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떨칠 진(振) 합칠 화(和) : 화합 따윈 개나 주라 그래(1)
명문 세가라 불리는 대세가들에서, 특히 명문 세가라 불리는 대세가들에서 직계(直系)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무림 세가의 가주(家主)는 집안의 대소사부터 세가의 사업과 재원을 관리하는 권리뿐 아니라, 방계를 포함하는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가솔들의 생존권을 쥐고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전쟁 중에는 그들의 말 한마디가 가솔들의 생사를 결정하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대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무림 문파와 세가가 그러하듯, 그들의 권력은 강력한 힘에서 나왔다.
힘이란 첫째는 남궁강과 같은 강한 무공이요, 둘째는 남궁성과 같이 세가를 움직이는 능력이라.
하지만 남궁성 또한 스스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무공을 완성하고, 그를 떠받칠 남궁경이 존재했다.
결국, 권력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림 세가들은 세력 유지를 위한 독문무공 외에 따로 그들만의 비전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직계로 이어지는 혈족 승계를 위해, 시작부터 차이(差異)를 만들어 둔 것이다.
남궁세가에도 인정받은 전수자에게만 전해지는 무공이 있었다.
천리호정(千里戶庭)은 천리호정단 소속에게만 전수되는 신법과 전음법이었고, 한령신조(寒靈神爪)와 창궁대연검강식(蒼穹大衍劍强式)은 창궁무애검법과 창궁대연검법을 극한으로 익힌 이들에게만 전수되었다.
또한 무한보(無限步)와 고혼일검(孤魂一劍)은 남궁의 비밀 무단이라 할 수 있는 고혼암풍단(孤魂暗風團)의 독문무공이었으며, 천풍검법처럼 남궁의 사정에 의해 사제끼리만 전수되는 무공도 있었다.
이처럼 비기(祕器)이지만 자격이 되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무공이 있는가 하면, 자격 자체가 남궁의 가주나 소가주, 직계인 무공도 있었다.
제왕무적검법의 최후 삼 초식인 제왕검형(帝王劍形)과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이 그러했다.
천뢰제왕신공은 지금이야 익히기도 어렵고 성취도 더뎌서 맥이 끊길까 봐 모두에게 개방했으나, 본래는 그 위력 때문에 직계들에게만 이어져 오던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마저도 맥이 간당간당한 천덕꾸러기 무공으로 여겨지지만 말이다.
* * *
-할아비가 기운을 움직인 길을 기억하겠느냐?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총명하구나. 그럼 이번에는 할아비가 기운을 움직이는 길을 기억하도록 애써 보려무나.
남궁강의 말에 진화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뜨거워서 차라리 서늘할 것만 같은 기운이 단전에서 시작해서 곧장 심장으로 움직였다.
-처음은 그저 신호란다. 물길을 낼 때 작은 홈을 파서 길을 잡아 놓듯이 깃털처럼 가볍게 가서 닿는 것이란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작은 기운이 심장을 두드렸다.
그리고 다음.
태풍 부는 바다의 파도처럼, 광대하고 거센 기운이 몰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남궁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창천의 섭리를 닮고자 했다. 그래서 강하고 거대하면서도 평등한 힘을 추구한다. 남궁의 검이 중검(中劍)이라 불리는 것도, 조화검(調和劍)이라 불리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각 무공에는 창시자의 깨달음이 바탕에 있었다.
그래서 불문과 도가에선 공(空) 혹은 도(道)를 닦듯 무공을 수련하며, 이치와 섭리의 조화를 추구했다.
남궁의 무공에도 창시자의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서 남궁이 추구하는 조화는 힘의 균형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천뢰제왕신공은 특별했다.
-천뢰제왕신공은 남궁의 모든 무공 중에서 유일하게 극의를 추구한다. 그것은 창천의 섭리 중에서도 하늘의 분노, 하늘의 울음, 하늘이 토해 내는 부조화의 힘을 본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뢰제왕신공은 극한의 힘과 빠르기, 극한의 위력과 효용에 집중해야 한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남궁강의 설명에 집중하면서도, 진화는 벽을 깨고 나서도 감히 이해하지 못했던 천뢰제왕신공의 움직임을 따라가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론서에 나와 있는 혈과 맥은 모두 잊어라. 천뢰제왕신공의 극한은 심(心)과 신(身)에서 나온다. 혈맥이 아니라 뇌와 심장, 폐로 이어지는 길에 집중하는 것이다. 폐의 들숨과 날숨을 파도의 시작처럼, 심장의 요동을 물결이 이는 파랑처럼, 뇌의 의지를 대기의 바람처럼 여기는 것이다!
