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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1)화 (31/425)

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지옥을 만들다(2)

갱옥.

남궁세가의 징벌방에 있는 감옥 중 하나로, 처음에는 다른 이름이 따로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갱옥은, 다른 감옥과 달리 가문 내부의 죄인이나 중대한 죄인을 가두어 놓는 곳이었다.

그곳이 속칭 ‘구덩이’라 불리는 이유는, 흉악한 죄인들에 한해 단전을 폐하거나 내공을 쓸 수 없도록 금제를 가한 후 머리를 제외한 목 아래 신체 부위를 땅에 묻어 놓기 때문이다.

내공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움직임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땅의 압력 속에 천천히 단련한 신체가 말라비틀어지도록, 그래서 갱옥 깊은 곳의 죄인은 세상에 잊히는 동시에 스스로 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으며 죽어 갔다.

갱옥에는 남궁세가에 포로로 잡힌 귀천성의 고수나 귀천성에 협조한 배신자들이 갇혀 있었고, 남궁경옥과 남궁필은 전쟁 이후에 최초로 이곳에 들어온 가문의 죄인이었다.

“혀, 형님…….”

벌써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남궁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궁경옥을 불렀다.

남궁경옥은 저런 남궁필이라도 같이 오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괜히 우릴 겁주려는 게다. 그냥 입 다물고 있다 보면, 의천관주께서 우릴 구해 주실 게다.”

“하, 하지만 형님, 아까 가주의 말 들었지 않습니까. 우리에겐 더 알아낼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흥! 그걸 믿느냐? 그 능구렁이가 알아낼 것이 없다면, 대체 이 갱옥에 우릴 뭣 하러 가둔단 말이냐? 횡령 따위로는 가문의 장로인 나를 죽일 수 없다! 의천관주께서도 그걸 아시니, 우리가 버티고 있다 보면 우릴 구해 주실 게야.”

“그런데 설마하니 교명이가 지기라도 하면…….”

“허어! 우리 교명이가 지긴 왜 진단 말이냐! 그 천한 양자 놈이 우리 교명이를 이길 리가! 게다가 설사 교명이가 지더라도, 의천관주는 우릴 버리지 못한다!”

남궁경옥의 목소리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때, 갱도 입구에서 빛이 들어왔다.

은은한 달빛마저도 갱도의 칠흑 같은 어둠에 비하자면 눈부시게 밝았다.

뚜벅, 뚜벅, 뚜벅.

덤덤한 발걸음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가주? 아니야, 가주라면 혼자 올 리가 없다.’

잔뜩 긴장한 남궁경옥과 남궁필이 숨 쉬는 것마저 잊은 채 눈을 부릅떴다.

곧 발소리의 주인이 작은 촛불 하나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를 본 남궁경옥과 남궁필이 눈에 띄게 안도한 얼굴을 했다.

“오, 칠장로였구려!”

“노, 놀랐잖습니까! 우리를 풀어주러 온 것이지요?”

남궁경옥과 남궁필이 반갑게 칠장로 남궁문을 맞았다.

그러나 칠장로 남궁문은 무표정한 얼굴로 촛불을 비춰 땅에 파묻힌 남궁경옥과 남궁필의 얼굴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에 남궁경옥은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다.

“혼자 온 것이오?”

“…….”

남궁경옥의 물음에도 남궁문은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남궁도의 명으로 누군가를 처리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남궁문은 처리 대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남궁경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일단 이 구덩이에서 좀 꺼내 주십시오! 갑갑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눈치 없는 남궁필이 옆에서 떠들었으나, 남궁경옥은 쿵쿵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서, 설말 우릴 버리려는 것이오?”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궁경옥의 말에 남궁필도 깜짝 놀라 물었다.

하지만 남궁경옥은 지금 남궁필을 챙겨 줄 여력이 없었다.

“말도 안 돼! 우리가 없으면 그 많은 자금과 인력은 어찌하려고!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우리 교명이가 있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이오!”

“혀, 형님, 우릴 버리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이렇게 당하고 있을 것 같으오? 내가 없으면 이제까지 자금이나 인력 지원은 모두 사라질 것이오! 내가 아무런 조치도 안 취하고 왔을 듯하오? 흥! 내가 죽으면 내 충복이 장부를 들고 남궁가주를 찾을 것이오!”

상황 파악이 끝난 남궁경옥이 분노를 토해 내다 나중엔 남궁문을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이럴 땐 그의 몸이 구덩이에 묻혀 있는 게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만약 그의 몸이 자유로웠다면 협박은커녕 벌벌 떨며 뒷걸음질 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남궁경옥의 협박에도 남궁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남궁필과 남궁경옥의 목소리만 커졌다.

“혀, 형님! 지금 의천관주가 우릴 죽인다는 말입니까? 왜요? 교명이가 있는데! 히이익! 사, 살려 주십시오! 시키는 건 뭐든 다 할 테니 살려만 주십시오! 아악! 살려 줘! 살려 줘어-!”

