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42화 (42/69)

“용사님 오랜만입니다.”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성직자가 용사를 반겼으니.

그가 누군지 아는 용사는 그의 실명과 칭호를 불렀다.

“요아스 추기경님.”

“허허, 제 이름을 아직도 잊지 않으시다니, 이 늙은이는 감동입니다.”

용사의 입에 그의 이름이 담기자, 추기경은 그 무엇보다도 환히 웃으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런다 해서, 딱히 분위기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용사의 기분은 여기에 왔을 때부터 계속해서 좋지 않았으니.

요아스 추기경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그녀를 설득했다.

“용사님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단순 우연의 일치입니다. 왕가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그렇, 습니까?”

“예, 그렇다고 하여 이 일을 추진한 왕태자에게 그 이상의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왕실에 간섭할 수 없으니까요.”

용사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 가슴 속에서 우려져 나오는 슬픔이.

이 공간을 장악했다.

“그렇다면, 죽은 이들의 넋을 어찌 기려야 합니까.”

“...용사님의 슬픔은 알겠습니다.”

요아스 추기경의 두 눈이 빛을 발했다.

그의 설득력 있고 다소곳한 목소리가, 용사의 분노를 조금씩 녹여낸다.

“마왕을 증오하십시오. 그의 잔악한 계략이, 계책이 수험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냈고, 지금도 어디선가 더럽고 잔혹한 계략을 짜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한 암약을 돌파할 방법은 오직 강해지는 방법뿐입니다. 용사님이 정진하고 정진하여, 언젠가 마왕의 목을 잘라낼 때까지, 그 끝에 이르십시오.”

요아스 추기경은 더 없이 합리적이고, 용사가 추구해야만 할 길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기에 용사는 납득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 술 가볍게 풀려나가자, 요아스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진지했던 얼굴을 풀어내곤 활짝 웃는다.

“그렇다면 용사님, 오랜만에 교회를 찾아오셨으니 여독을 좀 풀어야지 않겠습니까?”

“...시간상 여유가 적습니다.”

“언제든 교회를 집으로 여기시고, 고민이 있다면 찾아오시지요. 왕가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손을 어떻게든 썼을 겁니다.”

용사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섰으니.

원래였다면 교회를 믿었을 거다.

그녀의 안식처이자, 신뢰해야만 하는 대상이 바로 교회이다.

왕실이 이 일과 연관 없다는 말에, 누구보다도 빨리 수긍했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가장 커다란 의혹이 용사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꿈에서 보았던 것이.”

왕가를 무너뜨리던 아르갈의 모습이.

그토록 선량하고, 남을 위하던 아르갈이.

왕가만을 무너뜨리길 원하는 괴물이 되었기에.

“왜 지금 떠오르는 것일까요.”

만약 그 꿈이 실제로 미래에 일어날 일이고.

꿈속의 아르갈이 이유가 있어 타락한 것이며.

타락의 원인이 왕가에 있다면.

“...교회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겠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교회에 볼일이 없었다.

용사의 마음속에, 불신이 싹텄으니.

개인적으로 왕실을 조사하리다.

마침 이곳이 왕실의 거점인 수도.

조사를 한다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용사는 그리 생각했다.

**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감지 마법이랑 상관없이, 나는 이미 깨어나 있었다.

코가 욱신거릴 정도의 마기가 저 건너편에 있었으니, 잠을 계속 잘 수 있는 게 이상하지.

어디선가 익숙한 마기였다.

수 없이 얼굴을 마주했고, 더 없이 증오하였던 그 대상이.

다시 여길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죽어서 말이다.

“깨어나라, 적이다.”

“네, 네엣?”

“우웅…. 무슨 소리야?”

내 말에 소녀들도 잠에서 깨어났다.

여러 위기를 겪어온 프랑과 라엘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크게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아무리 적이라 하여도, 그 혼자뿐이었고, 온전히 살아있는 흑마법사도 아닌 리치에 불과했으니까.

“적이요? 아직 감지 마법에 무언가 걸린 건 아닌데요.”

“아직 도착한 건 아니니까.”

“...네? 그럼 어떻게 안 거예요?”

프랑은 의아해했지만, 금방 이유를 알았다.

내가 마기를 감지한다는 걸 아직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

“아, 혹시 마족 같은 적이 나타나서 알아차린 건가요?”

