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64화 (64/69)

티아그리스는 작금의 상황을 분석했다.

이건 확실하다.

강력한 흑마법이 발동됐다.

이러한 때에 뜬금없이 도시 내부에서 흑마법이 전개됐다면, 도시 내부의 첩자가 움직였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흑탑주는 도시에다 첩자를 심어둔 적이 없었다.

심어둘 만한 시간도 없던 게 크다.

제물이 될 법한 도시를 대충 하나 골라둔 건지라, 무언가 작업질할 여유가 있겠나.

그럼 저 흑마법은 대체 무엇인가.

하늘과 맞닿아있는 강력한 힘을 바라보며 흑탑주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파훼라고?”

하늘의 흑마법이 무너질 징조가 보였다.

그래선 안 되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물거품이다.

여태껏 확신으로 가득 찬 그녀의 두 눈이 흔들린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났다.

자기도 모르는 강력한 흑마법사가 숨어있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고 해도 그런 존재가 그녀의 일을 방해하는가.

“안 돼.”

시종일관 느긋했던 그녀의 태도가 바뀌었다.

가능하다면 일주일 정도 도시를 요리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특히나 치명적인 허점을 남겨두었다는 걸 고려한다면, 파훼는 무엇보다도 빠르게 이루어질 거다.

그렇다고 파훼가 되기 전에 하늘에 모여든 마기를 모두 취할 수도 없다.

초월에 이를 수도 없는 어중간한 마기를 과다하게 응집하면 그건 자살행위다.

5만 명 이상이 떼죽음을 당하고 쌓인 무지막지한 양의 마기로 초월에 도달해야 했다.

그녀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속전속결이다.

아니, 속전속결을 해도 늦었다.

무조건 돌파다.

저기 흑마법의 중심까지 한 점 돌파해서, 당장 막아내야지, 계획이 물거품 되는 걸 막아낼 수 있었다.

“흑마탑의 흑마법사들은 모두 전력을 다해라! 여기서 목숨을 걸고 흑마법을 쓴다면 그 대가를 내가 전부 감당해주겠다. 무조건 목숨을 걸어야 해!”

“예? 대체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아직 수도에서의 소식도 잠잠합니다만.”

“수도가 문제가 아니야! 당장 모든 게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라고!”

흑탑주는 화를 버럭 내면서도 1분 1초의 시간도 아깝다며 바로 계획을 설명했다.

“한 점 돌파다! 도시를 꿰뚫고 들어가서 저기 중심에 무조건 도착해야 해, 거기서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아라!”

“아, 알겠습니다!”

흑마법사 모두가 흑마법을 준비하는 와중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기사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도시의 중심에 도착하겠다고? 무슨 의도지?”

“일단 급해 보이는데, 좋은 건가?”

매번 여유롭던 흑마법사들이 갑자기 급해 보이니, 좋은 소식처럼 들리긴 했다.

그리고 그 곁에 있던 라인하르트가 중얼거렸다.

“시작이구나.”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프랑은 걱정이 가득했어도, 라인하르트는 조용히 검을 꺼내 들었다.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흑탑주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면 될 일이야, 만약 도시 중심으로 도달하려 한다면, 막아내야 하고, 아니어도 거기에 맞춰서 대응하면 될 거다.”

베시아는 성력을 끌어모았다.

흑탑주와의 악연을 끊을 기회다.

그녀는 비장한 각오를 품었다.

“그럼 막아야지.”

그런 둘의 각오를 바라보던 프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목걸이를 통하여 한 마나가 그녀의 신체에 깃들었다.

“저도, 막아낼 거예요.”

기사와 병사들도 눈치가 없던 건 아니다.

그들의 대화를 가까이에서 들었던 선임 기사가 검을 드높게 들어 올리더니, 외쳤다

“최선을 다해서 막아라! 결코 도시의 중심까지 저 무도한 것들이 도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옙!”

“알겠습니다!”

그런 다짐과 각오가 이어졌을 때쯤에, 티아그리스의 두 눈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아직 통제권을 빼앗기기 전에, 하늘의 마기를 흡수했다.

당장 전부를 가져갈 수 없지만, 그 일부만 해도 상당한 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한 수가 있었다.

사령왕에게 받아놓았던 물건이 품속에 있다.

그걸 꽉 쥐면서, 전신에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을 견뎌냈다.

“생각보다도, 꽤, 아프네.”

하지만 평생의 염원이었던 불사를 위해서.

얼마나 지독한 길을 걸어왔는가.

