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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5)화 (25/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바뀔 화(譁) : 성장하다(4)

남궁진화가 무림에 등장한 것은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였다.

그 전까지 그는, 남궁세가의 직계이자 창천일검 남궁경의 아들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세가 내 위치가 빈약했고, 무림에서 이룬 공적도 없었다.

정의맹의 요청에 따라 남궁세가에서 파견된 무인들에 포함될 때까지도, 그는 창궁무애단의 일개 단원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방계 출신 소가주를 불편하게 만드는 양자에 대해 수군거렸을 뿐이다.

무수한 자들의 입방아가 남궁진화를 일일이 상처 입혔다.

아닌 척 위선 떠는 작자들은 양자인 남궁진화가 그들과 비슷해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무시하고 폄훼하는 동시에 항상 경계하고 배척했다.

그러나 남궁진화의 검에서 푸른 뇌전(雷電)이 뿜어지는 순간.

그때만큼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벌(天罰)과도 같아서, 위선과 오만으로 뭉친 자들조차 감히 뇌왕(雷王)의 등극을 막지 못했다.

* * *

양주는 당금 무림에서 사주, 연주, 기주와 함께 가장 안전하고 발전된 곳이라, 그 안에 있는 백성의 수와 도시, 곳곳에 형성된 상권의 규모만 보자면 가히 일국(一國)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남궁세가의 정의무학관 선발대회가 시작되면 양주 전체에서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그렇게 매해 남궁세가에서 주최하는 선발대회 참가자의 수는 족히 수천 명을 넘었다.

웅성-웅성-웅성.

남궁세가의 대연무장에 모인 참가자들의 말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선발 대회를 앞둔 긴장된 상황이었지만, 여기 모인 대부분의 참가자들에게 남궁세가의 대연무장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으니, 평소 이 대연무장에 설 수 있는 이들은 남궁세가 오 대 무단의 단원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 중 양주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 어릴 적부터 남궁세가 오 대 무단 단원을 꿈꿔 온 이들이었다.

둥-! 둥-!

장엄한 대북소리가 모든 참가자들을 환기시켰다.

“모두 모여라-!”

단번에 모두의 귀를 뚫는 목소리에, 참가자들이 놀란 눈으로 앞을 보았다.

올해도 근 사천 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이 몰렸다.

“와! 제왕무적단주님이셔!”

“창천일검 남궁경 님이시다-!”

남궁세가의 선발대회는 창궁무애단과 천풍대연단, 제왕무적단에서 관리와 감독, 진행과 심판을 함께했지만, 첫날의 첫 인사만큼은 제왕무적단 단주인 남궁경이 직접 나섰다.

다른 무단의 위명도 모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남궁세가에서 제왕무적단은 오로지 남궁세가의 직계와 방계로만 이루어져 있고, 단주는 직계 남성만이 맡는다는 점에서 다른 무단보다 특별했다.

그런 면에서 창궁무애단과 천풍대연단이 남궁세가의 저력이자 힘이라면, 제왕무적단은 무가로서 남궁세가의 근본과 같았다.

“앞으로 칠 주야에 걸쳐 삼십이 인을 뽑는 예선을 치를 것이다! 남궁세가의 무공 이외의 무공도 인정하지만, 독은 사용할 수 없다. 암기를 사용하는 자는 안됐지만 미리 승인받아야 한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사천 당문이나 사패천을 찾아가라! 여긴 남궁세가이고, 이곳은 남궁세가의 보증을 받아 정의무학관에 입관할 인재를 뽑는 선발대회장이기 때문이다!”

제왕무적단주 남궁경의 말에 모든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남궁세가의 보호와 영향력 아래에서 나고 자라며 남궁세가의 무인을 꿈꾼 이들인 만큼, 명문 정파 중에서도 당당하게 의천(義天)을 내건 남궁세가의 정의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습과 고의적 살인을 뺀 모든 것을 허용한다! 겁이 난다면 지금이라도 빠져라! 여긴 대련장이 아니라, 전쟁에 나가 귀천성과 싸울 무인을 찾는 자리다! 칠 주야에 걸쳐 발탁된 삼십이 인은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최종 선발전에 나갈 것이다! 또한 그들 모두에게는 남궁세가 오 대 무단에 들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목숨을 걸어라-!”

“와아아아아아-!”

칠 주야의 예선을 통과한 삼십이 인은 남궁세가 오 대 무단에 발탁된다.

