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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6)화 (16/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응할 화(和) : 위험 지향형 인간(2)

첫 인간의 싸움은 아마도 먹고 살기 위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냥을 하고, 누군가는 그걸 빼앗으면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테니까.

인간이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을 때에도, 자신과 공동체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는 자들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들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산을 시작하고 사냥 걱정이 없어졌을 때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행위는 점점 죽이고, 약탈하고, 군림하는 것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경제는 거래와 약탈이고 정치와 사회는 군림의 다른 형태라면, 무공이란 결국 죽이기 위한 특별한 기술이라.

무림(武林)은 바로 그 특별한 살생 기술을 가진 인간들의 사회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위 명문(名門)이라 불리는 문파와 세가 들은 철과 피로 이뤄진 무림을 오랫동안 군림해 온 자들이었다.

그 오랜 시간의 군림은 그들이 적(敵)을 죽여 온 역사이며, 그들의 특별한 살생기술에 대한 증명의 역사이기도 했다.

* * *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늦은 밤 술잔을 나누었다.

“남궁경옥이 곧바로 그자에게 갔다고?”

“호정단의 은밀(隱密)단원이 전해 준 소식이다. 예상은 했지만 참 공교롭기도 하지.”

천리호정단은 남궁세가 오 대 무단 중에서 비밀에 싸여 있는 두 무단 중 하나였다.

그들의 정확한 정체나 위치, 임무는 오직 가주만이 알고 있었다.

“공교롭긴 개뿔. 그래 봐야 여우 같은 영감탱이, 꼬리 한 자락도 안 내주었을 것을!”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이 냉소적으로 툭 내뱉고는 답답한지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남궁가주 또한 남궁경의 대답에 쓰게 웃으며 술잔을 넘겼다.

실제로 천리호정단 은밀단원이 전해 준 소식은 남궁경옥에 대한 것이었지, 그자에 관한 것은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궁가주와 남궁경 모두, 남궁경옥이 찾아간 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이제까지 그리 옭아매는데도 빌미 하나 주지 않는 영감이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포기한 듯 말하는 남궁경에게 남궁가주가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남궁경은 ‘그자’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감을 보이는 남궁가주의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뭔가 잡은 겁니까?”

이제까지 무슨 짓을 해도 증거 한 자락 남기지 않던 철두철미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형 또한 확실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 사람이기에, 남궁경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남궁진화.”

“엥? 진화? 우리 진화요?”

“그 철두철미한 인간의 행보에 유일한 예외가 끼어들었다. 그 인간의 계산을 벗어난 유일한 존재이자 그 인간은 결코 알지 못하는 존재! 이번 일도 남궁경옥 쪽에서 그리 꼬투리를 잡힐 줄은 그자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 진화가 사람들 앞에 나설 줄은 더욱 몰랐을 것이고. 뒤에서 하인의 증언을 조종할 수는 있지만 진화의 입은 막을 수 없었지. 유일하게 그자가 해결하지 못한 일이었고, 우리가 결정적으로 서평원장을 날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이 크게 감탄했다.

그 자리에서 진화가 앞으로 나선 것은 남궁경조차 놀랐던 일이었다.

그 자리가 어땠던가.

세가의 어른들이 모여서 서로 기세를 뿌려 가며 다투고 있던, 어린아이의 입장에선 무서웠을 분위기였다.

단단히 교육받아 들어왔을 하인조차 벌벌 떠는데, 진화처럼 눈치 빠르고 영특한 아이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차분하게 들었던 것을 전한 것이다.

“우리 진화가 어리고 어여쁘니, 꽤 먹음직스럽게 보이지 않느냐.”

“허! 우리 진화가 미끼가 될 것이란 말이오?”

“화내지 말거라. 저들의 입장에선 만만해 보이는 천출에다, 제왕검이 관심을 보였지 않느냐. 아버지의 모든 것을 탐내는 자다. 아버지께서 관심을 보였다면, 양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꺾어 놓으려 할 것이다. 그자에겐 진화가 미끼가 아니라 제왕검의 보물로 보이겠지.”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저 꽃같이 귀하게 키울 것이라 결심한 제 아들이 세가의 불민한 세력에게 노려지는 것에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제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형의 말처럼 그들은 제 아들을 노릴 것이다.

“아버질 이겨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 저쪽도 급을 맞춰서 나올 것이다. 이쪽이 급을 키우면 저쪽도 급을 키워야 될 것이고, 결국 만만하게 보고 집어삼키려고 했다가 대가리까지 드러내게 되겠지. 어쩌면 이번 일처럼 ‘우연히’ 실수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 저들은 여전히 우리 진화를 모르니까.”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의 생각이 깊어졌다.

