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델은 재빠르게 성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이렇게 달려가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나누며 어느 정도 정이 든 거지, 특별히 그녀가 어디를 돌아다니고, 어디서 살고, 어디에서 놀러 다니는지 정확히 몰랐으니까.
그렇다면 물어봐야겠다.
아르델은 성 외부로 나가자마자 좌판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던 상인을 붙잡았다.
“이봐, 혹시 루나라는 아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어이쿠, 기사님.”
상인은 아르델을 보자마자 곧장 허리를 숙였다.
복장만 보더라도 견습 기사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일개 상인이 무시할 수 있는 신분은 아니었다.
견습이라 하여도 귀족은 귀족일 테니까.
감히 평민으로서는 편하게 대할 수 없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그런 정보를 잘 알고 있을 법한 분이 있습니다. 여기 일대를 주름잡는 큰 손인데….”
“나는 특별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매번 산을 돌아다니며 놀러 다니는 아이를 찾을 뿐이지.”
“아, 그럼 찾기 어렵진 않을 겁니다.”
상인은 손가락으로 방향을 정해주었다.
“이 도시에서 가까운 산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좀 멀리 나가면 몇 가지 산이 더 나오겠지만, 아이가 위험하게 먼 곳까지 가지는 않겠죠.”
“그렇군.”
“도움이 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도시 근처에 산이 하나뿐이라는 건, 안토니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르델이라면 잘 모를 만했다.
사소했지만 그래도 큰 도움이 됐다.
상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려던 아르델은 지금의 시급한 상황을 고려하며 충고까지 해 주었다.
“고맙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성 내로 들어가게나, 지금 외부에는 알 수 없는 위험이 닥쳐올 예정이야.”
“그, 그렇습니까?”
“주변인들을 챙기거나 물건들을 모두 가져가서 빨리 대피하게, 주변에 알리더라도 상관없네.”
상인은 이러한 말에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토니의 분위기가 워낙 안 좋았던 터라, 당장 어떤 일이 터진다고 경고하더라도 쉽게 믿었다.
게다가 별 볼 일 없는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견습 기사의 말이었으니, 안 믿는 게 이상했다.
좌판을 급하게 정리하는 상인을 잠시 바라보던 아르델은 다시 뛰어가기 시작한다.
산의 방향은 그의 눈에 보일 정도로 뻔했다.
거기까지 가니, 산 아래에 생겨난 작은 마을이 보였다.
다시 아르델은 여기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물었다.
“혹시, 루나에 대해 아는가?”
“아, 그 꼬맹이 말입니까?”
이번에는 바로 아는 사람이 나왔다.
그 아이는 여기서 거주하고 있던 모양.
인상 좋아 보이는 청년이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님, 그 꼬맹이를 어떤 연유로 찾으시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내가 개인적으로 걱정이 되어서 찾아보려 하는 거다. 그런 문제는 없다.”
“아, 그렇군요, 루나는 산으로 놀러 갔습니다. 제 눈으로 보았지요.”
심히 우려하던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필 이러한 때에 산으로 가다니.
어두운 하늘 아래에 불길함 투성인 저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다.
산을 뒤지면서 찾아봐야지.
걸음을 옮기면서도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무리 커다란 도시 옆에서 거주 중인 이들이지만, 기사를 쉽게 보는 건 아니었다.
그것이 견습일 뿐일지라도.
갑자기 마을에 찾아온 기사를 보며 호기심과 경계심이 반쯤 섞인 시선을 느낀 아르델은 여기에도 경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가능한 모두 안토니의 성 내부로 모두 들어갈 수 있도록.”
“예? 기사님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나도 제대로 모르지만, 성 외부에 있는 모두가 위험한 큰일이 벌어질 예정이다. 살고 싶다면 대피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담담히 받아들였다.
최근에 좋지 않았던 분위기 덕분이다.
“요즘 불길하더니만, 큰일이 벌어지구려.”
“기사님 말에 따라서 성 내로 들어가야겠어.”
“나도 잠을 몇 번이나 설쳤는데, 이참에 도시로 대피해야지.”
“실종한 사람들도 얼마나 많아? 나무꾼 캐빈의 딸아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며?”