남궁강이 전하는 느낌은 그만의 깨달음이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기운에서, 진화는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쿠구궁—쿵-!
진화의 머릿속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진화는 남궁강이 알려 준 파도를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잔물결처럼 미약하나 스스로 기를 움직이는 진화를 보며, 남궁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잠시 뒤, 남궁강이 슬며시 진화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내공심법을 처음 배우는 자리에서 첫 운기조식을 하는 손자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너는 정말로 피가 아니라 운명으로 이어진 남궁의 아이로구나!’
남궁강은 진화에게 홀로 정리할 시간을 주며 밖으로 나왔다.
* * *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오는 남궁강을 보며 기다리던 가족들이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할아버지, 진화는요?”
남궁강이 홀로 나온 것을 보며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놀라서 물었다.
다른 식구들도 대번에 걱정스러운 눈으로 남궁강을 보았다.
그에 남궁강은 그들의 초조함을 조금 더 즐긴 다음, 빙그레 미소하며 말했다.
“진화는 지금 혼자 움직이고 있다.”
남궁강의 말을 들은 가족들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모두 무인들이라 그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진화가 벌써 스스로 운기조식을 한단 말씀입니까?”
“허허! 무재야, 무재. 내 손자들은 다 나를 닮아서 무재라고! 허허허허!”
결국 남궁강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가족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다가 이내 함께 기뻐했다.
“어머, 동서, 축하해. 우리 진화의 재능이 보통이 아닌가 봐.”
“호호호, 어려서부터 영특하더니 뭐든 빨리 익히려나 봐요. 몸이 약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에요.”
“으하하하하! 역시 내 아들이야, 암!”
“에이, 경이 너는 힘이 센 쪽이고, 역시 진화가 나를 따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어. 기운에 민감한 것이 딱 나와 진휘 쪽 아니냐.”
“맞습니다!”
남궁경의 팔불출 자식 사랑에 남궁성이 끼어들고 거기에 남궁진휘가 동참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얄밉기 그지없었다.
“흥, 네놈들의 쥐꼬리만 한 재능을 어디다 갖다 붙여? 다 이 몸의 덕이지. 암. 내 평생 착하게 살아온 보람이 있어. 허허허허허!”
전부 틀린 말이었지만 뭐라 할 수 없었다.
서로 내 덕이네, 나를 닮았네 하면서 충분히 기뻐했을까, 남궁강이 갑자기 손바닥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참! 중요한 말을 깜박했구나.”
“네?”
“중요한 말을요?”
남궁강의 말에 남궁경과 팽연화가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후, 진화가 익힌 것은 창궁대연신공이 아니라 천뢰제왕신공이다.”
“네에?”
“아버님, 왜 하필 그것을!”
남궁강의 말에 남궁경이 크게 놀라고, 남궁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뢰제왕신공이라면 무공 귀신이라 불릴 정도로 무공광인 남궁경조차 익히다 말고 포기했으며, 남궁성이 현재도 절맥을 막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무공이 아니던가.
“하는 수 없었다. 너희들도 진화의 특별한 체질을 알고 있지 않느냐.”
남궁성의 말에 남궁경과 팽연화의 안색이 대번에 굳었다.
혼자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부터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님이라면 아무리 혈맥이 반대로 위치해 있다고 해도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지 않으십니까.”
“후유, 체질만 문제였다면 나도 그리했겠지. 그런데 심법을 익히는 데 필요한 혈맥과 세맥이 없어.”
“네?”
“처음 의선이 보여 주었을 때에 비하면 몸은 완전히 회복한 듯하나, 없어진 혈맥과 세맥이 다시 생기지는 않은 모양이더구나. 하긴, 의선이 신도 아니고 사라진 것을 만들지는 못하겠지.”
남궁강의 말에, 가족들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건강해진 진화를 보며 잠시 묻어 두었던 진화의 과거를 떠올린 것이다.
순식간에 숙연해진 분위기.
하지만 팽연화가 제일 먼저 기운을 차렸다.
“그런데도 건강하게 자랐잖아요. 그거면 되었어요, 저는.”
