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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6)화 (6/425)

남궁마제

새로운 남궁의 직계(3)

팽연화의 배웅을 받으며 남궁경이 다부진 얼굴로 나섰다.

“가가, 힘내고 오세요!”

“아무렴. 내 힘내고 오겠소!”

아이의 회복 외에도 아이에게 ‘남궁(南宮)’이라는 성을 붙여 주기 위해서는 아이와 가족들의 동의 외에도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날이었다.

남궁경은 다른 때에도 그러했지만, 오늘은 특히 자신의 말을 지킬 것이라 다짐하고 나섰다.

* * *

천명관(天明館).

남궁세가의 동을 틔우는, 남궁세가의 가신들이 모여 세가의 크고 작은 일을 회의하고 결정하는 곳이었다.

요 근래 좋은 일만 계속되던 천명관에, 오랜만에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어! 자질이 뛰어난 방계의 아이도 아니고, 출신도 모르는 아이를 직계로 삼는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예상대로, 많은 이들의 반발이 있었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남궁성이었고 그에게는 든든한 아들 남궁진휘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전쟁 중에는 그들만으로는 불안했다.

당장 남궁성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어린 남궁진휘 대신 남궁경이 가주 자리에 가장 가까웠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남궁진휘와 남궁경의 자식 사이의 서열이 애매해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던가.

그러한 이유로, 남궁경과 팽연화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덜컥 자식이 생기는 것도 걱정인 것이다.

그런데 친자식도 아닌, 양자라니!

심지어 양자로 삼겠다는 아이의 배경조차 기가 찬다.

“안될 말입니다! 뉘의 피를 이었는지 알 수 없는 아이입니다. 게다가 광마제의 손에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른 자리도 아닌 직계입니다. 직계의 사내! 이것이 무얼 뜻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귀천성과 관련이 있는 불길한 아이입니다!”

가신들과 장로들의 반발은 예상했지만, 눈앞에서 그것을 보자니 남궁경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겨우 살아난 아이다.

남궁경은 그 아이가 살아나 준 것만도 고마웠다.

게다가 저들이 문제 삼는 아이의 배경은 그야말로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다.

콰—앙!

“젠장! 광마제의 손에 있었으면 뭐요!”

결국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남궁경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저, 저!”

한쪽에서 기가 찬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천하의 독불장군 같은 남궁경이지만 제왕검 남궁강까지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불한당같이 일어설 줄은 예상……했다.

저놈의 성질머리, 폭발할 때가 되었다.

다들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애가 원해서 그놈 손에 붙잡혀 있었답니까? 겨우 죽다가 살아난 아이에게 뭐요, 불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 장로가 남의 운 가지고 할 말이 있소?”

“그, 그런 말이 아니라…….”

팔장로 주병세는 내기를 좋아하지만 내기판의 호구로 유명했다.

기술도 좋고 머리도 좋은데 단 하나, 운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였다.

“닥쳐요! 그래도 정파요, 협의에 죽고 산다는 남궁입니다. 의천검세를 내세우는 곳에서, 겨우 살아난 아이에 대해 그게 하실 말들이오?”

오랜만에 하는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제왕검과 남궁결사대가 돌아오고 모두가 남궁세가의 의기를 칭송하고, 남궁세가에서도 자신들에게 의협이 있음을 자랑하지 않았던가.

남궁결사대의 정식 이름은 무려 의천검대(義天劍隊)였다.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누구도 감히 남궁경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빌어먹을! 내 자식이오! 내가, 내 자식 좀 삼겠다는데 왜 감 놔라 배 놔라 지랄들이오?”

“지, 지랄!”

“어허, 무적단주는 말이 과하오!”

남궁경의 말이 선을 넘는 듯하자, 가주인 남궁성이 그를 말렸다.

공식석상에서 남궁경은 남궁세가 제일의 무력단인 제왕무적단을 이끄는 단주였다.

남궁성의 만류하자, 남궁경은 콧김을 뿜으며 겨우 나오는 말을 삼키는 듯했다.

하지만 말로 못 하게 된 대신에, 은근히 기세를 풀어서 가신들을 압박하는 게 아닌가.

남궁경은 처음의 결심대로, 정말로 ‘힘’을 내고 있었다.

‘이 날건달 같은 놈!’

‘망나니 새끼.’

‘일대일로는 안 되어도, 우리가 힘을 합하면 네놈 하나 못 당할까. 힘이 없어서 참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참는 거다!’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세가회의까지 힘으로 억누르려 하다니, 저 불한당 놈!’

전쟁 중이었기에 그만큼 힘의 논리가 잘 통하는 때였다.

남궁경은 있는 힘을 없는 척 배려해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잇, 이렇게는 못 넘어갑니다!”

화를 참지 못한 일장로 남궁순이 나섰다.