어차피 노려지는 것이라면 진화에게 탈이 없도록 지켜야 할 것이고, 이왕이면 대가리까지 잡아내면 금상첨화였다.

“급이라…… 남궁교명이라고?”

남궁경의 눈빛을 번뜩였다.

남궁가주 또한 술잔을 보던 시선에 냉기가 서늘했다.

“남궁경옥이 주제에 당치도 않은 꿈을 꾸고 있었군. 듣고도 어이가 없을 정도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하하하!”

자신의 양자 자리에 남궁경옥의 아들까지 들이밀어서 무엇을 꿈꾸었겠는가.

아들을 직계로 만들 욕심을 품은 동시에 장로회와 서평원에서 여론을 조성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던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남궁경은 자식이 없던 자신의 설움이 놈들에겐 기회로 보였을 거란 생각에 이가 갈렸다.

“감히 날 이용해서 진휘의 경쟁자가 되려는 꿈을 꿔? 어디서 감히 시건방진 짓거리를! 으득!”

권력이나 이문을 조정하는 건 욕심 많은 가신들을 다룰 때나 쓰는 것이다.

주인을 물 야욕을 품은 신하에게 돌려줄 것은 단 하나였다.

응징(膺懲).

남궁경의 눈에서 갈무리하지 못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남궁경의 분노를 보며 남궁가주가 차분하게 경고했다.

“이제 진휘가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남궁교명과 진화를 비교하려 들 것이고, 놈들은 그걸 이용하려 할 것이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놈들이 여론을 조성하면, 최대한 막기는 하겠지만 진화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네가 더욱 잘 살펴야 할 거야.”

하지만 평소라면 남궁가주보다 더 진화를 걱정하며 날뛰었을 남궁경이 어쩐 일로 조용했다.

오히려 남궁경의 입가에는 싸늘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형님, 그 병신들은 아버지가 인정한 무재가 어떤 뜻인지 아마 짐작도 못 할 것이오. 지금쯤 남궁경옥은 제 잘난 아들이 우리 진화를 이겨 주길 바랄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남궁가주는 그제야 남궁경이 그들을 비웃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형제의 아버지 남궁강은 스스로 천하제일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였다.

제왕검에게 무재란,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무인에게만 주어진 재능이었다.

그런 제왕검이 흥분하며 감탄한 사람은 이제까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그중에서 그가 무재라며 대소를 터뜨린 사람은 진화가 유일했다.

무림에서 손꼽히는 무재라 불리는 남궁진휘, 진혜 남매에게도 보이지 않던 반응이었다.

진화의 재능이 어디까지 갈지는 형제조차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또래보다 조금 우수한 정도로는 진화의 발끝조자 닿지 못할 것이오.”

무공에 한해서만큼은 아버지만큼이나 냉철한 동생 남궁경의 판단이었다.

남궁가주 또한 남궁경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나 꿈을 품은 것마저도 죄가 될 때가 있지. 단초가 된 자식부터 무너뜨리면 그 아비가 놀라서 뛰쳐나올 것이다. 그러면 그자부터다.”

“흥! 새끼나 아비나, 뼈까지 자근자근 씹어 드리지.”

남궁가주가 빈 술병을 가차 없이 넘어뜨리고, 남궁경의 살기가 술병을 부수었다.

* * *

그날 밤, 창서각의 불도 꺼지지 않고 있었다.

사실 창서각은 내내 불이 꺼지는 일이 없었다.

깜깜한 밤중에도 귀한 야명주들이 빛을 내며 창서각을 가득 채운 서책들을 비추고 있었으니.

서책 하나하나를 보자면 남궁세가의 족보나 역사, 인물에 대한 전기부터 귀하디귀한 남궁세가 독문 무공의 비급서까지 한데 모여 있었다.

사실 무림에선 사람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비급서인데, 그런 것들이 모두 섞여 있는 광경은 세인들이 보았다면 간이 철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누구도 함부로 이 책들을 가져갈 수 없다는 남궁세가의 자존심이자 자신감이라.

이 밤중에도 혼자 남궁세가의 역사를 지키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창서각주 남궁희였다.

양서군자라는 실로 창서각주다운 별호를 가진 남궁희는 겉으로 보기에도 무인이라기보다는 청아한 중년의 문사라, 단정한 외형만큼이나 온화하고 청렴한 성격으로 세가 두루두루 인망이 높았다.

오늘도 세가회의로 늦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아버지.”

