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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5)화 (15/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응할 화(和) : 위험 지향형 인간(1)

도전자(挑戰者).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욕망을 가진다.

그래서 세상에는 사람들의 수만큼 많고 다양한 욕망이 존재한다.

그러나 욕망이 그저 다양하기만 하다면 세상엔 다툼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고금을 통틀어 무림은 단 한 번도 싸움을 멈춰 본 일이 없었다.

깨알같이 많은 무림인들이 저마다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검을 든 자들이 원하는 욕망은 더 강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마음의 수행이 깊어지길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육신의 힘이 강해지길 원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의와 협으로 강해지려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군림과 지배로써 강해지려 할 것이다.

부를 쌓고 싶은 자가 있을 것이고, 명성을 얻으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며,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바로 ‘더’라는 말이다.

이전의 자신보다, 대개는 남들보다, 수행의 깊이든 힘이든 뭐든, ‘더’ 가질 수 있어야만 비로소 욕망인 것이다.

결국 ‘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한정된 자원과 환경 속에서 인간은 언제든 다른 사람의 욕망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현재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가진 이들은 언제든 그것을 원하는 사람과 다퉈야만 한다.

도전자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들을 말한다면, 결국 자신의 욕망을 지켜야 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다른 이름은 바로 경쟁자(競爭者)가 아닐까.

무림인(武林人)들은 ‘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싸움에서 기꺼이 검을 들고 피를 흘리는 위험을 택한 족속이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들은 도전자를 짓밟고 경쟁자를 죽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 * *

세가회의에서 낭패를 본 이장로 남궁경옥은 사색이 되어 칭얼거리는 서평원장을 떼어 놓고 어디론가 급히 향했다.

서평원에서도 제법 한적한 장원의 앞에 선 남궁경옥은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장원의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땀을 닦았다.

장원의 주인이 흐트러진 모습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흠, 흠!”

남궁경옥이 급히 찾아왔음에도 정작 문을 여는 데에 망설이는 찰나, 갑자기 안에 문이 활짝 열렸다.

“히익!”

“오셨습니까.”

검은 옷을 입은 장원의 총관이 남궁경옥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장원 총관의 태도는 언제나 정중했으나, 한 번도 남궁경옥의 말에 제대로 답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평소에는 제 주인만큼이나 오만한 태도에 배알이 뒤틀렸지만, 지금은 그런 유세를 부릴 여유가 없었다.

“어르신께서 그냥 돌아가시라 전하셨습니다.”

“아, 아니 되네!”

장원 총관의 말에 남궁경옥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지, 지금 당장 찾아뵈어야 하네! 제발, 내 이렇게 부탁함세. 문을 비켜 주게.”

“……드시지요.”

거의 빌다시피 하는 남궁경옥의 부탁에 장원의 총관은 ‘이번만’을 강조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남궁경옥은 드러난 길로 달려가다시피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에 한적하고 소박한 듯한 장원은, 안에서 자세히 보면 전각 하나하나 고급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고 전각을 채운 물건들 중에도 귀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문 앞에서 남궁경옥이 공손하게 읍했다.

“어르신, 경옥입니다.”

“…….”

“어, 어르신!”

결국 남궁경옥이 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크,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코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서평원장은 입이 가볍긴 하지만 인맥이 넓고 사람을 잘 사귀는 편이라 서평원의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될까 가까이 둔 자입니다! 그치가 이렇게까지 경솔할 줄은……. 모두 제 불찰입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남궁경옥은 목이 터져라 변명을 하면서 속으로는 서평원장 남궁필을 향해 이를 갈았다.

‘망할 새끼, 제 주제보다 귀하게 써 줬더니 이런 사달을 만들어? 이 일만 해결하고 나면 그놈과 그 망할 애새끼부터 가만두지 않겠다!’

쿵.

“어르신,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남궁경옥이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바닥에 머리까지 찧으며 문 안쪽에 있을 장원의 주인에게 빌고 빌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가, 감사합니다!”

쉬이 들릴 것 같지 않았던 허락이 들리자, 남궁경옥이 화색이 되어 허리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 안쪽에 장원의 주인 이외에 어떤 이들의 그림자를 보고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젠장!’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은근히 공조하면서도 경쟁하는 관계였다.

이들이 안쪽에서 자신의 비굴한 변명을 모조리 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에 당장 다시 뛰쳐나가고 싶었다.

‘안 돼, 지금은……!’

남궁경옥은 입 안쪽의 살을 꾹 깨물고 그들을 모른 척하였다.

