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고 하는 창성을 위로해주었다.
그렇게까지 잘 우는 성격이 아니…. 아니려나?
회귀 전의 창성이야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혐성이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는 챙겨줄 테니까, 너무 서럽게 여기지 말아라, 워낙 다사다난해서 잊고 있었던 거지, 고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잊어먹은 거 같은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마차에 방치되고, 아픈 상태로 알아서 교회까지 찾아오는 동안 그녀가 얼마나 서러웠을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한 잘못도 아닌데 말이지.
쓰러져 있는 동안 프랑하고 라엘리, 너희가 챙겨줘야 할 일 아닌가?
그런 시선을 두 명에게 주자, 은근슬쩍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흠흠, 아무튼 아르갈하고 주교님을 위해서 어서 흑탑주를 잡으러 가죠!”
“그래야지.”
중요한 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우리가 흑탑주의 위치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주교가 알고 있어서, 다시 주교를 찾아가야 하겠지.
“근데 그러려면 주교에게 가야 한다.”
“...그럼 가면 되는…. 아.”
아주 중요한 모순을 하나 떠올렸다.
나는 그녀의 마법으로 인하여 방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프랑은 도무지 날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저희끼리 가서 알아내면 되지 않나요?”
“...그게 될까?”
주교가 접촉만 하더라도 그의 심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면야 상관은 없겠지.
그렇지만, 주교와 더 해야 할 대화거리도 있고, 그걸 이어 나가는 건 가능한 내가 하고 싶었다.
갈등에 빠져있는 프랑에게 풀어달라 요구했던 건 베시아였다.
그건 좀 의외다.
“그냥 풀어줘 프랑.”
“...네? 가장 먼저 아르갈을 묶어두려 했던 건 베시아 아니었나요?”
베시아는 내 곁에서 지친 목소리로 미묘한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건 원래 장난이었고, 아르갈은 라베가 주교님의 저주를 나눠 가졌잖아.”
고개를 푹 숙였다.
모든 것이 그녀에게 시련이 되어 다가온 것처럼.
베시아는 너무나 힘든 일을 연속적으로 겪었다.
“주교님을 만나야 한다면, 만나게 해줘야지.”
“...알겠어요.”
베시아가 그렇게 말하니 프랑은 더는 날 역류하지 못하고 마법을 풀어냈다.
...다행히 여기서 평생 가둬지는 일은 없겠네.
안도의 숨을 쉬며 주교를 찾아가기 위해서 움직였다.
모두가 교회의 복도로 나가던 때에,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던 검성이 다가가 말을 했다.
“엘릭서, 다 안 먹었군.”
역시 눈치를 챈 건가?
엘릭서를 다 먹는다면 몸이 깔끔히 낫기야 하겠지만, 굳이 전부 먹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러니 약간 먹고 대부분은 남겨두었다.
이래도 약효가 꽤 좋아서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
검성은 내가 어떻게 엘릭서를 먹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뭘 어쩌든 상관없다는 느낌이다.
“용사도 알고 있겠지?”
“나도 알고 있는데 용사가 모르겠나?”
역시 용사도 알고 있었구나.
그녀도 내가 살아있기만 하면 괜찮다는 태도인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남은 엘릭서를 어디에다 활용할지 고민했다.
너무 비싸서 팔아넘기기도 힘드니, 결국에는 내가 써야 할 텐데.
마땅히 쓸 사람이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잠시.
다시 주교를 찾아갈 수 있었다.
주교는 침대에 누워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중태에 빠져있었다.
내가 저주를 나눈 덕분인지,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그 전만 하더라도 당장 죽을 것 같았던 게 주교였으니까.
베시아는 떨리는 몸으로 다가가 주교 앞에서 주저앉았다.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녀는 흑마탑에서 벗어났지만, 그녀의 운명은 아직도 그곳에 얽매여 있었다.
베시아가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주교의 깡마른 손을 붙잡는다.
