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47화 (47/69)

“어떻게 된 거예요?”

여기에 있는 인물 대부분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고 있을 거다.

심상 세계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눈다는 방식 자체가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닌, 거의 없는 지경이었으니까.

초월자만이 가능했고, 나와 같은 반쪽짜리 초월자가 아닌 온전한 정신 체계를 완성한 이들만 가능한 방식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주교는 어떻게 심상 세계를 이룬 건가.

그만큼의 자질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가.

“...흑탑주가 도시를 습격하려 한다.”

“정말 그렇습니까?”

심각한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의 반응이 좋을 수는 없었다.

특히 극적인 반응을 보인 건 용사.

인류를 지켜야 하는 사명을 지닌 용사에겐, 흑마법사 무리가 도시를 습격한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여기 있는 인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정확한 위치를 이야기하고자, 주교가 보여주었던 도시를 다시금 살핀다.

그걸 기준으로 위치를 유추하니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시감이 아니다.

나는 이 도시를 알고 있다.

...흑마법사의 생각은 전부 다 똑같은 건가?

도대체 이게 무슨 우연인가.

도시의 이름은 안토니.

회귀 전 초월에 이르기 위해 내가 제물로 바쳤던 도시다.

시간대가 다르니, 주교의 기억을 통해서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이렇게 위치를 정확히 살피니 제대로 기억났다.

회귀 전의 커다란 죄악을 이렇게 마주할 줄이야.

동시에, 내가 지도에서 지워버렸던 도시를, 정작 지금 와서 지키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연은 아니다.

안토니라는 도시는 지정학적으로 본다면 초월을 노리는 흑마법사가 삼기 좋은 대상이니.

도시 자체가 왕실령, 그러니까 왕가가 직접 다스리는 땅이다.

따로 영주가 없었고, 도시의 방비도 수도의 황금기사단이 한다.

그렇다면 수도처럼 방비가 완벽하냐?

그것도 아니다.

왕가가 머무는 수도의 방비가 모든 걸 집중하지, 아무리 도시의 규모가 크더라도 주요 인물이란 시장뿐인 안티오의 방비가 좋겠는가?

그래서 안토니는 그 규모에 비하면 습격에 취약한 편이었고, 나도 이 점을 이용해서 하루 아침 만에 도시를 지워버리고 초월에 이르렀다.

흑탑주도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진 않았겠지.

빠른 날짜 안에 도시를 불태우고, 초월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다소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많았다.

도대체 왜 흑탑주는 초월에 이르고자 하는 건가?

과정 없이 한 번에 얻은 마기는 잠시 초월자에 준하는 힘을 지닐 수 있더라도, 그거야 한시적이지 몸이 버티지 못한다.

“무언가 있겠지.”

흑탑주가 진정 초월에 이를 수 있는 단서를 얻었거나.

아니면 초월에 이르고 달성해야 할 목적이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거다.

내가 고뇌에 빠지던 사이에, 용사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재촉했다.

여기서 가장 급한 모습을 보이는 용사다.

“대체 그 도시가 어디입니까? 아르갈.”

“안토니다. 수도 근처에 자리한 도시.”

“인구 10만이 넘는 도시를 공격한다고요. 흑탑주가? 미친 거 아니에요?”

프랑은 그 와중에 안티오의 정확한 인구까지 말했다.

라엘리는 궁금해한다.

“흑마탑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 저력이 있어? 도시를 공격할 정도로?”

“흑마법사의 특징이 그래요. 사람이 죽으면 죽을수록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서, 사람을 죽이고 거기서 얻은 마기로 사람을 또 죽이면 결과적으로 도시 하나를 지울 수 있죠.”

“그, 그러면 진짜 심각한 일 아니야?”

“대응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에요. 아르갈, 아직 일이 시작된 건 아니죠?”

“아직은 아니다. 습격하기 직전이긴 하지만.”

준비는 거의 완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합류하는 시점은 이미 흑탑주에게 공격받고 있는 시점이 아닐까.

아예 처음부터 달려간다면,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순 있을 거다.

와중에 검성이 팔짱을 풀며 말한다.

“내가 갈까? 용사가 갈 건가?”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리 선에서 해결하기 힘들다. 흑탑주만 하고 싸우면 모를까, 도시의 시민을 제물로 바치며 강해지는 흑마법사를 이 인원만으로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다.”

