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52화 (52/69)

“그러면 하나 묻겠다만.”

“...뭐가?”

“어떻게 내 마음을 돌리겠다는 건가?”

창성이 그런 각오를 보였지만.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내 생각을 바꾸게 하겠다는지 잘 모르겠다.

...삶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주겠다는 건가?

창성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걸 알았으면 진작 했을 거야.”

일단 대책 없이 저질러 보는 건 여전히 그녀다웠다.

그녀는 살아갈 이유만 얻은 거지, 딱히 그녀의 전반적인 성격이 완벽히 바뀐 건 아니었다.

“모르면서, 내기를 한 건가?”

“하지만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알아.”

창성은 아주 잠깐 대화하면서 쉬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듯, 날 다시 업었다.

“급한 거 맞지?”

“맞기는 하지, 그렇지만 당장 시작된 건 아니다.”

지금 당장 도시가 함락하기 시작한 시점이라면, 단검을 써서라도 도시로 향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아직은 시작하기 이전의 준비 단계인 모양.

너무 고요했기에 오히려 불길했다.

흑마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했고, 그 규모는 사제들이 알아차리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교회가 움직이고, 높은 수준의 마법사도 눈치를 채고 움직일 거다.

그럼 왕국 전체가 요동치는 거다.

흑탑주와 손을 잡은 왕실이라 하여도, 흑탑주의 급발진은 수습해야만 한다.

그럼 시간 싸움이다.

흑마법이 터지는 순간 흑탑주는 당장 침공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흑탑주는 여유가 너무 많아 보인다.

자신에겐 시간적인 여유가 넘친다는 건지.

...설마 왕실이 이번 일을 막지 않고 도우려는 건가?

정말 그러하다면 다소 심각한 무리수다.

왕실 전체가 흔들릴 거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들이 무너지진 않겠지만, 왕태자같은 얼굴마담 하나가 실각하는 건 확실했다.

창성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일이 시급하니, 그 만큼 빨리 달려가는 거다.

“그럼 이 정도 속도면 충분해?”

“너무 무리하지 마라.”

“...으읏, 내 몸의 한계는 내가 잘 알아.”

창성이 느려지는 일은 없었다.

몸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 하나만큼은 잘하기에.

과거에 어떤 수련을 거듭해 왔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지독함만큼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숨을 거듭 쉬던 창성이 말했다.

“내가 가다가 쓰러지면, 네가 책임져야 해.”

“...가다가 쓰러지지 말고 그냥 좀 쉬어라.”

“...싫어,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게 해줄 거야.”

그녀의 고집도 참 대단하다.

아니면 이거 의도한 건가?

주변에서 그렇게 말리는데도 죽으러 달려드는 날 그대로 따라 해서, 어디 똑같이 답답함을 느껴보라는 걸지도 모른다.

...이건 좀 억측이겠지.

그녀의 고집은 난데없으면서도, 억지스러웠으며, 쉽게 내려놓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녀석이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 역시 내가 죽기 싫으면 용사를 찾아가서 의탁시키는 게 맞지 않나?“

”...내가 막으면, 넌 어떻게 할 거야?“

창성의 그런 질문에 나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단검을 써서라도 도시로 향하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니 창성이 더 현명하다.

그녀 또한 남들과 똑같이 날 막았더라도, 나는 도시에 도달할 생각이었다.

”차라리 이게 낫겠구나.“

”응, 어차피 생각이 안 바뀌면, 행동도 안 바뀌니까.“

오히려 그녀는 날 막지 않았다.

차라리 원하는 걸 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의지다.

전심전력으로 도우려 했다.

”차라리 도와줄게, 모든 걸 다해서.“

”...거참 고맙네.“

”어차피 너는 죽으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재앙을 막으려고 하는 거잖아? 몸을 아끼지 않아서 그렇지,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면, 네가 덜 다치지 않을까 싶어.“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까.

오히려 베시아나, 프랑이 내가 함께 가려는 걸 막으면서 생긴 소모 값이 컸다.

과한 건 아니지만, 일에 어느 정도 차질이 생기는 정도다.

먼 길이 아니다.

