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참 진(眞) 꽃 화(花) : 여론(輿論)이란(1)
천무학관 입관을 위한 ‘남궁세가의 선발대회’는 춘절을 제외하면 양주 지역의 가장 큰 축제나 다름없었다.
잠삼현에 몰린 참가자들의 가족, 소속 무관의 동료와 사부 그리고 대회를 구경 관람객과 사람을 따라온 장사치 들까지.
참 길고 긴 칠 주야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예선 마지막 대전을 앞두고 수많은 관중이 새벽부터 대전이 벌어지는 대연무장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충혈관의 젊은 검수가 제법이라지?”
“아아, 남송문의 창술도 명불허전이더군. 예선전은 충분히 통과할 거야.”
“그래도 결국 청평원 출신들이 제일 많겠지?”
“에이, 청평무학관과 의천무학관 출신들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게, 한 해 두 해 일인가?”
남궁세가의 선발대회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첫째, 최종 삼십이 인의 자리에 누가 들 것이며, 어느 무관에서 배출할 것인가.
“내년에도 청평무학관과 의천무학관 입관 시험은 빡세겠구먼.”
“부모들이 벌써부터 이름난 무사부들 밑으로 돈주머니를 들고 줄을 선다던데.”
세상의, 적어도 양주의 모든 부와 권력이 남궁세가로부터 나오는 시대였다.
양주는, 언제 다시 준동할지 모르는 귀천성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양주에 있는 무가의 부모들은 자식과 가문을 위해 그들이 남궁세가의 그늘로 들어가길 원했다.
물론 그중 제일 출세하는 방향이 바로 동평원에 들 수 있는 오 대 무단의 단원이 되는 것이라.
매해 삼십이 인의 자리에 하나라도 제자를 넣은 무관에는 부모들이 줄을 섰다.
둘째는, 어떤 ‘남궁’이 정의무학관에 가게 될 것인가였다.
매년 최대 관심사이기도 했다.
“오 년 전에는 남궁진휘 대공자와 남궁진혜 영애가 갔지?”
“그 덕에 오 년 전엔 정의무학관에 스무 명을 꽉 채워서 갔다더군.”
“같이 입관해서 소가주님과 친분만 쌓으면, 오 대 무단 단원이 뭔가? 그날로 출셋길이 열리는 거지! 그게 아니더라도, 제왕검과 남궁제일검의 제자들이 아닌가? 하나라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어도 좋지.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정의무학관 입관 시험에선 두 명 빼고 다 합격했지 않나!”
“소가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인데, 오 년 전 대회는 참가자도 어마어마했지.”
남궁세가는 다른 명문 세가와 달리 외부에서도 오 대 무단의 단원들을 받아들이며 독문무공을 전수해 주고 있는 한편, 정의무학관으로 보내는 ‘남궁’의 성을 단 사람을 단 두 명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많은 문파와 세가에서는 어리석은 처사라며 남궁세가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그 덕에 남궁세가는 양주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민심까지 손에 넣었다.
하지만 올해 남궁세가의 선발대회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달라졌다.
“자네도 들었나?”
“다들 그걸 보러 새벽부터 몰려든 거지.”
“진짜…… 뇌전을 뿜을까?”
칠 주야에 이어진 예선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남궁의 뇌전.
탈락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하나의 소문이 잠삼현과 양주 지역을 강타했다.
선발대회에 구경 온 사람들 모두 소문의 뇌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참가자들이 하나둘 연무장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나, 나온다!”
“저기!”
스무 명쯤 지났을 때에 기다리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은 환호할 준비를 마쳤지만 약속이나 한 듯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남궁세가 직계들만 입는다는 신비로운 천풍무의를 입고 나타난 소년의 자태가 가히 하늘의 선동 같아서, 사람들 사이로 숨죽인 탄성이 흘렀다.
* * *
칠 주야에 이어진 예선전의 화제를 뇌전이 모두 잡아먹어 버린 것처럼, 대회장의 시선까지도 남궁진화가 모두 집어삼켰다.
‘빌어먹을 자식!’
마지막 참가자로 제 차례를 기다리던 남궁교명은, 남궁진화 이후로 그늘이 진 듯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것을 느꼈다.
‘천것 따위가 잘난 듯이 천풍무의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지만, 남궁교명은 이 모든 것이 남궁진화가 입은 천풍무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깨끗한 백색과 청명한 하늘보다 더 짙은 푸른색이 어우러진 비단 무복은 빛에 따라 은사로 새겨진 구름이 보일 듯 말 듯 하니.