“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느냐?”

아들 남궁구의 등장에 창서각주 남궁희가 한쪽에 두었던 모래시계를 보았다.

아들에게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술시(戌時)가 지나면 찾으러 오라고 미리 일러두었었다.

“오늘은 웬일로 퇴청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거예요?”

올해로 아홉 살이 된 남궁구는 남궁희와 꼭 닮은 외모에, 두 눈과 만면의 미소에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이었다.

남궁희가 호기심을 가득 담은 남궁구의 눈을 마주하며 싱긋 웃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퇴청하는 길에 같이 가자고 불렀단다.”

남궁희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담아 남궁구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뭘 물으시게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아들의 능청이 그저 귀엽기만 했다.

“세가회의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것이다.”

“아…….”

오늘 의도치 않게 시끄러운 일에 휘말렸던 남궁구였다.

하지만 남궁희는 세가회의에서의 일에 남궁구가 엮여서 불쾌하다기보다, 오히려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남궁구를 보고 있었다.

“오늘 네 증언 말이다. 내가 시종에게 들었던 것과는 단어의 선택이 아주 다르더구나?”

창서각주 남궁희의 두 눈에 장난기가 배어들고, 그의 말투 역시 능청스럽게 변했다.

남궁구의 능청스러움이 어디서 왔는지, 이제는 부자의 분위기마저 닮았다.

“시종이 말하기를, 작은 아이가 매섭게 노려보며 멱살을 쥐고 있었다던데 말이다? 심지어 말투는 위로나 걱정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는 걸.”

“시종이 그걸 들었다고요?”

“뭐, 일단은 시종이지.”

남궁구가 의심스럽다는 듯 되묻자, 창서각주 남궁희는 오히려 뻔뻔하게 우겼다.

사실 그 뻔뻔함이 반쯤 시종의 정체를 알려 준 터라, 남궁구도 더는 따지고 들 수 없었다.

대신 그의 아버지처럼 남궁구 또한 뻔뻔하게 나갔다.

“에이, 그거야말로 시종의 주관적인 느낌이죠! 증언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적시가 아니겠습니까? 제 위치에서 멱살은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고, 단어의 선택이야말로 발언자의 재량이지요.”

“허!”

별것 아니라는 듯 태연한 말투에 도리어 기가 찬 것은 남궁희였다.

결국 천하의 창서각주 남궁희가 먼저 항복하고 말았다.

궁금한 것이 아들의 속내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 교활한 소악마. 대체 무슨 꿍꿍이냐?”

“흐흐흐.”

아버지의 항복 선언에 남궁구가 더욱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아홉 살짜리 꼬마가 짓기에는 사뭇 의뭉스러워 보이는 웃음이었다.

“남궁진휘도 아니고, 네가 처음 본 아이의 편을 들어 주다니! 이 아비가 하마터면 내 아들인지 의심할 뻔하지 않았느냐.”

“아무리 그래도 안 알려 드릴 거예요, 아버지. 맛있는 건 혼자 먹으라고 알려 주신 건 아버지잖아요?”

아무래도 아들은 끝까지 속내를 알려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만 그 와중에도 아들의 답에서 알아낸 것이 있었으니.

“허허, 그 아이가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더냐?”

창서각주 남궁희의 물음에 남궁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진휘 형님과 마녀가 꽃같이 예쁜 동생을 보여 준다기에 나갔는데, 세상에! 그렇게 사나운 꽃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흐흐흐, 보배 꽃이라더니 완전히 벌레 때려잡는 식충식물이었어요!”

남궁구가 흥분을 참지 못하며 잔뜩 들뜬 채 말을 이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처럼 말을 잇는 아들을 보며, 창서각주 남궁희의 눈에도 짙은 흥미가 떠올랐다.

“우리 ‘시종’이 말하기를, 그 아이가 번개를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서평원장의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사실 진짜였다.

겨우 천뢰제왕신공을 배운 지 일주일이나 되었을까 한 아이의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보였다니!

처음 들었을 때에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말을 전하는 시종의 주둥이를 쥐어박았을 정도였다.

사실 지금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의 정황과 증언을 모아 보면, 과장이나 의심스러운 것은 제외하더라도 남궁경이 들인 양자가 저보다 훨씬 큰 남궁자소를 바지에 소변을 지릴 때까지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아비가 보아도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아이 같더구나. 네가 한번 확인해 보겠니?”

창서각주 남궁희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헤헤, 아버지, 저 식충식물 완전 좋아해요!”

아들 남궁구의 눈빛도 아버지 남궁희를 꼭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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