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안 죽는다니까-66화 (66/69)

“그래도 피했군.”

목을 날릴 생각이었지만, 흑탑주는 불가항력한 흑마법에 대응하여 팔을 대신 내주었다.

정확히는 목이 날아가려는 순간, 대신 팔을 대신 내어주는 권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한 것이다.

마치 등가교환처럼 말이다.

이런 현실 조작에 가까운 힘은 그냥 발휘할 수 없었다.

초월자이거나, 초월적인 존재에게 힘을 빌리거나.

몇 가지 추측하던 와중에 흑탑주는 검은 마기로 팔을 새로 만들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주 쉽게 이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 마기를 과하게 쓴 만큼 후유증으로 한 번은 죽으리라 생각했지만.

마기 과다 사용이 아닌, 마탑주에게 한 번 죽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거다.

“넌 도대체, 뭐야?”

무엇을 물어보는 걸까.

상식선을 넘어서는 흑마법 실력에 관해서 묻는 건가?

말해 줄 마음은 없었다.

그렇지만 흑탑주의 생각이 궁금하긴 했다.

나의 흑마법에 대해서 어떻게 분석했는지.

“맞춰봐.”

“지랄 마, 사령왕 같은 흑마법사가 세상에 또 존재한다고? 아니 진정 그 괴물에 다가간 건 아니지만, 그 직전인 건 확실해.”

그녀는 치아를 딱딱 부딪치며 지금 어떤 상대와 싸우는지 드디어 알게 된 모양이다.

물론 그런다 해서 내가 진짜로 초월적인 역량을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던 건 아니다.

진작 가능했으면, 다시 마기를 사용해서 그녀의 목을 날리려 했을 거다.

조절이 필요했다.

그녀를 죽이기 전에 나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불사자가 되면 원래 그런 건가? 무한한 생명을 얻는 동시에 흑마법에 대한 막강한 깨우침이라도 주어지는가?”

“뭘 말하더라도 틀렸다.”

“그럼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겠지.”

그녀의 피부색이 온전히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더는 인간의 형체가 아니었다.

뒷감당할 수 없는 마기를 전신에 흡수했다.

온전히 서로의 목숨을 저울추에 올려놓았다.

어떤 결과가 있건, 여기서 불사자 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진정 나의 불사를 빼앗을 수 있다면, 그녀의 승리가 될 수도 있겠지.

그 방법이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서 몇 번이고 추측했다.

아무리 따져보더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간의 사투를 이어진다.

우드드드득-!

건물이 완벽히 무너졌다.

둘 다 하늘의 마기를 포악하게 흡수하다 보니, 커다란 두 개의 기둥이 하늘로부터 쏘아져 내린다.

허공에 떠올라 마기를 움직인다.

이전처럼 손가락을 튕겨서 공격하는 신기를 보여주긴 힘들기에, 주변 전역을 마법진으로 뒤덮어야만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평범하구나!”

“과연 그럴까?”

그녀가 만든 기형학적인 마법진 아래에서 흑마법이 구성된다.

커다란 촉수를 뽑아내더니 심연에서 공포의 군주를 꺼내오고 있었다.

영창에 맞춰서 기이한 대답이 들려왔다.

[부름에 답하노라.]

-부아아악!

촉수가 도시의 바닥 아래에서 솟아났다.

날 공격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다량 죽이려는 의도가 보였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허공에서 솟아나는 촉수를 피하면서도 나의 흑마법 역시 동시에 발동됐다.

콰가가가가각-!

지반이 흔들린다.

커다란 힘이 그녀에게 그대로 꽂혔다.

소환사를 보호하기 위해 모여든 촉수가 일부 뜯겨나갔고, 막아냈음에도 일부의 여파가 그녀에게 닿아서 멀리 튕겨 날아갔다.

[매우, 강한 놈이구나.]

촉수는 포악스럽게 도시의 시민을 집어삼키려다 말고,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날 먼저 처리해야지, 포식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건가.

주변의 촉수가 뻗어져 나와 날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

콰드드득!

다시 흑마법이 발동되자 나에게로 향하는 촉수가 산산조각이 났지만, 그 촉수는 다시금 재생을 반복했다.

문어 같은 살점에 거품이 끓어오르더니, 다시 촉수가 솟아오른 것이다.

이형적인 괴물은 이래서 귀찮다.

아무리 부수고 갈기갈기 찢어놓더라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방법이 있다.

다시 보더라도, 이쪽 영역은 아직 흑탑주에겐 버거워 보인다.

“역소환.”

[그걸, 어찌하여. 가능케 하는가? 네놈은 사령왕의 후계라도….]

