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바뀔 화(譁) : 성장하다(3)
오 년.
아이의 세월은 걸음처럼 더디고, 노인의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는 말이 있다.
오 년의 시간은 겨우 열 살 아이가 소년이 될 만큼 긴 시간이었지만, 자식을 세상 밖으로 보낼 준비를 해야 하는 남궁경, 팽연화 부부에겐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버린 것 같았다.
“결국 진화도 나가겠죠?”
“그렇겠지. 진화에게도 진화의 인생이 있는 것이니 말이오.”
“진휘와 진혜를 보낼 때는 이렇게 불안하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듯이 불안한지 모르겠어요.”
“하하, 진휘와 진혜야 아버지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셨소. 진휘의 언변과 넉살이면 사막에 한가운데 떨어져도 상단을 이끌 것이고, 진혜의 힘과 고집이면 사막에서 우물을 파도 팔 것이라고. 하지만 진화는 막내가 아니오?”
“진화를 볼 때면 언제나 처음 봤을 때 그 모습이 떠올라서 늘 마음이 아려요. 아이의 건강을 챙기고 또 챙겨도 걱정이 가시질 않는 걸 보면……. 성격도 너무 조용하고 순해서…….”
부모의 눈에 자식은 언제까지고 어린 존재라지만, 남궁경과 팽연화에게 남궁진화는 특히 아픈 손가락이고 하늘이 주신 기적이었다.
“거친 세상에 내놓기는 불안하지만, 언제고 한 번은 진화도 부딪혀 봐야 하지 않겠소? 진휘와 진혜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고, 상처 입고 돌아오면 언제든지 우리가 품어 주면 그만일 것이오. 그러니 이만 걱정하고 잘 보내 줄 준비나 합시다.”
“그래요. 호호, 가가는 역시 중요한 때에 듬직해요.”
“그, 그렇소? 하하하하하! 나는 언제나 화 매의 든든한 가장이 아니오.”
팽연화의 칭찬에 남궁경이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 좋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벌써 장정이 된 아들을 둔 부부라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그들은 여전히 금술이 좋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번 해에 돌아오는 정의무학관 입관 시험에 진화를 보내야 하는 서운함을 달래고 있었다.
* * *
남궁경과 팽연화 부부의 서운함 뒤로, 남궁세가는 축제를 맞았다.
매년 돌아오는 정의무학관 선발대회는 남궁세가뿐 아니라 넓은 양주에 퍼져 있는 수많은 무인들이 모이는 날로, 잠삼현은 연일 손님맞이로 시끌벅적한 호황기를 이루었다.
특히, 이번 선발대회에는 남궁세가의 또 다른 직계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오 년 전 대회엔 남궁진휘 대공자께서 우승하셨지?”
“아아, 그때는 좀 싱거웠지. 물론 우리 영애의 경기는 모두 최고였지만. 모든 사내들을 앞지르는 그 호쾌함이란! 하하하하!”
“푸하하하! 그랬지! 가주님의 고명따님이 제왕무적단주님같이 싸울 줄이야. 모두 난리가 났었지!”
제왕무적단주 남궁경처럼 싸운다는 것은 제왕무적검법의 힘을 중시한 중검을 다룬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대결의 방식마저도 남궁의 무공 귀신, 남궁의 광견이라는 그의 것을 빼닮았다는 의미도 있었다.
실제로 남궁진혜는 기겁한 상대를 몰아붙이면서 연무장 바닥을 깨부수어 아버지 남궁가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번에는 그 제왕무적단주님의 아들이 직접 나선다지?”
“아아, 제왕검께 심법을 배우고 의천검주의 제자가 되면서 한동안 전 무림이 떠들썩했었지.”
더 이상 귀천성에서 데려온 양자라는 말은 나돌지 않았다.
제왕검과 의천검주의 명성이 주는 무게가 귀천성의 악명까지 지워 버렸고, 이제는 잠삼현에서도 유명한 제왕무적단주의 팔불출 행각이 양자라는 말을 쏙 들어가게 한 것이다.
“이번 대회는 볼만할 거야.”
“음? 왜인가?”
“아, 남궁진화 소공자에게 입을 잘못 놀렸다가 서평원장의 목이 날아간 걸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그때 사실 이장로의 차남이 소공자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세가회의 분위기가 애매해졌지. 세가회의 때마다 제왕무적단주가 이장로에게 이를 갈고, 이장로의 자식은……. 흠흠, 직계가 되려다가 꼴만 우습게 되었다, 뭐 그런…….”