“제왕무적단주의 자식 문제지만, 남궁의 직계와 관련한 일이기도 합니다. 세가 내에도 유망한 인재가 많은데, 왜 하필 그런 아이란 말이오!”

“쓰불, 세가 내에서 방계 아이로 추천하면 뭐가 나은데! 우리 진휘 자리 바라보면서 눈이 벌겋게 침을 흘릴 것도 아니고!”

“말을 삼가시오!”

“헹! 그러고 보니 일장로도 조카라면서 한 놈 들이밀었지? 그것도 멀쩡하게 부모 다 살아 있는 아이를! 그거야말로 의도가 없었다 할 수 있소?”

“제왕무적단주!”

“왜! 뭐! 내 말이 틀렸나? 아버님 짱짱하고, 형님 멀쩡하고, 우리 진휘 창창한데! 내가, 내 자식으로 가여운 아이 하나 거두겠다는 게, 뭐! 왜!”

남궁경과 일장로 남궁순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향해 핏대를 세웠다.

“입적(入籍)은 결코 허락할 수 없습니다!”

“흥, 댁이 뭔데 남의 자식 호적 가지고 허락을 하니, 마니요?”

“정말 이렇게 나올 것이오?”

“나올 것이오! 꼬우면 한판 붙든지!”

남궁경의 사나운 기세가 남궁순을 몰아붙이고, 남궁순 역시지지 않으려 기세를 끌어 올렸다.

다른 장로들이 이러다가 또 칼부림이 날 듯하여 중재를 위해 남궁가주를 찾았지만, 가주인 남궁성은 전혀 중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

두 사람이 끌어 올린 투기가 점점 사납게 변하려는 찰나, 갑자기 그 모든 기운의 요동이 싹 사라졌다.

동시에, 묵직한 음성이 남궁경과 남궁순 사이를 갈랐다.

“둘 다, 앉아.”

잠잠하게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태상가주 남궁강이 나선 것이다.

순식간에 남궁경과 남궁순의 기운을 눌러 버린 남궁강의 압도적인 무위도 무위였지만, 푸르르 떨리는 턱수염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내가 구해 온 아이가 이렇게 세가의 분란거리가 될 줄은 몰랐군.”

남궁강의 말에 남궁순을 비롯한 장로들이 움찔거렸다.

절대 고수의 말 한마디에 담긴 위엄 때문에?

아니, 그들은 모두 이 천명관에서 일어난 최초의 칼부림이 누구의 손에서 시작되었는지 떠올린 것이었다.

지금 정의군자처럼 위엄을 풍기며 앉은 남궁강이야말로, 두 아들과 가신들까지 일 대 십칠의 칼부림으로 깨부수고 나간 ‘천명관 참사’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이전까지는 세가회의가 이렇게 개판은 아니었는데……!’

잠시 장로들에게서 원망의 눈길이 쏟아졌지만, 남궁강이 기세를 올리자 이내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의선도 아이의 몸이 약한 것이 문제이나 다른 걱정은 없다 하였고.”

“흠, 흠.”

감히 의선이 공증한 사안에 의심을 들이밀 수는 없었다.

“내 아들이 고맙게도 내가 거둬 온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나섰는데…….”

따지고 보면 애초에 모두를 속이며 아이를 데려온 사람이 바로 남궁강이었다.

그러나 절대 대놓고 따질 수 없는 부문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남궁경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모두를 짓눌렀다.

태상가주 남궁강은 여전히 남궁세가의 제왕이었고 무림의 영웅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애초에 화근이 될 아이를 데려온 장본인이자 장로들이 매일같이 속으로 욕하던 ‘날건달, 망나니, 불한당 같은 놈’들을 낳은 화근들의 근본이라 할 수 있었으니.

“하, 하지만 직계로 입적한다는 것은 유사시에…….”

쿵-!

“유사시?”

유사시라 함은 결국 태상가주 남궁강과 가주 남궁성, 소가주 남궁진휘가 모두 죽었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

누구도 남궁강의 앞에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세가회의는 장로들과 가신들이 더 이상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목숨을 보존한 가운데, 남궁강이 “그렇다면 아무 문제없군.”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끝이 났다.

돌아가는 가신들의 등이 분노와 실망, 수치심으로 축 쳐져 있는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남궁세가 직계 삼부자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배웅했다.

“다음부터는 세가회의를 연무장에서 할까 봅니다.”

남궁성의 농담 같은 진담에 남궁강이 콧방귀를 날렸다.

“흥, 네놈들이 나와 연무장에서 붙을 깜냥은 되고?”

“…….”

“힘의 시대가 아니냐. 시전 바닥이나, 명문 세가의 회의나, 결국 세상은 이치대로 흘러가는 게다. 그 이치대로, 골칫덩어리를 안겨 준 아비가 자식에게 도움을 준 것이 뭐 그리 문제라고.”

