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48화 (48/69)

“오늘은 날이 밝구나.”

아르델은 저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본래라면 고요한 바람 소리와 빨래를 널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메이드들이 그의 말을 대답해주겠지만, 이곳은 달랐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맑은 날임에도 답답하게 가죽옷을 둘러 입은 경비병이 대답했다.

아르델은 브리텐 가문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그는 황금기사단의 견습이 되어 복무하는 중이었다.

기사단의 견습으로 입단하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적당한 실력과 신분만 있다면 가능하다.

여기서 기사가 되는 게 보통이면 넘어설 수 없는 벽이라서 그렇지.

어찌 되건 아르델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기도 했던, 황금기사단의 정식 기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막 뗐다.

원래라면 진작에 들어갔겠지만, 최근에 일이 터지기도 했고, 입단하자마자 또 커다란 사건이 생겼었다.

하늘은 평온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어지러웠다.

대체 동생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까.

저번에는 납치당하더니, 이번에는 실기 시험을 보다가 아예 통으로 수험자가 대량 죽는 참사가 발생하다니.

캐론이 전한 소식으로는 다행히 아르갈은 죽지는 않았지만 크게 다쳤다고 하는데, 황금기사단의 견습이 된 아르델은 동생의 병문안 마저 가지 못한다.

주어진 임무를 던져버리고 간다면 다시 황금기사단에 들어가지 못할 테니.

어쩌겠는가.

살아있으면 다행인 거지.

“후우….”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매일같이 안토니의 순찰을 하는 것.

더럽게 지루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정식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해야만 되는 일이다.

그러며 매번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치러야 하고, 다른 수습들과 경쟁까지 해야 하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도 심신을 달래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오빠, 오늘도 순찰하는 중이에요?”

“꼬맹이.”

본가에 있는 아리엘이 생각나서 그런 건가?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저 아이와 얼굴을 마주했다.

딱 여동생의 나이를 가진 저 소녀에게 무언가 친근함을 느낀 아르델이다.

길 가다가 적당히 대화 나누는 정도만 하여도, 안토니의 모든 주변 인물이 낯선 아르델에게는 저 소녀가 가장 친한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 되겠지만.

그 소녀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열더니 버섯 한 아름을 보여주었다.

“건너편 뒷산에서 버섯이 보여서 가져왔는데, 이거 먹을 수 있을까요?”

“...전혀 먹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여 보이는데.”

“그, 그래요?”

시골 영지에 살던 아르델은 버섯을 함부로 주워 먹으면 안 된다는 지식 정도야 있었다.

독버섯과 버섯을 구분할 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잘 못 먹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버섯을 함부로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루나, 괜히 먹지 말고 다 버려라, 버섯에 중독되면 그것도 큰일이니.”

“히잉….”

“흠흠, 이제 가시죠.”

순찰을 떠나야 한다는 재촉에 아이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건 아니지만, 그는 잠시나마 평온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불길했다.

저 밝은 하늘이 저녁이 된 것도 아닌데 점차 어두워졌다.

여전히 안토니는 커다란 도시임에도 고요했다.

**

“다 떠났네….”

창성은 무척이나 침울해했다.

겨우겨우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고, 여기다가 같이 온 동료한테도 잊히는 수모를 겪었는데, 또 버려지다니.

기분이 안 좋을 만했다.

“그렇게까지 따라가고 싶나 아셀?”

“그럴 목적으로 온 거잖아.”

“따라갈 수 있다면 따라갈 거고?”

나는 혹시나 해서 창성에게 제안을 해 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나에게 과도한 집착을 안 보이는 건, 검성과 창성이 유일했으니까.

용사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은 죽어선 안 된다는 기본적인 정의감으로 날 보는 건지, 아니면 그녀들처럼 다소 감정을 지녔는지 구분은 안 됐다.

창성은 기침한다.

“콜록, 콜록, 이 몸 상태로 따라가 봐야 무슨 소용이야?”

“방법이 있다.”

품속에 숨겨두었던 물약을 꺼냈다.

엘릭서.

한 방울만 하더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만들어주는 기적의 영약.

고작 독감쯤이야 한 방울이면 충분했다.

“뭐, 뭐야 다 마신 거 아니었어?”

“아까운데 뭣 하러 다 마시겠나.”

