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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9)화 (9/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복병들(3)

천뢰제왕신공.

남궁세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이 대 심법 중 하나다.

심법(心法)이라 하면 곧 고유의 내공 수련 방법으로, 어떤 심법을 쓰느냐에 따라 무공의 형질이 크게 달라진다.

남궁세가는 창궁대연신공과 천뢰제왕신공, 두 가지 심법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천뢰제왕신공을 익히는 사람은 남궁세가에서도 극히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세가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무단인 창궁무애단과 제왕무적단에 들기 위해서는 제왕무적검법이나 창궁무애검법이 필수였다.

게다가 귀천성과 전쟁을 치르면서 남궁세가가 연구, 발전시킨 합격진이나 검형도 기존 무단 위주였다.

그러니 가뜩이나 검법이 주류를 이루는 남궁세가에서 무인들이 두 검법에 몰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 남궁세가의 영웅인 태상가주 남궁강이 제왕무적검법으로 무림에서 제왕검이라는 별호를 얻은 이후로는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되었다.

결국, 천뢰제왕신공은 익히기도 까다롭고 발전도 더뎌서 천뢰제왕검법(天雷帝王劍法)을 익히는 이들만 겨우 명맥을 잇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조차도 몇 남지 않았다.

남궁세가에서는 천뢰제왕검법의 절맥을 막기 위해 많은 지원안을 내놓았지만, 심법부터 달리하는 그것을 익히려는 젊은 무인들이 없자, 요즘은 창궁대연신공을 익히고도 천뢰제왕검법을 펼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달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진화가 천뢰제왕신공을 익힐 때에는 비급서마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았었다.

어쨌든 과거 남궁진화는 천뢰제왕신공의 명맥을 이은 몇 안 되는 무인이었다.

‘천뢰제왕신공은 천뢰제왕검법 외에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를 펼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천뢰장(天雷掌)과 천뢰지(天雷指)를 펼치며 기운을 발출할 수 있다. 게다가 성취 속도는 더딜지언정 제대로만 펼친다면 그 위력은 세가 검법 중에서도 제일이다!’

특히 남궁진화가 펼치는 섬전십삼검뢰는 천뢰제왕검법의 진수라 불리며 그를 뇌왕의 위치까지 올린 일등공신이었다.

‘문제는 내가 지금 그걸 익힌다면 괜한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건데, 역시 스승을 찾거나 아버지께서 알려 주시길 기다려야 하는 건가? ……스승님도 지금은 살아 계시겠지?’

진화의 이전 스승은 창궁무애단주였던 한령신검 남궁위였다.

그 또한 창궁무애검법을 익혔다.

그러나 단지 천뢰제왕검법을 안다는 이유로, 남궁가주의 명에 따라 진화를 제자로 삼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삼은 제자였던 터라, 사제의 정을 나누거나 뭘 제대로 가르쳐 준 관계는 아니었다.

천뢰제왕신공을 익혔다는 말에 천뢰제왕검법의 검형만 보여 줬을 뿐, 천뢰제왕검법과 섬전십삼검뢰를 익힌 것은 온전히 진화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남궁위는 끝내 제자를 외면하지 못하고 진화를 지키다가 죽었다.

‘스승님과도 지금이라면 다른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잠시 감상에 젖었던 진화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 하는데 그때 과정을 번복하는 건 시간낭비다. 천뢰제왕신공의 비급서가 소실된 것은 창서각(創恕閣)의 화재 때문이야. 그게 내 나이 열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니, 당장은 무고에 들 나이까지 기다렸다가 소실되기 전에 천뢰제왕신공의 비급서를 보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그리고 최대한 남들 눈에 띄지 않고 홀로 수련하는 거다.’

그렇게 단념하고 있는 때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 * *

제왕검 남궁강의 가르침이라니!

다음 날 진화는 설레는 기분에 잠을 뒤척였지만, 아침이 되어 그 누구보다 빨리 눈을 떴다.

‘할아버님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잘된 일이야! 심법만 익힌다면 개미 따윈 안 키워도 돼!’

부지런한 천화정 식구들의 극성 아닌 극성에 키우던 개미를 잃은 진화는 그 일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어머? 우리 왕자님, 벌써 일어나 있었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니.”

