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9)화 (19/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합칠 화(和) : 사제지간(1)

남궁세가는 귀천성이 무서운 기세로 무림을 정복해 나갈 때,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세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귀천성과의 전쟁에서 그들의 희생이 적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귀천성과의 전쟁에서 남궁세가는 누구보다 많은 전투를 치렀고, 어떤 곳보다 많은 성과를 가져왔다.

그런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향해 전 무림이 경의를 표하길.

창궁무애단이 남궁세가의 미래라면, 의천검대는 오늘날의 희생이라.

제왕검이 사 대 무단 중에서 정예를 선발하여 결사대를 꾸렸을 때, 다들 ‘보여 주기’라며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제왕무적단 단주였던 제왕밀검 남궁호명을 필두로 정말 세가의 최정예만으로 구성된 결사대는 죽기로 각오한 듯 위험한 곳마다 뛰어들어 성과를 가져왔다.

나중에는 정파는 물론 사파의 무인들까지 그들에게 존경을 담아 ‘의천검대(義天劍隊)’라 불렀는데, 그건 그들의 대주인 제왕밀검의 검명을 딴 것이었다.

제왕밀검의 의천검(義天劍) 아래에 남궁세가 최정예 무사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싸웠고, 무림의 모든 검수들이 의천검에 경배를 보냈다.

나중에는 모든 무림 검수들이 의천검의 명 아래 함께 싸우기도 했다.

사실 무림삼검이 아니라 무림사검이 될 뻔도 했지만, 남궁호명이 가주와 한 배열에 설 수 없다며 거부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바람에 검수들의 존경은 더욱 커져 갔고, 지금은 의천검의 아래라면 남궁세가의 정예들만이 아니라 정파와 사파의 검수들이 모두 모일 것이라는 말이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 * *

바로 그 전설적인 의천검주가, 창천원에서도 가장 깊은 곳, 남궁세가와 천주산을 잇는 인공 숲 청림(淸林)에서 가문의 은거기인이 되어 살고 있었다.

“분명 이곳 안에 있다고 했는데…….”

진화는 지금 그 남궁호명을 찾기 위해 청림을 헤매고 있었다.

진화가 제왕밀검 남궁호명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남궁진휘, 진혜 남매가 펄쩍 뛴 것만큼 집안 어른들도 깜짝 놀랐다.

남궁경과의 일을 아는 팽연화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고, 가주 남궁성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구도 그의 행방을 알려 주지 않고 포기하라고만 했고, 결국 진화는 의천검주의 행방을 남궁구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음, 왜 길이 자꾸 똑같은 것 같지?”

혼자 의천검주를 찾아 나선 진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벌써 한 시진째 같은 곳을 돌고 있다는 건 진화도 인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될 것을 혼잣말을 하며 헤매는 척을 하는 건, 다분히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진화는 청림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곳에 진법이 설치된 것을 알아차렸다.

‘풀숲에는 습기가 많다. 수기(水氣)는 음기(陰氣)가 잘 통하지.’

진화의 손끝이 닿은 풀잎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풀잎과 맞닿은 다른 잎이 떨리고 그다음 잎이 떨리며, 조금씩 진화의 손끝을 타고 나간 음기가 풀잎에 맺힌 수기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안개와 풀잎, 나무의 위치로 만든 교묘한 진법이군. 과거에 청림에는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이 정도의 정교함이라면 귀멸대 놈들이 본가를 습격했을 때 청림을 완전히 불태웠던 이유를 알겠어.’

제왕검같이 거대한 내공으로 청림을 꿰뚫거나 진법의 고수가 아닌 이상이야,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진법이었다.

‘내 몸에서 만들어 낸 뇌전의 기운이 아니라, 음양의 조화를 깨뜨려 사용하는 법…… 대기가 충만해서 내공심법을 수련하기도 좋고, 진법이 조화를 깨뜨려서 숲에는 음기가 대지에는 양기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아. 그야말로 천뢰기(天雷氣)를 수련하기에 천혜의 장소로구나!’

그랬다.

진화는 진법을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다.

‘의천검주를 찾는 척 여기서 며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어.’

진화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운에서 느껴진 바른길을 외면하며 다시 진법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계속 쫓아다니는 기운은 뭐지?’

진화는 처음부터 저를 따라다니는 듯한 기운을 알고 있었지만, 적의라곤 느껴지지 않는 터라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사실 기운이 묘하게 익숙한 것이, 대충은 정체를 알 것도 같았다.

‘천뢰기와 비슷해. 아니, 같은 건가?’

결국 진화를 쫓아다니던 기운의 존재는 진화가 포기하지 않고 몇 시진을 돌아다니자, 종국에는 진화가 들어왔던 입구를 슬쩍 열어 주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친절하시네.’