남궁경옥과 남궁문의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남궁필은 제게 다가오는 남궁문을 보며 공포에 이성을 잃어 갔다.

“망할! 손대지 마라! 장부는 진짜라고! 그게 밝혀지면 너흰 끝장이란 말이야!”

촛불 하나에 의지한 시야로 남궁필에게 다가가는 남궁문을 보고, 남궁경옥이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갱옥 밖엔 지키는 사람도 없는 것인지, 소리를 질러 대는데도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형님! 형님, 살려 줘요! 살려 줘! 형……!”

푹!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남궁필의 비명이 멈추었다.

동시에 죽음을 느낀 남궁경옥은 충격과 공포에 완전히 이성이 날아갔다.

“피, 필아? 으아아악! 이런 미친놈들! 죽여? 죽여? 지금껏 더러운 뒤를 닦아 준 게 누군데! 망할 놈의 늙은이! 의천관주라고 부르니까 지가 뭐라도 된다고! 제왕검 형제나 되니까 의천관주지, 사실 일개 무학관 노인네 주제에 감히! 죽여 버릴 거다! 제왕검이 언제까지 쥐 새끼처럼 뒤로 더러운 수작이나 부리는 노친네를 살려 둘 것 같나? 내 장부! 내 장부에 내 손으로 했던 더러운 것들만 기록되어 있는 것 같지? 천만에! 늙은이 놈이 먹는 비약! 일성상단 상단주가 뒷구멍으로 은밀하게 거래하던 것까지! 전부 다 있다고!”

남궁경옥은 어둠 속에서 붉은 피가 튄 얼굴을 드러내는 남궁문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남궁문은 여상한 태도로 다시 피 묻은 단도를 들어 보였다.

“그래서 죽는 거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스승님의 뒤를 밟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남궁문도 남궁경옥의 스승을 향한 악담에 성이 났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남궁경옥을 향해 사나운 이를 드러냈다.

“내, 내가 죽으면 장부는 바로 가주전 직행이야!”

남궁경옥의 발악에 남궁문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쯤 육장로가 벌써 네 집을 쥐 잡듯 뒤졌을 거다. 네 집 것들은 쥐 새끼 한 마리까지 다 죽여 버릴 것이니, 장부가 있더라도 그게 가주전에 갈 일은 없을 거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럼, 우리가 키우는 무사들이 그럼 어디에 쓰일 줄 알았더냐? 그러니 이제 잔말 말고 죽어. 네놈은 특별히 무례한 입을 찢어 죽여 주마!”

칠장로 남궁문이 살기를 드러내며, 정말로 입을 찢어 버릴 듯 단검을 남궁경옥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때, 차가운 칼날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바로 남궁문의 목덜미에서.

“그만.”

“무슨…… 너, 네가 왜!”

슬쩍 눈을 돌린 남궁문이 귀신이라도 본 듯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목에 칼은 댄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육장로 남궁백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짓이야! 대체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

믿을 수 없다는 남궁문의 물음에, 남궁백은 자포자기한 얼굴로 남궁문이 뒤를 볼 수 있게 비켜 주었다.

동시에 갱도가 훤해졌다.

환한 불빛 아래, 제왕무적단주 남궁경이 불빛보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새끼야, 손모가지 부러지기 전에 칼 놓고 기어 와.”

제왕무적단주 남궁경의 등장에, 남궁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육장로 남궁백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 * *

그리고 갱옥과 멀지 않은 숲.

본가의 숲, 청림은 진화에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 데에 최적의 장소였다.

처음 의천검주 남궁호명을 스승으로 맞이하러 갔을 때 그가 숲의 진법을 움직여 진화를 헤매게 만든 것처럼, 진화도 이제 음과 양의 기운을 따로 조절해서 진법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화의 손에 공기의 흐름과 기막이 형성된 청림은 안에서 나오는 어떤 소리도, 어떤 빛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진화는 이곳에서 안심하고, 남궁교명을 불러낼 수 있었다.

“내 말대로지?”

진화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남궁교명은 안에서 제왕무적단에 둘러싸여 나오는 육장로와 칠장로 그리고 남궁경옥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뒤, 들것에 흰 천으로 가린 누군가의 시체가 옮겨지고, 남궁교명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남궁필은 조금 늦은 모양이군.”

진화의 말에 남궁교명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가 해약을 한 알만 주던가?”

“……그래.”

“여기 나머지 해약이다.”

남궁교명의 말에 진화가 덤덤한 얼굴로 품에서 흰 주머니에 쌓인 것을 내주었다.

한눈에 보아도 작은 구슬 크기의 해약이 열 개는 넘어 보였다.

“말했듯이 혈기를 증가시켜 내공이 쌓이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만큼, 혈맥 안에 독기가 빠르고 많이 쌓이게 된다. 약의 독기뿐 아니라 혈맥 안에 자연히 쌓인 독기까지 해독해야, 진짜 해약이 되는 거지. 앞으로 남궁도는 그 약과 해약을 빌미로 네 발목을 잡을 거다.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복용하지 않아도 돼.”

