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다고?”
[그렇소이다.]
왕태자는 의외의 소식을 들었다.
항상 무언가를 준비하면 성공시키는 마왕군이 계획에 실패하다니.
물론 그는 이미 보고를 들었다.
그 많은 수험생 중에 무려 50에 달하는 사람이 죽었으니, 절반은 못 죽였어도, 나름 많이 죽은 것 아닌가?
그런데 실패라고 한다.
“그거참 유감이군…. 허나 실패는 실패이고, 지불해야 할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나.”
[당연한 일이외다. 그러나, 못 죽인 만큼 아카데미를 습격할 계획이오.]
“상관은 없지만, 이번 일처럼 보조는 해 줄 수 없다. 수험생들이 다량 죽었기에 정치적인 타격이 크다.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내각에서도 난리야.”
[왕태자의 도움은 항상 고맙게 여기니, 더 큰 보답을 해드리겠소.]
“커다란 것을 주었으니, 개의치 않다.”
그러던 왕태자는 문득 한 가지 일에 관해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주교는 영 소식이 없던데, 처리는 하였는가?”
[...내일이나 내일 모레, 예정대로 될 것이오.]
“그렇다면, 상관없지.”
고위 마족은 짧은 대화 끝에 왕태자의 침실에서 벗어났다.
이번 일로 잃은 것이 너무 크다.
용사는 각성하지 못했고, 죽어야 하는 마법사마저도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고작 50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갔으나, 얻은 것이 너무 시원찮았다.
위이이잉-
차원 건너편에서 이어져 온 통신.
오직 보이는 건 그림자뿐이었지만, 고위 마족은 허리를 숙이며 극진한 예를 표했다.
[사령왕이시어.]
- 처참히 실패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하다못해 그 이유라도 찾으려 했으나, 경과만 지켜보라고 놔둔 그림자조차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둘 중의 하나구나, 숨어있는 그림자를 잡을 실력자가 있거나, 혹은 그림자마저도 나서야 할 상황이었거나.
사령왕은 묵묵히 지시만 내렸다.
- 마왕조차 예측하지 못한 큰 변수가 있는 모양이다. 철저한 조사 끝에 색출해 내도록.
[명령대로.]
- 또한, 왕가에 대한 평화협상을 앞두었으니, 이에 대해 대비도 해놓도록 하여라.
[그 또한 알겠습니다.]
- ...수고해라.
연결이 끝난 뒤, 고위 마족은 이를 빠득 갈았다.
살벌한 살기가 이 주변을 잠식했다.
[반드시, 나에게 이런 치욕을 준 놈의 사지를 찢어서 지옥에 던져주리다.]
그 변수란 무엇인지 모르나.
샅샅이 뒤져보면 나올 터.
반드시, 치욕을 갚아주겠다고.
고위 마족은 분노했다.
**
...편안한 침대 속에서 점차 의식이 깨어났다.
내 마지막 기억은 용사가 결계를 깨는 것이 마지막으로, 그때 기절을 하고 말았다.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과도하게 무리를 해서 그런지, 긴장의 끈을 놓자마자 쓰러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든 생각은, 이번에도 결국 못 죽었다.
아니 도대체, 불사자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주변 인물들이 대단하다고 할지.
아니면 미련하다고 할지.
불사자라는 사실은 언젠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은 한다.
죽으려 해도, 자꾸 주변에서 죽는 걸 막으니 불사자의 강점을 살리기 힘든 것도 그렇고.
그때가 언제가 될지 전혀 모르겠지만.
게다가 옆에는 베시아가 침대맡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더불어서 캐론도 있었고, 그 옆에는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프랑도 보인다.
전부 다 모여 있었다.
이거, 깨우는 순간 인세의 지옥이 펼쳐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안 깨울 수가 없다.
...차라리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캐론.”
“...아?”
“캐론, 깨어났으면 조용히 이리 와봐.”
“아, 네, 넵!”
확실히 숙련된 메이드 답게, 그녀는 조용히 나한테로 달려왔다.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쁜 건지 눈물을 훌쩍였다.
“도, 도련님, 다행이에요. 깨어나셨군요.”
“그래 캐론, 내가 얼마나 기절했는지 알려줄레?”
“한, 3일 정도 됐을 거예요.”
“그럼 기절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캐론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더니, 하나하나 일련의 사건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선 학교는 한동안 휴교하기로 했고, 동시에 장례식도 치른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그럴 만하지, 또 다른 건?”
“이 일을 추진했던 왕태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여론도 강하고요.”
“그 외에는.”
“용사님은 교회로 가셨어요. 아마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신탁도 받을 겸, 교회에서 진술 조사도 할 겸 불려가신 거 같아요.”