* * *

그렇게 천뢰기의 수련을 겸해 몇 시진을 청림을 돌아다닌 진화가 천화정으로 돌아갔을 때, 팽연화와 남궁경이 급히 뛰어나왔다.

그 뒤로 남궁진휘, 진혜 남매도 달려 나오고 있었다.

“진화야!”

마침 진화를 발견한 팽연화가 사색이 된 얼굴로 진화를 끌어안고, 남궁경이 그런 팽연화와 진화를 동시에 끌어안았다.

그들은 막 남궁진휘, 진혜 남매에게 진화가 혼자 청림에 들어갔다는 것을 들은 참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니?”

“너 이 녀석, 혼자 다니면 어떡해! 걱정했지 않느냐!”

처음으로 진화에게 화를 내는데, 팽연화와 남궁경 두 사람 다 울 듯한 표정이라.

‘걱정을 끼치고 말았구나!’

진화는 결국 사과의 말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을 찾으러 갔습니다.”

“스, 스승?”

“정말로 의천검주를 찾아 나선 것이란 말이냐? 이 녀석아, 그 청림이 어떤 곳인데, 거길 혼자……!”

남궁경이 화를 냈다.

하지만 미안함에 축 처진 진화의 얼굴에, 끝까지 혼을 내진 못했다.

그때, 남궁진휘와 남궁진혜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어?”

“그 고약한 독거노인은 만났어?”

“…….”

아예 그를 찾을 생각도 안 했고, 언뜻 그가 하루 종일 따라다닌 것도 같지만…….

진화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천검주가 나를 봤겠지. 온종일 쫓아다녔으니.’

어쨌든 진화는 그의 그림자도 못, 아니 안 봤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니, 남궁구랑 헤어지고 바로 청림에 갔으면 정오쯤 되었을 텐데, 그럼 여태까지 뭘 하고 있었니?”

직계들의 점심 식사는 제왕검의 아침에 맞춰서 이른 편이었다.

점심 후 남궁구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곧장 청림으로 가서 저녁 시간이 되어 나타났으니.

진화는 못해도 두 시진 넘게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걸어 다녔는데, 스승님의 거처는 못 찾았습니다.”

“뭐야? 두 시진을 넘게 거기서 헤매고 있었던 거야? 이 고약한 독거노인! 이럴 줄 알았어!”

“어디 다친 곳은 없니? 다리는 안 아파?”

진화의 대답에 남궁진혜가 화를 내고, 팽연화는 진화의 몸을 살뜰하게 살폈다.

한쪽에선 남궁경이 청림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검을 쥐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아이가 숲을 두 시진을 넘게 헤맸다는 이야기에 많이 지쳤을 거라, 남궁성이 모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남궁경이 진화를 안아 들고, 팽연화가 연신 진화의 다리를 주물렀다.

사실 천뢰기를 수련하느라 아직 어린 다리가 퉁퉁 부었는지도 몰랐던 진화는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 * *

그날 저녁 식구들이 모두 진화를 만류하고 설득했지만, 진화는 다음 날에도 다시 청림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매일 어김없이 점심 만찬이 끝나면 청림으로 향했다.

억지로라도 못하게 하면 될 일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제왕검이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는 바람에 식구들의 속만 타들어 갔다.

“후우, 진화는 또 청림으로 갔느냐?”

“예. 아우, 망할 영감탱이! 멀쩡한 성인도 팽팽 돌아서 나온다는 청림인데! 우리 진화가 청림에 든 것을 모를 리가 없으면서 애를 몇 날 며칠을 뺑뺑이를 시키고 있는지!”

“허허, 네 말대로 청림은 허락이 없다면 무인들도 견디기 힘든 곳이다. 그 위험한 청림에서 해충에 물리는 일도 없고, 현기증에 쓰러지는 일도 없이, 그저 걷다 나오질 않느냐. 매일 몇 시진 동안 진화를 잘 지켜보고 있는 것이지.”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청림은 본가의 뒤편을 지키는 기관진식과 진법이 깔린 곳으로, 적에 대비한 그곳이 어린아이가 걸을 만큼 만만할 리 없었다.

하여 남궁가주는 매일 못마땅한 얼굴로 진화를 졸졸 쫓아다니다가 마지막엔 입구까지 열어 주었을 의천검주를 생각하며 고소를 참지 못했다.

하지만 남궁경은 남궁가주와 같은 이유로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남궁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오, 열 받아! 이 망할 영감탱이! 그 약하디약한 애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몇 날 며칠을 숲을 헤매는데 그걸 그냥 지켜만 보고 있어? 그럴 거면 차라리 제자를 삼든지, 그게 아니면 만나서 따끔하게 돌아가라고 하든지! 이건 분명히 억하심정이 있는 게 분명하오!”

“어, 억하심정?”