남궁세가를 대표해서 최종적으로 정의무학관에 입관 시험을 치르는 인원이 열 명에서 스무 명이 된 것은, 실력에 따라 남궁세가에서 잘라낸 것이 아니라, 선발된 인재들 중 오 대 무단에 드는 것을 선택한 이들이 더 많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다른 어떤 때보다 남궁세가에 대한 충성심이 높을 때였다.

모든 참가자들이 제왕무적단주 남궁경의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대연무장의 열기가 단번에 후끈 달아올랐다.

“크아, 목숨을 걸라니! 제왕무적단주님도 은근히 흥분하신 모양인데! 하하하!”

웅심을 자극하는 남궁경의 개회사와 참가자들의 열기에, 남궁구 또한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화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진심이시다.”

“하하…… 응?”

이 열기 속에서 진화가 크게 웃지 못한 이유였다.

“그제 세가회의에서도 모든 규칙을 없애자고 주장하셨지. 그냥 ‘살인 금지’가 아니라 ‘고의적 살인 금지’가 된 건, 순전히 아버지 주장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늘 나올 때도, 내게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모르는 척 반쯤 죽여 버리라고 하시더군. 뒷일은 책임지시겠다며.”

“근데 왜 마지막 말을 날 보면서 이야기하냐?”

“글쎄.”

뜨악해서 저를 보는 남궁구에게 진화가 씨익- 웃어 보였다.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선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지만, 또 한편으로 과거에는 겪어 보지 못했던 젊은 후기지수들의 행사에 참가했다는 자체가 진화를 살짝 들뜨게 만들었다.

그때, 진화가 저를 보는 시선을 느꼈다.

“응?”

“왜 그래?”

시선을 찾은 진화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는 것을 보며, 남궁구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남궁교명이 진화를 노려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오만하게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외부인이라면 몰라도, 친분도 없는 방계의 사람이 직계 소공자에게 보일 웃음은 아니었다.

“저 자식……!”

남궁구가 오히려 열을 올렸다.

하지만 진화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싸악- 무시했다.

마치 ‘나는 너를 알지 못하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듯, 남궁교명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우하하하하! 저 자식, 열 받았다! 얼굴이 완전 구겨졌어! 하하하하하!”

다시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남궁구가 자세히 해설해 주는 것이, 아마도 남궁교명은 진화가 보인 태도를 의미 그대로 잘 받아들인 듯했다.

* * *

칠 주야 동안은 보살펴 줄 가족이나 사부, 그들에게 환호를 줄 관중도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남궁세가 무인들의 관리 감독하에, 열다섯부터 서른 살 사이의 후기지수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만 첫날부터 절반씩 떨어져 나가는 잔혹한 경기를 치러 나가야 했다.

첫 대결을 치를 사백 명이 먼저 연무장에 올랐다.

각자 제비를 뽑아 같은 시합장 번호를 뽑은 두 사람이, 연무장 위에 그려진 사각의 시합장을 찾아서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칠 주야의 예선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지는 사람은 곧바로 탈락이었다.

“오, 나부터네. 안 겹쳐서 다행이야. 먼저 갔다 올게.”

“방심하다가 실수하지 말고.”

“하하하, 걱정 말라고.”

타칭 진화의 유일한 친구로, 벌써 몇 년 동안 얼굴을 봐 온 터였다.

먼저 나가는 남궁구에게 진화가 자연스럽게 응원을 건네고, 남궁구가 기분 좋게 손을 흔들며 연무장에 올라갔다.

“남궁구다!”

“젠장, 저 사람이 이번 조야?”

벌써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진 후기지수들이 있었는데, 남궁구도 그중 하나인지 시합장에 올라서자마자 참가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헤에, 운이 좋네. 팔(八) 번!”

모두가 남궁구의 입을 주목하고, 남궁구의 말과 동시에 한 청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외부 무학관에서 온 청년에게 남궁세가 장로의 아들이 첫 상대가 된 것은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하하, 잘 부탁합니다용-!”

“한 수 배우겠습니다!”

남궁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상대 청년은 얕보였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시작!”

창궁무애단 단원의 호령에 따라 팔 번 시합장의 시합이 시작되고, 연무장 밖 참가자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팔 번 시합장에 몰려들었다.

쉐에에엑-!

기분이 상한 것이 맞았는지, 상대 청년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생각보다 빠른 돌격과 그와 동시에 이루어진 베기 동작에 몇몇 참가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상대 청년의 검이 남궁구에게 닿는다 싶은 순간, 진화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일 격에 끝나겠군. 인생이 걸린 대회인데 상대도 너무 성급했어. 남궁구는 결코 상대를 얕보지 않아. 아니, 그 누구도 얕보지 않기 때문에 심리전부터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하지.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상대에게도!’

