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추기경에게 마기가 느껴지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목걸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긴 했다.
아무래도 교회의 보물이라, 그게 외부인의 손에 가 있는 걸 그들이 가만히 놔둘 수 없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가만히 놔둬야만 하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추기경이 별의 근본을 다시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교회는 회수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추기경의 힘이란 그만큼 막강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지금 나설 거라 생각하지 않았건만, 용사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움직일 줄이야.
“손님의 이름에 관해서 물어봤습니다만?”
“...아르갈 브리텐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교회의 보물을 그대가 쥐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중히 대답해야 한다.
여기서 별의 근본을 빼앗기거나, 추기경에 의해 억류하여 있어야 한다면, 정말 큰 일이었다.
차라리 별의 근본을 저 추기경에게 쥐여주는 판단도 할 수는 있겠지.
나의 힘은 어디까지나 흑마법이 가장 강력했으니까.
커다란 리스크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별의 근본을 내놓아야 하는 건 손해가 컸지만, 감수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일단 정론으로 간다.
별의 근본은 주교가 나에게 준 물건.
어찌 되건 나에게 소유권이 있었다.
“라베가 주교가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제가 라베가 주교에게 별의 근본을 주었던 건, 주교가 쓰라고 한 것이지 외부인에게 증정하라고 건네었던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근본을 회수해야겠습니다.”
“거부한다면 어쩌겠습니까?”
그리 답하자 추기경은 기이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마냥, 내 목줄을 쥐었다는 확신에 찬 미소다.
“잠시 이 방에 머물고 있으시지요. 잠시 주교가 깨어나서 당신에게 주었다는 걸 증명한다면 판단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깨어날 수 없는 이가 깨어나야 한다면 그건 모순입니다만.”
추기경은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성기사, 이 방에서 아무도 못 나가게 하도록.”
“그리하겠습니다. 추기경 예하.”
발이 이렇게 묶이는 건가?
그렇다고 하여 추기경은 아직 날 죽이려 하는 의도를 지니진 않았다.
일단은 묶어두고, 그 뒤에 결정을 내릴 생각으로 보인다.
아직 추기경은 용사의 눈치를 보는 듯싶으니.
아니었다면 진작 우리를 죽이려 하지 않았을까.
추기경쯤 된다면, 사람을 억지로 이단으로 몰아 죽일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느꼈던 마기는 거짓이 아닐 거다.
그렇다면 추기경은 교회에 심어진 첩자로 보이는데, 마기와 성력이 공존하는 힘이라.
그건 들어보지 못한 권능이었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추기경이란 직위는 교회에 수 십 년간 헌신하고 기여까지 했으며, 정치력까지 지녀야만 오를 수 있는 직위다.
그런 자가 첩자라는 건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거기에 신실함의 증거 그 자체인 성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추기경이 첩자라 주장에는 큰 힘을 지닐 수 없었다.
마땅히 좋은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할지.
모든 걸 용사와 다른 동료들에게 맡겨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다.
유일하게 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용사를 불러오라 해도, 씨알도 안 들을 거다.
그런 와중에 창성이 말을 꺼냈다.
“...뭘 또 고민하는 거야?”
“이 교회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는 중이다.”
창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딱히 별의 근본과 상관없을 테니, 혼자서 나올 법한 명분이 있지 않을까 따져도 봤다.
근데 추기경이 바보도 아니고 과연 창성을 놔줄까?
엘릭서까지 쓰면서 창성을 나아지게 해 줬건만 의미가 없었다.
“...고민할 필요 있어?”
“마땅한 방법이라도 있나?”
“우으, 방법이야, 있지.”
내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듯 창성은 자신의 창을 꺼내 들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독감에 시달린 이후로 딱히 꺼낼 일 없었던 창이 바깥 공기를 마셨다.
“강행 돌파.”
“...너 다운 방법이다.”
확실히 창성답다.
매번 마왕군의 진영을 뚫고 들어가는 그녀의 성격이라 할지.
하지만 창성은 부정했다.
“...이건 아르갈 네가 애용하던 방법이잖아.”
“내가 언제 그랬다고.”
“...매번 미련하게, 목숨 걸고, 강행 돌파해서 일을 해결하는 게 너 아니었어?”
딱히 부정할 말이 없었다.
“어때? 할 만 할 거 같아?”
“...거참.”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미련 없이.
뒤 없이.
달려드는 성격 하나만큼은.