“있었으면 진작 줬어야지!”

어…. 역시 혐성은 혐성인 건가?

짜게 식은 눈으로 창성을 바라보니, 그녀도 양심에 찔리긴 하는지 시선을 피했다.

“...타, 타이밍이 안 좋다는 거지, 나 버려두고 전부 가버린 지금 주면 무슨 의미야?”

“이거 사실상 내 수명인데?”

“흠, 흠! 그, 그래도!”

내 수명이 될 수 있는 걸 너한테 나눠준다는 뜻으로 말을 하더라도 창성은 당당했다.

이건 좀 편한 거 같았다.

창성의 성격 덕분인지 몰라도, 나한테 크게 죄책감을 지니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녀 앞이라면 맘 편히 죽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따라가고 싶은 건 맞지?”

“...응 맞아.”

“조건이 하나 있다.”

주교를 바라본다.

베시아에게 나의 죽음을 보여준 건 어떤 의도를 가진 줄 몰라도, 나는 그 도시로 향할 것이다.

혹시 몰라 한 번 더 대화를 나누려고 접촉해도, 주교는 더는 나를 심상 세계로 끌고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겠다.

주교는 나와 나의 동료가 흑탑주를 죽일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대가 한 조언은 지나치게 불사를 활용하지 말라는 의미였으니.

...그건 내가 불사자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니.

뭘 보았기에 나의 죽음을 막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불사자이다.

몸을 조금 사려서, 주교의 말은 들을 수 있어도.

내가 직접 가서 흑탑주를 죽이겠다.

불사자라는 영원한 고리를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직접 처단하리다.

“나도 같이 가겠다.”

“...그게 가능해? 마나의 계약을 했잖아.”

“가능하지.”

창성은 의문을 표현했지만, 그렇다고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독감만 나으면 뭐든 좋다는 모습이다.

확실히 독감이 지나칠 정도로 그녀를 괴롭히긴 했다.

“나, 나는 상관없어. 독감만 나으면 괜찮아.”

“그럼 입 벌려.”

“...내가 직접 먹으면 안 돼?”

“내가 뭘 믿고?”

창성은 여기에 자기 객관화는 잘 되어 있는지, 나의 말에 수긍했다.

그녀가 생각해봐도, 자기 손에 엘릭서가 있다면 다 마셔버릴 것 같았던 모양이다.

한 방울에 대저택 하나짜리를 말이다.

그렇지만 조금 부끄러웠던 건지 입을 벌린 창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뽕-!

입구를 열자 엘릭서의 강한 향이 이곳에 번져나갔다.

“아아아….”

벌어진 창성의 입에다가 엘릭서를 한 방울 흘려주었다.

이래도 워낙 엘릭서 자체의 양이 적다 보니까, 이제 남은 엘릭서가 많지 않았다.

엘릭서를 먹자마자 창성의 안색이 훨씬 나아졌다.

그녀는 턱에 걸어놓았던 마스크와 머리의 수건을 벗어 던지고 입고 있던 따듯한 옷까지 벗어 던졌다.

...갑자기 옷을 벗어버리니 놀라긴 했지만, 그 안에는 편한 활동복을 입고 있었다.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다.

“으으, 드디어 살겠어.”

족쇄처럼 그녀를 묶어두던 독감이 깔끔히 나아 버리자, 항상 침울한 표정이었던 창성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기뻐 보였다.

...엘릭서를 한 방울 준 보람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그럼 가지.”

“알겠어.”

마차를 구하지 않고 바로 갈 생각이다.

이러면 아마도 용사보다는 일찍 도착하지 않을까?

용사는 교회의 관련 인물과 마주하고, 황금기사단까지 움직여야 했으니까.

그 전까지, 우리가 최대한 흑탑주를 막아야 했다.

과연 흑탑주가 어떤 의도일까.

회귀 전을 떠올린다.

흑탑주와의 충돌이 이번뿐만이 아니었으니.

암브로시아는 내 손으로 무너졌었고, 흑탑주도 내 손에 죽었다.

그녀는 그 당시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의 습격으로 흑마법사로서의 강점을 전혀 못 살렸다는 게 맞다.

지금은 의미가 달랐다.

흑마법사로서 가능한 초월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초월에 이르고 도대체 뭘 하고자 하는가.