눈물을 뚝뚝 떨구며, 베시아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던 참에 강렬한 빛이 그녀를 뒤덮었으니.
그 빛에 잠시 눈을 감았던 순간, 베시아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주교가 무언가 한 모양이구나.
나 역시 주교에게 다가가 손을 올려놓자.
강렬한 빛이 내 시선을 가린다.
다시 그 심상 세계가 날 찾아왔다.
날 끌어당겨서 이곳으로 불러들인 거겠지.
정정한 모습의 주교가 가만히 서서 날 기다렸다.
“다시 오셨습니까?”
“모두가 모였습니다. 흑탑주의 위치를 알려주시지요.”
그러자 주교는 손가락을 튕겨 흑탑주의 위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두 눈을 찌푸렸다.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선을 넘으려 들었기에.
나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흑탑주가 미치기라도 했습니까?”
“진정 그럴 수도 있지요.”
흑탑주는 군세를 긁어모아 도시를 침범하려고 했다.
수도를 공격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왕가에서 허용한 선을 넘으려 드는 건 확실했다.
흑마탑을 무너뜨린 영향인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이러면 상황은 심각했다.
...진정 그녀가 원한다면 도시 하나가 몰살당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마을이나 민가가 없어지는 건 그럴 수 있다.
많아 봐야 수 백 명 정도가 죽는 정도에 그치니.
그러나 도시는 규모가 달랐다.
최소 수만이다.
이 엄청난 숫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도시를 몰살하는 짓은.
그야말로 흑마법사가 끝장을 보려 할 때만 하는 짓이다.
초월에 이르거나, 인생 일대의 목표가 눈앞에 있었을 때 한 번 시도해보는 극악한 죄업.
그러면 교회나 국가에서 모든 관심이 끌려서, 그 흑마법사를 처단하려고 작정할 테니까.
아무리 뒤에서 서로 암약했어도, 교회는 물론이고 왕가에서도 그녀를 죽이려고 움직일 거다.
아마 집행부에서도 움직이지 않을까.
나는 주교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교의 예측은 어디까지 가능합니까?”
“눈에 보이는 만큼. 달리 설명을 붙일 필요 없이 그 정도로만 가능합니다.”
미래를 보는 정도는 아니란 소리다.
만약 그랬다면 초월자들은 모두 예언자였겠지.
특유의 통찰력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는 정도에 그칠 거다.
“그렇다면 흑탑주는 도시를 말살시키려는 의도가 확실합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흑탑주를 퇴치하러 갈 때 주교가 저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무엇입니까?”
초월자의 조언이 필요했다.
도시 하나가 증발하는 걸 막아야 한다.
내가 정의심으로 인하여 하는 게 아닌, 도시가 증발함으로써 무한에 가까운 마기를 손에 쥔 흑탑주가 어떤 짓을 할지 몰라서 그렇다.
자칫 잘 못 하다간, 왕국이 마왕으로 인하여 날아가는 게 아니라, 흑탑주로 인하여 박살 날 수도 있었다.
주교는 고민하다가 답했다.
“여전히 자신이 불사자라고 확신합니까?”
“...그렇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불사가 아니라고 확신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결국 나는 나 자신을 불사자라 생각하니.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주교는 이번 일을 하나씩 계산하기 시작했다.
초월적인 존재가 미래를 관측하기 위해 머나먼 곳을 살폈다.
그의 심상 세계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최후에 이르렀을 때, 실상 예언이나 다름없는 말을 했다.
“자신이 죽지 않는 걸 너무 확신하지 마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불사자에게 자신이 불사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말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교는 나에게 한 마디 더 해주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에 그렇습니다.”
“내가 불사자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것과 상관없이 거기에 파생된 행동이, 오히려 당신을 파멸로 이끌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불사자인 것을 이용하여, 죽음을 각오하며 하는 행동들을 자제하라는 뜻인가?
이해는 잘 안됐다.
그것이 불사자 임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인데.
어찌하여 하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주교가 여전히 날 불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최대한 안 죽게 유도하는 건가?