검성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했다.

“황금기사단을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건 용사 아니면, 나 말고는 없을 거다.”

인류의 구원자인 용사, 루셀마니의 공자인 검성.

정확히는 수도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전력인 황금기사단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그 둘 뿐이다.

그들에게 안토니가 공격당한다는 소리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도시가 습격당한다고 이야기하고, 설득하면 늦기에 당장 기사단을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용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한다.

“제가 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는 기사단장과 안면을 터놨으니까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 일은 용사가 가는 게 맞아 보이는군, 내 인장을 가져가라.”

검성은 루셀마니의 문양이 새겨진 반지를 용사에게 건네준다.

그는 인장을 준 이유를 말해 주었다.

“기사단장에게 인장을 주며 부탁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게다가 내가 인장을 가져가 설득하기보다는, 용사가 가져가서 설득하는 게 더 효과가 좋겠지.”

가문의 인장은 오직 은인에게만 주는 선물이었다.

가지고만 있어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커다란 대가까지도 받을 수 있는 물건.

가문의 후계자인 검성이라 하여도 단 하나밖에 지니지 않을 거다.

그걸 기사단장에게 주면서까지 황금기사단을 움직이겠다는 검성의 의지가 보였다.

용사는 감사를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라인하르트, 그대의 기여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울려 준다 했으니, 그 말을 지킬 뿐이다.”

그러며 검성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로 향했다.

엘릭서를 주며 했던 말이 그 뜻이었던가…?

누구와 비교하기 힘든 재력과 신분은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고민을 하던 프랑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황금기사단 말고도 교회도 움직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교회에 수상한 점이 많습니다.”

용사는 교회를 의심스러워했다.

잘 못 하다간 도움이 아니라 방해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건 괜찮을 거다.”

그렇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교회는 회귀 전에서도 꽤 얌전했으니까.

용사와 겉으로는 큰 문제 없이 긴 시간 동안 협력했다.

아마 용사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일 거다.

아마 다른 속내가 있더라도, 그게 지금은 아닐 거다.

고사리손도 급했으니, 교회에 도움을 받는 게 좋겠지.

“그럼 용사, 교회에다 도움을 요청하고, 황금기사단에 가는 게 맞겠군.”

“라인하르트는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안티오의 시장을 만나봐야겠지.”

검성의 신분 또한 쓸 곳이 많았다.

아무리 안토니의 방비가 약한 편이라도, 아예 경비병이나 기사단이 없던 건 아니다.

황금기사단의 수습생들이 안티오에 머물며 수습 기간을 보내고, 경비병도 있기는 했다.

이걸 프랑이나 라엘리가 가서 경고하면 씨알도 안 먹히지만, 루셀마니의 공자가 가서 말한다면 의미가 다를 거다.

아예 신분의 힘으로 시장을 움직일 수도 있었고.

그러니 검성이 시장과 마주하여 위험을 알리는 게 맞았다.

그 전에 습격이 시작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

그리하여 할 일이 모두 정해졌다.

“얼추 결론은 난 건가?”

“그럼 움직이지, 나는 메이드에게 마차부터 마련하라고 말해두겠다.”

“저희는 그럼 라인하르트를 따라가면 될까요?”

“아르갈과 주교님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흑마법사랑 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벌떡-

“아니, 그러면 안 돼.”

모두가 계획에 찬성하는 와중에, 잠시 쓰러졌다가 깨어난 이가 있으니.

베시아는 새빨개진 두 눈으로 날 바라봤다.

...아무래도 베시아는 주교를 만나고 온 모양인데.

대체 뭘 보고 왔기에 저런 얼굴인가.

“딱 하나만 주교님한테 물어보고 왔어.”

“그게 무엇이기에…?”

“네가, 또.”

베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거기서 본 것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저러한 감정을 보이는 게 확실했다.

“네가, 또 죽더라.”

“...”

“어떻게 죽는지는 몰라, 죽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건 하나 확실했어.”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주교, 도대체 왜 베시아에게 그런 걸 보여주었는가.

이러면 일이 꼬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내 멱살을 잡았다.

“여기서 가만히 머물 생각은 없어?”

“...가만히 있을 사안이 아니다 베시아. 주교가 뭘 보여준 건지는 몰라도, 그건 예측이지 미래를 예언하는 게 아니다. 주교는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것에 불과한 거지, 예언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히 조심만 한다면 죽지 않을….”

