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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2)화 (32/425)

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지옥을 만들다(3)

처음, 죽어 가는 고아가 붙잡아야 하는 건 자신의 목숨밖에 없었다.

구원자는 아이들에게 목숨을 주었고, 그 대가로 아이들의 스승이자 주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에겐 많은 것이 생겼다.

주인이 하나둘 일을 맡길 때마다, 아이들에게는 옷, 먹을 것, 무공, 부와 권력 그리고 가족이 생겼다.

이제 아이들은, 지킬 것이 많은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일은 잘 처리했나?”

“예. 평범한 단도로 처리했으니, 언제나 그렇듯 심증만 둘 뿐 추적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잘했다.”

남궁문의 보고에, 남궁도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남궁도는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남궁백과 남궁문의 이러한 보고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남궁도는 홀로 의천관에 머물고 있던 남궁교명을 불렀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무척 유감이구나.”

“어떤 소식인지요?”

“후우.”

남궁도는 말을 하기 힘들다는 듯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남궁교명은 남궁도의 가증스러운 모습을 이를 악물며 겨우 참아 냈다.

“남궁가주가…… 미처 우리가 손을 쓰기도 전에, 어제 곧바로 이장로와 전 서평원장을 처결했다고 하는구나. 유감이구나, 교명아.”

“아……!”

남궁도의 말에 남궁교명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누가 보아도 슬픔을 참아 내려는 어린 사내의 모습이었다.

사실 남궁교명은 이대로 남궁도에게 칼을 빼 들까 두 눈을 감아 버린 것이지만.

‘악마 같은 늙은이! 정말로 아버지와 당숙을 죽일 생각이었구나!’

이미 남궁경옥만은 구함을 받았다는 걸 알았기에, 남궁도의 말은 그의 진의만 확인하게 된 꼴이었다.

‘하, 그래! 정말 모두 죽은 걸로 아는 걸 보면, 육장로와 칠장로도 확실히 가주의 손에 들어간 모양이네.’

남궁교명이 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나는, 이제 당신이 가주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치는 꼴을 구경만 하면 되는 건가? 때가 되면, 내가 그 목덜미에 검을 박고 똑같이 유감이라고 이야기해 주지.’

남궁교명이 두 눈을 뜨자, 그 안에는 붉게 선 핏줄과 함께 이글거리는 복수심만 가득했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복수심에 가득 찬 남궁교명의 모습에 남궁도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는 너를 곁에 두고 창궁무애단이나 제왕무적단에 넣으려 했다. 하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남궁세가에 남는 것은 네게 위험할 수 있겠구나. 남궁가주가 이장로를 그렇게 처결한 것을 보면, 여기서 더 이상 문제를 키우지는 않을 게다.”

‘여기서 덮을 작정이구나, 늙은이!’

“이곳은 이 스승이 막고 있을 테니, 너는 정의무학관으로 잠시 떠나 있는 것이 좋겠다.”

‘허!’

남궁도의 생각을 훤히 읽었지만, 이대로 수긍해 버리면 안 된다.

남궁도에게 의심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교명은 부러 복수심에 불타는 듯 소리를 키웠다.

“저는 아버지와 당숙의 복수를 원합니다!”

남궁교명의 반발에, 남궁도가 예상했다는 듯 그를 달랬다.

“안다. 어찌 네 맘을 모르겠느냐. 나도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을 미뤄도 늦지 않다. 조금 더, 조금 더 확실하게 준비를 하자꾸나.”

“그럼 이대로 저는 정의무학관에 가 버리면 끝이란 말입니까?”

“아니지. 정의무학관으로 가서 남궁진휘와 그 양자를 감시하고 있거라. 그곳에서 네가 할 일이 생길 것이다.”

“저는……!”

‘이런 미친 늙은이!’

남궁교명은 정말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걱정 마라. 복수할 기회는 이 스승이 만들어 주마.”

“……예, 저는 스승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상심이 클 테니, 처소로 가 쉬어라.”

툭. 툭.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남궁교명의 주먹을 보고도 별다른 의심 없이, 남궁도가 남궁교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자애로운 스승처럼.

남궁도의 처소를 나온 남궁교명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이기며, 남궁도가 두드린 어깨를 털었다.

아니, 그러고도 분을 풀지 못해 외투를 벗어 찢어 버렸다.

짜악- 짜악-!

“미친 늙은이, 나를 시켜 누굴 감시해? 결국 목적이 이거였군!”

남궁교명은 제 아비를 죽이고 저까지 이용하려는 남궁도에 치를 떨었다.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급하게 몸을 숨겼다.

더 이상 의천관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지, 남궁교명은 예민한 맹수처럼 숨을 죽인 채 인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모순적이게도, 기척을 죽이는 건 남궁도에게 가장 철저하게 배운 것이었다.