“호호, 우리 진화, 오늘 할아버지께서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니 설레서 일찍 일어났구나?”

“그게…… 예.”

차마 어머니께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진화가 귀를 붉게 밝히며 순순히 인정하자, 팽연화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를 품에 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

진화의 귀뿐 아니라 얼굴까지 폭발할 듯 붉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날 아침을 빨리 시작한 것은 진화만이 아니었다.

탕-!

“진화야!”

가장 먼저 남궁진혜가 천화정 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뒤를 이어 가주인 남궁성과 가모 하후민, 남궁진휘까지 이어서 들어왔다.

“하하, 조금 일찍 왔습니다, 제수씨. 진혜 녀석이 하도 극성이라서 말입니다.”

“너무 일찍이라 민폐가 아닌지 몰라. 미안해, 동서.”

남궁성과 하후민은 예정 시간보다 한 시진이나 빨리 도착한 것이 무척 민망한 듯 사과했다.

가족끼리지만, 새벽닭이 울자마자는 누구에게나 너무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과하는 남궁성과 하후민에게 팽연화는 너무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호호호! 그러실 것 없어요. 천화정에도 누군가가 밤에 자지도 않고 극성이었거든요.”

팽연화의 말에 남궁성 부부의 눈길이 저절로 남궁경에게 향했다.

그는 진화를 무릎에 앉히고 진화보다 더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앞에 남궁진혜가 똑같은 얼굴로 진화의 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숙부와 조카가 닮은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반길 것도 아니라, 가주 내외는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그때, 열려 있던 천화정 문이 다시 한번 덜컹거렸다.

타-앙!

“이제 겨우 아침이구나!”

“아, 아버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신 겁니까?”

“흥, 당연히 안 자고 기다린 거지! 밤에 자면 아침엔 못 일어나지 않느냐! 점심 먹고 자러 갈 거다!”

당당하게 선언하는 남궁강을 보며, 이번에는 팽연화가 한숨을 쉬는 남궁성과 하후민을 향해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딸인데 하필!’

이제 진화의 볼을 만지는 건, 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 *

“아가, 편안하게 할아비의 말과 기운에 집중하면 된다.”

“네.”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진화를 보며 남궁강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귀천비지에서 구해 올 때만 해도 아이는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일 년이 지나 어느새 제 식구가 되어 가문의 심법을 배운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일단 편안하게 눕고 할아비의 기운을 느껴라.”

“누워요?”

“그래. 누우면 된다.”

보통 운기조식의 기본은 가부좌를 틀고 단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무인이 그렇게 시작하고, 진화 또한 경지의 벽을 넘기 전까지 가부좌를 풀지 못했다.

하지만 제왕검의 가르침은 조금 달랐다.

물론 제왕검의 가르침이 다르다 한들 그가 그른 것은 아니라 믿었기에, 진화는 어색해하면서도 그를 믿고 편안하게 누웠다.

-시작한다.

전음으로 남궁강의 음성이 전해지고 진화의 몸이 움찔했으나, 이내 편안하게 긴장을 풀었다.

그러자 배, 정확히는 단전에서부터 따뜻하면서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 느껴지느냐?

남궁강의 물음에 진화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제법 기운에 민감한 것인가.’

남궁강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진화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남궁강이 이렇게 직접 운기조식을 인도한 경우는 겨우 네 번.

그마저도 남궁성과 남궁경 형제와 남궁진휘, 진혜 남매뿐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이렇게 곧바로 남궁강의 기운을 느낀 사람은 남궁진휘뿐이었다.

물론 창천일검이라 불리는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타고난 재능은 민감함과는 거리가 있는 종류였지만 말이다.

본래라면 기운을 느끼고 익숙해질 시간을 주었을 것이나, 남궁강은 슬쩍 기운을 움직여 보았다.

-어떠냐? 내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느냐?

이번에도 진화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남궁강의 눈이 살짝 커졌다.

-방금은 어떠하냐? 뭔가 변화를 느꼈느냐?

이번까지도 진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강의 눈빛이 변했다.

‘허! 이제 처음 심법이라는 것을 접하는 아이가, 곧바로 내 기운을 구분해서 움직임을 따라온 것뿐 아니라, 기운의 강약까지 느낀다고? 민감한 것도 정도가 있지!’

