.”

“나도 진심이야!”

그리 싸우다가 결국, 정해진 시간마다 나눠서 부축해주기로 결론이 났다.

내가 아무리 가볍더라도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혼자서 짊어질 순 없으니까 현명한 판단이다.

그리고 나는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 아카데미의 책임자로서 할 일을 해야지?”

그녀의 성격상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안 해 준다면, 신경조차 안 쓰리라는 걸 알기에 말을 꺼냈다.

교수는 내 의도를 모르는 척 대꾸했다.

“무슨 일?”

“학생들을 인솔해야지.”

“흐음.”

정말 귀찮아 보이는 얼굴을 한 교수는 하늘 위로 커다란 마법을 쏘아냈다.

그건 크나큰 글자였다.

수험생 전부를 모으기 위한 문구.

실로 편리한 방법이지만, 직접 가서 수험생들을 모을 생각은 없는 건가?

...이정도야 그녀에게 기대할 만한 최선이겠지.

자기가 관심을 지니는 일 외에는 모두 불성실한 게 교수니까.

신호탄이 하늘에 날아올랐으니.

점차 수험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너희 살아있었구나.”

“저기 저분은 교수님? 드디어 우릴 구해주러 온 거야?”

“살았어, 진짜 살았다고!”

그 커다란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다른 수험생을 보고 기뻐하며, 그리고 그들의 안전을 보전해줄 교수가 있다는 사실에 더더욱 환호했다.

고난의 끝이 다가왔으니.

내 감각으로도 잡히는 상급 마족은 없었고, 또 나온다고 하더라도 교수 혼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정말로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더 많은 수험생이 모여들었다.

그 중 다쳤던 이들을 베시아가 치료해 주었고,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는 중상을 입은 수험생이라 하여도, 베시아의 치료 한 번이면 멀쩡히 일어서는 기적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죽다 살아난 이들까지.

“블래쉬…. 괜찮은 거지!”

“나,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사제님이 살려주셨어!”

얼마 지나지 않아 흑마법 결계에 도달했으니.

수험생들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모여들었다.

교수의 마법을 보지 못하고 못 온 사람 하나하나 용사가 직접 찾아서 데려왔다.

낙오자는 없었다.

용사는 검을 꺼내 들었다.

쿵-!

결계의 벽이 점차 무너진다.

쿠우우웅-!

결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그 구멍은 사람 하나, 둘이 통과할 정도를 충분히 넘겼다.

모두가 환희에 빠져있을 때, 교수만이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있었다.

“용사의 힘이 강력한 재생력을 지닌 결계를 부술 수 있다…. 흥미롭네.”

용사의 검이 수 십 번 결계에 닿았을 때.

정말 단 한 번만을 남겼으니.

용사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휘둘렀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콰아아앙!!

반 이상 죽었을 참사에서.

50명이 죽는 참사로 그쳤기에.

죽음을 맞이할 프랑이.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운명을 찾았기에.

나는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결계는.

우리를 옥죄었던 감옥은.

드디어.

무너져 내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