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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4)화 (4/425)

남궁마제

새로운 남궁의 직계(1)

아이와의 교감이 있은 후.

팽연화는 이전보다 훨씬 더 아이에게 정성을 쏟으며, 한시도 아이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런 팽연화가 걱정스러워서 아이를 찾은 남궁경도 점점 아이의 곁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움찔.

“오!”

겨우 손가락 하나 잡히고 놀란 눈을 뜨는 남궁경을 보며 팽연화가 화색을 띠며 말했다.

“제 말이 맞죠? 제 목소리에만, 아니 이제는 우리네요. 아이가 우리에게만 반응하는 거예요.”

“그, 그것이 참말이오?”

“전에 잠시 형님이 들렀을 때나, 진휘나 진혜가 들렀을 때도 몰래 시도해 봤어요. 그런데 형님이나 아이들 손은 쥐지 않고, 꼭 제 손만 쥐더란 말이에요. 오늘, 가가도 성공하셨으니 우리 두 사람 손만 쥔다는 이야기지요. 호호호!”

“허, 거, 신기한 놈이군.”

“아이도 아는 거지요, 누가 저를 제일 걱정하는지.”

그게 뭐 그렇게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팽연화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남궁경의 두툼한 손가락을 쥔 아이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가락을 잡힌 남궁경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움직이면 손가락을 뺄 수 있었지만, 남궁경은 계속해서 손가락을 쥐여 주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이러했을까.”

“화 매…….”

“어쩌면 우리 아이가 이런 모습으로 다시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아닐까.”

말을 하는 팽연화의 음성이 점점 먹먹하게 젖어 갔다.

‘아버지! 어머니!’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화가 팽연화에게도 손을 뻗었다.

‘내가 두 사람의 손을 잡은 것이 날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했어. 운명 같았다고 하셨지. 그 운명, 이번에는 내가 만들겠어!’

진화는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힘겹게 양팔에 힘을 주어 남궁경과 팽연화의 손을 잡았다.

‘절 다시 받아 주세요. 이제는 두 분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가 더 잘할게요, 아버지, 어머니!’

진화의 간절함이 전해졌을까.

진화에게 손이 잡힌 남궁경과 팽연화가 크게 동요했다.

이전 팽연화의 말처럼, 이번에도 남궁경과 팽연화는 지금의 상황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서로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다가,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가가…….”

“화 매…….”

이제까지 아이가 그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불청객이었다면, 이후로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다.

* * *

근래에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팽연화를 제외하고 남궁강마저 자신의 침전에 출입을 삼갔다.

“아이는 괜찮더냐?”

남궁강은 팽연화를 보러 갔던 남궁경이 나오는 것을 보며 물었다.

“흐음, 또 경련을 했는데 이번에도 잘 넘긴 모양입니다.”

“그래, 둘째가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네 얼굴이 왜 그러느냐? 둘째에게 이상이라도 있느냐?”

“아닙니다.”

“흐음…….”

남궁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남궁경을 보았다.

“다른 문제가 있더냐?”

“아니요. 단지 우리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딱 저쯤이 아니었을까 해서요. 혹시…… 의도하신 겁니까?”

남궁경의 물음에 남궁강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걸 네가 알아챘다고?”

“화 매가 물어보랍니다.”

“헹! 그럼 그렇지! 왜, 의도한 것이면 마음이 상하겠느냐?”

“흠…… 그런 건 아닙니다.”

남궁강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남궁경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의도하고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저 마음에 남았던 것이지. 그리고 조금 뒤에야 마음에 남았던 이유를 알았던 것이다. 나도, 네 형도.”

“두 분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자꾸 눈길이 가고, 아이의 손을 잡아 주고 싶으니까 말입니다. 다만 걱정하는 것은, 아이가 살아 내지 못했을 때입니다. 연화가 저 아이를 잃고 괜찮을지…….”

사실, 팽연화만이 아니었다.

저는 과연 괜찮을까.

그래서 남궁경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남궁강을 보았다.

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막내아들이 불안감을 내비치는 것을 보며, 남궁강은 평소보다 힘을 줘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일이면 의선이 당도한다고 한다. 이제까지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둘째 며늘아기의 정성만으로 칠 주야를 버틴 아이다. 살아 낼 것이다.”