괴이한 존재는 나의 뜻에 따라서 소환이 취소됐다.

뭐라 말을 하는가 싶었으나, 사실 관심은 없었다.

흑마법으로 다룰 수 있는 이형의 존재 중에서 최상격도 아니었으니까.

대신 역소환이 온전히 이루어진 건 아닌지, 아직 일부의 촉수가 도시에 남아있지만, 그걸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역소환이란 게 말은 쉽지만, 결코 쉽게 따라 할 수 없었다.

다시 상처를 마기로 감싸며 돌려막기를 하고 있던 흑탑주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대. 대체 어떻게.”

“...이쪽 영역의 흑마법은 많이 못 쓴 모양이네.”

초월에 가까운 힘이다.

그걸 활용하는 것도 나름의 경험과 실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험의 공백은 물론이고, 대부분은 사령왕에게 배워온 힘에 의존했다.

그렇다면, 이미 사령왕에게 먼저 배우고 많이 활용해 본 나로서는 완벽한 우세를 점했다.

“흐흐흣, 역시 쉬운 일은 없어.”

그런 흑탑주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아직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감을 느끼고 있는 건가?

“불사자, 난, 말이야, 최후의 수가 있다고?”

“...흑마법사에게 그런 게 없겠나.”

“당연하긴 해, 그렇지만 나도 이걸 꺼내고 싶진 않았어.”

검은색으로 물든 계약서를 꺼내 든다.

그걸 보며 나조차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년, 제 발로 지옥으로 들어가는구나.

악마의 계약은 자주 애용하긴 했지만,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넘긴 적은 없었다.

악마는 그것에 환장하고, 그걸 얻기 위해서 어떤 짓이라도 한다.

나는 언젠가 죽을 거라고 각오하였기에, 단 한 번도 넘긴 적 없는 것.

그건 영혼이다.

그녀는 영혼을 넘기기로 결심했다.

영혼을 넘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흑마법사는 절대 영혼을 악마에게 바치지 않는다.

그건 영원히 고통받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불사자가 된다면, 영혼을 주는 것을 영원히 유예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할 수 있는 짓이다.

흑탑주의 미소는 광기로 가득 찼다.

“내가 살아온 삶이 무가치했던 건 아닌가 봐, 무려 세 명이 나누어 가지겠다고 나섰으니까.”

영혼의 가치는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에 따라서 비싸게 책정된다.

세 명의 악마가 그녀 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이건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준다는 건, 불사자인 나조차도 꺼리는 짓이다.

“바사고, 가미긴, 마르바스.”

게다가 셋 다 거물이다.

대악마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악마하고는 동일선상에 놓이지 않는다.

손가락 까닥하지도 못하고, 내 옆에 나타난 바사고가 전신을 묶어버렸다.

흑마법도, 마법도 아닌 완벽한 권능.

초월자가 아니면 권능을 이겨낼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제압을 당한 것이다.

“...결국 최후는 파멸일 텐데, 그런 짓을 하는구나.”

“어차피 안 죽으면 되잖아? 너도 이기고 싶으면 영혼을 바쳐.”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불사자로서 어느 정도 살아온 나에겐, 영생이라는 건 또 다른 지옥이며, 여기에다 영혼을 바치는 건, 도망칠 길조차 없애버리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다.

차라리 대악마와 계약하고 말지.

일반적으로 목숨을 거는 것 하고는 의미가 너무 달랐다.

생명으로 거래하면 한 번 죽는 거로 끝이지만, 영혼은 영원히 저당잡힌다.

이미 영혼을 팔아치운 흑탑주는 품속에서 유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럼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단둘이서, 같이 머물자고?”

그건 사령왕의 작품.

유물을 하늘 높이 던지자, 실기 시험 때처럼 커다란 결계가 주변을 뒤덮었다.

용사가 오는 게 아닌 한 아무도 통과할 수 없는 벽이 생긴 것이다.

그런 상황 가운데, 그녀는 나의 불사를 빼앗기 위해서 움직였다.

내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드디어 염원하던 걸 코앞에 둔 그녀의 찬란한 미소가 보였다.

“말은 그렇게 하긴 했는데, 불사라는 건 빼앗을 수 없는 힘이긴 해.”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하려 했다?”

“그러니까, 다른 걸 빼앗아야지.”

그녀의 시선은 날 이리저리 살폈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신체의 일부분까지 하나하나.

“음, 몸은 굉장히 허약한데, 대신 얼굴은 괜찮네, 이 정도면 만족이야.”

무슨 의도인지 드디어 예상이 갔다.

그녀는 불사를 빼앗으려는 방식을 나에게서 권능을 가져가는 게 아닌.