불길함을 잔뜩 풍기는 저 마기의 폭풍우를 향해.

우리는 달려가고 있었다.

**

달리던 마차는 도시의 중심부까지 도착하는 데 충분했다.

거기서 라인하르트는 마차에 내리며 말했다.

”전부 시청에 들어올 생각인가?“

”그러고 보니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겠네요?“

일이 너무 커지다 보니까, 오히려 그녀들이 할 만한 것들이 줄었다고 할 수 있었다.

베시아야 실력 있는 사제다 보니, 혹여나 나올 부상자들을 치료하면 되고, 프랑은 마법사였으니 강력한 포격을 날린다면 활약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활약이지, 앞으로 있을 재앙을 막는데 아주 큰 영향을 줄 것이라 보긴 어려웠다.

게다가 실력이 늘었더라도 기사의 수준인 라엘리까지 고려 한다면. 과연 유의미한 도움이 될지 의문을 가질 법했다.

그나마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던 건 검성이었다.

”그럼 난 시장을 만나고 오겠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검성은 시장을 만나러 가기 위해 청사로 들어갔다.

루셀마니의 공자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이미 전해졌는지, 청사 앞에는 높은 직위로 추정되어 보이는 이들이 이미 앞으로 나서서 라인하르트를 마중했다.

“그동안 뭘 하고 있을까요?”

청사로 검성이 들어가자 남아있는 이들이 서로 고민에 빠져있었다.

아르델도 고민스러웠다.

이 정도로 큰일이라면, 차라리 도시를 빠져나가는 게 낫지 않는가.

이들이 해결해주기에는 나이도 어리고, 그 정도 책임을 짊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도시에서 내보내는 게 맞지 않겠는가?

아르델은 고민하던 와중에, 마차에서 사람이 한 명 더 나오고 있음을 알았다.

사제복을 입은 소녀.

회색 눈과 회색 머리.

그러면서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 여인.

그녀는 아르델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르갈…?”

“...그의 형이다. 여태껏 마차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몰랐구나.”

“아, 그 녀석의 형이구나.”

아무래도 형제라서 닮았기에 잠시 착각이라도 한 모양.

뭔가 삐닥 거리는 태도를 본 아르델은 그녀의 성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다고 유추했다.

베시아는 두 눈을 비빈다.

“이제 시작인 거 같은데, 여기서 가만히 있어도 괜찮…. 으려나? 당장 성 바깥에 머무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야 할걸?”

“시작이라고?”

“마기의 폭풍우가 몰아쳤어, 이제 성 외부에 있는 취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암습해서 마기를 긁어모으겠지, 시체를 언데드로 일으키고 그 언데드로 사람을 죽이고, 다시 언데드를 만드는 걸 반복해서 외부에 머무는 이들을 전부 죽일 거야.”

“...정말로?”

“응, 그러니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빨리 성내로 들어가게 해야 해.”

여기에 프랑도 공감했다.

그녀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뭔가 느끼긴 했어요. 마치 그때 흑마법 결계가 생겼던 때처럼 말이에요.”

아르델은 쏟아지는 정보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한동안 정이 들었던 아이.

루나는 항상 성 외부를 돌아다니면서 혼자서 놀고 다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뒷산에 가서 버섯을 캐고 있으려나?

아르델에게는 걱정이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일이 있어서, 잠시 나 혼자 움직일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있는데요?”

“외부에 내가 아는 지인이 있는데, 위험할 것 같아서 성내로 데려오려고.”

“그럼 빨리 가셔야죠! 혹시 저희도 도와드릴까요?”

“아니, 너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겠지.”

아르델은 급하게 뛰어갔다.

만일 이대로 놔두고 있다간, 그 아이를 죽게 놔둘 수도 있을까 봐.

그런 걱정을 품고서 달려 나갔다.

프랑은 그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 역시 걱정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성 외부로 나가는 건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같이 가서 돕는 게 낫지 않을까.

“아직 라인하르트가 시장하고 대화를 나눌 때 시간 여유가 많지 않을까요?”

“그럼 내가 가볼까?”

프랑의 중얼거림에 라엘리가 대답했다.