기운에 민감하다는 것은 결국 기운의 정도를 예민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것은 같은 위력을 내는 무공을 펼칠 때에 다른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내공을 운용할 수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내공의 낭비를 줄여서 같은 경지의 무인보다 오래 싸울 수 있다는 것 의미였다.

두 가지 모두 무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능력이었다.

‘이 아이가 내공을 운용한다면 얼마나 정교해지려는가. 허허허! 무재로군! 무재야! 역시! 내가 이 아이를 데려온 것은 하늘의 뜻이었어! 좋은 일을 많이 해 놓으니, 이렇게 복을 주시는군. 남궁의 복이야. 허허허허!’

진화는 눈을 감고 있어서 몰랐지만, 진화를 보는 남궁강의 얼굴은 볼을 씰룩이며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궁강이 본격적으로 기운을 움직이려는 때.

남궁강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부릅떴다.

‘세, 세맥이 없다! 허어, 역천지체에만 유념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늘…….’

곧 내공심법을 인도해 줄 줄 알았던 남궁강이 갑자기 멈추자, 진화는 남궁강이 자신의 몸 상태를 알게 되었음을 눈치챘다.

‘역시, 할아버님이야.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내 몸 전체를 관조했구나.’

남궁강은 여전히 멈춰 있었지만, 진화는 차분하게 기다리며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듯 보였지만, 남궁강이 진화에게 심법을 직접 사사하기로 한 것은 의선이 말해 주었던 역천지체라는 특별한 체질 때문이었다.

과거의 삶에서 아버지 남궁경이 그저 구결로만 천뢰제왕신공을 알려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진화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지난 과거엔 나서지 않았던 남궁강이 지금은 나서게 된 데에는, 지금의 진화와 이전의 진화가 크게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이전의 진화는 늘 주눅이 들어서 남궁세가와 거리를 두려 했고 남궁강을 어려워했었다. 남궁의 어떤 것도 잇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 남궁강 또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지금의 진화는 천뢰의 기운으로 이전보다 빠르게 몸을 회복했고, 주변의 호의를 받아들이면서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는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거리감 없이 가족들 틈에서 어울리니, 남궁강이 진화를 살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를 남궁세가의 일원이자 무인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진화의 몸을 살핀 남궁강이 진지하게 고민했다.

‘창궁대연신공은 전신의 모든 혈도와 세맥을 아우르며 전신을 하나의 힘으로 아우르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운이어야 창궁대연검법과 제왕무적검법처럼 강대하고 단단한 검술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 그런데 곳곳에 세맥이 부족할뿐더러 전신 혈맥마저 없어졌거나 길을 달리한 곳이 있으니…….’

결론적으로는 진화는 창궁대연심법을 펼친다 한들 제대로 기운을 아우르고 무공에 운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심법을 전수한다고 시작하였는데 이제 와서 심법을 익힐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큰소리치고 나선 자존심도 자존심이었지만, 상처 많은 손자에게 어떤 상처도 보태 주고 싶지 않은 할아버지의 마음도 있었다.

‘아! 그래! 창궁대연신공을 익힐 수는 없지만, 심법 자체를 익힐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궁에는 다른 심법이 있지 않은가! 천뢰제왕신공, 그거라면 진화도 익힐 수 있다! 어쩌면 진화의 체질이 천뢰제왕신공에 딱 알맞을 수도 있겠어!’

진화의 예상대로 남궁강은 길을 찾았다.

-진화야, 이제 할아비의 기운을 잘 따라오너라. 네가 배워야 것은 천뢰제왕신공이라는 것이다. 이 남궁에서 유일하게 극의(極意)를 추구하는 무공이란다.

‘……!’

이것이다.

진화가 뻔히 아는 천뢰제왕신공을 배우는 데에 그토록 기대했던 이유.

바로 자신이 홀로 터득하느라 알지 못했던 천뢰제왕신공의 숨겨진 진수를 남궁강의 가르침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무려 남궁의 제왕이었다.

단지 전대 가주여서가 아니라, 무림삼검이라 불려서가 아니라, 남궁강은 남궁의 모든 무학을 아우르는 살아 있는 무왕(武王)이었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뛰기 시작했던 진화의 심장이 기대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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