진화의 말에 남궁교명은 한참 동안 주머니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진화가 묻었다.

“그래서, 어때?”

같은 물음.

일이 이렇게 되기 전, 진화가 남궁교명을 불러내 물었던 것과 같은 물음이었다.

“무슨 일로 날 부른 거지?”

잔뜩 날이 선 경계심과 대회로 인한 긴장감 때문에 말이 날카롭게 나갔지만, 남궁교명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는 듯 진화에게 적개심을 보였다.

그에 진화는 전서처럼 보이는 한 장의 문서를 남궁교명에게 던졌다.

“뭐야?”

짜증스럽게 문서를 펼친 남궁교명이 크게 동요하게 된 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이, 이걸…… 어떻게……!”

“어떻게겠어? 이미 가주님과 제왕무적단의 손에 모든 정황과 증거, 증인이 확보되었다. 그건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이장로는 곧 잡힐 거고, 네 집안도 망할 거다. 보면 알겠지만, 횡령의 액수가 크고 횡포가 장난 아니지. 심지어 가문 몰래 사병을 키우는 정황까지 포착되었으니 반란으로 처리될 수도 있어. 그럼, 네 집안은 풀 한 포기 살아남지 못할 거다.”

“그, 그…….”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사실 스승이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것이 과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스승의 말처럼 자신만 남궁진화를 이기면 그만이라 눈을 감았다.

하지만 진화가 보여 준 눈앞의 현실은 그의 상상보다 더 크고 끔찍한 일이 되어 있었다.

“남궁도는 너흴 버릴 거다.”

“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이미 네 아버지와 집안사람들이 잡혀갔을 텐데? 남궁도는 구해 줄 생각도 없을 테고.”

“스승님이 그럴 리가!”

진화의 말에 남궁교명이 크게 반발했지만, 눈동자는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궁교명 또한 제 아버지와 집안을 장기짝처럼 취급하는 남궁도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도와 일성상단 사이에 이상한 거래가 보였다. 아마도…… 네 스승은 영약이라며 네게 뭔가를 줄 거야. 사실 영약은 맞지만, 널 꼭두각시로 만들 영약이지. 해약은 두 가지. 내 생각에 넌 못 먹거나 한 알만 먹게 될 거다. 그리고 네 집안의 몰락 후, 넌 살아남더라도 가문의 역적이 되어 남궁도의 꼭두각시 그림자로 살게 되겠지.”

“그러니까, 네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냐!”

“만약 내 말대로 된다면, 결승이 끝난 후 다시 이곳으로 와라. 어때?”

그땐 부인했지만, 결국 진화의 말대로 된 후 남궁교명은 청림으로 왔다.

처음 진화의 말을 들었을 땐 가슴에서 열불이 일었지만, 아버지가 잡혀 들어간 후 남궁도가 약을 내밀었을 땐 분노조차 일지 않았다.

억지로 눈앞에서 약을 삼켜야 했다.

용솟음치는 약의 기운보다 복수심이 더 뜨겁게 타올랐다.

잠시 그때의 기분을 상기한 남궁교명이, 망설임 없이 진화가 준 흰 주머니를 열었다.

이 속에 든 게 독이라면 꼼짝없이 죽겠지만, 남궁교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을 씹어 삼켰다.

“넌…… 어떻게 알았지?”

“어른들의 말을 듣고 약의 존재를 알았지. 그리고 약의 쓰임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었지.”

거짓이었다.

진화가 약에 대해 안 것은, 이전 생의 기억 덕분이었다.

이전에도 남궁교명은 약에 의존한 채 남궁도의 훌륭한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전 무림에 그 ‘칠산가의 비약’의 존재가 알려지고, 남궁교명은 남궁도에게 이를 갈았다.

해약이 두 개였기 때문이다.

영구적으로 내공을 늘릴 수 있는데, 돈을 주면 살 수 있는 영약.

무림인들이 눈이 뒤집어질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제갈세가 소가주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비약을 만든 ‘칠산가’는 무림의 공적이 되었다.

문제는 약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 ‘칠산가의 비약’을 암암리에 복용해 온 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약이 하나인 채로.

결국 의선이 나서 나머지 해약을 만들어 내고, 공적인 칠산가가 멸문되며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때, 남궁교명에 의해 해약을 찾아 다녔던 사람이 바로 진화였다.

진화는 남궁도가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 남궁교명을 절정으로 만들어 정의무학관에 보낸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궁교명이 약을 삼키기만 기다렸다.

“내 손을 잡아. 그럼 복수는 네 손으로 하게 해 줄게.”

“……좋아.”

어차피 어떤 식으로 복수를 도울 거냐고 물어도 답해 주지 않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교명은 진화의 손을 잡았다.

“분명 남궁도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거라고 했던가?”

“지옥을 알게 될 거다.”

진화의 대답에 남궁교명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더 교활하고 더 이기적이게. 그래서 네놈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면, 남궁교명이 아니라 악마의 손도 잡겠다!’

드디어 기다렸던 복수를 하게 된 진화는, 남궁교명의 손을 웃으며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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