“그렇겠지요? 예, 그럴 것입니다.”

확신이 담긴 남궁강의 말에, 남궁경은 비로소 작은 미소를 보였다.

* * *

남궁강의 말처럼, 다음 날 남궁세가는 정의맹에서 큰 손님을 맞았다.

하늘 아래 못 고치는 환자가 없어 ‘살아 있는 화타’라고 불리는 의선이 온 것이다.

달랑 제자 하나만 데리고 명성에 비해 조촐하기 그지없는 일행이었지만, 천하의 남궁가주가 문밖까지 나와 그를 맞았다.

“이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어인 말씀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왕가의 일이 아닙니까.”

생각보다 더한 환대에 의선이 조금 주춤했지만, 이내 분위기를 맞추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의선이 슬쩍 남궁가주의 얼굴을 살폈다.

대외적으로는 제왕검 남궁강의 몸을 살피기 위해 왔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서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남궁가주의 태도가 단지 연기라기에는 과하다는 느낌이 받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시기였기에, 의원마저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쪽이 데려오신다는 제자로군요.”

남궁가주가 의선이 데려온 작은 소년을 보며 아는 체를 했다.

“아직 가르칠 것이 많은 제자입니다.”

“의선문의 백소하라 합니다.”

하얀 얼굴에 차분한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이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소문이 자자한 의선문의 천재를 이렇게 보는군.”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여장을 풀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여장이야 아무렴 어떻습니까. 더 이상 환자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요. 태상가주부터 뵙고자 합니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역시 의선이십니다! 제가 안내하지요.”

의선의 말을 남궁가주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외적으로는 먼 길을 온 피곤도 잊고 환자부터 찾는 의선이나 아버지를 위하는 남궁가주의 효심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목적이 있음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의선은, 반색하는 남궁가주의 모습에 경계심을 높였다.

새로운 남궁가주의 수완에 대해서는 정의맹에조차 소문이 자자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약속되었던 환자를 보는 순간, 의선은 남궁가주의 태도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명문 세가의 직계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한 얼굴과 피곤함에 부르튼 입술로 간절하게 저를 보고 있는 여인 하나와 여인 못지않게 저를 반기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는, 의선이 가장 많이 만나는 부류 중에 하나였다.

환자의 보호자, 가족이었다.

‘사내가 제왕검의 둘째인 창천일검 남궁경이겠고, 여인은 그 내자인가? 팽가의 여식이라 들었는데, 어찌 생면부지의 아이에게 이토록 정을 주었단 말인가? 허어, 제왕검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겐가?’

아픈 자식을 둔 부모의 눈.

남궁경과 팽연화는 벌써 그런 눈으로 의선을 반기고 있었다.

그런 남궁경과 팽연화의 눈빛을 피하며 남궁강을 찾은 의선은, 이 상황을 담담하게 보고 있는 남궁강과 눈을 마주치고 아연해졌다.

남궁강의 눈빛에서, 아니 대문까지 나와서 저를 환대하던 남궁가주의 모습에서부터, 남궁세가가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임을 느낀 것이다.

‘허어……. 허허허!’

정의맹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인신 제물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의 몸에서 그들의 비법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의술을 쓰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의선문 역시 극악무도한 살육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귀천성에 대적하기로 한 동맹이 아니던가.

그 의무감과 책임감을 짊어지고 왔건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의원을 기다린 환자’였던 것이다.

어쩌면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부탁드립니다.”

팽연화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선은 굳은 얼굴로 팽연화에게 화답했다.

남궁세가를 들어설 때 허허롭게 웃던 얼굴에 진 그늘이, 지금 의선의 굳은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 * *

평소와 다른 부산한 기척들이 들려왔다.

‘드디어, 의선이 온 건가?’

진화는 남궁세가로 온 이후로 내내 의선을 기다렸다.

진화가 의선을 기다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손도 까닥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입니다.”

“그럼 잠시…….”

진화가 잠이 든 척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탁. 탁. 탁.