단련된 육체를 지닌 아르델의 뜀박질은 빨랐지만, 그렇다 해서 라엘리가 거기에 못 미치는 건 아니다.

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겠지.

그녀가 선보이는 무력은 최소한 기사급이었다.

라엘리도 아르델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둘이서 남은 프랑과 베시아는 이번 일에 대해서 논하였다.

“정말, 어떻게 될까요?”

“정 안되면 여기서 벗어나도 괜찮아.”

베시아는 답이 없다 싶으면 성을 벗어날 생각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키우면, 여기에 있는 인원이 흑탑주를 굳이 잡으려 들 필요는 없었다.

흑탑주는 토벌 대상이 될 테니까.

그렇게 해서 흑탑주가 죽고 저주가 풀리기만 해도 상관없었다.

그 기간에 주교와 아르갈의 목숨은 그녀가 모든 걸 걸고 연장할 것이다.

그런 자신감을 가질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

그녀는 사람을 되살렸던 성녀 급 사제였고, 그만큼의 성력이 실제로도 있었으니까.

그런 방안이 떠올릴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아 보였다.

베시아는 침을 삼키며,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

“준비가 다 됐다.”

하늘에 응집하고 있는 마기를 바라보며 티아그리스는 중얼거렸다.

다양한 방향으로 도움을 구했다.

왕가에게는 거짓을 말해서 크게 배팅하도록 유도했다.

왕태자를 설득하는데 애먹긴 했지만, 불사를 얻을 확실한 방법을 알았다고 하니 결국 왕실은 이 일을 돕기로 했다.

왕실의 최종적인 목표인 불사를 가져다주겠다고 했으니, 이 감언이설에 넘어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왕군 쪽에서도 도움을 요청했다.

이번에 초월에 이르고, 마왕군 간부가 되겠다고 했더니, 사령왕이 직접 몇 가지 흑마법을 빌려주었다.

그녀는 확신했다.

이대로 도시를 쓸어버리고 초월한 다음에, 수도에 있을 불사자를 찾아서 불사의 힘을 강탈할 확신이.

그렇지만 불안한 점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일을 너무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그녀가 보기에도 치명적인 문제점이 생겼다.

가장 중요한 맥을 관통하는 흑마법에 허점이 있었다.

완벽하게 만들려 해도, 그럴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최대한 눈속임을 만들어놔서,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한계.

“그렇지만, 그 정도 격의 흑마법사가 과연 있을까?”

그녀와 같은 격의 흑마법사가 아니라면 허점을 발견해서 붕괴시킬 순 없을 거다.

수도 근처의 흑마법사들은 모두 그녀의 편이었으며, 흑마탑 소속이었다.

가장 근처에 서 있던 흑마법사가 고개를 숙였다.

저번의 참사에서 살아남은 장로가 초월을 앞둔 흑탑주 앞에서 최대한의 경외를 보여주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영창 한다.

죽지 못해서 움직이는 괴물들이 기어 나왔다.

그동안 죽여온 희생자들이 이곳에 쌓여 있었고, 그 시체를 움직이게 했다.

언데드는 가장 편리하면서도 강력한 수단이다.

흑마법사의 위치가 직접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언데드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며 마기를 걷어갈 수 있었다.

어느 한 방향이 아닌,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언데드들은 성벽 외부에 있던 시민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꺄아아악!”

“언데드다! 사제를 불러!”

처참한 몰골의 시체가 움직이니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흑마법사들이 일으킨 언데드는 죽지 못해 움직이는 괴물 같은 게 아니었다.

콰드득!

산 자에게 달려든 언데드는 곧장 대상의 머리를 깨부쉈다.

머릿속의 뇌수가 처참히 흘러나왔다.

그러는 동시에 쓰러진 시체에서, 거뭇한 마기가 쏟아졌다.

그렇게 흘러나온 마기를 저 어두운 하늘이 탐욕스럽게 집어삼킨다.

검은 하늘이 흑탑주가 평생 긁어모은 모든 마기를 쏟아 완성한 흑마법이었다.

이 하늘 아래에 이루어진 모든 죽음은 곧 흑탑주의 마기가 되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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