“그거랑 비슷하지, 리치다.”

“리치…!”

화들짝 놀란 프랑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 눈에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걸 보아하니, 리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보였다.

“리치가 궁금해?”

“네, 네! 죽어서도 지식을 지니고 움직이는 언데드, 리치라면 제 궁금증 리스트에서 필수적으로 해결할 대상이죠!”

리치라 하여도 뭐 특별한 건 없는데 말이다.

어차피 그녀의 호기심은 금방 해결될 것이다.

프랑이 걸어둔 감지 마법이, 장대하게 경고음을 울렸으니.

삑! 삐익!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죽음이 있었다.

프랑은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적을 앞두고 있기에 잔뜩 긴장하였다.

“리치의 약점은 단순하다.”

손가락에는 뼈만이 보였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모습은 얼굴 뼈에 붙어있는 약간의 살점에서만 남았으니.

가우디움은 이성을 잃고 오직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움직였다.

그의 마기가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단번에 누구였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멍청하다는 것.”

언데드가 된 흑마법사는 과거의 이성과 지혜를 지니지 못했으니.

라이프베슬까지 지닌 진정한 리치가 아니라면, 저러한 리치는 사실상 움직이는 흑마법 포탑에 불과했다.

파워가 좀 강해서 문제인 거지, 너무나도 뚜렷한 약점을 지닌다.

내가 직접 마법을 시전하여, 리치의 약점을 노린다.

감각이 뚜렷하지 않고, 빠른 대처를 할 수 없는 리치에겐 환영이란 계열에 무척이나 취약했으니.

마법으로 이루어진 거짓된 정보가 리치의 주변을 잠식했다.

[이건, 도대체 이길 수 없는….]

리치가 지닌 지식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를 환영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사이에, 나는 라엘리에게 말을 전했다.

“한 번 급습해라.”

“알겠어!”

라엘리가 뛰쳐나갔으니, 그녀의 검이 정확히 가우디움에게 직격했다.

쿠웅!

제대로 머리를 얻어맞은 가우디움은 잠시 환영에서 빠져나갔지만, 절묘하게 프랑의 환영이 다시금 리치를 뒤덮었다.

확실히 배움이 빨랐다.

환영이 약점임을 알려주자마자, 바로 활용했으니.

[끄으으윽]

“바로 다음!”

콰드득-!

속도를 보아하니 리치는 금방 흙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환영을 거듭하여 보여주는 걸 멈추고, 라엘리에게 다른 방식의 지시를 내렸다.

결국 죽지 않는 건 언데드.

숨통을 끊는 건, 검으로 두들겨 패는 것만으로는 어려웠다.

게다가 흑탑주가 만들어 놓은 언데드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환영이 없어도 버틸 수 있는가 라엘리?”

“물론, 이지!”

자신 있게 외치는 라엘리를 두고선, 마나로 신체를 강화하여 움직였다.

프랑이 날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이 담겼다.

“괜찮은 건가요. 아르갈?”

“아주 약한 수준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프랑.”

저번에 하도 신체 강화의 부작용에 시달려서 그런가.

프랑은 곧장 걱정으로 가득 찬 시선을 나에게 주었다.

그렇지만 리치한테 오랫동안 시달릴 생각은 없었다.

“...너에게 안식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내 시선으로만 보이는 조종의 끈을 확인한다.

그걸 살핀 다음으로 가우디움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장난질은, 여기까지다…!]

“아니, 네 명줄이 여기까지겠지.”

뒤끝 없이 깔끔하게 가우디움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손을 움직이자, 가우디움과 흑탑주와 연결된 선이 잘려 나갔다.

티아그리스가 여기에 강림하는 상황은 막고 싶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쉽사리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니까.

이렇게 연결을 끊어둔다면, 여기서 가우디움이 영면을 맞이하더라도 흑탑주는 자세한 상황을 모른다.

강화된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가우디움은 순식간에 제압되기 시작했으니.

프랑의 보조와 라엘리와 합공의 위력은 상당했다.

나 또한 신체 강화로 이루어진 보조가 효과적이었으니.

여기에 리치가 지닌 약점에 맞추어 환상까지 걸어주니, 가우디움이 무너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어어어어….]