몸을 빼앗아 가려는 방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게 가능하더냐.”

“평생을 연구해왔어, 과연 남의 몸을 빼앗아서 그 몸에 살아갈 수 있을지 말이야.”

그리고 그녀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저 자신을 가리킨다.

“그 결정체가 바로 이거다!”

어쩐지 흑탑주라는 경륜과 경험을 요구하는 직책에 있는 것 치고는 그녀는 아주 젊었다.

그녀가 초월자도 아닌 마당에, 젊음을 유지할 방법은 많지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소모 값이 많았다.

아무리 미모가 중요하더라도, 유지하겠다고 마기를 낭비하면 결코 흑탑주에 오를 수 없다.

그 젊음의 비결은, 남의 몸을 빼앗아서 얻어낸 것이다.

그런데도 침착한 내 모습에 흑탑주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몸을 빼앗길 수도 있는데, 왜 이리 담담해?”

...이런 부류의 흑마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신력.

내가 프랑의 몸을 지배했던 것처럼, 정신력으로 남을 압도하는 게 아니라면, 몸을 빼앗을 수 없었다.

과연 흑탑주, 너의 정신력이 나보다 뛰어날까?

불사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애송이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나는 그녀의 계획은 이미 실패했다는 걸 알았다.

흑탑주는 알아서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단지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면,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세 명의 악마.

...악마를 어찌 처리해야 되는가.

이 부분은 도무지 정답이 보이지 않았다.

**

“...이대로 가야 할까.”

아르델은 시청을 빠져나가면서도 몇 번이고 머뭇거렸다.

이대로 동생을 놔두고 자신은 도망쳐야 하는가?

그의 걸음이 멈추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몸을 돌려 다시 시청을 바라본다.

시청에서는 위험을 느끼고 벗어나는 직원들로 넘쳐났고, 곧 얼마 안 지나 시청 전체가 박살이 났다.

우드드드득-!

건물이 무너지자마자 하늘에서 두 개의 검은 색 기둥이 생겨났다.

그건 무척이나 경악스러우면서도, 두려운 모습이었다.

마치 세상에 재앙이 찾아온 것처럼, 두 명의 절대적인 존재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저기서 그의 동생이 보였다.

아르델은 두려웠다.

동생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납치당했을 때? 아니면 실기 시험에서 참사가 터졌을 때?

하지만 아르델이 직감하기로는 그 전에 이미 동생은 바뀌었다.

혼담을 위해 카리스 자작을 만나러 나가는 길에, 아르델은 동생이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더는 아르델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제대로 알아내겠다. 동생아.”

네가 품고 있는 고통과 짊어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진정 알아내겠다며, 그 자리에 서서 둘이 이어지고 있는 사투를 지켜봤다.

오직 아르델 만이 지켜보는 게 아니다.

다수의 시민이, 다수의 관료가, 다수의 기사가 하늘을 뒤덮는 마법진들을 바라보며 공포심에 빠지면서도, 희망을 품고 참았다.

둘 다 똑같은 흑마법사지만, 한 쪽은 도시를 구원하려는 흑마법사의 모습이리라.

하지만 그걸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부아아악!

바닥에서 촉수가 솟아난다.

그 촉수들은 대다수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대로 심장이 꿰뚫린 사람도 있으며, 그 촉수가 크게 몸을 비틀며 그걸 맞고 날아간 시민은 즉사하기도 했다.

“이런!”

아르델도 곧장 검을 꺼내 들며, 그를 노리는 촉수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어떠한 일격도 통하지 않고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아르델의 두 눈이 흔들렸다.

저 하늘에서는 여전히 커다란 굉음이 터져나갔다.

아르갈은 흑탑주를 공격했지만, 일부분이 통했었지 흑탑주를 죽인 건 아니다.

오히려 촉수가 동생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안 돼.”

아르델이 급하게 달려 나갔지만, 촉수는 그 틈을 타 그의 등을 향하여 공격했다.

쿠우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아르델은 강한 힘에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어지러운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겨우 들어 올렸건만.

그 촉수는 아르델의 목을 향하여 천천히 뻗어가고 있었다.

“이, 대로 죽을, 수 없….”

촉수는 아르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숨을 더는 못 쉬게 되며, 어떤 몸부림을 치더라도 의미 없이 그의 검이 바닥을 뒹굴었다.

아르델은 점차 시야가 흐릿해짐을 느꼈다.

서걱-!

그러던 때에, 촉수를 베어낸 푸른 빛을 담은 검이 보였다.

검에 담아낸 색은, 그가 가진 머리카락 색과 닮았다.

라인하르트는 중얼거렸다.

“정신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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