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35)화 (35/425)

남궁마제

진짜 진(眞) 재앙 화(禍) : 이 구역의 진짜 미친년은 놈이다(2)

그렇게 방이 없었던 걸까.

늦게까지 잔 진화와 남궁구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내려갔을 때,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제갈소현과 그녀의 호위들이 여남객잔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화를 보자마자 제갈소현의 얼굴이 파사삭- 구겨지는 것을 보면, 절대 자의로 남은 건 아니지 싶었다.

“정말로 남은 방이 여남객잔 말고는 없었던 모양이군.”

남궁구가 귀찮게 되었다는 듯 말하는 사이, 갑자기 진화가 환하게 웃으며 제갈소현에게 다가갔다.

남궁구가 황당한 나머지 진화를 부르는 것도 잊어버렸다.

진화를 발견한 제갈소현의 얼굴이 소태를 씹은 구겨지고 있었지만, 진화는 어제의 난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제갈 소저, 역시 이곳에 머무르기로 하셨나 보군요. 다른 일행은 모두 쪼개진 건가요?”

누가 봐도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제갈소현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진화.

남궁구는 진화를 보며, 세상에 시비를 거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건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잇, 놀래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남궁구가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을 남궁교명이 한심하게 보았다.

“너야말로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말을 거는 거냐!”

“나도 너한테 말을 거는 건 질색이야. 단지, 저거 하는 꼴이 하도 이상해서 묻는 거다.”

한 달 동안, 처음엔 오로지 복수에만 몰두하는 듯 보였던 남궁교명은 어느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남궁교명은 오만한 자존심만큼 남궁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그는 제갈 따위에게 모욕을 받고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화가 수상한 수작을 부리는 게 은근히 반가운 눈치였다.

“어제 저 여자가 소리 지르던 거, 분명 들었을 텐데 그냥 넘어가는 게 이상하긴 했어.”

남궁교명의 생각엔 남궁구도 일부 동의했지만, 다만 조금 걸리는 것은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네가 보기엔 누가 괴롭히고 있는 걸로 보이냐?”

“뭐? 당연히…….”

남궁구의 물음에, 남궁교명은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남궁진화는 시종일관 즐거워 보였고, 남궁진화의 말끝마다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는 쪽은 제갈소현이었기 때문이다.

“……곧 저 여자가 폭발할 듯하니, 반격을 준비하는 것으로 하자.”

“그게 좋겠군.”

남궁교명은 말을 전하기 위해 호명기와 관서겸에게 갔다.

그리고 남궁구는 개운한 얼굴로 돌아오는 진화를 보며 실소를 지었다.

그때, 진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구, 제갈 소저와 같이 밥 먹자!”

“……미쳤어?”

남궁구가 고개를 돌리자, 제갈소현이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 * *

“시, 실례하겠습니다.”

남궁구가 살얼음이 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비집고 자리에 앉았다.

불편한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는 제갈소현과 제갈소천대 소속으로 보이는 호위들 넷.

‘한 사람을 빼고는 수준이 별로군. 선발자 구색을 맞추려고 신입으로 채운 건가?’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만만한 인상들이라 걱정 없었다.

문제는, 그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남궁진화.

‘왜 무해한 애처럼 굴고 있지? ……불안하다. 아니, 불길해!’

남궁구는 진화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라면.

‘이 녀석, 최선을 다해서 제갈 소저의 화를 돋우고 있구나!’

남궁구가 알기로, 진화가 꽃같이 굴 땐 누군가에게 재앙이 닥쳤다.

어릴 적 오른팔이 박살 난 남궁자소가 그랬고, 남궁교명은 집안이 풍비박산 난 상황에서 미끼로 쓰이고 있었다.

제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는 말 한마디도 곱게 해 주지 않는 진화가, 방긋방긋 웃고 있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뭔지 몰라도 꿍꿍이가 있는 건 확실해.’

평생 닦아 온 남궁구의 눈치가 살벌한 식탁 위를 날아다녔다.

그러다 제갈소현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남궁구는 씨익 웃으며 동파육을 집었다.

“아유! 도련님, 이 동파육 좀 드십시오. 맛이 괜찮네요.”

간드러지는 목소리.

남궁구가 마치 어린아이를 챙기듯, 동파육뿐 아니라 식탁 위에 놓인 요리들을 진화의 접시에 덜어 주기 시작했다.

“아이쿠, 이 어향육파는 껍질이 정말 고소하게 튀겨졌네요. 우리 도련님, 젓가락질이 좀 힘드시니 제가 드릴게요.”

남궁구는 제갈소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꿋꿋하게 진화를 챙겼다.

그리고 진화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어설픈 젓가락질로 그걸 입에 넣었다.

부서진 생선살을 먹을 땐, 접시를 입에 물기도 했다.

쩝쩝, 쩝쩝.

진득하게 달라붙는 소리.

입가에 묻히고, 바닥엔 흘리고.

씹을 때엔 가끔 안의 내용물이 보였다.

그런 진화의 모습에 제갈소현의 인상이 점점 더 찌푸려졌다.