진화의 생각처럼 빠르게 들어갔다고 생각한 상대 청년의 검이 가른 것은 허공이었고, 그 밑에서 몸을 낮춘 남궁구가 검을 꺼내지도 않은 채 검 자루로 상대의 턱을 날려 버렸다.

퍼-억!

“크악!”

털썩.

제대로 턱이 흔들린 남궁구의 상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남궁구 승!”

“와아아-!”

창구무애단원의 판정이 나고, 남궁구는 즐겁게 웃으며 연무장을 내려왔다.

경계심과 선망이 어린 참가자들의 시선이 남궁구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 * *

한창 치열한 경기들이 몇 차례 지나고, 드문드문 남궁구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는 이들도 몇몇 나왔다.

그리고 조금 지루해지려는 오후, 잠깐의 휴식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시합이 시작되기 전부터 참가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색 모란 자수가 들어간 청색 비단 무복에 옥이 박힌 머리 장식까지, 누구보다 화려한 복장을 한 남궁교명이 연무장으로 올라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참가자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대연무장에 일견 서늘한 침묵이 돌았다.

남궁세가 직계만 입을 수 있다는 천풍무의를 입은 남궁진화가 당당하게 연무장에 들어섰다.

“와 씨,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남궁교명과 남궁진화 공자라니, 이번 판은 대박이군!”

침묵은 사라졌지만, 누구 하나 목소리를 키우지 못했다.

남궁교명은 저도 모르게 천풍무의를 입고 온 남궁진화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연무장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왔지만 시종일관 그것이 당연한 일인 듯 당당하게 굴었다.

하지만 지금, 남궁교명은 오물이라도 묻은 듯 제 옷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저 자식, 보란 듯이 날 무시하다니! 으드득! 운 좋은 천출 주제에 감히 내게 저따위 태도를……!’

남궁진화는 그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남궁교명을 자극했다.

물론, 진화도 알고 하는 짓이었다.

‘주목받지 못하면 안달하는 것도 여전하군. 아니, 이때부터 저런 놈이라는 게 맞는 말인가? 뭐, 말이야 어찌하든 무슨 상관이야, 저놈이 기분 나빠 한다는 게 중요하지.’

진화는 뒤에서 부글거리는 남궁교명의 시선을 느끼며, 입꼬리를 스윽 말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시합장으로 갔다.

잠시 뒤, 어디서든 주목받길 원하는 남궁교명이 먼저 시합을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로 작정하였는지, 시작부터 검기를 꺼내 들었다.

‘이래도 안 쳐다보나 보자! 내 실력이나 구경해라!’

남궁교명은 바로 건너 건너에서 시합을 준비하던 진화를 의식하며 검을 휘둘렀다.

쉐-엑!

“흐앗!”

남궁교명의 상대는 검기가 맺힌 채 제게 달려드는 남궁교명을 보곤, 기겁을 하며 몸을 웅크렸다.

대신 심판을 보던 창궁무애단원이 끼어들어 남궁교명의 검을 막았다.

퍼—엉!

쭈그리고 앉은 상대 앞에서 검을 꺼낸 창궁무애단원과 당당하게 맞선 남궁교명, 그리고 그들의 사이에 균열이 간 연무장 바닥.

“후우, 벌써 절정에 올랐군. 남궁교명 승리다!”

창궁무애단원은 겨우 약관에 오른 남궁교명이 검에 기운을 싣는 것에 감탄하며, 그의 승리를 선언했다.

“우, 우와아아아아!”

“봤어? 검기였다고!”

순식간에 환호와 감탄성이 터져 나오고, 어떤 이들은 박수마저 쳤다.

참가자들의 경외 어린 시선을 느끼며, 남궁교명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 연무장을 내려갔다.

아니, 내려가려고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파지지지지직-!

남궁교명의 눈이, 건너편 시합장에 번개가 치는 것을 보며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노, 뇌전(雷電)이다-!”

“남궁의 소공자가 천뢰제왕검법을 익혔다더니, 소공자가 검에 뇌전을 일으켰다!”

남궁진화의 검에 푸른 뇌전이 치고 있고, 남궁진화의 상대는 검을 떨어뜨린 채 그 광경을 보며 입을 못 다물고 있었다.

아니, 심판을 포함한 대연무장의 모든 이들이 진화의 검에서 뇌전이 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미친……!”

이전 삶에서, 남궁진화를 뇌왕이라 불리게 했던 그 뇌전이었다.

‘이번엔 너희가 지옥으로 갈 차례야.’

진화의 시선이 처음으로 남궁교명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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