불사 하나만을 위해서 여기까지 왔고, 얼마 안 남았다.

두 눈이 검게 물든 건 물론이고, 마기의 과포화로 전신이 거뭇해지고 있었다.

후유증이 크게 남더라도 지금 최대한 끌어당길 힘을 당겨서 썼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탑주님?”

마기를 그려 모은 티아그리스는 혼돈에 빠진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으며 대답해주었다.

“포격을 날려, 다 죽을 때까지.”

“알겠습니다!”

그녀의 명령에 따라서 목숨까지 걸어서 포격을 시도했다.

흑마법사들도 자기 회생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만, 저런 모습을 보이는 흑탑주를 거역할 수 없었다.

손짓 한 번에 머리가 터져나갈 텐데, 자기는 목숨 걸기 싫다 나설 수 없으니까.

아까와는 규모가 다른 포격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모두가 공포에 휩싸였다.

아무리 흑탑주를 막아서겠다고 검을 뽑았다 하여도, 허공을 부유하는 흑마법 포격을 막아낼 수 있던 건 아니다.

또 다량의 사상자가 발생할 거라 예상하고,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느 곳으로 숨어들려 했다.

혼란과 공포 사이에, 포격은 포물선을 그리며 도시로 떨어졌다.

그것이 곧 맞닿아 터지려는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도시 전체를 뒤덮는 커다란 흑마법 쉴드가 생겨난 것이다.

콰과가가가각-!

장렬한 폭음이 터져나갔지만, 포격은 쉴드를 뚫지 못하고 허공에서 터져나가기만 했다.

그걸 본 흑탑주는 더더욱 어처구니없어했다.

“접속까지 했다고?”

이미 하늘의 마기와 접속을 하고 그걸 당겨다 썼다.

아직 완전히 소유권을 빼앗긴 건 아니라서,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나,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지난다면 그녀는 완벽히 패배하리다.

그녀 자신도 흑마법에 취약한 점이 많다는 걸 알았기에, 파훼 당하는 순간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다.

그렇지만 이건 지나치게 빠르다.

보통의 흑마법사가 아니다.

그녀보다도 우위의 실력을 지닌 강력한 흑마법사.

“탑주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숨까지 걸었던 흑마법사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했다.

대가를 지급했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죽음에 맞이할 거다.

그들이 살아남으려면, 흑탑주가 초월해서 도와줘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겐 그런 여유가 없었다.

대답조차 하지 않고 바로 도약한다.

전신이 마기에 물들어서, 그녀는 한시적이나마 상급 마족 이상의 신체 능력을 지녔다.

도약만으로 성벽을 넘어섰다.

그녀가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다수의 병사와 기사, 그리고 그녀를 막아낼 세 명의 용사파티가 서 있었다.

“지나갈 수 없다. 악녀여!”

“너의 죗값을 치러라!”

그리 당당히 외치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고 흑탑주는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전부 피떡으로 만들어 죽이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다시 도약하기 위해 다리에 마기를 집중한다.

그러나 남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더 나아가려는 흑탑주를 응징하는 힘이 있었다.

번쩍-!

강렬한 빛이 그녀를 향하여 쏘아졌다.

성력이 티아그리스를 지져놓자, 그녀는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특히나 전신이 마기로 물든 상황인 마당에, 절대적인 극 상성인 성력이 전신을 파고드니, 마치 온몸이 불타는 고통을 느끼는 거다.

“어딜 가려고!”

“끼아아아아악!”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이를 갈았다.

“후으윽,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그녀는 베시아를 못 죽였다는 것에서 무척이나 후회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더 큰 걸림돌을 막기 위해서 중심으로 향해야 하는데, 저 사제를 죽일 여유가 없었다.

차라리 여유 부리지 않고 어제 종일 도시를 공략했어야 했다.

흑마법의 파훼가 시작했고, 짧은 시간 이내로 붕괴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였다.

일이 이렇게 된 순간, 그녀는 너무나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거다.

맨몸으로 도시를 돌파해야 하는 미친 짓을 감행해야 한다.

“반드시, 다 죽이겠어.”

이번 일을 끝마치고 초월에 이른다면, 어떻게든 다 죽이겠다고 생각 한 티아그리스는 눈앞의 장애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강력한 흑마법을 사용했다.

전신에 물든 마기를 끌어내자, 소용돌이치며 마기가 그녀의 중심에 모여들었다.