그러던 와중에 손을 번쩍 든 사람이 있었다.
험한 일을 해온 듯 온몸에 굳은살투성이지만, 그런데도 얼굴에 남겨져 있는 순박함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루나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그 아이가 어디를 산 내부의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안내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으면 고마운 일이다.”
아르델로선 충분히 감사한 도움이다.
청년은 자신 있게 앞서서 산속으로 들어갔고, 아르델도 그 뒤를 따라간다.
...이 짧은 시간 내에, 그 아이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없기를 아르델은 바랬다.
**
우리는 점차 도시에 다가갈 수 있었다.
빈자리 없이 빼곡히 세워진 건물과 이를 감싸는 커다란 성벽이 눈에 보인다.
성벽 주변에는 많은 민가와 작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아직은 조용했다.
아니, 정확히는 당장 죽더라도 도시 전체가 눈치 못 챌 정도의 규모로만 조금씩 공격하고 있었다.
“아셀 내려줘라.”
“이제 괜찮아?”
“다른 의미로.”
나는 바닥에 내려가자마자 마기로 몸을 감쌌다.
단검의 희생을 통한 마기 활용이 아닌, 도시 주변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주변에 넘치도록 있는 마기를 조금씩 수집한 거다.
그래도 마나 보다는 마기가 몸의 한계까지 뽑아내는 힘이긴 했다.
마나 강화로 신체를 움직이면 지금은 곧장 쓰러지겠지만, 마기는 가능하긴 했으니까.
아셀은 원치 않더라도, 날 믿기로 해서인지 얌전히 내려주었다.
고개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내가 썼던 방법이랑 굉장히 비슷한 흑마법이군.”
초월자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마기는 무지막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마기를 실시간으로 사람 몸에 집어넣으면, 금방 붕괴해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과거 불사자인 나라고 해도, 감당할 수 없었다.
죽는 것도 한두 번이지, 1초에 한 번씩 죽는 걸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러니 잠시라도 마기를 다른 곳에 모아둬야만 했다.
저 어두운 하늘이 흑마법이자, 커다란 순환 장치이기도 하다.
땅 아래에 생겨나는 모든 마기를 수집하고 모아두는 역할.
나중에 흑마법 시전자의 명령에 따라서 마기를 움직일 수 있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막대한 마기가 저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탈취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아주 쉬워지긴 하겠지.
그러나 이는 대악마와 계약해야지만 가능한 방법이다.
내가 아무리 불사자라 하여도, 죽는 시간 동안 마기가 빠져나가 버릴 거다.
달콤한 유혹이긴 하지만, 내가 여기서 초월자가 되기 위한 도약을 하는 건 지나친 무리수가 따른다.
그러며 동시에 확신했다.
저건, 오직 불사자의 힘을 가진 나에게만 가능한 방식.
아니면 사령왕과 같은 초월하기 직전에 이른 존재만이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는 한 어지간한 흑마법사는 마기를 몇 시간 견디지도 못하고 죽음에 맞이할 거다.
설령 잠시나마 초월에 이르렀고, 초월에 가까운 힘을 쓸 수 있어도, 그러다가 결국 무너져서 죽는다.
흑탑주는 불사자가 아닌 한 쓸 수 없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그렇다는 건 무슨 뜻인가.
나처럼 불사자가 될 방안을 확보했다거나.
아니면 나의 불사를 빼앗을 방법이 있다거나.
그런 방법을 알고 있기에 시도하고 있을 거다.
그러면서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불사를 어떻게 빼앗는가.
나에게 완벽히 귀속된 힘인데 말이다.
“아르갈? 항상 느끼지만, 네가 고민에 빠질 땐, 정말 죽은 것처럼 멍하니 서 있어.”
“...그런가?”
내가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창성이 그리 지적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흑마법에 대한 분석을 거듭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완벽히 저 흑마법을 활용하려면, 아주 긴 시간 준비가 필요했다.
나도 마왕군의 철저한 도움 끝에 겨우 완성해서 초월에 이르렀다.
흑탑주에겐 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아마도 수도에 돌아온 나의 모습을 보고, 이런 판단을 한 거 같은데.