가까이서 보아도 신비로운 그것이 멀리서 보는 촌무지렁이들의 눈에는 어떻겠는가.
남궁교명은 질투심 가득한 눈으로 진화의 옆모습을 노려보다 코웃음을 흘렸다.
“흥, 실력으로 안 될 듯하니, 천풍무의로 사람들의 관심을 구걸할 생각인가?”
남궁교명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진화를 깔아뭉갰다.
이장로 남궁경옥을 믿고 기세등등한 남궁교명의 곁에는 벌써 몇몇 참가자들이 붙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직계보다 방계의 대표에게 힘을 싣기로 한 서평원 출신들이었다.
물론 서평원 출신 모두가 그의 편은 아니었다.
“야, 여기서 네 옷이 제일 화려해. 남궁세가 선발대회에 붉은 옷이라니, 나는 너 오늘 시집가는 줄 알았다!”
“남궁구!”
“그래, 나다. 왜 하필 내 자리가 네 옆인 거냐?”
“그건 내가 할 소리다!”
남궁교명은 큰소리를 치며 아예 남궁구 쪽에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번 선발전에서 그의 심사를 뒤집는 게, 남궁진화의 존재만은 아니었다.
그때, 그들 뒤쪽에 있던 관중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 중 한 명은 떨어지겠지?”
“남궁교명과 남궁구, 둘 중 누구일까?”
그들의 말에, 남궁구의 귀가 꿈틀거리고 남궁교명의 미간이 구겨졌다.
“남궁교명이 의천관주의 직전제자인 걸 모르나? 벌써 검사(劍絲)를 뽑을 줄 안다고 하더군.”
“벌써 기운을 다룰 줄 안다고?”
“흥, 그러는 자네야말로 남궁구가 창서각주의 독자라는 걸 잊었나 보군. 창서각이 어떤 곳인가? 남궁의 모든 무학이 다 있는 곳인데, 남궁구가 어릴 적부터 읽어 온 무학만 수백 권일 걸세!”
“아, 이 사람아, 읽는다고 다 익힐 수 있던가? 그럼 창서각주가 천하제일인이었어야지!”
“답답한 사람. 영재 교육도 모르나? 영재 교육?”
“교육? 그러는 자네는 의천무학관 교육 모르나?”
구경하는 사내들의 언성이 높아지며,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 모른 척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남궁교명과 남궁구를 비롯한 참가자들의 귀에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헉! 저, 저기!”
“오, 소, 소……!”
자신들끼리 언성을 높이던 관중이 더 이상 함께 말을 잇지 못했다.
궁금해서 고개를 돌리기 전에, 은은한 바람과 숲의 향기가 남궁교명과 남궁구의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맑은 목소리.
“사람들이 뭘 모르네. 그냥 둘 다 콱 떨어지면, 꼬라지가 더 볼만할 텐데.”
“……!”
놀란 남궁교명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던 차에, 옆에서 남궁구가 반갑게 인사했다.
“여어, 왔어?”
설마 했는데, 정말 남궁진화였다.
“그렇게 넋 빼고 있다가는 정말로 떨어질 거야, 고맙게도.”
“이……!”
순간, 뭐라 말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또 자존심이 상했다.
“뭣도 모르는 천것들이 떠드는 소리에 기고만장하지 마라!”
남궁교명이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제법 컸는지, 함께하던 참가자들은 물론 뒤에 있는 관중석에서도 몇몇 이들이 남궁교명을 보았다.
“음, 난 그냥 앞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 준 것뿐인데.”
당황하는 남궁교명을 보며, 진화가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이제 모두 일렬로 대연무장을 오르고 있는데, 남궁교명 때문에 줄이 정체되어 있었다.
‘등-신.’
남궁진화가 입 모양으로만 욕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 * *
진화의 입꼬리에 미미한 미소가 걸렸다.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였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눈빛과 표정으로 속내를 고스란히 내보이는 남궁교명을 보고, 진화는 그가 이전에 자신이 겪었던 소가주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확인한 결과, 역시나였다.
‘이전의 소가주는 뱀같이 교활했는데, 지금 이놈은 아직 미숙하구나. 눈빛으로 기분을 훤히 드러내고, 오만한 성정은 조금만 건드려도 불뚝대는군. 제멋대로 귀하게 큰 도련님 그대로야. 아직…… 정치(政治)는 배우지 못했나?’
진화는 그의 옆옆 비무장에 위치한 남궁교명에게서 냉정하게 시선을 돌렸다.
이전 생에선 성인군자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교활하게 웃던 사내가 지금은 그저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게 확인되었으니.
