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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8)화 (18/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응할 화(和) : 위험 지향형 인간(4)

하늘과 땅, 어디에도 음(陰)과 양(陽)이 있어, 천뢰제왕신공의 본질은 바로 음양(陰陽)의 묘리를 극한으로 다루는 데에 있다.

뇌우(雷雨)는 적을 빠짐없이 두렵게 하며, 뇌전(雷電)은 시간과 공간을 찢으며 거대한 울음을 만들어 낸다.

울음은 사납게 적을 불태우는 폭뢰(爆雷)의 전조이며, 천뢰(天雷)는 파괴를 위한 하늘의 결과물이라.

천뢰제왕신공은 음과 양의 조화를 깨며 하늘의 파괴(破壞)를 만들어 내는 힘이다.

천뢰제왕신공의 첫 구결을 보는 순간에, 진화는 자신이 왜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천뢰제왕신공의 독학이 가능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결국 내 혼돈지체가 만들어 낸 뇌전을 천뢰제왕검법의 형태를 빌어 내보낸 거야. 그러니까 내공은 단지 보조에 지나지 않은 거지. 그게 바로 내가 불완전한 천뢰제왕신공을 가지고 경지를 넘을 수 있었던 이유고.’

천뢰제왕신공이 익히기 힘든 데에는 근본이 되는 내공심법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도 어렵고 몸으로 펼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내공이 쌓이는 것도 느리다.

하지만 진화의 몸은 달랐다.

‘내 혼돈지체와 천뢰제왕신공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순리(順理)를 파괴한 것. 음양의 조화는 하늘의 순리이자 만물의 순리이다. 하지만 천뢰제왕심법은 음양의 조화를 깨뜨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혼돈지체는 몸 안에서 스스로 음양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고. 그러니 내겐 천뢰제왕심법만큼 자연스러운 것도 없었던 거다!’

보통의 몸에서 천뢰제왕심법은 충돌이다. 그래서 충돌로 만들어 내는 힘을 얻는 동시에 그걸 견디는 힘을 소비해야 했다.

하지만 진화는 충돌이 만들어 내는 힘을 견딜 필요가 없었다.

진화의 몸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진화는 내공이 늘수록 천뢰기도 강해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까지 내가 펼친 천뢰제왕신공은 그저 반쪽짜리, 내 속에서 만들어 낸 뇌전을 천뢰제왕검법의 형식을 빌어서 발출했던 것에 불과했어. 그럼 진짜 천뢰제왕신공이 만들어 내는 뇌전의 힘은 뭘까? 만약 내가, 천뢰제왕신공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극한으로 나뉜 음과 양의 힘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상을 파괴할 힘이 될지도 몰랐다.

비급서에서 말한 진정한 천뢰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쪼갠다!’

천뢰제왕심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뇌와 심장, 폐를 통하는 세 개를 통로를 통해 기운을 나누고 온몸으로 분배한다.

천뢰제왕심법의 단전은 기운이 조화를 이루고 안정되어 있는 유일한 곳이라.

하지만 그조차도 진화에겐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것뿐이었다.

진화가 기운의 성질을 쪼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양의 기운이 뇌와 심장, 폐에 쏠리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손끝으로 음의 기운이 저절로 모여들었다.

파바-팟!

진화조차 긴가민가할 정도로 순식간에 움직인 음의 기운은 손과 탁자 사이에 불꽃을 틔우고 탁자 위에 작은 구멍을 남겼다.

“…….”

검은 구멍에서 나는 하얀 연기만이 그것이 불에 타올랐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조화를 깨뜨리는 것.”

진화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손끝과 탁자를 번갈아 보았다.

잠깐의 의지와 기운의 운용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며, 진화의 눈에도 불꽃이 틔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 * *

그러나 진화가 하루하루 천뢰제왕신공을 새롭게 깨우쳐 가는 것과 달리,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여전히 진화의 스승을 찾지 못해 안달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없습니까?”

“하아…… 천우뇌검 남궁소명 백부는 천주산에 은거하신 뒤로 생사를 알 수 없고, 낙추외검 남궁현은 임무 때문에 나가 있는 중이다. 뇌선검 남궁조는 정의맹 본부에 근무하고 있고…….”

“그 세 분뿐이에요?”