잠시 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배신자.”

“결국 자네도 그렇게 됐잖아! 아니, 오히려 난 아들놈의 뼈가 부러지는 걸 보고서야 움직였지만, 자네는? 말만 듣고 기어 나온 주제에 날 비난하는 겐가?”

“……젠장!”

칠장로 남궁문이 육장로 남궁백을 비난하고, 육장로 남궁백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오히려 잘되었을 수도 있어. 가주 쪽에서 그렇게 나온 이상, 이번엔 스승님도 힘들게 됐잖아. 우리라도 살아야지!”

남궁백의 말에 남궁문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지금은 깨끗하게 닦아 버리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제왕검이 나선 걸까?”

“그렇다면 더욱더 스승님께 기회가 없어지겠지.”

악의적이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남궁백의 평가에, 남궁문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도의 명령 때문이었지만, 참 오래도록 제왕검과 남궁가주의 곁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볼수록, 점점 불안감만 커졌다.

지금에 와서 남궁도를 쉽게 배신한 것도, 어쩌면 그들은 발을 뺄 기회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서로의 마음을 알았기에, 남궁백과 남궁문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지나가고.

나무 위에서 남궁교명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가 제집인 양 조심성 없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어 버린 남궁교명이었다.

“하! ……대단한 척을 하더니, 고작 저런 것들을 믿고 있었어?”

남궁도를 향한 싸늘한 비웃음을 남기며, 남궁교명은 넝마가 된 외투를 꾹 쥐고 처소로 돌아갔다.

* * *

남궁경옥을 구해 온 후, 남궁경은 남궁가주에게 장부 하나를 가져왔다.

남궁경옥이 주야장천 외치던 바로 그 장부였다.

“그런데 왜 이번에 일망타진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남궁경은 당연히 장부만 챙기고 남궁경옥의 목숨을 거둘 생각이었다.

횡령 규모나 죄질을 따지면, 당장 일가족을 반역죄로 죽여도 시원치가 않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장부를 살핀 남궁가주가 모든 진행을 멈추도록 했다.

“나도 이 기회에 남궁도까지 처리하려 했는데, 장부에 조금 이상한 것이 있더군.”

“이상한 것이요?”

“수많은 심마니 조직과 연계된 약재상 그리고 약재들. 전부 아귀가 맞는데…… 하나가 걸려.”

“하나요?”

“비약! 정체 모를 비약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었는데, 칠산가라는 이름이 한 번 등장한 후로 흔적이 없더군.”

“비약요?”

“칠산가라는 곳도 금시초문이지만, 두 장부를 비교해 보면 남궁경옥이 그걸 따로 알아보려고 엄청난 돈과 노력을 퍼부은 흔적까지 있단 말이야.”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이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살짝 질린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두 시진 남짓이었다.

자신이 대충 남궁경옥과 남은 일가를 감옥에 집어넣고 협박 조금 해 놓고 온 시간이.

그런데 그동안 가주 남궁성은 남궁경옥의 비밀 장부와 청해상단의 장부를 모두 파악하고, 두 장부의 연계점까지 찾아낸 것이다.

“청해상단의 총관으로 있던 장남과 주고받은 서신에 따르면, 그 비약이라는 것이 축기(築氣)의 속도를 높여 주는 영약이라는군.”

“축기 속도를요?”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 무인이 그렇지 않겠는가.

내공과 관련된 영약이라면 천 년 고승도 일으켜 세울 일이라.

만약 이 이야기가 진짜라면, 또다시 무림에 피바람이 불어올 것이었다.

아니, 사실은 벌써…….

“음?”

“역시 이상하지?”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짓는 남궁경의 모습에, 남궁가주가 웃으며 물었다.

“그 정도 약이면, 이름도 없는 문파 따윈 멸문이 되었어도 벌써 되었어야 정상이지. 하지만 그게 가짜라고 하기엔, 남궁도가 그 약에 들이는 공이 보통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남궁도가 어떤 인간이냐. 돌다리도 남의 손으로 두드려 볼 인간이 남궁도다. 그런데 일성상단을 통해 제가 직접 거래를 하고 있어.”

“그래서 어쩌게요?”

“남궁도의 눈과 귀는 가렸으니, 남궁경옥과 일성상단을 움직여서 약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일성상단주 하나만 움직이기엔, 그 능구렁이도 믿을 수가 없거든.”

“일이 새어 나가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정말로 피바람이 불지도 모릅니다.”

무림의 피바람도 피바람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피바람이 남궁세가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궁가주도 조심스러운 것이 바로 그 부문이었다.

“그러니 비밀리에 거래를 추적해야지. 네가 직접 나서 줘야겠다.”

