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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3)화 (33/425)

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지옥을 만들다(4)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는 일이 없는 남궁구가 오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공주님 행차냐?”

“과장이 심하군.”

남궁구의 질문에 진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때,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아, 올해도 정의무학관에 가는 입관 지원자들이라는군.”

“아니, 저기 마차 말일세.”

“아! 나 저런 거 본 적 있어요! 오왕 전하 행차 때 공주님이 탔었어요!”

“그래? 어디 가는 길에 호위라도 하나? 그나저나, 우리 소공자님은 어디 계시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이어졌지만, ‘공주님’ 소리를 들은 진화의 귀는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앞에는 어느새 남궁구가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이래도 공주님 행차가 아니라고?”

“……어머니께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보낸다고 하셔서 하는 수 없었다.”

진화는 억울한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남궁구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창을 열고 인사라도 해 주지그래? 오늘 입관 지원자들 출발 날이라고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왔는데. 새벽부터 소찬회의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렸다고.”

어쩐지 놀리는 듯한 말투에 진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남궁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여론을 만들면서 내 편이 되어 주었던 이들이니, 인사 정도는 하는 것이 옳겠지.’

진화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는 남궁구를 두고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와아아아아-!”

“소공자님이시다-!”

“어디? 어디? 오, 소공자님, 잘 다녀오세요! 많이 배우고 오세요!”

사람들의 열렬한 배웅에 진화가 손을 흔들어 답했다.

이전 생에도 진화는 사람들에게 꽤 많은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이전의 진화는 사람들의 환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환호에 진화가 생각에 빠졌다.

‘이전 생에서는 어쨌든 내가 저들을 지켰으니까 여상하게 생각하고 넘겼는데, 지금은…… 저들은 그저 내가 남궁의 소공자이기에 환호를 보내 주는구나.’

진화가 보여 준 화려한 뇌전이나 호감을 사는 외모도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진화가 남궁세가의 직계이기에 받는 무조건적인 호의는 분명히 존재했다.

누대를 거쳐 남궁세가가 이곳을 지키며 쌓아 온 신뢰와 경외였다.

‘남궁세가의 본가가 무너졌을 때, 잠삼현의 절반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 남궁세가가 저들을 지켰듯, 저들 또한 남궁세가를 지키고 있었음이야.’

한 번의 생을 돌고 남궁세가를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진화는 비로소 이곳을 지켜야 할 이유를 얻은 듯했다.

저곳의 작은 아이가, 진화가 지켜야 할 남궁세가의 미래일 수 있었다.

진화는 눈이 마주친 아이에게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우아, 공주님이 진짜 예뻐요!”

아이가 놀라 소리치는 목소리를 들으며, 진화가 슬며시 창을 닫았다.

바로 앞에서 남궁구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파지직-!

“푸하하하하, 아얏, 아, 따가! 야! 이러기냐?”

“흥.”

진화가 흘린 뇌기에, 남궁구가 펄쩍펄쩍 뛰었다.

남궁구는 억울한 듯 항의했지만, 진화는 가볍게 무시했다.

“야, 유일한 말동무를 구박해 봐야 네 손해라고?”

“무슨 말이야?”

“이 넓디넓은 마차에 왜 너랑 나랑 둘만 있고, 다른 녀석들은 불편한 말을 타고 있겠냐?”

“글……쎄?”

“다들 이 휘황찬란한 마차 안에는 부끄러워서 못 들어오는 거지. 제정신인 남자면 이 꽃마차에 들어와지겠냐? 교명이 놈이 제일 멀리 떨어져 있더라.”

“…….”

남궁구의 말에 마차 안을 둘러본 진화는 달리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 마차는 애초에 남궁세가의 영애인 남궁진혜를 위한 것으로, 마차의 지붕과 창문에는 화려한 화초화뿐 아니라 갖가지 수술과 꽃장식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안에도 꽃분홍색 휘장과 꽃 자수가 놓인 보료가 깔려 있었으니.

남궁가주의 바람과 집착이 담긴 마차는, 남궁진혜조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슬픈 사연이 있었다.

“궁둥이 아픈 놈들은 차라리 뛰어갈 거래.”