사내는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에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였다.
제왕무적단주도 그렇지만, 본가의 밖에서 상단을 운영하는 이장로의 위세도 만만치는 않아서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 진화 공자님은 양자고, 남궁교명 공자는 이장로의 차남이기는 하지만 핏줄은 나름 가깝지 않나? 생판 남보다는 그래도 핏줄이 좀 섞인 쪽이 낫지 않나?”
“그, 그건 그렇지.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제왕무적단주가 길길이 날뛰는데 더 이상 뭘 말하겠어? 게다가 욕심 많은 이장로가 감히 넘보면 안 될 것을 넘본다는 소문도 있어.”
“너, 넘보면 안 될 걸 넘보다니?”
“대공자께서 소가주 위에 오르신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사실 대공자께서 어찌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다음 차례가 제왕무적단주가 아닌가. 그래서 이장로가…….”
“예끼!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가주님과 제왕무적단주 두 분의 우애를 모르는가?”
“휴우, 그거야 그렇긴 한데. 세상이 하도 험하고 귀천성 놈들이 언제 또 날뛸지 모르니, 장로들이 품지 말아야 할 희망을 품은 게지.”
“에잇! 망할! 그것도 사람이 할 소리라고! 감히 남궁세가의 녹을 먹고 그딴 욕심을 품어? 망할 인간들!”
사실, 제왕무적단주의 양자 남궁진화와 이장로의 차남 남궁교명의 대결 구도는 선발대회 전부터 유명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 남궁세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분열마저 가져올 정도였으니.
사람들의 여론은, 남궁진휘라는 완벽한 후계를 흔들지 않고 의천검주의 제자가 된 남궁진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쪽과, 만약의 사태를 위해서라도 다른 순위에는 그래도 남궁의 핏줄을 이은 자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쪽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양쪽 모두 나름의 명분과 설득력을 가지며, 쉬쉬하는 속에서도 대회에 대한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달아올랐다.
* * *
이장로 남궁경옥은 격하게 달아오른 분위기를 느끼며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여론이 잘 조성되었나 보군.”
“하하, 서평원 자체가 방계들의 마을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방계라도 남궁의 혈족이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양자보다야 우리 교명이한테 분위기가 쏠릴 수밖에요. 게다가…….”
남궁경옥의 말에 아닌 듯 서평원에 여론 조성을 한 제 공을 내세우던 남궁필이 갑자기 한쪽의 눈치를 보았다.
“흐흐, 의천검주의 명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우리 은수천검 님은 제왕검의 형제가 아닙니까. 양자 놈이 의천검주의 제자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 교명이도 엄연히 직계 어르신의 가르침을 이었으니 꿀릴 것도 없지요!”
사실 남궁필의 노력도 노력이었지만, 이미 제왕검의 인정을 받고 의천검주의 제자가 된 남궁진화와 팽팽하게 여론이 조성이 된 것은 은수천검 남궁도의 존재가 가장 컸다 할 수 있었다.
일견 하늘의 무장처럼 거대하고 탈속적인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는 은수천검 남궁도는 눈을 감고 두 사람의 대화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왕검이라는 이름에 눈썹이 조금이 흔들렸을까, 그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잠시 뒤, 은수천검 남궁도가 눈을 떴다.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살벌하게 빛나는 형형한 안광에 남궁경옥과 남궁필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남궁도의 시선이 문으로 향하고, 마침 두 명의 중년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헙!”
남궁필은 경악을 하다 못 해 비명을 터뜨릴 뻔했다.
이장로의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이 바로, 육장로 소천호검(小天護劍) 남궁백과 칠장로 혼현불괴(魂顯不拐) 남궁문이었기 때문이다.
“대회 준비를 바삐 한다고 들었는데, 준비는 다 되었는가.”
“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은수천검 남궁도의 말에 공손히 읍하는 이장로와 육장로, 칠장로의 모습에 남궁필은 거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남궁경옥은 그렇다 쳐도, 본가가 있는 잠삼현의 규율을 세우는 판관장이라는 육장로와 세가의 지옥을 지키는 옥문장인 칠장로가, 뒷방으로 물러나 후학이나 키우고 있는 의천관 관주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남궁필이 아니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남궁필이 너무 놀라서 겨우 고개만 돌려 남궁경옥을 보는데, 남궁경옥은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자신처럼 놀라진 않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교명이는 준비가 끝났겠지?”
