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57화 (57/69)

나는 한 번 검성의 의중을 떠봤다.

“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이 도시를 벗어나야겠지.”

검성은 도시를 지키겠다는 큰 사명을 짊어질 생각은 없었다.

예정된 재앙, 이겨낼 수 없는 재앙과 맞서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피할 수 있다면, 단호히 피하겠지.

그러나 검성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게 불가능함에도 네가 도시를 구하고자 한다면.”

자기 혼자만을 위해.

항상 행동하고,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까지 날 돕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일의 성공한다는 확신 아래에서 도왔다.

그렇지만, 내가 파훼할 수 없다는 가정을 들었음에도.

“나는 돕겠다.”

“...이해할 수 없는데.”

검성은 피식 웃었다.

“어울려준다고 했다. 내가 한 말은 내가 지킨다.”

“그러다 죽을 수 있음에도?”

“너한테 내 목숨까지 걸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살행위는 내 취미가 아니야, 뺄 수 있을 땐 뺄 거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발을 완전히 빼지 않고, 도울 수 있을 건 돕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나를 계속 믿어주고 있긴 했지만, 검성은 내가 흑마법사임을 알게 됐다.

그런데도 계속 돕겠더라.

이 점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네 말대로라면 나는 흑마법사다. 그런데도 돕겠다고?”

“흑마법사가 혐오 받는 이유는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인륜을 져버리기 때문 아닌가? 제 목숨을 걸어서 남을 구하는 네가 흑마법사라고 적대할 필요가 있는가, 게다가 이번에는 도시를 구하려 들면서.”

...그것도 맞는 소리다.

여태껏 회귀 이후로 누군가를 제물로 바친 적 없다.

흑마법사치고는 너무 착하게 살았다고 할지.

아무래도 용사를 제외하고 다른 인물들에게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밝히더라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흑마법사다.”

하늘을 바라본다.

흑마법사로서.

회귀 전의 초월자로서.

파훼의 성공을 장담했다.

흑탑주의 흑마법 실력이 날 뛰어넘을 순 없으니까.

“그리고 저 흑마법을 파훼할 자신이 있다.”

“좋은 소식이군.”

“그렇지만, 시간이 좀 걸린다.”

우선 흑마법에 대한 완벽한 분석이 필요했다.

분석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가장 중요한 건 파훼.

본격적인 파훼에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흑탑주는 눈치를 챌 것이다.

동시에 나는 온전히 파훼에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사실상 무력화 된다는 소리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 몰라도, 파훼만 끝마치면 오늘날의 도시는 재앙을 맞이하는 게 아닌, 이겨낼 수 있는 적과 싸울 수 있을 거다.

대신 흑탑주는 모든 전력을 다해서 날 공격하려 들겠지.

내가 있는 곳에 흑마법 폭탄을 던지거나, 파훼 중인 내 위치까지 한 점 돌파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쓸 거다.

이런 맹공을 막아서는 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리고 파훼를 시작할 때는 나는 무방비한 상태에 빠질 거다.”

“그러한 점 모두를 고려하겠다.”

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조금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이건 좀 어색한 방식이군.”

“...어색하다니?”

“이전에는 네가 수명을 희생하면서 싸웠다면.”

콰아앙-!

검성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에서 터져오는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흑마법사가 포격을 날렸고, 그걸 프랑이 막은 모양.

성 내에 시민들이 드문드문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네가 안전한 방식을 쓴다니까.”

“그렇게 안전한 건 아닌데.”

“비교한다면 훨씬 안전한 방법이다.”

그건 맞긴 하다.

당장 저 바깥에 있는 흑마법사와 사투를 벌일 기사와 병사는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그들은 사실상 죽을 일만 남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리 흑탑주에게 공격당할 위기가 있다고 하여도, 그때까지는 안전한 곳에서 파훼를 할 거다.

목숨이 무한한 불사자의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내가 아니면 도시를 무조건 절멸로 몰아갈 수 있는 흑마법을 파훼할 수 없으니까.

검성은 이미 결론이 나왔다는 건지, 곧장 움직였다.

“다시 시장을 만나러 가겠다.”

