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의 파훼는 완료했다.
단지, 몇 가지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과할 정도로 익숙해.”
내 흑마법 지식 중 기초적인 부분은 가우디움에게서 비롯됐다.
따로 알려주었다는 건 아니다.
그가 미쳤다고 노예에게 흑마법을 전수해주겠는가.
그가 흑마법을 쓰는 걸 보며 직접 독학했지.
가우디움을 죽인 뒤에는 사령왕이 나의 흑마법 스승이 되어주었다.
그가 가진 고위 흑마법은 내가 초월할 때도, 초월한 이후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기시감은 무엇인가.
하늘의 흑마법은 사령왕의 술식과 완벽히 같았다.
흑탑주는 사령왕에게 배움 받았고, 그걸 통해서 흑마법을 활용한 것이다.
그래서 파훼가 예상보다도 더 쉬웠다.
익숙한 사령왕의 흑마법인데, 치명적인 허점까지 있었다.
그렇다면 왜.
사령왕은 흑탑주를 무슨 이유로 도와준 건가.
“마왕군에 들어가겠다고 약속하기라도 했나?”
그렇다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흑마법사는 무척이나 유용한 자원이다.
특히나 마왕의 특성상, 약속을 강제할 수 있는 천칭을 쥐고 있었다.
그 약속에 따라서 사령왕은 천칭에 올라간 흑탑주의 가치만큼 흑마법을 알려주고 힘을 나누어줬을 거다.
우려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사령왕이 단 한 가지의 흑마법만 알려주고 끝을 내었는가다.
내가 보더라도, 초월자가 될 것이라 약속한 존재가 마왕군에 들어간다 약속한다면, 그 값어치는 작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마왕군의 유물이 그녀의 손에 들어갔거나, 사령왕 만의 비장의 한 수를 빌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원래의 계획을 이어갈지 고민했다.
콰과과과각!!!
우선 쏟아지는 포격부터 막았다.
과거, 전성기에 완벽히 이르지는 않더라도.
막대한 마기가 전능감을 선사해주었다.
물론 아직 소유권을 완벽히 쥐지 않는 한 하늘의 마기를 그대로 빼앗아 갈 수 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마기는 언제라도 흩어지게 만들 수 있었다.
말했듯이, 이미 파훼는 완료됐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고민된다.
여기서 욕심을 부려야 할지.
아니면 파훼를 완료하고 마기를 완벽히 잃고, 죽을 날만 앞둔 흑탑주를 제압할지.
“...정답이 없어.”
욕심을 부릴 가치가 상당했다.
저 커다란 마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하늘의 마기를 방치한 채로, 흑탑주를 제압하고, 단검에다 온전히 모든 마기를 흡수시킨다면, 앞으로 자기희생은 전혀 필요 없이 무한히 마기를 활용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린다면, 흑마법 포격을 방관하고 사람들을 죽게 만들어서 초월에 이를 만큼 커다란 마기를 흡수하는 것도 방법이긴 했다.
나중에 여력이 됐을 때, 초월자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건 이미 물 건너갔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포격을 막아냈으니까.
돌이켜 생각 해 보더라도, 막는 게 맞았다.
지금은 얼마나 사람을 죽게 놔두어도, 그런 의도를 지니고 사람을 죽이더라도 문제없던 과거가 아니다.
용사파티가 나를 의심한다면, 여기에 비롯될 손해가 더 컸다.
“욕심을 부린다면, 변수가 생긴다.”
파훼와 소유권은 다른 의미다.
저 불안정한 흑마법을 붕괴시키는 건, 치명적인 허점을 뚫고 그대로 찢어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소유권을 얻으려면 흑탑주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흑탑주가 지닌 저력만 본다면 내가 무조건 이길 자신은 있었다.
문제는 두 가지.
사령왕이 어떤 도움을 흑탑주에게 주었느냐와.
주교가 나에게 한 경고가 있었다.
죽지 말라고 했다.
그런다면 파멸이 예정될 테니까.
그의 조언을 따른다면, 나는 여기서 몸을 사리는 게 맞았다.
흑탑주와 싸우면서 한 번은 죽을 가능성이 컸다.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안 죽어도, 마기를 너무 많이 쓰면 연약한 몸은 죽을 거다.
죽으면 어떤 파멸이 다가오는가.
정말로 죽음에 맞이하는가.
아니면 타인이 나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하며 되살아나도 헤아릴 수 없는 인간관계의 파멸이 생겨나는가.
“...모르겠구나.”
주교는 모호하게 말해주었다.
모든 걸 못 알려주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거다.
내가 결정을 잘해야 한다.