용사야 공사다망한 인물이니 여기에 없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나씩 따져본다.
우선 휴교.
시간적인 여유가 확실히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다.
너무 커다란 사건이 벌어졌으니 잠시나마 쉬는 건 당연한 일.
내가 기절하는 동안 입학식을 하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두 번째로 왕태자.
그는 내 손으로 왕실을 무너뜨릴 때까지 건재했다.
아마 이번 정치적 위기는 어렵지 않게 넘기는 모양.
다소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면, 지금이야 나의 개입으로 최소한 죽은 것이지, 회귀 전에는 이보다 더 큰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
그때에도 멀쩡히 자리를 보존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아마 무언가 여론을 뒤집을 만한 한 수가 있다는 것.
아마 조만간 알 수 있겠지.
어차피 왕태자를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왕태자를 쳐낸다고 해서 그 뒤에 있는 왕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 건으로 왕태자를 공격하는 방법은 쓸 필요가 없었다.
세 번째로 용사.
용사야 사실상 교회의 신도중 하나다.
신에게 힘을 받았고, 축복을 받은 존재였으니 당연한 일.
그렇기에 용사는 무척이나 교회를 신뢰했고, 믿어왔다고 할 수 있었다.
교회가 곧 신의 말을 전달하는 기관이었으니까.
내가 기절한 다음에 있었던 일들을 얼추 정리했다.
“그럼 캐론, 나 좀 데리고 나갈 수 있겠어?”
“예?”
“부축 좀 해줘, 몸이 찌뿌등해서.”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지금 해야만 되는 일은 여기서 탈출하는 것.
베시아의 말을 들었던 나에겐, 여기가 언제든 감금실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그녀의 치유력이 뛰어났던지라, 한 달은 요양해야 거동이 가능할 거라 보았던 몸의 활기가 넘쳤기에, 굳이 여기서 갇혀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
최대한 조용히 캐론의 부축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여기서 실수라도 하는 순간, 바로 한 달 감방이다.
아니 감옥보다는 자택 감금이 맞겠지.
근데 그거나, 그거나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문까지 도달하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며 여기서 탈출을 강행하려던 찰나.
벌컥!
소란스럽게 반대쪽에서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 있었으니.
“어?! 아르갈, 벌써 깨어난 거야?”
붕대로 배를 칭칭 감싼 라엘리가 나를 반긴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말로서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다행이네 라엘리, 멀쩡해서.”
“그치, 내가 결계 바깥으로 나갔을 때 마침 구해준 사제님이 있어서….”
“아르가아알?”
젠장, 늦었다.
고개를 돌리자 아주 살벌하게 얼굴을 들이민 베시아가 눈에 보였다.
“혹시, 도망가려고 한 거야?”
“크나큰 오해가….”
“오해는 무슨! 프랑, 잡아버려!”
쿠구궁-!
베시아의 한 마디에 바로 날 감싸는 결계가 생겨나고 말았다.
높은 수준의 결계는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확실히 저번에 혼자서 상급 마족과 사투하면서 실력이 늘어난 건가.
지금은 그다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어딜, 가려고요?”
“...프랑 너마저도.”
“그, 그 도련님 어떻게 해야.”
캐론은 어찌 해야할줄도 모르고 당황만 하던 와중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서 무력으로 돌파하기도 힘들고, 단검을 쓰면 뒷수습이 답이 없었다.
남은 건 별의 근본뿐인데, 과연 저들이 마나를 증폭하는 걸 두고 보기만 하겠는가?
베시아는 아주 살벌한 시선으로 날 째려보며 말했다.
“자, 그럼 어디로 도망치려 했는가 들어는 볼까…?”
“몸이 좀 굳어서, 잠깐 산책이나.”
“어딜 개구라를 치려고?”
내 손을 꽉 붙잡은 베시아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애정이 느껴지는 손길로 아직 흉터가 남은 왼손을 쓰다듬으며 그녀는 말했다.
“약속, 했잖아.”
그녀와 교회에서 헤어지기 전에 했던 약속을 다시 떠올린다.
“같이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그렇지.”
“약속해놓고 혼자 도망가려고?”
“그런 의도가 아니다.”
감금이니 뭐니 해도, 결국 농담이었다.
애초에 그걸 진지하게 생각한 나는 또 뭐가 되는가 싶긴 한데.
...큰 위기를 넘겼다 치고 대충 넘어가야지.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라엘리는 반색했다.
“뭐야? 카페에 가는 거야? 그럼 같이 가야지.”
“어? 그런 거예요? 그럼 옷 좀 입고 올게요!”