창성과 나와 닮았으니.
뒷감당은 용사가 해 주면 될일이다.
여기다 주교가 깨어난 뒤에 용사와 함께 교회를 작정하고 뒤집어도 된다.
주교 또한 초월자에 가까운 정신으로 추기경의 부정을 모아두었을 거다.
추기경이 교회 내부의 첩자라는 사실을 꼭 밝힐 필요는 없다.
실각만 시키더라도 충분하다.
그러기에 주교에게 저주를 건 흑탑주를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강행 돌파를 해서라도 교회를 벗어나야 한다.
이는 교회의 타락을 벗겨낼 기회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방법이야.”
주교가 했던 몸을 사리라는 말이.
나를 잠시 한계에 가둬둔 것 같았다.
원래라면 1초의 고민도 거치지 않고.
교회를 분쇄해서라도 여기서 벗어나는 판단을 했을 테니까.
그러한 방향을 다시 창성이 잡아주었다.
단검을 잡아들었다.
목에 걸려있는 마나가 끝없이 증폭한다.
온몸에 고통이 훑고 지나간다.
창성의 근육이 움직였다.
창을 쥐고 있던 팔뚝에 실핏줄이 튀어나온다.
오랜만에 마나 강화를 신체에 쏟아부었다.
엘릭서를 먹은 몸이 얼마나 견딜지는 모르겠지만.
두 명 다 몸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것에 특화된 인간이라 그런지.
전신이 비명을 지르더라도 둘 다 짙은 미소를 지었다.
“...독감 때문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야.”
“싸우다가 쓰러지지나 말아라.”
“너야말로.”
두 명 다 서로가 쓰러지는 걸 걱정하는 척을 한다.
의미 없는 걱정이다.
먼저 움직인 건 창성.
창을 끌어당기며.
문짝을 깨부수며 교회의 복도로 튀어 나갔다.
콰아아앙-!
“바, 방에서 탈출한다!”
“모든 성기사들은 저들을 붙잡아라!”
스릉- 스릉-
바깥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던 성기사들이 당황하면서도 검을 뽑아 들었다.
숫자가 참 많다.
정면 돌파가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지경이다.
세상에 둘이서 교회랑 싸우겠다니.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실행하는 두 명이 미치긴 제대로 미쳤다.
창성은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말을 내뱉었다.
“창문.”
“그거 좋네.”
창 바깥을 바라본다.
교회의 건물은 수도에 있는 지부라 그런지 참 드높았다.
적어도 15층.
그렇지만 둘 다 여기서 떨어진다고 하여도 죽을 거라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았다.
나는 죽더라도 죽지 않으니까.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캉-!
카각-!
성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양 면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등지며 양쪽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맞닥뜨렸다.
창과 단검이, 검을 튕겨내며, 몸에 진동을 붙어다 주었다.
창성은 검을 막아내며 중얼거렸다.
“...죽여도 돼?”
“그건 참아라.”
아무리 그래도 교회와 완전히 적대하는 건, 쉽사리 하긴 힘들었다.
교회 전부가 문제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첩자로 들어간 추기경이 문제이니.
나중에 그를 처리하는 게 중요할 거다.
성기사 무리와 맞서기도 잠시.
중심에서 날뛰고 있는 창성과 날 상대로 우세를 점하지 못했던 성기사들이 조급함을 못 참았는지, 곧장 자기 몸에 성력을 불어다 넣었다.
“전원, 성력을 쓰거라!”
“알겠습니다!”
이건 좀 이기기 힘들겠네.
아무리 그래도 성기사를 우습게 볼 순 없었다.
상급 마족 여럿을 때려잡을 수 있는 전력이다.
성력을 쓰지 않으면 모를까, 성력까지 동원하면 이길 수 없었다.
내가 마기를 쓰는 걸 각오한다면 모를까.
콰가가각!
창성은 성기사의 참격을 버텨내며 나에게 말했다.
“우읏! 이젠 떨어져야겠어.”
“바닥에 떨어지다 죽지나 마라, 창성.”
“낙법은 충분히 배워놨거든?”
평소에 뭘 하길래 15층에서도 떨어져도 괜찮을 낙법을 배워놨는가.
원래 그런 인간이니, 그러려니 하겠다.
부웅-!
창성은 창으로 횡을 크게 그리며 성기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 사이를 틈타 나는 단검으로 창문을 깨부수고 바깥으로 몸을 던진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깨진 유리가 나의 뺨을 스친다.