타인을 흑마법의 제물 삼고, 고통스럽게 했던 죄인다운 최후라 할 수 있었다.

크나큰 변수가 없다면, 우리 셋이 리치 하나 못 이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쿵-

“아르갈!”

“괜찮아요?!”

두 소녀가 달려들었다.

확실히 몸도 안 좋은데 신체 강화를 쓴 부작용이, 정말 강하게 다가왔다.

신체 강화를 심하게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사실을 프랑도 알고 있기에, 그녀는 강하게 경고했다.

“아르갈, 그냥 가만히 있어요. 앞으로 다시 나설 생각을 하지 마시고요. 아주 약간의 신체 강화도 하면 안 되는 몸이잖아요!”

“알겠다.”

“말로만 하지 말고요!”

그녀의 두 눈에 아주 약간이라도 물기가 생긴다.

그렇게까지 경고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라엘리는 감정이 격해지는 프랑을 잠시 진정시켰다.

“일단 밤도 늦었으니 자자.”

“...그래요.”

잠시 정신을 차린 프랑이 몸을 돌려 마차 위로 올라가려 했다.

격하게 기침하며 창을 들고 있는 창성을 발견할 때까지.

“뭐 하고 있나요 아셀…?”

“...싸우는 줄, 알고, 콜록, 밖으로 나왔거든.”

“다시 집어넣어 줘요. 라엘리.”

“오케이.”

쿠웅-!

“히야악!”

타이밍이 늦어버렸던 창성은 다시 자가격리 당했고, 우리는 마차에 몸을 싣고선 하룻밤을 고요히 보냈으니.

“...우웅.”

내 근처에 잠들고 있었던 프랑이.

나에게 조금 더 달라붙고 있음을 묘하게 느꼈다.

종결에는 완전히 껴안았으니.

...그녀의 감정을 알고 있었던 나는 가만히 있었다.

프랑의 숨결은 부드러웠다.

**

수도에 도착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애당초, 이틀로 예정됐으니 그럴 만했다.

마차가 도착하고, 수도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왕태자의 크나큰 실책도 있었고, 흑마법사가 수도 근처에서 날뛰고 있으니, 조용히 소문이 퍼져나갔겠지.

그렇지만 루셀마니의 힘으로 입구는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문장이나 휘장이 없더라도, 공작가에서 집행 중인 마차라 한다면 경비원은 손가락 한 번 움직이지도 못하고 통과시켜야만 했다.

그리하여 오랜만은 아니지만, 체감상으로는 오랜만에 수도로 도착했다.

“그럼, 바로 교회로 가볼까요?”

프랑은 일의 해결을 위해서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건강의 걱정과 베시아의 상황에 대한 걱정이 섞여 있었으니.

나도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곧장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도착하자, 이전과 다르게 경비가 상당히 엄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기사가 살벌한 기세로 정문을 가로막았으니.

함부로 통과하기 어려워 보였다.

“루셀마니의 이름을 빌릴까요?”

“교회에 공작가의 힘이 통하진 않을 거다.”

“...그럼 이건 어때요?”

프랑은 당당히 교회의 정문에 다가갔다.

길을 막아서는 성기사에게 말하기를.

“제가 용사의 친구인데. 만나볼 수 있을까요?”

“용사님의 친우십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용사가 보고를 위해서 교회로 갔다는데, 그곳이 바로 수도의 교회였으니.

용사는 이곳에 머물고 있을 거다.

여기에 그녀의 친구라는 명분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입학시험에서의 고난을 함께 이겨낸 전우이니까.

성기사들은 이러한 경우는 처음이라 그런지, 당황했지만, 굳건히 입구를 막아섰다.

“용사님은 잠시 외출 중이십니다. 용사님과 함께 들어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이러면 안 되는데요.”

나름 회심의 한 수가 막혀버리자, 달리 방법이 없어져 버렸다.

이러면 강행 돌파를 해야 하나?

근데 성기사들을 이길 수는 있고?

아니면 용사를 찾아서 같이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용사를 찾는 것도 시간이다.

주교를 한 번 만나러 왔다고 사실대로 말할지 고민을 하려던 참에, 입구 너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으니.

“어? 그때 환자분 아닙니까?”

그건 바로, 베시아를 흑마탑에서 탈출시켰을 당시, 날 치료하고 통제하던 사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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