“그러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시장에게 말하여라, 생각보다 시장은 괜찮은 사람이니 어떤 요구라도 다 들어줄 것이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독려하는 시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만약에 용기가 없는 자라면, 대충 상황을 파악한 뒤에 도시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려고 들었을 거다.

하지만 도시에 남아서 진두지휘하고 있기에, 시민들은 불안함을 약간이라도 떨쳐낼 수 있었다.

그 전에 나는 라엘리부터 찾아봤다.

마침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다.

“성 외부에서 사람이 얼마나 들어오는 거야?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부모를 못 찾아줄 뻔했어.”

“그래도 찾아줬으니 다행이네.”

이미 도시 내부는 과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잠시 아이와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미아가 될 정도로.

사람이 너무 많기에, 자연스럽게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참에 라엘리에게 한 가지 일을 더 시켜주었다.

지금 따로 떨어져 있는 창성과 형을 합류시키는 일이다.

“형과 아셀을 여기로 데려올 수 있겠어?”

“응, 그러고 보니까 둘을 놔두고 왔네.”

라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 대로 움직였다.

창성과 형이 어딜 따로 가는 게 아니라면 아직 성벽에 머물고 있을 거다.

라엘리를 보내준 다음 검성과 함께 시민들을 다독여주는 시장과 마주했다.

그는 땀을 닦으며 검성을 맞이한다.

“다시 봅니다. 공자.”

“시장님, 저의 이번 일에 도움이 될 사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에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고맙지요.”

그러며 날 바라본 시장은 잠시 두 눈을 찌푸렸다.

생각 해 보니 여태껏 큰 문제는 없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나이와 신분이 말이다.

검성이야 문제는 없었다.

가장 강력한 공작가의 자제라는 신분이 있었으니.

그렇지만 나는 아니다.

겉보기에는 병약한 소년일 테니까.

“반갑소, 나는 안토니의 시장 데이비드 엔서니오.”

“반갑습니다.”

데이비드 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으음, 혹여나 묻겠소.”

“그러시지요.”

“라인하르트 공자와 같은 신분이시오?”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누구인가?”

시장의 태도는 나의 한마디에 바뀐다.

당연한 모습이다.

신분이건, 나이건, 직위건 전부 다 내가 낮았으니까.

낮은 신분이라면 사람 취급조차 안 하는 귀족이 널린 세상이다.

심지어 같은 귀족이더라도, 남작은 최하급 귀족이기에 대화하는 것조차 꺼리기도 한다.

“저 하늘 위의 흑마법이 지니는 원리를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네, 사제들에게서 들었지. 그래서 최대한 시민들이 덜 죽도록 노력할 것이네.”

“저 흑마법을 파훼할 방법을 제가 지니고 있습니다.”

시장의 두 눈이 커진다.

그의 가장 큰 근심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방법을 지녔다 하니, 그의 눈이 커질 법했다.

저 머리 위의 흑마법만 없다면, 흑마법사 군단은 막을 수 없는 재앙이 아니었으니까.

“가능한가? 그리된다면 자네는 이 도시의 영웅일 테니. 내 반드시 보답하리다.”

“그렇게 만들어드릴 겁니다. 그렇지만, 도와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은 나에 대한 정체나, 정말로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를 따지지 않았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였다.

물론 날 소개해준 검성에 대한 신뢰를 밑바탕으로 깔았을 거다.

흑마법 파훼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하나씩 말해주었다.

그 중에는 다소 민감한 물건이 있었지만 시장은 크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네, 다소 준비하기 어려운 것이 있긴 하더라도, 전부 다 최선을 다해서 동원하겠네.”

“감사드립니다.”

“감사 인사는 필요 없네, 성공할 수만 있다면 충분해.”

시장에게 설득이란 건 필요 없었다.

바로 부관에게 지시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렇지만 나의 부탁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났다.

부관은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반대했다.

“저 소년의 무엇을 믿고 따릅니까? 시장님.”

“라인하르트 루셀마니가 소개해준 사람이네, 그를 믿지 못하면 달리 누굴 믿겠는가?”

“그러더라도 과도한 요구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부관의 반대에도 그의 의지는 강고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대안이라면 수도에서….”

“수도에서 올 지원만 기다리며 우리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면 저자에 대한 최소한의 신원이라도 제대로….”