귀한 유색 보석으로 된 발 안쪽에 있는 장원의 주인이 먼저였다.

“어르신.”

“후우…….”

“송구하옵니다!”

다시 머리를 박을 듯 허리를 숙이는 남궁경옥에, 한숨을 짓던 장원의 주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번 일로 자네가 형제의 주목을 끌어 버렸네. 계획이 틀어져 버렸어.”

“송구하옵니다. 겨, 결코 제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애새끼 하나가 입을 잘못 놀릴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결코 제 탓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을 꾹 누르며 바짝 엎드렸다.

“자네의 본의가 중요하지 않아. 이전까지 형제에게 자네는 그저 욕심 많은 장사치에 불과했지. 그러나 오늘 이후로 형제는 자네가 언감생심 주제넘은 욕심을 부렸다고 생각할 걸세.”

“…….”

장원 주인의 말에 남궁경옥이 그저 고개를 숙였다.

말이 없었던 것은 그를 비하하는 장원 주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빌어먹을 늙은이! 내가 없으면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면서……!’

속으로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남궁경옥은 결코 반발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장원 주인의 힘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이 장원의 주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그런 거대한 꿈을 꾸었겠는가.

마찬가지로 이 장원의 주인 또한 자신을 버릴 수 없었다, 아니, 버려서는 안 되었다.

고개를 숙인 남궁경옥의 눈이 한층 독해진 열망으로 이글거렸다.

“어쩌면…… 일을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네. 또 어쩌면 일이 더 수월하게 풀릴지도 모르겠군.”

장원 주인의 말에 남궁경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결국 장원 주인은 그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자신에게 다른 할 일이 있다는 말이었다.

“하, 하명만 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무림에서도 이름난 무가로 내부에서조차 강한 자를 훨씬 더 대우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남궁경옥은 오로지 상재 하나로 남궁 전체의 해상 거래 상단을 관리하는 장로의 자리에 올랐다.

방계들이 운영권을 나눠 가진 작은 상단을 운영하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는 위로 올라서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그리고 그에겐 무슨 짓이든 해낼 능력이 있었다.

남의 속내를 읽는 눈치와 그걸 흔들 수 있는 영리함, 돈 냄새를 맡는 후각, 이문을 위해선 거리낌 없이 상대를 속이고 짓밟는 비열함까지.

그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애매한 말과 상황 속에서도 상대의 속내를 읽어 내는 능력이었다.

‘그럼 그렇지!’

남궁경옥은 장원의 주인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제 자네에겐 가주의 눈이 따라다닐 걸세.”

“해, 행동 조심하고 당분간 출입을 자제하겠습니다!”

장원 주인의 말에 남궁경옥이 지레 겁을 먹고 대답했다.

하지만 장원 주인은 발 안쪽에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허허허, 자네가 그런다고 해서 모를 위인들이 아니야. 아마 벌써 자네의 뒤를 따라붙었을 걸세.”

“네? 하, 하면……!”

남궁경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세가회의에서 저를 찌를 듯이 내려 보던 남궁가주의 차디찬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오히려 그 일을 조금 앞당겨도 좋을 듯하네.”

“일을 앞당긴다는 것은……?”

“처음 실패했던 것을 다시 시도해도 좋을 듯하다는 거지.”

“아!”

장원 주인의 말에 남궁경옥이 감탄을 터뜨렸다.

처음 실패했던 일이란, 모든 사람들이 일장로의 조카를 경계하는 사이 누구의 경계도 받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남궁경의 양자로 밀어 넣었던 것을 말했다.

“그 자리에서 자네 아들의 이름이 나온 이상, 앞으로 자네 아들은 남궁경의 양자와 함께 계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겠지. 사사건건 비교가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되겠지.”

“아아!”

장원 주인의 말에 남궁경옥이 다시 크게 감탄했다.

동일 선상에 놓인다는 것……!

남궁경의 양자와 같이 이름이 오르내리고 비교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을 맞수, 적수(敵手)로 여기게 된다는 뜻으로, 그건 곧 직계는 아니나 그와 동등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남궁경옥의 가슴이 다시 기대감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자네의 아들은 여전히 쓸 만하겠지?”

“무, 물론입니다! 그 아이는 저를 닮지 않아, 아이를 지켜본 모든 무사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근골부터 무재까지 타고났다고 장담했던 아이입니다. 게다가 머리도 영리하고 근성도 있어서…….”

“허허허허허! 그만하면 되었네. 그 아이의 재능이야 여기 사람들도 인정을 했었으니…….”

남궁경옥이 무슨 상품을 팔듯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보며, 장원의 주인이 유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잘 가르쳐 두게.”