“뭐야? 너희들이랑 같이 가겠다고 한 적 없거든!”
베시아는 단둘이서 커피를 마시며 디저트를 먹고 싶어 했던 것 같지만, 이미 저 두 명 앞에서 말을 꺼낸 순간부터 늦었다고 본다.
베시아는 세상 억울해하더니, 결국 상황을 받아들이곤 그녀도 옷을 갈아입기 위해 움직였다.
“끄으응, 어쩔 수 없네. 또 도망치면 그땐 진짜 가만히 안 둔다?”
“...명심해 두지.”
“가만히 있어!”
두다다다-
그러며 뛰어간 베시아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베시아랑 카페에 갈 줄은 알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프랑하고 라엘리까지 껴서 가게 된다니.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
남아있는 건 오직 캐론.
캐론은 절도 된 자세로 날 모셨을 뿐이다.
...아마 이번 사건에서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건 캐론일지도 모른다.
영지에 돌아가지도 않고 지금까지 아카데미에 남아있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너도 같이 가자 캐론.”
“네? 그래도 됩니까?”
“평상복으로 입고, 메이드가 아닌, 그냥 휴가온 사람으로서 같이 놀자는 거야.”
“정말요?”
캐론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그녀 입에서 만연한 미소를 보니, 나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카페에서는 뭘 팔아?”
“맛있는 커피를 팔죠, 그러고 보니 도련님은 커피를 마신 적이 별로 없네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시골 영지에 카페가 어디 있다고.”
“후후, 그래도 한 번씩 맛볼 기회는 있죠.”
깨어나자마자 카페에 간다니.
참 기묘한 일정이었지만.
잠시나마 여유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며 잠시 바깥으로 걸어 나오자.
...수없이 많은 화한이 방 앞을 장식했으니.
“이건, 뭐지?”
“도련님이 다쳐서 쓰러져 있는 동안, 학생들이 선물한 꽃이에요.”
숫자가 절대로 적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 모든 학생이 하나씩 놓고 가야 이 정도로 쌓이지 않을까.
아직 죽은 사람도 아닌 나에게, 꽃을 왜 주고 갔는가.
그래서 백합이 아닌, 화려한 꽃들이 대부분인가?
꽃 하나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오색찬란한 향이, 내 콧속을 간지럽혔다.
...실로 보람이 없지는 않구나.
회귀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
“콜록, 콜록!”
어두운 방 안에서 라베가 주교는 거듭 기침을 반복했다.
작은 양초의 불씨에 의존하여 편지를 쓰고 있었건만, 가면 갈수록 급속도로 쇠약해지는 몸을 느낀 주교는 겨우 일어서며 다 쓴 편지지를 정리했다.
“콜록, 정말, 콜록, 이상하구나.”
많은 답장을 받았다.
호의적인 답변도 있었고,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호인도 있었으니.
여기에 아카데미에서 터진 커다란 사건은 왕실을 흔들리게 했다.
관심을 가지는 권력자가 더욱 늘었다.
몇 번 없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주교는 아픈 몸을 이끌어서라도, 더 많은 유력자의 조력을 구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주교는 신성력을 지닌 사제였다.
잔병치레를 할 일이 거의 없는 몸이다.
그러나 라베가 주교는 최근에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
“콜록!”
기침 한 번에 각혈까지 하고 만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피를 닦은 주교는 중얼거렸다.
“어찌하여 피까지….”
털썩-
그러다가 갑자기 온몸에 힘이 풀렸으니.
라베가 주교는 주저앉으며 그 이상함이 어디서 기인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손등으로부터 생겨난 악마의 표식.
사제로서, 모를 수 없는 표식이다.
“악마의 저주가? 도대체 어떻게.”
쿵-!
그걸 알아차린 다음에는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이미 악마의 저주는 주교의 몸에 자리했고.
남아있는 건 곧 죽음뿐이니.
“알려야, 한다.”
주교는 이대로 쓰러질 수 없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왕가의 더럽혀진 부분을 알릴 수 없었다.
그 속부터 썩어버린 왕가는, 곧 왕국 전체를 무너뜨릴 테니.
그리고, 왕가와 같이 썩어버린 교회의 칼이, 자신 외에도 그 아이에게 닿을까 걱정됐기에.
남아있는 힘을 다하여 단 한 장의 편지를 더 쓰려고 했다.
최대한의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위험하다고, 도망치라는 말을 남기기 위해서.
펜을 움직였다.
“...베시아 부디 너는, 살아남거라.”
그렇지만, 이미 힘을 다한 주교는 펜을 놓고 말았다.
주교의 마지막 한 마디가 베시아에게 닿지 못했으니.
털썩-
그렇게 주교는 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