-쨍그랑!
“바깥으로 탈출하려 한다!”
“붙잡아!”
성기사들이 우릴 어떻게든 잡으려 했지만, 이미 바깥으로 떨어지고 있는 나와 날쌘 몸놀림을 보여주는 창성을 어찌 막지는 못했다.
잠시 허공을 부유한다.
아니, 떨어진다.
강렬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잠시.
하늘 위로 솟구친 나의 머리카락이 다시 아래로 내려앉는 건 금방이다.
저 멀리 보였던 바닥이 순식간에 눈앞까지 다가왔다.
여기에 미리 준비해놓았던 마법을 발동한다.
[부유.]
바닥에 내리꽂히던 내 몸이 천천히 떨어졌다.
마법의 힘이란 이럴 때 무척이나 유용했다.
그러며, 내 뒤에 따라서 떨어지던 창성을 살핀다.
“끼야아아아아아악!”
...분명 낙법을 배웠다면서.
뭐 저리 처절히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건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녀의 표정이 정말로 안쓰러워졌다.
게다가 나는 마나도 다 쓴지라 창성을 지키기 위한 마법을 발동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떨어진 직후 바로 바깥으로 몸을 던진 창성을 지키기에는 마법을 시전할 시간도 모자라다.
그렇지만 낙법을 배워두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창성은 손에 쥔 창을 바닥으로 향하여 쭉 찔렀다.
어떤 방법을 보여줄까 기대하며 바라보자, 그녀는 정말 절묘한 기예를 펼쳐낸다.
콰가가가가각!!
창을 건물 벽면에 박아넣고 긁어냈다.
떨어지던 속도가 느려지기에는 충분하다.
...이건 낙법이 아니잖아.
그래도 발상은 칭찬해 줄 수 있다.
건물을 훼손한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내가 낼 것도 아니고.
“흐악, 흐읏, 흐억!”
“용케 하나도 안 다치고 떨어졌네?”
“아르갈, 나, 나도 부유 마법을 걸어줘야지!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그게 왜 내 탓이야, 분명 낙법 할 줄 안다며.”
세상에 15층에서 안 다치는 낙법이란 건 없기야 하지만, 어쨌건 그녀는 살아남았다.
창성은 하나도 안 다쳐놓고 남 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기사들이 내지르는 검에는 하나도 겁먹지 않으면서, 고작 15층에서 떨어지는 거에 저리 무서워하는가.
“아직 안 끝났다. 정신 차리고 움직여라.”
“우읏, 파, 팔이 아파.”
“건물을 창으로 긁어냈으니 그럴 만하지.”
차라리 처음부터 나에게 마법을 걸어달라 하지.
그랬다면 적당히 마법을 분배해서 그녀도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도록 했을 거다.
“지금 교회의 물건을 탈취하고 도망치려 하는 겁니까?”
고개를 돌리며 저 높은 교회의 건물을 바라본다.
저기에, 추기경이 홀연히 나타났다.
소란을 듣고 달려오기라도 했나.
금방 왔네.
“추기경,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만 합니다. 부디 놓아주시지요.”
“허허, 그럴 수 없습니다. 성기사, 사제들은 막아내도록.”
“알겠습니다. 예하.”
여기서 추기경이 눈치를 봐서 풀어주면 좋은 거다.
그런 일은 없어보이지만.
사제들이 일제히 성력으로 차단막을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성력이 동원됐는지, 나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돌파할 수 없는 강력한 결계다.
그러나 여기에 절망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창성은 묵묵하게 창을 들어 올린다.
“아르갈, 내가 쓰러져도 끌고 갈 수 있어?”
“결계를 뚫을 수 있는가?”
“당연히 가능해.”
일점 찌르기.
마왕군의 역작이기도 했던 검은 갑주마저도 뚫어버리는 창성의 필살기.
그녀의 각오를 보았기에 대답해주었다.
“업어서도 끌고 가지.”
“그럼, 믿을게.”
그녀의 창이 움직인다.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어떠한 살기도 담지 않고.
깔끔한 궤도를 타고 나아간 창이 결계를 찔렀다.
으드득!
처음에는 동그란 점이 뚫렸으나, 그 뒤에는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니.
와장창!
결계를 깨부수고 쓰러지는 창성을 붙잡는다.
별의 근본에서 증폭된 마력을 전신에 쏟아부었다.
마치 그때처럼, 강한 부유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