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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7)화 (7/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복병들(1)

다시 남궁진화가 된 지도 벌써 일 년이 흘렀다.

남궁경과 팽연화의 아들로 입적이 결정되자마자 진화는 그들의 거처인 천화정(天華庭)으로 왔다.

이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순 없었다.

남궁진화의 기억과 정신은 엄연히 어른이었고, 애초에 평범한 어린아이의 행동 따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 돌아오며 남궁진화는 남궁경과 팽연화의 애정을 믿고 오로지 그들의 아들이 되기를 희망했기에, 과거처럼 그들의 경계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과거와 달리,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만히 자신이 깨길 기다리고 있는 팽연화가 있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팽연화가 기쁘게 웃으며 안아 주었다.

“아이고, 우리 왕자님, 일어났어요?”

“네. 어머니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남궁진화가 팽연화를 향해 마주 웃었다.

그러면 팽연화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를 안아 올렸다.

그저 웃어 주는 것만으로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그걸 왜 몰랐을까.

이렇게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감격하시는데 왜 그걸 못 했을까.

순간순간마다 자기반성을 하며 남궁진화는 어색하게나마 팽연화의 옷자락을 잡았다.

“우리 왕자님은 어쩜 잠도 이렇게 예쁘게 잘까? 호호호.”

“……아.”

팽연화는 남궁진화가 그저 눈만 떴을 뿐인데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한 듯 그를 칭찬했다.

그럴 때마다 견디기 힘들 만큼 쑥스러웠지만, 어머니 팽연화가 웃는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 * *

행복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진화로서는 결코 안주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의 행복을 지키고 이전과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했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이전보다 강해지는 것이었다.

귀천성이 부활하기 전까지 진화에겐 시간이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그곳에서, 천뢰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진화가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파지직!

진화의 의지에 따라 가슴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뇌전이 일었다.

‘의선의 보고에 의해 당분간 정의맹에서는 내가 역천지체 때문에 제물이 된 줄로만 알겠지. 하지만 귀천성의 감옥에 있던 그 수많은 아이들이 모두 역천지체였어. 그중에서도 내가 특별했던 건, 그 독과 같았던 약성을 가장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마제는 처음부터 내가 그럴 걸 알고 있었어.’

의선은 진화의 몸이 독수에 녹아들어 갔다고 했지만, 진화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감옥에서 계속 먹어 온 그 약이 천뢰의 기운을 쓰기에 알맞도록 몸 안의 불필요한 것을 없앤 것은 아닐까.

광마제가 때때로 온몸을 가르고 헤집은 것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과거, 광마제가 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진화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크흐흐, 그래, 그 힘이 겨우 남궁의 천뢰제왕검(天牢帝王劍) 따위일 리가 없지. 남궁의 검술 따위에 붙일 이름이 아니야. 네 힘이야말로 천뢰제왕의 힘이지! 허허허허! 다치지 않게 붙잡아라.”

‘놈은 내 힘이 남궁의 것과 다르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진화는 광마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들끓는 듯했다.

“혼돈지체.”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종류의 역천지체들이 있었다.

심장 위치만 다른 사람, 몸 속 장기의 위치만 다른 사람, 맥의 방향만 다른 사람, 기운의 방향이나 성질만 다른 사람 그리고 진화처럼 모든 것이 다른 사람…….

진화는 수많은 역천지체 중에서도 가장 완벽하게 하늘의 순리와 반대된, 혼돈지체였다.

이전 생에서도 의선이 역천비록의 ‘일부’를 풀어내면서 밝혀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광마제는 처음부터 진화의 체질과 쓰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네놈도 모르는 것이 있었지. 내가 내공 없이도 이것을 쓸 수 있다는 것!”

지지직-!

진화의 손끝에서 푸른 번개가 쏘아져 나왔다.

‘마지막에 광마제 놈의 뒤통수를 때렸듯, 앞으로도 이 천뢰기가 나의 비장의 무기가 될 거다. 문제는 이 힘에 대해 나도 아는 것이 없다는 건데…….’

지난 삶에서는 당연히 천뢰제왕신공 때문에 뇌전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었다.