“내가 전에 검 들고 설쳤다고 우리 진화한테 심술부리는 게 틀림없다는 말이오! 형님, 나 말리지 마시오! 오늘도 우리 진화가 허탕 치고 오면, 이번에야말로 그 영감탱이 수염을 싹 다 밀어 버리고 말겠소!”

“뭐? 하하하! 그러려무나. 나도 진화가 고생하는 것이 마음에 아프니.”

남궁가주의 방관 속에서 남궁경이 검을 쥐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저녁 식사 때마다 천화정으로 모이기 시작한 식구들은, 이날도 진화에게 청림의 일을 물었다.

남궁경만큼이나 남궁진혜도 이를 바득바득 갈아 대고 있었다.

종잇장같이 얇은 인내심도 이만 하면 오래 참았다 싶어서, 다른 식구들도 말리지 않기로 한 가운데. 

“뭐? 만났어?”

“독거노인을 만났다고?”

“헤헤, 네.”

보기 드물게 소리 내어 웃는 진화의 모습에,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놀란 나머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른 식구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망할 독거노인! 그렇게 나타날 걸 왜 여태 개고생을 시킨 거래?”

“뭐, 뭐라고 하더냐?”

“어…… 그게, 안 판다고…… 아! 안 산다고도 하셨습니다!”

남궁진혜와 남궁경의 물음에 진화가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뭔가를 잔뜩 기대했던 식구들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뭐라 했다고?”

황당함에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고 남궁가주가 다시 물었다.

동시에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검을 들고 조용히 일어났다.

“앗! 가가, 오늘은 참으세요!”

“진혜야, 네가 나서긴 어딜 나서!”

“으악! 이 망할 영감탱이, 가만두지 않겠어! 지금 누굴 잡상인 취급 한 거야-!”

“숙부님이 앞을 노리세요. 제가 그 망할 독거노인의 뒤통수를 노리겠어요!”

“가가!”

“진혜야!”

모두가 달려들어서 남궁경과 남궁진혜를 말리는 사이, 진화는 당황한 얼굴로 제 말에 무엇이 이상한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역시, 남궁구 그 녀석부터 치워 버렸어야 했나?”

남궁진휘는 차분하게 이 일의 근본 원인부터 떠올렸다.

* * *

그날 저녁 만찬 전.

정말로 별것 없었다.

진화는 오늘도 거뜬하게 두 시진은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어떤 영약을 먹는 것보다 내공 증진 속도가 빨라. 이 청림의 특이한 음양의 배치 때문인가?’

요 근래 진화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천뢰제왕심법의 성취 속도가 과거에 비해 배는 빨랐으니, 전설 속 세상의 기운이 모여든다는 천공비지(天工鄙地)를 찾은 기연자의 기분이 이러할까.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이곳에서 먹고 자며 수련을 하고 싶은 정도였다.

‘이제 수기에 음기를 흘리고, 대지의 양기에 양기를 담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럼 이제 슬슬 대지의 양기에 음기를 실어 뇌전이 어찌 퍼지는지 알아볼까.’

과거의 기억은 진화의 좋은 지침이 되었다.

과거의 시행착오를 피해 깨달음을 수정하고 다시 알아 가는 과정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과거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파지짓……!

진화의 머리부터 시작한 기운이 발을 통해 땅으로 퍼져 나갔다.

대지의 표면과 같은 양기를 보낼 때와는 달리 발밑에서 작은 불꽃이 틔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다음은 진화의 생각과 달랐다.

‘기운을 가만히 놓아두면, 깊숙하게 타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표면을 따라 넓게 퍼진다. 만약 여기서 내가 의지를 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동시에 실행해 보려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혼자 위험하게 무슨 짓이냐!”

머리 위로 한참 뻗어 있는 나무 꼭대기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고개를 든 진화의 시야가 까맣게 물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코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그만 놈이 무슨 간땡이가 그리 큰 게냐! 이 청림이 어떤 곳인 줄 알고 함부로 천뢰제왕심공을 움직여!”

호통 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내는 무명 백의에 남궁가주처럼 선이 매끈하고 날카로운 중년인이었다.

‘맨날 영감탱이라고 하셔서, 노인일 줄 알았는데…….’

진화가 생각보다 젊은 남궁호명의 모습에 놀라는 사이, 남궁호명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화를 노려보았다.

“위험한 짓 하지 말고 냉큼 돌아가거라! 어찌 알고 왔는지는 모르나, 네 부모에게 전하거라! 나는 제자는 안 산다! 얼마를 주건, 무공을 팔 생각이 없다!”

“…….”

보통의 아이였다면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로 냉정하고 단호한 호통이었지만, 진화는 그저 말똥말똥한 눈으로 의천검주를 볼 뿐이었다.

진화야말로 제자로 팔릴 생각도, 무공을 살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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