어찌 되건 초월자의 조언을 마냥 무시할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심상 세계 속에서 몰아치는 파도가 날 덮쳤다.
**
하늘이 어둠을 되찾았을 때.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조용하네.”
그녀의 정신만큼은 어지러웠음에도, 세상은 고요했다.
밤이니 당연한 일이다.
“탑주님, 거의 모든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정작 도무지 기다릴 수 없이 몸이 달아올랐던 건 그녀였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참을 줄 알았다.
저 앞에는 커다란 성벽이 있었다.
수도 근처의 자치 도시.
총인구 십만이 넘어가는 대도시라 불릴 법한 곳.
거기를 흑마탑은 총공격하려고 하려는 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염원을 목전에 두었다.
“...드디어 이루어냈다.”
티아그리스의 미소는 그 무엇보다도 진했으니.
삼 일 전에 보았던 광경을 결코 잊지 못하리다.
당시에 가우디움하고의 연결이 끊겨서,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움직였었다.
발견했을 때는 가우디움은 처참한 흔적만 남아있는 해골이 되었으니.
언데드에서 영면에 이른 것을 다시 언데드로 만들 재능까지는 흑탑주에게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은 있었으니.
누가 가우디움을 죽였는지 알기 위해.
과거의 있었던 일들을 살피고자 영혼의 조각을 불러 모으니, 그 당시 있었던 일들이 나열됐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소년이.
아주 멀쩡히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그걸 보자마자 그녀의 머릿속은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갔다.
분명 가우디움은 불사자의 의식을 시도하기 직전이었다.
그렇기에 불사자가 될 가능성이 큰 인자로 실험하기 위해, 귀족과 사제를 납치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러온 귀족 소년이 제 목숨을 바쳐서 흑마탑을 무너뜨리고 사제를 살려버리는 당돌한 짓을 해버렸다.
그것이 그녀가 알고 있던 전말이고, 그렇게 끝난 줄 만 알았다.
그 소년이 멀쩡히 살아서, 리치가 된 가우디움을 또 죽였을 때까지.
그렇다면 오직 하나의 가능성만 남았다.
불사자의 실험이 성공했고.
소년은 무한의 목숨으로 흑마탑을 무너뜨릴 저력을 발휘했으며.
악마의 계약으로 마지막 생명까지 내던졌지만, 결국 죽지 않기에 되살아났다.
그걸 깨닫자마자, 티아그리스는 미쳐버린 것처럼 웃었다.
불사자는 왕가만의 염원이 아니다.
그녀의 염원이기도 했다.
“흑마법사가 불사에 이른다면.”
마왕조차 두렵지 않을 테다.
드디어 완성했다!
드디어 이루었다!
그녀의 인생을 모두 갈아서.
흑마탑을 세워서 도달하고자 했던 불사자의 완성을!
“이름이 아르갈이라고 했던가…? 나도 멍청하지, 죽은 줄만 알고 제대로 된 조사도 안 했는데, 불사자를 그렇게 방치하고 있을 줄이야.”
그녀는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불사자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녀가 진정한 불사에 이르기 얼마 안 남았기에.
그래서 도시를 공격하고자 했다.
수도에 숨어든 불사자를 공격하기에는 역량이 못 미치니.
완벽한 준비를 끝마치고 단숨에 도시를 제물로 바친다면, 초월자에 이르는 강력한 힘을 잠시나마 쥘 수 있을 거다.
그러면 그녀 자신이 마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죽을 수도 있으나.
그래야만 불사자의 힘을 취할 수 있을거다.
불사를 빼앗는 건 상당한 조건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렇게 해서 강탈한다면 결국 무한한 생명이 그녀를 진정한 초월자로 만들어 주겠지.
그래서 장로들에게 불사의 연구를 맡기었고.
그녀는 모든 여력을 다하여 불사를 빼앗을 수 있는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기에 자신한다.
그 소년의 불사가 자신의 것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