무공의 성취가 높아질수록 천뢰기도 강해졌기 때문이다.

‘대체 내공과 천뢰기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지?’

진화의 생각이 깊어졌지만, 무공을 익히기 전까지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천뢰기에 대한 것은 마지막까지 광마제조차도 모른 것이 아니던가.

‘비밀을 풀면 이전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내가 알게 된 걸, 그놈은 아직 모른다는 거다!’

진화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톡. 톡.

생각이 깊어질 때마다 손가락을 두드리는 것은 그의 습관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터무니없이 곱고 작은 손가락.

“하아.”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자신은 이렇게 작고 여린 손을 가진 꼬마일 뿐이었다.

진화가 미간을 구겼지만, 그래 봐야 작고 시무룩한 얼굴의 꼬마일 뿐이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시간은 있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거다.’

진화가 진지한 얼굴로 각오를 다졌다.

지금 자신은 어리다.

어릴 때의 수련이 어른이 되어서 하는 수련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은 무림의 정설이라.

어쩌면 어린 몸으로 돌아온 것이 기회일 수 있었다.

이전 삶에서 놓쳤던 중요한 시기를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진화는 ‘개미’를 키우고 있었다.

“쳇, 아깐 어머니께 들키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어.”

진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개미를 싫어하시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머니가 싫어하는 일을 앞에서 할 순 없었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정확히는 안겨서 물러나진 것이었지만, 어쨌든 진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 어서 먹어라.”

오늘 아침 식사에서 남겨 온 당근에 뇌기(雷氣)를 실어 보냈다.

빠직.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불꽃이 당근에서 튀고, 진화는 그것을 개미들에게 주었다.

‘음, 확실히 대파나 가지, 오이보다는 당분이 있어서인지 당근이 제일 효과적이군.’

그동안 개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신중하게 그들의 반응을 연구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뇌기를 먹은 개미들은 다른 개미들보다 크기도 컸고 움직임도 빠르고 공격적이었다.

뇌기가 개미들의 몸에 반응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무럭무럭 자라서 좋은 영약이 되는 거다!”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지만, 진화는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 * *

하지만 세상만사 쉬운 것이 어디 있던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개미를 키우는 것부터, 과거와 달라진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가 진화에겐 매우 어려운 문제였으니.

그날도 진화는 어김없이 눈을 뜨자마자 팽연화와 인사했고, 그녀의 품에 안겨 방을 나왔다.

진화의 방문 앞에는 대체 몇 살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주름이 많은 노부인과 하녀들이 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호호, 우리 도련님, 기침하셨습니까?”

천화정 총관인 덕진 할매의 주름진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고, 곁에 있는 하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남궁경과 팽연화의 마음고생을 알고 있는 천화정 식솔들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도련님’조차 기꺼이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꼬박 일 년.

아픈 아이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기도, 마음을 얻기도, 손을 타기도 쉬웠다.

보기 드물 정도로 어여쁜 생김도 그러했지만 진화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짜증이나 투정이 거의 없는 아이라, 천화정 식구들의 마음을 사는 것은 금방이었다.

특히 차곡차곡 정성이 쌓이듯 볼살이 오른 진화는 한창 귀여움이 절정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랑을 받는데 뭐가 문제일까.

간단했다.

과도한 관심이 진화의 제약이 되었기 때문이다.

‘덕진 할매와 저 하녀들은 어머니를 지키다가 함께 죽은 사람들이다. 이전에도 이 집안에서 날 꼬박꼬박 직계 공자로 대접해 준 이들은 저들뿐이었지. 그래도…… 내게 이렇게까지 호의적이진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왜 이러는 거지?’

진화는 알지 못했지만, 이전 생과의 차이는 간단했다.

귀여운데 발톱으로 할퀴는 고양이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랄까.

첫 번째는 몰라도 두 번째에 대한 반응은 명백했다.

“꺄아-! 좋은 아침이에요, 도련님.”

천화정의 식솔들은 일 년이란 시간 동안 그들의 어여쁘고 온순한 도련님에게 흠뻑 빠졌다.

“오늘도 제가 세안 담당이에요!”