“물론입니다. 오히려 몸이 달아 견딜 수 없는 모양이더군요.”
“허허허! 그렇겠지. 일을 서두르는 바람에 많이 버거웠을 텐데, 그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잘 따라와 줬어.”
“아닙니다. 그 녀석이 뭐 한 것이 있겠습니까. 모두 어르신의 가르침 덕분이지요.”
남궁교명을 칭찬하는 말에, 남궁경옥이 모든 공을 남궁도에게 넘기며 허리를 굽혔다.
욕심이 넘쳐 가주의 자리까지 노릴 만큼 오만한 제 사촌 형이 넙죽 허리를 굽히는 모습까지 보자, 남궁필은 어쩐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제 깜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린 걸 이제야 깨달은 느낌이었다.
“두 아이의 승패가 정해지는 날, 그날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다!”
오연하게 선언하는 은수천검 남궁도의 말에 남궁필은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 * *
선발대회는 접수부터 대회를 치르는 내내 모든 것을 참가자가 스스로 해야만 했다.
앞으로 정의무학관에서 남궁과 집안의 힘 없이 오로지 혼자 헤쳐 나가야 함을 미리 경험해 보라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이러한 조치는 생각지도 않은 효과도 가져왔는데, 바로 접수대에서 참가자들이 마주치면서 가끔 미리부터 날 선 투기를 주고받거나 간혹 싸움이 나기도 하면서 벌써부터 구경꾼들이 접수대까지 몰려 있었다.
특히 유명한 사람들의 등장에는, 구경꾼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지기도 했다.
“와아! 저 사람들은……!”
“남궁세가의 공자들이로군!”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건장한 두 청년이 서로 마주섰다.
마주 선 둘은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러네. 심정적으로는 다음 만남이 더 멀었으면 했는데 말이야.”
“흥! 헛소리를 잘하는 건 여전하구나. 네 녀석도 이번에 참가하던가? 의외로구나. 대공자의 뒤를 따라갈 줄 알았는데.”
“남궁교명, 너야말로. 너라면 최연소 입관을 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아, 그러려고 했는데 거치적거리는 것이 있어서 말이야. 치우고 가려고.”
큰 키로 상대를 내려다보며 오만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린 청년이, 바로 남궁교명이었다.
그는 알려진 대로 이장로의 차남이자 은수천검의 제자로, 남궁진화와 엮여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올해로 열일곱이 된 남궁교명은 하얀 얼굴에 다소 얇은 입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미남으로, 하나로 높게 묶은 머리와 화려한 비단 무복은 머리카락 한 올 흩어진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예민함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자존심 높은 성격을 보여 주는 듯했다.
반대로 맞은편 선 귀공자는 가만히 있어도 웃고 있는 눈매에 다소 흐트러진 무복 차림으로, 날카로움이나 예민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심지어 평범한 키에 날렵한 체형, 아무렇게나 내려 묶은 머리까지, 일부러 그런 듯 모든 면에서 남궁교명과 대조적이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웃으면서 상대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내뱉고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하하하하! 자신감이 여전하네, 한 번도 잘 치운 적 없으면서.”
“내 계획에는 너도 있어.”
이번에 치우고 가려는 거치적거리는 것들 중에는 ‘너도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 그래. 뭐, 누구나 계획은 세우니까.”
“흥! 그래. 네 녀석이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지 두고 보자꾸나.”
심드렁한 말투에 남궁교명의 심사가 제대로 뒤틀린 듯 그의 입술도 뒤틀렸다.
“이번엔 피할 곳도 없다는 걸 명심해.”
남궁교명이 귀엣말을 하는 척 슬쩍 살기를 흘리며 지나갔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살벌한 대치에 숨 쉬는 것도 잊었던 듯, 남궁교명이 지나가고서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저분이 남궁교명 공자로군. 정말 기세가 대단해 보였어.”
“그러게! 사람이 귀티가 잘잘 흐르네!”
사람들이 저마다 남궁교명에 대한 평가로 수군거렸다.