...설마 하고 든 생각이 있었다.

나의 불사를 노리려는 건가?

흑탑주는 불사자를 만들기 위해서 인생을 가져다 바친 흑마법사다.

그러는 정작 흑탑주는 자신이 직접 불사자를 연구하지 않았다.

매번 다른 짓을 하고 있었다.

당시 가우디움은 제 연구 결과를 자신에게만 쓰기 위해서, 흑탑주에게 불사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흑탑주가 내 불사를 알았던 때는 흑마탑이 무너지고 그녀를 몰래 습격할 시점이었다.

또한 대악마와 이미 계약했다.

여러 번 죽음을 거듭하여 흑탑주를 죽였으니, 그녀가 진정 죽으며 했던 말은 원통함이었다.

‘가우디움, 네가 그 사실을 숨기지만 않았다면….’

라고 했던가.

그런데 불사의 힘을 과연 뺏을 수 있는 건가?

“...뭘 골똘히 고민하고 있어?”

창성은 가만히 있던 날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중요한 사실에 대한 고민이었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안토니로 향한다는 계획이 변경된 건 아니다.

창성은 날 유심히 관찰했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으니까 귀여워 보여.”

...뜬금없이 시비라도 걸고 싶은 건가?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털어내고, 움직였다.

“너는 멍청해 보인다. 아셀.”

“...우으, 내가 어때서?”

창성과 단둘이서 여정이라.

그것이 무척이나 짧은 기간이라도 무언가 어색했다.

그렇게 나가려던 참에 우리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으니.

“환자분들을 함부로 내보내는 건 도리가 아니지요.”

무척이나 노화한 사제가 문 앞을 가로막았다.

“부디, 이곳에서 편히 쉬시지요.”

“...누구십니까?”

“저는 요아스.”

그의 사제복은 더 없이 고급스러웠다.

사치나 화려함을 자제하는 교회에서 그러한 복장이라면.

분명 높은 직위에 있는 상대였다.

“추기경이라는 위치에 자리한 신의 종일 뿐입니다.”

추기경이라….

보통 높은 직위가 아니다.

수도의 교회 지부를 혼자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고위관계자다.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그의 시선이 나의 목걸이로 향했으니.

그때 나는 잠시나마 이상함을 알았다.

“라베가 주교에게 주었던 선물이 그대에게 갔을 줄은 몰랐습니다. 손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 시선에는 무척이나 기이할 정도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남들이 몰라도 나만큼은 알 수 있는 그건.

마기였다.

**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사단장님.”

“아무리 용사님이라 하여도, 이건 참 어려운 요구입니다.”

그녀는 난감해하는 기사단장 앞에서 강하게 입장을 내놓았다.

“반드시 황금기사단이 출동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날 게 분명합니다.”

“용사님이 어떤 걸 우려하는지 알지만, 저의 단원들만 어느 정도 출동하면 될 일이지요. 어찌하여 모든 전력이 수도를 비우고 안토니로 가여야 합니까?”

“제가 말했듯 흑마법사가….”

“아무리 흑마법사라 하여도 하루아침 만에 도시를 지울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흑마법사의 저력을 보고 때에 맞춰서 출동하면 충분하지요.”

그러한 주장에 용사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여, 되도록 내놓지 않으려 했던 물건을 꺼내었다.

그건 라인하르트가 주었던 루셀마니의 인장.

무려 공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인장이었으니, 효과는 무척이나 컸다.

“...그것은?”

“루셀마니의 인장입니다.”

“그걸 왜 용사님이 가지고 계십니까?”

“과거 루셀마니를 돕고 인장을 받은 적이 있지요. 그걸 기사단장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용사는 라인하르트에게 그냥 받았다 하기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설명을 해 주었다.

거짓이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기사단장은 무척이나 탐욕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실물이 눈앞에 있었다.

일의 책임은 용사가 질 것이고, 기사단장은 설령 이 일이 헛손질이라 하여도 크게 손해 보는 건 아니었다.

“...하루만 기다려주시지요.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안토니로 향하겠습니다.”

용사는 허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했을 때는 듣는 척도 않더니, 인장을 가져다주자마자 넙죽 움직여버렸으니.

다른 의미로 허탈함을 느낀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이런데, 죽음을 불사하는 그는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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