“아아, 이틀 연속 세안 담당이야. 완전 부러워!”

“그게 그렇게 부러우니?”

“그게요, 마님. 도련님이 세안하실 때 양 볼에 바람을 가득 집어넣고 숨을 참으시거든요. 아기 다람쥐 같아서 완전 귀여우세요!”

“어머, 그래?”

‘아니야-!’

단언컨대, 귀여워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시녀들이 세안을 시켜 줄 때 볼에 바람을 넣는 것은 공포로 인한 생존 반응이었다.

귀천성 감옥의 간수들 중 악의에 찬 이들이 때때로 물고문을 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물에 대한 공포는 극복할 수 있었지만, 볼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우는 버릇은 끝끝내 고치지 못한 것이다.

“그건 나도 아직 못 봤는데!”

“오늘 보세요, 마님. 얼마나 귀여우신데요.”

‘아니라고-!’

진화는 몹시 억울했다.

하지만 물고문을 당한 버릇 때문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 팽연화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웃음거리가 된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젠장! 내가 이 빌어먹을 버릇을 고치고 만다!’

정말 화가 나는 건, 악의라곤 한 점도 없는 태도랄까.

“어머, 정말이네!”

“호호호! 그렇죠?”

어머니와 하녀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진화는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관심과 사랑으로 인한 곤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 * *

‘벼락이 하늘의 기운과 기운이 부딪혀서 만들어 낸 것이라면, 혼돈지체인 내가 벼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혼돈지체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서로 상충되는 기운을 만들어 내니까.’

아직 내공이라고는 한 줌도 없었고, 종일 따라다니는 눈 때문에 당장 운기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화는 꾸준한 연습 끝에 내공 없이 뇌기를 쓰는 데에 제법 익숙해져서, 작은 번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그걸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겨우 당근을 지지는 것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휴우, 그때 놓쳤던 개미들이 어디 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천화정 정원에는 개미 군집이 다양해서 내 뇌기를 먹은 개미를 못 찾으면 어쩌나 했는데……. 일단 당근에 실은 천뢰의 기운을 개미들이 먹으면, 개미들의 몸으로 천뢰의 기운이 퍼진다. 그러면 이 개미들을 섭취해서 천뢰의 기운을 다시 흡수한다. 내 몸에는 어떤 보약보다 나을 수 있어!’

진화가 당근을 먹는 개미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때, 마당을 쓸며 시종일관 진화를 살피고 있던 시종이 그의 몸을 달랑 들어 옆으로 옮겼다.

“어어?”

“어휴! 이 개미 새끼들이 또 언제 이렇게 끌었지? 와, 애들은 왜 이렇게 커? 도련님, 개미한테 물리면 아야- 하세요. 잠시 물러나 계세요. 이 호신이가 치워 드릴게요.”

“아, 잠……!”

싸-악! 싸-악!

진화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시종 호신이 휘두른 비질에 개미들이 휩쓸려 나갔다.

“…….”

“자, 이제 깨끗해졌네요! 이제 노셔도 되어요. 하하하!”

호신은 깨끗해진 바닥을 진화에게 보여 주곤 다시 제 할 일을 찾아갔다.

이 성실한 천화정 식솔들은 단 한시도 제게 눈을 떼지 않더니, 기어코 제 개미를 날려 버렸다.

“내 약…….”

제 보약들이 말끔하게 사라진 빈자리를 보며, 진화의 마음도 말끔하게 무너졌다.

또다시 이전만큼의 개미 군집을 발견하고 개미들을 끌어모으려면, 그만큼 큰 개미굴을 찾아서 몇 날 며칠을 뒤져야 할 것이었다.

게다가 당근은 언제 빼돌려서, 언제 뇌기가 충분해질 때까지 먹인단 말인가!

“이, 씨이……!”

어머니와 덕진 할매의 감시를 피해 겨우 이만큼 키워서 잡아먹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이전과 달리 모두가 제게 호의적인데, 어째서 저만 이렇게 답답한 것일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악의라곤 한 점도 없는 이들을 향해 뱉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진화 새 인생에 복병은 천화정 식솔들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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