“개소리 마.”

그녀의 눈물이.

마치 붉게 충혈된 두 눈에 맞물려.

피눈물처럼 보였다.

“네가 죽는 예측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내 멱살을 쥐고 있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날 기절시키고 여기서 놔두고 갈 생각이 가득해 보이는 베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끔찍하군.

주교가 나의 죽음을 예측한 것이나, 베시아가 그걸 보았던 것이나.

주교는 마치 나에게 경고하는 것 같았다.

나의 반복된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

주변인에게 이러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안 죽는다고 해도.

그건 결국 안 믿어버리니 어쩌라는 것인가.

죽어서 증명하려 함에도, 엘릭서건, 어떤 방법으로든 날 되살려버리고, 나의 행동에 대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면 이 또한 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일 보 후퇴하는 게 맞겠지.

베시아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제약을 받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여기에 수용하고 행동을 하는 게 나았다.

“알겠다. 베시아.”

“...뭐?”

“네 말을 따르지.”

너무 쉽게 순응하자 베시아는 당황스러워했다.

오히려, 의심을 해 버린다.

“너,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떠나자마자 곧장 따라붙을 거지?”

...금방 알아차리는구나.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편히 방관하여 일의 결과만을 보고 싶어도, 너무나 불길했다.

이번에 내가 없다면, 어떤 참사가 생길지 예상이 안 갔기에.

베시아를 속여서라도 움직이는 게 맞았다.

“...정말로 가만히 있겠다. 베시아.”

“난 못 믿어.”

“믿지 못한다면, 물리적인 수단을 써도 괜찮다 베시아.”

아, 안 갈 거라고.

진짜로.

이런 식으로 배짱을 부리니 베시아는 헷갈리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안 갈 건가? 진심으로?

그녀가 이러한 혼돈에 빠진 사이에 나는 급히 프랑을 바라보았다.

프랑도 내가 죽는다는 소리에 심각해진 상태다.

“프랑, 너와 나는 마법사이지 않은가?”

“...맞아요.”

“그렇다면 마나의 계약이 가능하겠지.”

“...!”

프랑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도 상당히 날 의심하고 있었지만, 마나의 계약을 꺼낸다는 건, 그걸 진정으로 실천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러면 오히려 프랑이 날 변호하게 된다.

마나의 계약이 지니는 의미를 알기에 진정 신뢰하는 것이다.

“베시아, 정말 계약한다면 믿어도 괜찮을 거예요.”

“그래?”

“마나의 계약은 죽지 않는 한 어길 수 없으니까요.”

프랑은 내가 죽지 않길 진심으로 원했는지, 계약서를 빠르게 만들어냈다.

푸른색의 종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날 억압하는 다양한 조약이 종이 위에 도배되어 있었다.

사실상 날 여기다가 구속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는 계약이기에, 프랑마저도 약간 망설이는 듯싶었으나,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건지, 그녀는 서명했다.

거기에 맞춰서 나의 서명도 계약서에 들어갔다.

“...이러면 괜찮아요.”

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계약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하기에, 더없이 안심한 모습이었다.

베시아도 약간이나마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아르갈.”

“...거기에 가서 내가 죽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프랑과 베시아를 제외한 다른 이들도 약간은 당황스러워했지만,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 이 계약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용사가 말했다.

“아셀도 아픈 듯하니, 그녀와 함께 여기서 머물고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아픈 사람은 가만히 있어! 그 꼴로 도움이 될 수 있겠어?”

라엘리가 창성을 억압하자, 그녀는 그대로 찌그러져 버렸다.

그 똥고집을 부리던 창성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가….

프랑, 용사, 라엘리, 검성, 베시아.

그들 모두가 묵묵히 움직였다.

안티오에 찾아올 재앙을 막기 위해서 여정을 떠나려는 것이다.

프랑과 베시아도 이전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을 되찾았다.

내가 빠져서 전력이 깎이는 것 보다.

내가 참여해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던 탓이다.

그러한 가능성이 없어져 버렸으니, 안심했겠지.

그러나 프랑 네가 간과한 점이 있다.

나는 몸에 한 줌의 마나도 없는 무능력자.

매번 마법을 잘만 쓰니 착각할 법도 했지만.

...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프랑.

고로, 계약은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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