의선이 진화의 몸에 있던 붕대를 풀고, 간단한 시침 후에 진화의 벌어진 살을 얼기설기 꿰어 놓은 실을 끊었다.

“아!”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졌다.

본래 갈라져 있던 살이 아물지 못한 채 벌어지고, 진화의 머리부터 귀, 가슴, 팔, 다리의 근육이 모두 벌어졌을 뿐 아니라 복부의 장기까지 훤히 드러났다.

당장이라도 피와 내장을 쏟을 것 같았지만, 의선의 간단한 시침이 모든 것을 막아 두었다.

그제야 팽연화가 간신히 한숨을 쉬었다.

“허! 이런……!”

진화의 내부를 살핀 의선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고, 같이 있던 제자도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게요?”

남궁강이 다급하게 물었다.

“역천지체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보통의 사람과 오장육부의 위치는 물론 전신 혈맥까지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역천지체는 귀천성에 의해 알려지기 전까지, 일반인들은 물론 의원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역천지체를 고칠 수 있는 이도 극히 드물었다.

“그럼 어찌 되는 것입니까?”

“모든 것을 반대로 생각하고 고치면 됩니다. 다만, 아이의 맥과 신경이 가닥가닥 끊기거나 녹아내렸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담겨 있던 그 독수에 몸이 녹아들고 있었나 봅니다.”

혹시나 했건만, 아이는 정말로 제물로써 그곳에서 죽어 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렵게 마친 의선의 말에, 남궁세가 사람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모두가 진화의 가련한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정작 진화는 제 몸이 어찌 되고 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의선은 정의맹, 정확히는 제갈세가의 요청에 의해 내 몸을 살피러 온 것이다. 남궁세가에서 정의맹으로 파견을 나갔을 때, 정의맹 측에서 특별히 나를 요청했다고 했었다. 만약 제갈세가 놈들이 역천비록을 조금이라도 해석했다면, 내 몸에서 역천지체 또한 확인하려 했을 터! 놈들이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파악해 둘 필요가 있어!’

진화 또한 제 체질에 대해 역천지체 중에서도 혼돈지체라는 것 이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혼돈지체에 대해 하나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음과 양이 혼재되어 끊임없이 부딪히는 혼돈을 견디는 진화의 체질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모든 회복에서 빠르다는 것이었다.

진화가 과거의 기억 외에도 자신의 생존에 그토록 확신을 가졌던 이유였다.

“그곳에서 나온 시신을 보았습니다. 생존자가 아이 하나라는 말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역천지체였다면 말이 됩니다. 이렇게 전신 세맥까지 완벽한 역천지체는 백 년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할 것입니다. 더욱이 역천지체는 세상에서 독기를 가장 잘 순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이니, 아이의 체질을 이용하여 뭔가를 얻고자 했겠지요.”

정의맹에서는 아이의 몸에 남겨진 역천대법의 흔적에 대해 알아내 달라 했지만, 특별한 것은 역천지체뿐이었다.

의선은 반쯤 독수에 녹아들다 만 진화의 혈맥을 보며, 진화가 그저 제물이었을 뿐이라는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 결론을 아는 것이, 진화가 의선을 기다린 두 번째 이유였다.

‘됐어! 예상대로 지금의 의선은 역천지체 외에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의선이 이대로만 제갈세가와 정의맹에 전한다면, 나는 혼돈지체를 숨기고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거다!’

의선은 남궁세가를 찾았던 목적을 달성했고, 진화 또한 의선을 기다린 모든 목적을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의원이 환자를 고쳐 내는 것이었다.

“의선님, 아이는, 아이는 살 수 있겠지요?”

팽연화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물었다.

그런 팽연화를 보며, 의선이 자애로운 얼굴로 웃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버텨 낸 것을 보면,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의선의 말 한마디에, 팽연화는 물론 남궁세가 식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본 의선이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야, 네게 닿은 천운이 끝나지 않았나 보구나.’

“소하야, 천소대침과 양자지침, 혼야환을 준비하여라.”

“예, 스승님.”

여유로운 듯 단호한 의선의 명에, 어린 제자도 다부지게 대답했다.

진화 또한 마음 편히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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