“네?”

“발을 묶고 있던 적수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날개를 달고 날아가지 않겠나.”

“아, 예!”

은근히 암시를 주는 장원 주인의 말에 남궁경옥이 화색이 되어 답했다.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필이 녀석이 사고를 친 게 잘된 일이지 않나! 남궁진휘를 노릴 바에야 그 양자 놈이라면 훨씬 쉽지! 암!’

“언제, 아이를 한번 보러 가지.”

“지, 직접 말씀입니까?”

“허허허, 왜, 싫은가?”

“그, 그럴 리가요! 가문의 영광일 것입니다!”

심지어 장원의 주인이 아들을 보러 온다는 말에 남궁경옥의 머릿속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남궁경옥이 나간 후, 자애롭게 웃고 있던 장원 주인의 얼굴이 얼음장같이 굳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그림자를 향해 물었다.

“아이는?”

“이장로의 말처럼 영리하고 근성이 있습니다. 남궁진휘나 진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재능은 있는 편입니다. 혹여 다른 아이를 알아볼까요?”

“아니야, 딱 그 정도가 좋아. 말귀를 알아먹고, 주인을 물지 않을 정도면 족하지. 이장로, 저자도 아직은 쓸 만하고.”

“그럼,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남궁경옥이 나간 자리로 장원 주인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는 아직 아무거나 집어삼킬 정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 * *

집으로 돌아온 남궁경옥은 곧장 차남 남궁교명을 불러들였다.

남궁진휘같이 남자다운 외모는 아니나 하얗고 매끈한 피부가 눈에 띄는 소년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

수련 교습이 남아 있던 터라, 불퉁 튀어나온 입술에는 갑자기 저를 부른 아버지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소 건방진 아들의 모습도 유쾌하게 넘어가 줄 수 있었다.

“허허, 서평원장의 아들 녀석이 입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네가 가주에게 찍히게 생겼구나.”

“서평원장 당숙의 아들이라면, 자소 말입니까?”

“그래! 그놈이 함부로 입을 나불거리는 바람에 제왕무적단 멧돼지 놈이 잔뜩 열이 받았어. 가주가 친히 서평원장을 파직시켰다.”

“대체 뭐라 했기에 당숙이 파직까지 당한 거죠? 아니, 그것보다, 제가 왜 가주님께 찍혀요?”

남궁경옥은 남궁교명에게 세가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남궁교명은 평소 왕래가 잦고 친분이 돈독하던 남궁필의 파직 소식에 놀라워하면서도, 남궁자소가 괜히 제 이름을 꺼내서 불똥이 튀었다며 짜증과 걱정을 분출했다.

다만 이상한 것은, 당숙이 그렇게 되었음에도 아버지의 기분이 전혀 나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괜찮은 거예요? 제가 가주님께 찍혔다면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허허허허!”

남궁경옥은 금세 상황을 파악한 남궁교명의 영특함을 보며 그저 웃음을 터뜨렸다.

“교명아.”

“네, 아버지.”

본래도 남궁경의 자식으로 보내려던 차남이었다.

아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가장 똑똑해서 어린 나이에도 아비의 뜻을 잘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가주의 경계를 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로들과 가신들부터 세가 안팎의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주목을 받게 생겼구나.”

“그러니까요!”

남궁경옥의 말에 남궁교명이 큰일이라는 듯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남궁교명은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불만이라는 기색을 팍팍 풍겼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 역시 내 자식이다!’

방계 쪽으로 저를 대신해서 영향력을 키우던 서평원장의 파직은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일이 훨씬 잘 풀렸다.

어쩌면 하늘이 자신과 제 아들을 돕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남궁경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앞으로 사사건건 남궁경의 양자 놈과 비교될 것이다. 네가 잘해서 놈을 이기면, 여론은 역시 방계 혈족 중에서 뛰어난 이를 양자로 삼았어야 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 제일 첫 번째에 네 이름이 오르겠지. 사람들의 입에, 남궁진휘 다음으로 네 이름이 나오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남궁경옥의 말에 남궁교명이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제가 천한 출신의 양자 따위에게 절대 질 리 없습니다! 반드시 놈을 이겨 보이겠어요!”

“허허!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남궁교명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남궁경옥이 근심을 잊은 듯 크게 웃어 보였다.

“조만간 좋은 스승이 구해질 것이다. 잘 배워서 세가의 모든 사람들에게 누가 더 자격이 있는지 보여 주거라!”

남궁경옥의 욕망이 꺼지지 않고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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