“그 셋뿐이다.”

“…….”

남궁가주의 단호한 말에 남궁경이 입을 꾹 다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남궁진휘와 진혜가 한껏 경악하며 진화를 보았고, 진화 또한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세가 내에서 천뢰제왕신공과 검법의 절맥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심각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 그럼 심법은 됐고, 검술이라도…….”

“아직 창서각에서 연구 중이다. 창서각주가 검형과 이론을 안다지만, 연구 목적이라서 네가 알고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과 남궁진휘, 진혜 남매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숙부님, 천뢰제왕검법은 완전 똥망이잖아요!”

남궁진혜의 적나라한 말에도 불구하고 반박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남궁경은 탁월한 무재를 내세워 남궁의 모든 무공을 익히겠다며 호기롭게 나선 적이 있었다.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 말하고 제왕검이 객기(客氣)라고 단정한 그것은, 천뢰제왕검법을 만나면서 좌절되었다.

겨우 검형만 익히고 도저히 내공을 운용하며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제왕검은 남궁경이 펼치는 천뢰제왕검법을 향해 ‘번개 맞고 뒈지고 싶은 어느 미친놈의 춤’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남겼었다.

그때 충격을 받은 남궁경은 다시는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럼 우리 진화는 어떡합니까?”

“후우, 일단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방안은 다음 근무 순환기에 맞춰서 정의맹에 있는 남궁조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게 언제인데요?”

“십 년 뒤.”

“아……!”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과 남궁진휘, 진혜 남매가 한껏 슬픈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젠장, 난 진짜 괜찮단 말이야!’

그들의 동정 어린 눈길을 계속 받자니, 진화 또한 억울함에 덩달아 슬퍼지는 듯했다.

* * *

하지만 진화의 스승 찾기는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을 찾게 되었으니.

“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죠.”

“음?”

진화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비급서를 전해 준 날 이후 남궁구는 진화의 처소에 매일 찾아왔고 천화정 식솔들은 벌써 그를 익숙하게 반겼다.

가끔 알 수 없는 시선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인지 빤히 보였지만, 진화는 애써 무시했다.

특히 오늘은 남궁진휘, 진혜 남매까지 합세해서, 마치 본래 그러했던 듯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무슨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진화의 스승 찾기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남궁구가 꺼낸 말에 남궁진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궁진휘와 진화도 내심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남궁구를 보았다.

“잘하면 정의맹 근무 순환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죠.”

“어떻게?”

“공식적으로는 천뢰제왕신공을 제대로 연성한 남궁세가의 무인은 단 셋뿐이지만, 정확하게는 셋이 아니라 넷이죠. 천우뇌검 남궁소명 종조부님께는 거의 아들뻘 동생이 있죠.”

“아! 하지만 그분은…….”

남궁구가 누구를 말함인지 남궁진휘는 알아차린 듯했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왜? 오빠도 알아?”

“너도 아는 분이셔.”

“누구?”

남궁진휘의 말에 남궁진혜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진화는 눈빛으로 남궁구를 재촉했다.

‘천뢰제왕신공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처음 만나는 거다. 어쩌면 검의 묘리를 나누는 것만도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안 그런 척 진화의 눈이 반짝이며 저를 재촉하자, 남궁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천우뇌검 남궁소명 종조부님의 동생이자 제자로서, 천뢰제왕신공을 익힌 사람! 제왕밀검(帝王密劍) 남궁호명 종조부님!”

“아!”

남궁구의 말에 남궁진혜가 크게 감탄한 것도 잠시, 그녀의 얼굴이 한껏 사나워졌다.

“이 씨! 아무 소용도 없잖아! 그분은 제자를 안 받는다고!”

남궁진혜가 완전히 김이 샜다는 듯 버럭 했다.

하지만 남궁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십 년 동안 남궁조 당숙을 기다리느니, 십 년 동안 설득이라도 해 볼 수 있잖아요. 도전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거죠! 그리고 혹시 알아요?”

천연덕스러운 남궁구의 말에 진화가 슬쩍 한숨을 뱉었다.

‘역시…… 위험을 사서 즐기는 유형이군.’