나는 저곳의 창성을 바라보았다.
마기가 쌓인 하늘과 접속한 상태라, 창성의 말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입 모양으로 끊임없이 ‘죽지 마’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손가락을 몇 번 까닭이면 하늘의 마기는 공중분해 될 거다.
그러나 끔찍이도 아까웠다.
저렇게 마기를 모으려면 반드시 누군가를 대량의 죽음에 몰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용사파티에 소속되고 양지에서 활동해야 하는 처지에서, 사람을 다수 죽일 수 없었다.
다량의 마기를 얻을 기회가 앞으로 없을 거다.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죽어서 마기가 온 세상에 넘쳐나는 대전쟁 시기라면 끌어모을 기회가 생기겠지만, 그때는 너무 늦는다.
나의 계획은 대전쟁 이전에 마왕을 끝장내는 거다.
그래야만 더 쉽고 깔끔히 끝낼 수 있다.
...그러려면 욕심을 부려야 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마왕을 죽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보더라도, 그때가 가장 마왕이 취약한 시기였다.
강력한 초월자들이 마왕을 보호한다고 하여도, 가장 강력한 전력을 이끌고 마왕을 죽여야 한다.
“미안하다 창성.”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손을 내렸다.
흑마법의 파훼가 아닌, 소유권을 빼앗는 걸로 방향을 비틀었다.
내 목숨 보다도.
마왕을 죽이기 위해서 움직이겠다.
그것이 내가 회귀한 이유이자.
나의 전부였으니까.
미안하지만 창성.
너는 내 마음을 돌리지 못했구나.
다시 말하지만 불사자는 죽어야 의미가 산다.
그런 기본적인 전재를 네가 뒤집을 수는 없었다.
저 바깥에서 커다란 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예상컨대, 흑마법의 파훼를 느낀 흑탑주가 직접 나섰겠지.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그녀는 무조건 죽음에 이를 테니까.
그녀는 시청 입구부터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주변을 뒤덮는 마법진의 힘이 사라지는 동시에, 소리가 들려왔고 커다란 파열음이 시청 전체를 뒤흔든다.
콰아아아아앙!
“아, 아르갈, 어떻게 된 거야?!”
창성은 흑마법 속에서 빠져나온 나를 보며 황급히 물었다.
그러면서도 창을 꺼내 들어서 날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럴 필요 없다 창성.
“아셀.”
“응?”
“잠시 자리를 비켜줘.”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불가항력한 힘이 그녀에게 가해졌다.
하늘의 마기와 접속한 상태로, 그 힘을 끌어낼 수 있기에 가능한 활용이다.
어중간한 마기는 몸을 파괴하지만, 이런 대량의 마기는 잠시나마 전신을 각성상태로 만들었다.
내 두 눈의 흰자가 약간이나마 거뭇해졌다.
“아, 아르갈.”
창성의 두 눈이 흔들렸다.
나의 행동에서 무언가 추측이라도 한 건지, 그녀는 벌벌 떨며 말했다.
“시간이 너무 짧았던 거야? 내가 지켜줄 테니까 끝까지 파훼하면 되잖아, 굳이 네가 움직일 필요가….”
...그런 오해를 하는 건가?
확실히 파훼를 시작하고 아주 짧은 시간에 나왔으니까, 착각을 할 법도 했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파훼에 실패하고, 내가 직접 목숨을 걸고 흑탑주를 물리치려 한다는 판단을 한 모양.
“그게 아니다 아셀.”
“아니긴 무슨, 넌 지금, 죽으려고 작정했잖아.”
그녀는 마치 내 생각이라도 읽었던 건지, 죽음을 각오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니 아셀은 어떻게든 날 막으려 했다.
...더 이상의 오해는 필요 없다.
착각할 필요도 없다.
미리 각오했던 데로, 사실을 밝히려 들었다.
죽기 전에 주변 인물에게 불사를 밝히기로 했으니.
그 마음을 실천하겠다.
그것만큼은 네가 바꾼 거다 아셀.
네 모습을 보고, 불사를 더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걸로 손해가 생긴다고 하여도, 나는 그 손해를 각오하겠다.
더는 남들의 마음이 망가지는 걸 볼 수 없었다.
베시아나 프랑의 집착을 보며, 할 수 없는 짓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모두에게 밝히겠다.
“나는 안 죽는다 아셀.”
“안, 죽는다니?”
다시 입을 열며 어떻게 죽음을 회피하는지 명확히 밝히려고 했다.
불사자라 말하여도, 잠시 죽으면 되살아나는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 동안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려는 찰나에.