“이렇게 고립된 상황에서 어떻게 신원을 조사하는가? 다른 방안이 없다면 입 다물고 시킨 일이나 잘하게.”

“...알겠습니다. 시장님.”

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나와 마주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넬 믿겠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장소부터 제공해주겠네, 이 도시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시청, 거기에 원하는 방 하나 마음대로 쓰게나.”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도 시장은 나의 부탁을 최대한 잘 들어주었다.

부관의 반대까지 무릅쓰면서.

그러니 뭔가 이상했다.

나는 검성을 바라본다.

“왜지?”

“혹시 네가 무슨 수라도 쓴 건가?”

“무슨 수를 쓰다니.”

시장이 저런 모습을 보이게 만들 법한 인물은 오직 검성뿐이다.

검성이 따로 지원을 해주거나, 특별한 보증을 해주었거나.

그러나 검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장의 마음을 내가 어찌하겠는가? 너에게 이상할 정도로 신뢰를 주는 것이 특이하긴 하더군.”

“...그런가?”

회귀 전의 시장을 떠올렸다.

지금의 흑탑주보다도 더한 불리한 상황 속에서, 까다로운 대처 방안을 내놓았던 게 시장이었다.

만일 시간이 더 늦었다면, 수도의 지원이 와서 황금기사단과 싸우는 일이 벌어졌을 거다.

그렇다면 시장에겐 오묘한 직감이라도 타고난 건가?

어찌 되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검성은 옆에서 내 이야기를 다 들었던 덕분인지, 내가 필요로 한 물품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언급했다.

“사형수라면, 내가 예상한 게 맞겠지?”

“아무래도 다량의 마기가 필요한지라.”

단검은 오직 자기희생만으로 마기를 생성한다.

남의 몸을 찌르는 방식으로 마기를 얻을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내 손을 찌를 필요도 없이 남을 찔러서 마기를 얻었겠지.

그러니 사형수에게 제 손을 찌르게 유도해서 마기를 뽑아내는 거다.

굳이 내 손을 찔러서 마기를 얻기에는 중간에 죽어야 하는 점도 있고, 죽은 다음에 부활하는데 소모되는 시간도 많았다.

그러니 사형수를 활용하는 거다.

최소한 남들 눈에는 양심적으로 마기를 얻을 방법이었다.

검성은 딱히 도덕적인 문제에서 신경 쓰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점을 지적했을 뿐이지.

“지금 당장은 비상 상황이니 문제 없을 거다. 게다가 다른 애들이 네가 흑마법사란 사실을 알더라도, 딱히 문제 삼지 않을 거다. 심지어 용사마저도 그러겠지.”

“...아마 그러겠지.”

“그렇지만 이번 일이 끝난 다음에는?”

검성은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지적했다.

결국 흑마법사는 기피의 대상이었으며, 일종의 낙인이다.

단검으로 내 수명을 희생하여 잠시 흑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순순히 ‘흑마법사’라는 낙인이 찍히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

그리 될 수밖에 없었다.

남들 눈에 대놓고 띄도록 시청에서 사형수를 제물 삼으면. 흑마법사라는 사실이 널리 퍼지겠지.

아니면 제대로 속이던가.

별의 근본을 손에 쥔다.

흑마법사에게 불가능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기적의 물건이 여기에 있었다.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신경 쓰지 않겠다.”

검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나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여기까지라는 건지, 시장에게로 향했다.

그가 떠나자,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서 라엘리가 창성과 아르델을 끌고 여기로 왔다.

창성은 조용히 손을 들고는 흔들어주었다.

그녀는 아까의 행동에서 오히려 날 곤란하게 만든 점을 미안해했는지, 뭔가 우울해 보였다.

아니, 원래 저런 표정이었던가.

“괘, 괜찮은 거지?”

“라인하르트가 도와줬다.”

다소 참사가 날 뻔했지만, 검성이 무마해주었으니 괜찮다.

창성은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녀의 곁에 있던 형은 조용히 날 바라봤다.

“아르갈.”

“왜?”

“물어볼 게 많다.”

형은 평소에 지니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진지한 말을 하려 했다.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알고 있는 ‘남동생 아르갈’하고.

‘불사자 아르갈’의 괴리가 워낙 극심했기에.

당연한 의문을 던지려 했다.

“잠시 대화 좀 나눠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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