“마, 맞네! 우리 아들, 심지어 저기서 그 어렵다는 천뢰제왕신공을 혼자서 운기조식하고 있는 거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우리 아들 완전 천재 아닙니까?”
팽연화의 말에 남궁경이 맞장구쳤다.
팽연화의 말에 동조하려고 아무렇게 꺼낸 말이었지만, 그의 말은 의외로 핵심을 찔렀으니.
“그러네. 천뢰제왕신공을 처음부터 혼자서 운기조식 한다니. 어쩌면 누구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그것을 진화가 제대로 익혀 간다면, 그거야말로 세가의 복이 아닙니까.”
“허허허! 그렇지! 전부 나의 현명한 결단 덕이니라. 허허허허! 이제 곧 나올 테니 아침 든든하게 차리도록 하거라!”
“네, 아버님.”
잠시 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진화가 밖으로 나오자, 남궁경과 팽연화가 달려가서 그를 안아 들었다.
‘우리 아들, 대단하다!’, ‘역시 내 아들!’이라며 쏟아지는 칭찬과 입맞춤 세례에 진화의 얼굴이 곧 터져 나갈 듯 붉어졌다.
* * *
남궁세가 전체에 놀라운 소문 하나가 퍼져 나갔다.
출신도 모를 아이가 남궁의 직계가 되었다는 소문이 한바탕 양주를 휩쓴 지 일 년이 지나, 또다시 진화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제왕무적단주가 양자로 받아들인 아이에게 제왕검께서 직접 내공심법을 알려 주셨단 말이야?”
남궁세가 내에서 남궁강의 정식 직책은 태상가주였다.
그러나 남궁강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세가 안에서도 남궁강을 제왕검이라는 별호로 칭했으니.
그것은 비단 그가 무림삼검이어서가 아니라, 남궁에서만큼은 진정한 제왕(帝王)으로 군림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남궁강의 가르침이라니, 굳이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도 특별한 의미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남궁세가 직계들이 그 양자를 아주 어화둥둥 한다더군.”
“제왕검께서도 총애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더라고.”
“허! 제왕검께서 심법을 봐 주신 것은 가주님부터 진혜 아가씨까지 직계들뿐이잖아. 그러니 그 양자도 제대로 직계 대접을 한다는 거겠지.”
소문이 일파만파 말의 꼬리를 물고 번졌다.
“세상에 처음 심법을 배우면서 그 자리에서 운기조식을 했다지?”
“진짜?”
“허어! 사람, 그럼 내가 허언을 하겠는가! 내 친구의 아들이 제왕무적단에 있는데, 그냥 제왕무적단주의 입이 귀에 걸려 있다더군.”
“아, 나도 그 소문 들었네. 아들 자랑이 동네방네 장난이 아니었다지.”
“역시, 아무나 양자로 삼은 것이 아니었군!”
“아무렴, 남궁세가가 어떤 곳인데 아무나 양자로 삼겠는가? 다, 제왕검께서 자질을 보고 데려오신 거겠지!”
“하긴, 그렇겠지.”
제 이야기도 아닌데도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여 한마디씩 거들었다.
잠삼현의 사람들 중에 남궁세가의 녹을 먹지 않은 곳이 없으니, 다들 한 다리만 건너면 세가 내부의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터라 소문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헛소문이 아예 돌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며칠 못 가서 확인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참에 제왕검께서 경고를 하신 건지도 모르지.”
“음? 경고?”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말하던 남자가 일행을 끌어모으며 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왜, 처음에 막내 도련님을 양자로 들일 때 장로들 반대가 심하지 않았나?”
“아아,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네. 천명관에서 또 칼부림을 할 뻔했다 하지?”
“그러니까! 제왕검께서 감히 본인이 데려온 아이를 반대를 했으니까, 이참에 보여 주신 거지. ‘자, 내가 데려온 아이다. 누가 감히 자질을 논하겠는가. 내가 인정하고 총애하는 아이이니, 제대로 직계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경을 칠 것이다!’ 하고 말이야.”
“오오, 거 말이 되는군!”
남자의 말에 일행이 동조하고 나섰다.
본래 비밀이라 말한 것이 알음알음 더 빨리 퍼진다고, 그들의 말은 또 다른 소문이 되어 퍼져 나갔다.
그렇게 소문은 돌고 돌아서, 다시 남궁세가 담벼락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소문을 불편해할 사람들의 귀에까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