“...쉴드를 만들어서 막아? 그럼 도시 내부에서 터트리면 어떨까?”

-우우웅….

검은 구체가 그녀의 앞에서 생겨났다.

이번에도 막아내려고 베시아가 성력을 쏟았지만, 또 당해주지 않겠다는 건지 견고한 쉴드가 티아그리스를 감싸고 있었다.

“전부 흩어져요!”

그걸 본 프랑이 모두에게 경고했다.

모여든 마기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저게 터진다면 여기에 있는 모두가 떼죽음을 당할 거다.

아니, 프랑은 살 자신은 있다.

저걸 막아낼 결계 정도는 만들 수 있으니까.

문제는 그러다간 오직 그녀만이 살아남을 거다.

그건 원하는 결말이 아니다.

모두가 도망치며 커다란 위험에서 벗어나려던 순간.

앞으로 나아가는 소녀가 있었다.

“...베시아? 미쳤어요?!”

“안 미쳤어.”

그녀는 여기서 모든 힘을 다하겠다는 건지, 마치 그녀의 존재 자체가 강렬한 빛처럼 보일 정도로 폭발적인 성력을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 속에서 몸은 내던졌다.

저 흑마법이 완성되면, 막을 방법 없이 무조건 다수의 사람이 죽을 것이기에.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나아갔다.

그렇게 다가온 베시아가 손을 내밀자, 허무할 정도로 티아그리스의 결계를 꿰뚫었다.

결계를 뚫고 내민 하얀 빛을 내는 손길은 티아그리스가 그려 모으던 구체로 향했다.

“미, 미친년이!”

“여기서 악연을 끊자고, 개년아.”

그러면서도 베시아는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끔찍한 악연을 여기서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자아내는 미소다.

여기서 얼마나 다치건 상관없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같이 죽겠다는 거냐?!”

“너만 죽을 거야,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거든?”

성력과 마기가 섞이며, 검은색 구체는 불길한 색을 띠었다.

프랑은 모든 마나를 쏟아부어서 결계를 만들었다.

사람 하나라도 더 구하려고 그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결계를 만들어주었다.

저 구체의 여파가 얼마나 거대할지 상상이 안 갔기에.

“그만 해요 베시아,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프랑은 절박하게 외쳤다.

저런 구체 바로 앞에서 폭발을 맞는다면, 둘 다 공멸할 거다.

그러나 이러면 베시아는 죽는다.

결코 죽게 놔둘 수 없다.

“내가 죽는다고?”

베시아는 도대체 어디서 자신감이 넘쳐왔는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걸 보며 프랑은 너무 어이가 없고 가슴이 답답해서 외쳤다.

“아르갈한테 물들기라도 했어요? 아르갈 한 명만 해도 힘든데, 베시아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요?”

“내가 무슨 아르갈한테 물들었다고, 그 녀석은 자기가 죽는 걸 예감하면서도 미친 짓을 저지르는 거고, 나는 안 죽을 거라고 확신하니까 이렇게 움직이는 거야.”

그리 대답해준 베시아가 고개를 돌리며 흑탑주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

티아그리스는 흔들리는 두 눈으로 구체를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구체의 색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건 치킨게임이다.

겁을 먹는 사람이 져버리는 게임.

“빌어, 처먹을 년.”

그리고 여기서 겁을 먹었던 건 티아그리스다.

평생을 염원한 목표를 앞에 두고, 이대로 죽기에는 억울했다.

동귀어진하기에는 너무나 큰 손해다.

황급히 구체에 불어다 놓은 마기를 거둬내기 시작했고, 구체는 빨간색에서 하얗게 뒤바뀐다.

그런데도 약간이나 포함된 마기의 영향으로 구체는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우려했던 것보다 커다란 폭발은 아니었지만, 베시아는 그걸 얻어맞고 멀리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본 라인하르트는 즉각 주변의 기사들에게 말했다.

“사제를 데려가서 베시아를 보호해라.”

“알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냉철한 시선으로 커다란 흙먼지 속에서 높게 솟아오르는 형체를 바라보았다.

흑탑주는 폭발 가운데에서 높게 뛰어올라 도시의 중심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르갈이 머무는 시청이 있다.

똑같이 검성도 달려 나가며 중얼거렸다.

“...기대하겠다.”

아르갈은 파훼를 할 때 무방비한 상태가 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도, 흑마법으로 포격을 막아냈다.

거기에 이유가 있을거다.

만약 그렇다면 흑탑주가 아무리 일찍 도착한다고 하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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