평소엔 세가회의라면 피하고 보던 남궁강이 이번에는 참석하여 자리를 지킨 이유였다.

남궁경과 팽연화 그리고 아이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들이 가족이 되는 것만큼은 손수 해결해 주고자 한 것이다.

남궁강의 말에, 남궁경이 고개를 돌려 아버지와 눈을 맞추었다.

“아버지.”

“그런 눈으로 볼 것 없다. 별것도 아닌 일…….”

“내 새끼는 골칫덩어리가 아닙니다.”

“……이 배은망덕한 놈!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뭐시기 어째?”

“하하하하!”

벌써 새끼를 지키는 멧돼지처럼 콧김을 뿜는 남궁경의 모습에 남궁강이 기가 찬 듯 성질을 내었다.

감사의 말을 기대했다가 팽-당한 아버지와 낯선 동생의 모습에, 남궁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시원하게 웃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깐 장로들이 아버님이 계셔서 불만을 삼켰지만, 결코 이대로 넘어가진 않을 것입니다.”

“흥! 그거야 이제 아비 되는 놈이 신경 쓸 일이고.”

“본래 애 하나 키우는 게 세가를 꾸려 가는 것만큼이나 힘든 법이라는데, 걱정입니다.”

“킁, 다 덤벼 보라지요!”

“후우, 진짜로 그럴까 봐 걱정이라는 거다.”

“어쨌든 나는 몸도 약한 우리 진화, 꽃길만 깔아 주고 귀하게 키울 거요!”

남궁강과 남궁성의 농담 섞인 경고에 남궁경이 다부지게 대답했다.

그렇게 진화는 이번에도 남궁경과 팽연화의 아들, 남궁진화(南宮珍花)가 되었다.

* * *

사내아이였지만, 꽃같이 예쁘고 귀하게 키울 것이라 이름은 보배 진(珍)에 꽃 화(花)를 썼다.

“진화야!”

“어머니!”

그들의 바람처럼,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다가 돌아보며 미소 짓는 진화는, 마치 갓 피어난 싱그러운 꽃같이 사랑스러웠다.

“우리 진화 뭐 하고 있었니?”

“그냥, 뭘 좀 보고 있었습니다.”

고거 대답하는 것이 뭐라고.

꼬물꼬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얼굴이 퍽 수줍었다.

‘아아, 내 아들! 꼬물거리는 손끝까지 귀여워!’

하지만 어디 손끝뿐이랴.

병상을 털고 일어난 진화는, 그를 불편해하는 가신들마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예쁘게 자랐다.

귀 밑부터 목 아래 옷깃 사이로 이어지는 붉은 거미줄 같은 흉터만이 진화의 아팠던 과거의 흔적처럼 남았을 뿐이었다.

“뭘 보고 있었니?”

“……개미요.”

“개미?”

수줍은 아이의 손끝에는, 진화가 아침에 몰래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홍당무에 까맣게 몰려든 개미들이 있었다.

‘후후후, 홍당무 안 먹은 것을 들킬까 봐 숨겼구나? 귀엽긴.’

‘칫, 들켰군. 또 빼앗기면 어쩌지?’

서로 생각하는 것은 달랐지만, 눈이 마주치자 모자(母子)는 똑같이 웃어 보였다.

“욘석, 아침에 당근을 남겨서 몰래 개미들에게 떠넘겼구나?”

“떠넘긴 게 아니고, 당근을 먹고 개미가 강해질 겁니다.”

“엄마가 우리 진화 튼튼해지라고 준 당근인데?”

“저는 튼튼해진 개미를 먹으면 됩니다. 당근 한 개보다 개미가 더 많습니다! 더 건강해질 겁니다!”

진화는 제법 다부진 얼굴로 팽연화를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팽연화는 진화가 개미를 집어 먹기 전에 얼른 진화를 떼어 놓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새까맣게 당근을 덮은 개미떼가 이전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으, 안 돼! 개미는 먹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 거의 다 됐는데……. 진짜 안 됩니까?”

팔자 눈썹을 하고 묻는 진화는 껴안고 백번쯤 흔들어 주고 싶게 귀여웠지만, 개미를 먹는다니 될 말인가.

“안 돼! 지지! 개미는 지지예요!”

팽연화가 진화를 안고 얼른 안으로 향했다.

진화는 아쉬움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 내 개미!’

‘아, 불쌍한 내 새끼! 귀천성에서 얼마나 못 먹고 컸으면…… 다신 개미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야겠어!’

서로를 애틋하게 껴안은 모자는 결코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었으니.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리라 다짐한 남궁경, 팽연화 부부의 보배 꽃은 아직까지는 야생의 식충식물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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