이번 남궁세가 선발대회 통과자들 중 정의무학관 입관 지원자는 스물두 명으로, 다른 때보다는 많은 수준이었다.

거기에 일행의 길을 안내하고 짐수레를 끄는 상단 소속 표사 네 명을 포함하여, 일행은 총 스물여섯 명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진화가 타고 있는 마차에 당당하게 접근하는 사람은 남궁구 하나뿐이었다.

* * *

잠삼현에서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까지는 매우 먼 길이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수련이 일상인 무림인들이라도, 그 길을 전부 걸어가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관도처럼 잘 닦인 길이 있는가 하면, 산을 타고 고개를 넘는 험한 길도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먹고 자는 것을 노숙으로만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정의맹까지는 마차와 말이 다닐 만큼 길이 충분히 넓었지만, 중간중간에 노숙을 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진화의 마차는 모두의 환영을 받았다.

그 꽃마차에, 짐수레에 실린 식자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질 좋은 육포와 귀한 밀가루, 쌀, 말린 야채에 각종 조미료, 중요한 냄비까지 없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아, 도련님, 요리까지 할 줄 알았어?”

“이 정도는 기본이니까.”

진화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남궁구를 비롯한 다른 일행에겐 그게 아니었다.

다들 보통 이상의 집안에서 유아기부터 무공 수련만 하며 지내 온 사내들뿐이라, 모두 육포와 딱딱한 떡이나 깨어 먹을 거라 각오하고 있던 터였다.

일행은 뜻밖의 횡재라도 만난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만 보고 있었다.

“완전 맛있습니다, 소공자님!”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궁 공자!”

선발대회에서 진화의 상대였던 호명기와 관서겸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진화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들은 대회 때부터 진화에게 호감을 드러내었는데, 지금은 소찬회 회원이라도 된 듯 진화를 찬양했다.

호명기와 관서겸이 어렵지 않게 진화에게 말을 거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부럽다는 듯 보았다.

진화는 뻘쭘하게 서 있는 이들에게도 웃으면서 고기죽 한 그릇씩을 권했다.

“그렇게 있지들 말고 어서 들어요.”

“가, 감사합니다, 소공자님!”

진화가 웃으며 자신이 끓인 고기죽을 건네자, 다른 일행도 감격스럽다는 듯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일행 대부분은 가깝든 멀든 남궁세가와 관계가 있는 이들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잠삼현 출신들은 진화를 ‘소공자님’이라 부르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음식을 맛본 후, 돌아가면서 서는 야간 경계에서 진화를 제외할 것을 주장했다.

남궁구는 전부 소찬회가 되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남궁세가 입관 지원자들 중 진화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 이들은 단둘, 아니 셋뿐이었다.

진화를 놀리듯 ‘도련님’이라 부르는 남궁구와 여전히 당당하게 ‘남궁 공자’라 부르는 관서겸, 그리고 아예 말을 걸지 않는 남궁교명까지.

남궁가주는 선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남궁교명의 재능을 아껴, 특별히 집안과 상관없이 정의무학관 입관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남궁경옥이 횡령으로 잡혀갔다는 소문이 나며, 일행 속에서 남궁교명은 은근히 소외되고 있었다.

오늘도 남궁교명은 제일 먼저 고기죽을 먹고, 따로 수련을 위해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우, 하여튼 누가 남궁교명 아니랄까 봐, 독기 봐라!”

마차 안에서 쉬고 있던 진화는, 혀를 차며 들어오는 남궁구를 보았다.

벌써 익숙하지 않은 노숙이 일주일째라, 다들 조금씩 몸에 피곤이 쌓였을 때였다.

남궁구는 이런 때마저도 쉬지 않고 수련하는 남궁교명에게 질린 듯 고개를 내저었다.

“완전히 독기 충천이야. 해약이 아니라 독약을 준 거 아니야?”

남궁구의 말에 진화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입조심하랬지.”

“괜찮잖아. 듣는 귀도 없는데…… 것보다 진짜로 같이 가도 되는 거야?”

“남궁도와 남궁교명의 신뢰는 완전히 깨어졌고, 남궁교명의 복수심은 완전히 남궁도를 향하고 있지. 게다가 남궁경옥과 가족들이 살아 있는 한, 좋든 싫든 우리 쪽에 협조할 거다.”