강력한 힘이 시장실 자체를 투과했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나의 손가락이 튕겨졌다.
딱-
“아, 안 돼!”
창성은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듯이 소리 질렀지만, 그녀가 어디론가 튕겨 나가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그녀의 자리에는 무력으로 모든 걸 무너뜨린 존재가 있었다.
벽이 무너지고 가구가 작살나며, 만일 창성이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면, 여파에 몸을 성히 유지할 수 없었을 거다.
강력한 마기가 흑탑주를 감싸고 있었다.
나처럼 다량의 마기를 몸에다가 흡수한 모양.
그녀는 날 보자마자, 두 눈을 크게 뜨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허리가 뒤로 굽혀지고, 그녀의 전신이 괴이하게 비틀어질 정도로, 진정 미쳐버린 것처럼 웃어젖히던 흑탑주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완전히 부서져 버린 정문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나의 형이 보였다.
...흑탑주의 돌파를 피해서 다행이다.
저걸 제대로 맞았으면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 거니까.
“라엘리는 어디로 갔어?”
“...걔는 잠시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비웠어.”
“그래?”
...형은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했으니, 말로써 설명해주려 했다.
“지금은 위험하니까, 당장 피해야 해 형.”
“그러면 너는?”
“난 괜찮고, 죽을 생각도 없고, 흑탑주를 여기서 제압할 생각이야.”
거뭇게 물들어 있는 내 두 눈을 바라본 아르델은 침을 삼켰다.
단검을 활용해서 어찌 됐다는 방식으로 해명할 부분이 아니었다.
흑탑주도 흰자가 검게 변한 마당에, 나도 똑같이 눈을 거멓게 만들었으면, 여기서 공통점을 못 느낄 사람은 없겠지.
“...흑마법사의 싸움이구나.”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당장은 피해.”
“알겠다.”
다행히 형은 아직도 날 믿어줬다.
아르델은 등을 돌려서 빠르게 뛰어갔다.
그러나 도무지 날 두고 갈 수 없다는 건지,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형도 잘 알 거다.
저 상태의 흑탑주를 두고 그 어떤 도움이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아르델이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흑탑주는 지금도 괴이하게 웃고 있었다.
웃음이 멈췄을 때, 강력한 마기가 주변을 지배했다.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어, 네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까.”
“날 찾고 있었네.”
“당연하지, 염원하던 불사를 빼앗을 기회인데.”
불사를 빼앗다니.
다시 들어보더라도 잘 이해되진 않았다.
내가 생각해 보더라도, 이 불사의 힘은 영구 귀속이었다.
“그 방법이 궁금하긴 해.”
평생 죽지 않을 생각은 아니다.
영생을 살 생각도 없다.
마왕을 죽인다면, 불사를 내던져버릴 테니까.
그때 불사를 넘길 방법이 있다면 요긴하게 쓰겠지.
하지만 듣고 싶지 않다.
“그 전에, 넌 여기서 죽을 거다.”
“용기가 넘쳐흐르네! 불사자, 죽지 않는다 해서, 그 무엇이든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리가.”
불사자는 죽지 않기에, 어떤 위험 앞에서도 두려움을 잃는다.
죽으면 다시 시도하면 되니까.
그러나 그녀 앞에서 단 한 번의 죽음도 각오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걱정했던 건, 사령왕이 어떤 수단을 그녀에게 주었느냐다.
하지만 그 수단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동등하게 하늘에서 마기를 끌어올 수 있는 환경.
치료 불가능한 후유증이 남을 정도이나 마기로 강화된 전신.
그런 때에, 흑마법 실력이 중요하다.
그럼 누가 앞서겠는가?
흑탑주는 건방지게 날 죽이려 하지 않고, 구속하기 위해서 흑마법을 사용했다.
전신을 묶는 검은 색 촉수가 내 몸을 뒤덮는다.
과연 흑마탑의 주인답게 재빠르고 강력한 흑마법이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야 불사자, 얌전히 있으렴?”
“만용을 부리는 건 내가 아니라….”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초월에 이른 건 아니지만, 지금은 현재로서 가능한 최상의 상태이다.
그렇다는 건, 내가 지닌 초월적인 역량을 대부분 끌어올 수 있다는 소리.
프랑을 통하여 초월적인 마법을 발휘하는 것과 다르게, 지금은 진정 나의 영역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녀의 팔 한쪽을 날려버리기에는 이걸로 충분했다.
-퍼걱!
“꺄아아아아아악!!”
흑탑주의 끔찍한 비명이 하늘을 뒤흔든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전신의 근육이 비틀리며 그녀는 바닥을 뒹굴었다.
"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