잠깐 사이에 남궁교명이 남긴 인상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아무 데서나 살기를 흘리다니, 그 오만한 성격도 여전하네.’
남궁교명과 대치하고 있던 사내의 눈빛도 차갑게 내려않았다.
하지만 곧, 접수대로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몸을 틀어 손을 번쩍 들었다.
“어이! 진화-!”
사내의 목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고개를 돌린 사람들 중에는 거의 이곳을 빠져나가려던 남궁교명도 있었다.
서둘러 번잡한 곳을 벗어날 생각이던 남궁교명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들리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시야로 이제까지 감히 자신과 비교되었던 ‘그 양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남궁세가의 직계를 상징하는 청백색이 아름답게 조화된 천풍무의(天風武衣)를 입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이는, 아직 앳된 소년이었다.
다만, 새하얀 피부에 복사꽃이 핀 듯 발그레한 혈색이 돌고, 크고 순한 눈매에 선명한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곧고 오뚝한 코, 끝이 살짝 말린 앵두 같은 입술까지.
모든 사람의 시선을 멈출 정도로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소문만 무성하고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남궁교명마저도 얼굴을 보고서는 소년에게 ‘천출’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저, 저놈이 그 양자 놈이렷다! 흥, 잘도 뻔뻔하게 들어오는구나.’
정신을 차린 남궁교명은 당당하게 사람들 사이를 걸어오는 남궁진화는 물론, 남궁진화의 겉모습에 빠져서 모두가 넋을 잃고 있는 지금의 상황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와……!”
“저, 저분이 남궁의 소공자신가 보군!”
“대공자와는 다른 품위를 지니셨군. 하지만 제왕검의 손자이자 의천검주의 제자다운 풍모야!”
방금 전 남궁교명에 대해 떠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남궁진화에 대해서만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을 잘 즐겨 두어라. 곧 나락으로 떨어질 터이니!’
남궁교명은 마치 화제를 강탈당한 사람처럼 남궁진화를 노려보다가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의 탄성을 부르며 등장한 화제의 소공자, 남궁진화는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내를 보자마자 팍- 하고 얼굴을 구겼다.
“남궁구!”
진화의 목소리에, 남궁구가 느슨하게 묶은 머리가 흔들리도록 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 * *
선발대회의 결과가 달라진 것은 남궁진혜만이 아니었다.
“너도…… 이번에 나오는 거야?”
“하하, 당연하지. 아버지가 올해에는 정의무학관이든 어디든 반드시 내쫓겠다고 하셔서. 집도, 돈도 없는데 정의무학관으로 가야지.”
이전 생엔 작년 대회 우승자로 정의무학관에 갔던 남궁구가, 이번에는 떠억-하니 접수대 앞에서 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라면 지난 선발대회에 나설 줄 알았는데.”
“하하하하! 당연히, 기다렸지-잉! 너랑 가려고!”
남궁구의 대답에 진화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설마설마했는데…… 이 위험 지향형 인간이 진휘 형님이 아니라 날 따라다닌다고? 대체 왜지?’
진화는 이번 생의 목표를 가족의 안전으로 삼았기에, 행동에 신중을 기했으며 강해지기 위해 쉬지 않고 수련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이 위험 지향형 인간이 제게 붙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일찍 오지. 그럼 남궁교명도 봤을 텐데! 여전히 참 재수가 없더라고. 하하하하!”
“아! 그 녀석도 오늘 접수했겠군.”
“왜 이래, 관심 없는 척? 지금 둘의 대결이 완전 장안의 화제구먼!”
진화의 무심한 반응에 남궁구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곧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진화에게 물었다.
“그 자식이 왜 이번 해 대회를 고집했는지는 알고 있지?”
남궁구의 말에, 이전 생엔 남궁진휘가 떠난 다음 해에 최연소 정의무학관 입관을 노렸던 남궁교명이 굳이 이번 해에 참여했음을 떠올린 진화가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 그러고 보면, 변한 것도 참 많아.”
남궁교명이 과거 악착같이 매달렸던 최연소(最年少)라는 명예를 포기하면서까지 노린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저건 머리가 더 나빠진 것 같군.”
진화는 저를 노린 수작에 과거보다 더 싸늘한 평가를 내렸다.
남궁구는 진화의 말투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이내 웃어 버렸다.
“역시 네가 더 재미있어.”
남궁구의 말에 진화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