남궁경옥과 남궁교명은 이미 남궁가주에게 굴복하고 충성을 다짐했지만, 진화의 말에는 그들에 대한 어떤 신뢰도 없었다.

심지어 해약을 주면서 남궁교명을 끌어들인 사람은 진화 본인이면서 말이다.

남궁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화를 살폈다.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나이.

하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모습이나 남궁교명을 끌어들이는 모습에서, 겉보기와 다르게 상당히 영악하고 독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성격을 숨기지도 않는데……. 설마 다들 모르는 척을 하는 걸까?

사랑받고 컸으면서 무뚝뚝한 성격이고, 심지어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겐 말투도 까칠하다.

아니, 그건 자신에게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확실한 사실은, 남궁진화가 가족과 남궁세가에 무척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것은 전부 가족과 남궁세가에 적의를 보는 사람들 한정이라는 것이었다.

‘이상하고 위험한 녀석인데, 위해한 것 같진 않고. 은혜 갚는 제비 같은 건가? ……흠, 깊게 생각하지 말자. 사실 어릴 적에 제왕검께서 직접 데려와서 수상쩍을 여지도 없잖아. 단순하게 생각하자고. 제비가 알고 보니 예쁘고 사나운 독수리였던 것뿐인 거야.’

남궁구는 자꾸 깊어지는 생각을 떨쳐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었으니.

“넌 대체 해약에 대해 어떻게 안 거냐?”

진화는 해약을 만들기 위해 남궁구를 끌어들였고,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어마어마한 일에, 재미에 환장한 남궁구가 덥석 미끼를 물었다.

남궁구가 남궁교명에게 순순히 져 준 이유였다.

하지만 실컷 있다 지금에 와서 그런 걸 묻는 남궁구에, 진화가 의아한 듯 남궁구를 보았다.

그러다 곧 심드렁하게 답했다.

“잘 몰라.”

“뭐?”

남궁구가 황당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진화는 의선이 만들어 낸 두 번째 해약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을 뿐, 진짜 해약의 조제법 따윈 알지 못했다.

그저 ‘이전 생에 남궁교명에게 들었던 대로’ 혈맥에 쌓인 독기를 제거하는 비슷한 약을 부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저 녀석도 모르지.”

진화가 시원스레 웃으며 말했다.

촛불 속에서도 빛나는 얼굴이 환하게 웃어 보이자, 남궁구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련님, 넌 진짜…… 미친놈이냐?”

“네가 할 말은 아니잖아.”

진화가 불쾌하다는 듯 남궁구를 보았다.

진화는 아직 ‘진짜 미친 짓’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진화는 어른들의 눈을 의식하느라 무던히 참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궁도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의 목숨을 거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남궁교명을 속일 약을 만들 때조차도 남궁구의 손을 빌려야 했다.

오히려 세가를 떠난 지금부터, 진화는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터였다.

“너, 나는 어떻게 믿고, 약을 만들어 오라고 했냐?”

“창서각의 남궁구. 그거면 되지 않아?”

“……!”

장난스럽게 물었던 남궁구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너, 너…… 뭐 아냐?”

“글쎄.”

씨익 웃는 진화에, 남궁구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 되었다.

“오- 씨, 너 뭐야? 어떻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냥 조용히 따르면, 무사히 매가 되게 해 주지!”

“아아아아악! 뭐야, 너!”

남궁구가 경기를 하듯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곧, 눈동자에 날카로운 예기를 세우고 진화를 보았다.

“하나만 묻자. 목적은 청명하냐?”

“아니, 열렬해. 남궁과 가족들을 해치는 건 모조리 지옥으로 넣어 줄 생각이니까.”

“…….”

진화와 눈을 마주한 남궁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와아……!”

짧은 침묵 후에 터진 탄성.

“남궁교명, 지독한 놈에게 걸렸네. 어떡하냐. 큭큭큭!”

남궁구가 재미있다는 듯 큭큭거렸다.

하지만 진화는 웃지 못했다.

‘칠산가의 비약이 이전보다 세상에 빨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게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이전 생에서 칠산가의 비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바로, ‘제갈세가 소가주의 죽음’ 때문이었다.

진화는 남궁진휘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역사가 크게 뒤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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