“음, 아무래도 그래야겠군요. 그런데 정의맹엔 알리지 않을 겁니까?”

“정의맹이라…… 알려야겠지.”

대답을 하면서도 남궁가주의 고심이 깊어 보였다.

남궁가주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남궁경도 눈치챘다.

“말이 샐 것을 걱정하는 겁니까?”

“아니, 말이 우리 쪽에서 새어 나가는 걸 걱정하는 게다. 이후에 새어 나오는 것이야, 정의맹의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지.”

남궁가주의 장난스러운 말에 남궁경도 피식 웃고 말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맹주에게 어떻게 알릴까 하는 것인데…… 진화가 어떻겠느냐?”

남궁가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진화요?”

남궁경이 화들짝 놀랐다.

“안 됩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사안인데……!”

하지만 남궁가주도 남궁경 못지않게 진화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 위험한 사안에 너와 진화가 동시에 움직이면, 사람들의 이목이 네게 가지 않겠느냐?”

남동생에 대한 애정은 조금 식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남궁가주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남궁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가뜩이나 애들끼리 정의맹까지 보내는 게 걱정되었는데, 그리되면 남들의 이목을 돌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 가뜩이나 진화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가지는 문파들이 있는데, 그들의 시선까지 돌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진화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라, 남궁경도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비밀을 지킨다고 해도, 언제든 변수가 발생할 수 있었다.

아예 남궁경 자신이 시선을 끌고, 진화는 일정대로 정의무학관으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였다.

게다가 정의무학관에 도착한 진화가 가문의 어른에게 인사를 하는 식으로 정의맹의 남궁조를 만난다면, 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안을 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음, 그래도 혹시 진화가 싫다고 할지 모르니까, 내일 본인에게 물어보고 결정합시다.”

다음 날.

진화는 점심 만찬이 끝난 뒤 아버지 남궁경과 함께 남궁가주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그곳에서 진화는 생각지도 못한 임무를 듣게 되었다.

‘합당한 판단이군. 그런데 가주님이 벌써 약에 대해 알아냈다고? 한참 뒤에나 밝혀질 일이었는데……. 분명 말이 새어 나가면 위험한 일이야. 하지만 그만큼 가주님과 아버지가 나를 믿고 맡긴다는 거니까.’

“맡겨 주시면, 제가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이미 약에 대해 알고 있던 진화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임무를 받아들였다.

이전 생에선 남궁가주와 아버지에게 평생 누만 끼쳤다.

그런데 지금은 중요한 임무도 맡으며 남궁가주와 남궁경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진화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진화의 모습에,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시선이 불안하게 떨렸다.

-어휴, 우리 진화, 이렇게 말간 얼굴로…… 비약이 알려지면 버러지들이 벌떼같이 달려들 텐데, 사안의 심각함을 아직 실감을 못 하는 듯하구나. 이러다 누가 웃으면서 물어보면 넙죽 알려 주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전 이런 녀석을 정의무학관에 보낼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가슴이 뻑뻑합니다.

-진혜한테 데려다주고 임무지에 가라고 할까?

들소 같은 딸을 임무지에서 이탈시키는 것과 꽃 같은 조카가 경로 이탈되는 것을 두고, 남궁가주가 다시 고심에 빠졌다.

* * *

대회 우승자가 정해지고 나면서 일정이 바빠졌다.

잠삼현에서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까지 가려면, 말의 걸음으로 석 달 거리라.

경공으로 내달리지 않는다면 여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선발자들은 남궁세가의 오 대 무단과 정의무학관을 두고 선택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이미 정의무학관에 가는 것이 결정된 진화는, 입관 준비 명목으로 어머니와 남궁진혜에게 끌려다녀야 했다.

앞으로 삼 년의 성장까지 대비한 폭풍 구매에는, 효심으로 똘똘 뭉친 진화마저도 출발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게 할 정도였다.

물론, 출발일 아침에는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깊은 자책감을 느꼈지만.

아쉬운 건,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휴우, 내 내년엔 반드시 정의무학관에 휴관 제도를 도입하도록 건의해야겠구나!”

“그걸 왜 지금 생각하신 거예요?”

딸 남궁진혜의 항의에, 진화의 볼을 쓰다듬는 남궁가주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집에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라도 그냥 돌아오렴.”

“내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누가 괴롭히면 무사부로 있는 남궁조 당숙을 찾거라! 알겠지?”

이미 지학(志學)도 전에 경지를 넘은 아들에게 하는 당부치고는 무척 의지박약하고 타인 의존적인 충고들이었다.

진화는 그저 가족들의 마음만 받아들였다.

그렇게 배웅만 한 시진을 받은 후에야, 진화는 겨우 정의무학관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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