그러기에는 도중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취약점이 있을 거다.
그 취약점만 찾는다면, 이 일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취약점을 찾을 수 있는 위치는 도시의 중심.
저 어두운 하늘의 정중앙에서 찾아 나가면 된다.
“...죽은 건가?”
다시 고민에 빠져든 날 바라보는 창성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멀쩡한 사람 앞에서 죽었냐고 하는 건 실례다 창성.
엄연히 따져본다면, 죽지 않는 불사자에게는 실례가 아닌 건가.
“다시 가자.”
흑마법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만일 추측이 맞는다면, 흑탑주에게 발각되면 안 된다.
조용히 하늘의 중심에서 취약점을 분석해야 한다.
만일 취약점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내 흑마법 실력은 흑탑주 이상이었으니.
방해할 방법은 언제든 많았다.
너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들었다 흑탑주.
설령 도시가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더라도.
너는 패배할 거다.
**
“오늘 하루만, 여기서 거주하시길 바랍니다. 용사님.”
기사단장의 권장에 따라서, 용사는 조용히 기사단의 숙소에서 머물고 있었다.
기사단장은 기사단을 소집했고, 황금기사단이 모두 모여든 순간 출발을 할 것이라 약속했다.
그걸 믿고서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저 멀리서 터져오는 마기의 폭풍우를 보고도.
조용히 참았다.
“잠이 안 오긴 하지만, 자야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다가올 일전에서 전력을 다하여 싸울 수 있을 테니까.
그녀에겐 실수란 허용되는 게 아니다.
실수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무게감이 조금 덜어졌어도, 여전히 막대한 책임이 그녀를 짓눌렀다.
“자야겠습니다…. 오늘은 편안히….”
모두를 믿었다.
도시를 찾아간 라인하르트와 다른 소녀들을.
지금은 교회에 머물고 있을 거라 추정되는 아르갈을.
그녀는 모두를 믿고서 편히 잠들었다.
용사가 눈을 감고 숙면에 들었을 때.
세상이 뒤바뀌었다.
저 어두운 하늘이 폭풍우처럼 주변을 집어삼킨다.
오직 폐허만이 남은 도시가 눈에 보인다.
도시 아래에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언데드에 의해서 뜯어 먹히건.
흑마법에 머리통이 터져 죽건.
그 모든 희생이 여기 아래에서 벌어졌다.
아주 순식간에 생겨난 참사라 그런지, 도시는 아무런 방비를 못 한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는 없었다.
모두가 죽었고, 시체만이 남아있다.
그녀는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그 당시의 꿈이다.
성검을 받고, 어엿한 초월자가 된 용사와 수도를 불태운 그와 싸우던 당시의 꿈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꿈에서는 그녀가 없었다.
오직 단 한 명이 이 참사의 생존자이자.
가해자였다.
“거의 다 끝나가는군.”
“사, 살려…!”
-푸아악!
아무것도 아닌 손짓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사람을 처참히 죽였다.
“귀찮구나.”
아르갈은 방금의 살해가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건지, 그리 읊조리며 파괴되어있는 도시를 관망했다.
바닥은 피범벅이었고.
시체의 산이 주변을 뒤덮었다.
그는 하늘에 손을 뻗었다.
저 하늘이 품고 있는 마기는 용사마저도 두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그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재앙에 가까운 힘이 아르갈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르갈은 쉼 없이 죽음을 반복했다.
심장이 터지고, 머리가 터져나가도.
아르갈은 죽어서도 전신이 복구됐다.
저러한 현상을 바라본 용사는 어떠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죽, 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녀는 곧장 부정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지금의 아르갈은 죽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상처를 입더라도 치료하지 않는 한 그대로였다.
저렇게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간 전신을 복구할 수 있다면, 진작에 아르갈은 수명을 다 쓴 몸을 복구하기 위해 기꺼이 한 번이라도 죽었을 거다.
그러나 아르갈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러한 현장을 끔찍이 바라본다.
최소한 민간인은 살려주었던 수도와는 다르게.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 잔혹한 현장을 바라본 용사는.
아르갈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약간이나마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