더 성장하기 전에 치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번엔 남궁자소처럼 흔적을 남기면 곤란하겠지만.’
진화의 시선이 바로 옆에서 비무를 진행하게 된 왼손잡이 검수를 향했다.
그가 바로 어린 시절 진화에게 오른팔의 혈맥이 태워졌던 남궁자소였다.
서평원장에서는 밀려났지만 여전히 이장로의 돈과 인맥으로 서평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아버지 덕에, 남궁자소는 의천무학관에서 좌수검을 익혀 예선을 통과해 있었다.
진화의 생각보다 재능이 뛰어난 모양이었다.
‘끈질기게 붙어 있네. 마치 제 운명을 찾아가듯 창궁무애단에 들어갈 수 있는 첫 관문에 다시 와 있는 걸 보면. 그런데 어쩌나……. 끊어진 실을 묶는다고 다시 이어지진 않는 것을.’
진화의 입꼬리에 슬쩍 비웃음이 걸렸다 사라졌다.
이제 남궁자소에겐 완전히 신경을 꺼도 된다.
왜냐면 남궁자소의 다음 상대가 바로 남궁구였기 때문이다.
진화는 남궁자소의 운명의 사다리를 직접 걷어차 주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가 걷어차야 할 것은 남궁자소의 운명만이 아니었다.
“비무 시작한다! 좌, 남궁세가 의천검주의 제자, 남궁진화!”
“와아아아아-!”
진화의 소개에 사람들의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진화는 이전, 남궁교명의 수작에 떨어져야만 했었던 이번 선발대회를, 이번에는 최대한 당당하게 올라갈 작정이었다.
“우, 의천무학관 소속, 장이명! 서로 고의적 살인은 할 수 없다! 미리 밝힌 암기가 없으니, 독과 암기는 쓸 수 없다! 시작하라-!”
심판의 말과 동시에.
파지짓-!
진화의 검에 푸른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노, 뇌전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은 눈앞에서 전설을 목격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진화가 원하던 반응이었다.
벌써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상대에게 쓰긴 아까웠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제 존재를 알릴 때였기 때문이다.
‘처음은 이게 좋겠지. 천뢰우전(天雷遇電)-!’
진화가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장이명의 검을 때렸다.
퍼-엉!
“우아악-!”
검과 검이 부딪히면서 푸른 번개가 번뜩이고, 장이명은 비명과 함께 연무장 밖으로 떨어졌다.
천뢰우전은 이전에도 진화가 세상에 등장할 때에 선보인 무공으로, 그를 최초로 뇌왕이라 불리게 해 준 것이었다.
* * *
“와아아아아-!”
잠삼현 전체가 천둥이 치듯 함성이 진동했다.
천뢰제왕검법은 제왕무적검법과 함께 남궁세가의 상징과도 같은 검법이었다.
제왕무적검법이 남궁이 그리는 창궁의 포용력이라면, 천뢰제왕검법은 남궁이 닮고자 한 창궁의 엄중함이라.
호사가들은 제왕검이 남궁세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의로움이라면, 천뢰검이야말로 남궁세가가 숨긴 진정한 무서움이라 불리었다.
최근 명맥 보존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곤 하지만, 현재까지도 남궁세가에서 제왕검 남궁강에 견줄 만한 명성을 지닌 사람은 의천검주 남궁호명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남궁진화가 그 뇌전을 뿜었다.
“나, 남궁진화 토, 통과!”
심사를 보고 있던 창궁무애단원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함성이 그치지 않았다.
진화는 통과 선언을 듣자마자 몸을 돌려 연무장을 내려갔다.
도중에 저를 쳐다보던 남궁교명의 시선을 느꼈으나, 진화는 그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남궁진화! 남궁진화!”
“남궁세가에 새로운 뇌전이 나타났다!”
“남궁 소공자! 최고다!”
화려한 등장과 전설의 재현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화의 편으로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진화는 오롯이 제게 돌아선 여론을 느끼며 당당하게 연무장을 내려왔다.
그때, 관중 사이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남궁진혜와 천화정 가솔들 그리고 어머니 팽연화의 모습을 발견했다.
“으아악! 이겼어! 쟤! 쟤가 내 동생이야! 내 동생이라고!”
“도련님-! 도련님, 여기요-!”
“진화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알은척을 하는 이들의 모습에 귀 끝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기뻐하는 팽연화의 얼굴을 보자니, 그저 웃고 말았다.
“어머니-!”
‘당신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뇌왕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될 것입니다!’
진화의 환한 웃음에 다시 함성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