세가회의에서 거짓말까지 해 가며 저를 도운 것이나 비급서 하나에 아버지의 직위를 위태롭게 하는 것까지, 어쩐지 과거 그의 사인을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게 말이 되냐?”

“십 년이 넘도록 설득이 안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십 년 동안 아버님은 물론 할아버지까지 나서서 제자를 받으라고 부탁했는데, 끝끝내 거부하신 분이니까.”

남궁구의 말에 남궁진혜는 물론 남궁진휘까지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남궁세가에서 제왕검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치를 생각한다면, 그의 부탁까지 거부했다는 건 보통 완강한 의지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에이, 말이 부탁이지 사실 아버지가 협박하고 할아버진 검까지 들고 찾아 나섰는데, 천주산으로 숨어 버리셨잖아. 나중에 숙부님이랑은 진짜로 칼부림도 하셨고. 그때 숙부님이 자기는 만만해서 도망도 안 갔다고 얼마나 분해하셨는데!”

“…….”

아무리 남궁구라도 몰랐던 이면의 사건까지 듣고 나자 더는 우기지 못했다.

본가 직계들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게 농담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분은 아예, 천뢰제왕신공은 물론이고 본인 무공에 대한 전수 의지가 전혀 없으시다고! 그게 아니면 왜 십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는데도 소용이 없었겠어?”

남궁진혜의 말에 진화는 번쩍 귀가 트이는 느낌이었다.

‘무공 전수를 안 한다고?’

진화의 입장에선 전혀 나쁘지 않았다.

“사실 그분은 무공 전수 의지가 없다기보다는, 그냥 제자를 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지.”

“그게 그거 아니야?”

“달라.”

남궁진휘의 말에 남궁진혜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뭐가 다른데!”

“그분은 제자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을 싫어하셔.”

남궁진휘의 단호한 말에 남궁진혜조차 반박하지 못했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제왕검이나 남궁가주가 왔을 때는 아예 자리를 피해 버렸고,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천금을 가져오든, 무릎을 꿇고 울고불고 하든, 모조리 내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와…… 멋지시네요!”

남궁구가 ‘완벽한 독거노검(獨居老劍)’이라며 감탄까지 하자, 남궁진휘와 진혜의 시선이 진화를 향했다.

‘왜 하필 이런 녀석을 첫 친구로…….’

‘저런 녀석으로 괜찮겠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훤히 보이는 슬픈 눈빛에, 진화조차 하마터면 화를 낼 뻔했다.

‘친구 아니라고! 애초에 형님과 누님이 데려왔잖아!’

요즘 들어서 몹시 억울한 일이 느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완벽했다.

‘무공 전수의 의지가 없고, 사람을 싫어한다고? 완벽한 독거노검! 찾아오는 사람들마저 없다니, 더할 나위가 없군!’

혼자서,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천뢰제왕신공을 익혀 나가고 싶은 진화에겐 딱 알맞은 스승감이었다.

“그분, 어디 계십니까? 혼자 계십니까?”

진화가 두 눈을 반짝이며 남궁진휘와 진혜에게 매달리자, 남매가 놀라 진화를 보았다.

“왜, 왜?”

“헉! 진화, 너, 그분 찾아가게? 안 돼! 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너같이 약한 아이는 눈도 깜짝 안 하고 날려 버리실 거라고!”

“그래, 진화야. 이번만은 진혜 말 들어라. 내가 몹시 순화해서 말했지만, 사실 찾아온 사람들에게 검을 휘두르거나, 말도 안 되는 시험을 내려서 괴롭히시는 괴짜시다.”

남매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각오를 보겠다며 한겨울에 곰을 사냥해 오라고 하거나, 끈기를 보겠다며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게 하신다고! 완전 심술딱지 영감이야!”

‘완벽해! 그런 걸 시켜 놓고 감시도 안 하겠다는 거잖아?’

“그, 그래, 진화야. 의천검주(義天劍主)임에도 불구하고 십 년 동안 제자가 한 명도 없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세상에 의천검주씩이나!’

남궁진혜와 남궁진휘가 필사적으로 설득하면 할수록 진화의 눈은 기쁨으로 반짝거렸고, 남궁구는 그런 진화를 보며 웃고 있었다.

‘역시, 재미있을 줄 알았어!’

남궁경과 팽연화가 기겁하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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