‘더, 더럽게! 남궁에선 대체 저 천한 놈을 얼마나 오냐오냐한 거야? 추접스럽게 먹는 꼴이며 젓가락질 하나 못하는 것까지! 못 배워 먹은 놈! 태생이 천해서 가르치는 걸 포기한 거야?’

식(食)이라는 행위가 생존을 넘어 유희가 된 계층이 생겨난 이후로, 어떤 것을 어떻게 먹느냐는 생각보다 적나라하게 그 사람이 속한 계층을 드러내는 법이었다.

귀하게 태어나 귀한 것만 먹은 제갈소현은, 식탁에서 지킬 것이 목숨이 아니라 품위라 배웠다.

그래서 품위 없는 진화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정말로 역겨운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 밥 좀 주세요.”

“나리, 밥 좀 주세요.”

객주와 점소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마을의 어린 거지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저 냄새나는 것들은 뭐야!”

제갈소현이 거지들의 몰골에 코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첩첩산중.

역겨운 광경도 모자라 진짜 토할 것 같은 냄새라니.

최악의 식사였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남궁세가의 양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여기로 와!”

제갈소현은 경악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진화는 제갈소현의 시선 따윈 전혀 모른다는 듯 아이들을 불렀고, 심지어 그들을 자리에 앉히기까지 했다.

“이거 먹어!”

“진짜, 먹어도 돼요?”

“응! 먹어도 돼! 형, 음식 되게 많아!”

거지들에게서 나는 냄새에, 제갈소현은 물론 그 호위들까지 코와 입을 막았다.

그러나 진화는 냄새를 못 맡는 사람처럼 웃으며 아이들의 앞으로 음식을 몰아주었다.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은 급하게 음식을 먹었다.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 광경에, 참다못한 제갈소현이 헛구역질까지 했다.

그때, 고개를 돌린 제갈소현에게 자리를 내주던 호위 무사에 아이의 몸이 밀려났다.

동시에 아이의 팔이 접시를 건드리고, 식탁 위에 위태롭게 있던 음식 접시가 떨어졌다.

“꺄악-!”

음식 접시가 하필 제갈소현에게 떨어지고, 제갈소현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이, 멍청한 것이-!”

따-악!

“……!”

매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을 날린 제갈소현은 물론 호위 무사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남궁구와 식당 안에 있던 남궁세가 일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갈소현의 손찌검에 맞은 이가, 다름 아닌 진화였기 때문이다.

“무, 무슨……!”

제갈소현이 제 손과 아이를 감싸 안은 진화를 번갈아 보았다.

반사적으로 날린 손에 아이가 아니라 진화가 맞은 것에, 제아무리 그녀라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아?”

“…….”

진화의 물음에, 아이도 놀랐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가 괜찮다는 걸 확인한 진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소현을 보았다.

연약하게만 보였던 큰 눈동자가 흑요석으로 된 비수처럼 제갈소현을 찌르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내, 내 잘못이 아니야!”

진화와 눈이 마주친 제갈소현이,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방글방글 잘만 웃던 얼굴이 무표정하게 저를 보자, 그게 화를 내는 것보다 더 큰 비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왜 쓸데없이 거지를 감싸 안고 난리야? 내 탓이 아니야! 애초에 더럽게, 왜 저런 거지를 식탁으로 데려온 거야!”

애초에 제갈소현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을 때부터, 식당 안의 시선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제갈소현의 말을 모두가 듣고 있는 것이다.

거지 아이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갈소현을 보며 수군거렸다.

“뭐, 뭐야!”

어디서나 떠받들어지며 자란 제갈소현에겐, 불쾌함과 혐오가 담긴 시선을 받는 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진화가 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남현에는 고아가 많더군요.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에도 큰 여파가 없던 곳이었는데, 지난 귀천성의 습격으로 급격하게 고아가 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뭐!”

“여남현은 본래 제갈세가의 영역이었죠.”

“뭐?”

“귀천성의 공격 때, 제갈세가는 전략상의 문제로 여남현을 버렸죠. 하지만 그 때문에 저 아이들은 부모와 집을 잃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갈세가의 영애께서, 고작 음식으로 화를 내신 겁니까?”

진화의 말과 동시에, 본격적인 비난의 시선이 제갈소현과 제갈세가 무사들을 향했다.

진화의 말처럼 여남현은, 수십 년 이어진 나라의 혼란보다 귀천성이 몰고 온 피바람의 여파가 더 컸다.

전쟁터에 끌려가서 죽은 정남보다, 귀천성과 정의맹의 전쟁으로 죽은 이들의 수가 더 많았고, 그로 인한 고아들도 어디에나 있었다.

진화가 굳이 여남현이 과거 제갈세가의 영역이었음을 들먹인 것은, 마치 이곳 고아들의 불행이 제갈세가의 책임처럼 들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제갈소현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곤, 귀천성과의 전쟁에서 제갈세가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고, 활약을 펼쳤는지뿐이니까.

이때까지 모르고 있던 제갈세가의 실패에 대해, 제갈소현이 인정할 리 없었다.

“그게 왜! 우리 제갈세가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아? 고아들이 생긴 게 우리 탓이야? 다 귀천성의 탓이잖아!”

진화의 말에 제갈소현이 과하게 반응하며, 결국 이야기의 논점이 흐려졌다.

아이를 식탁에 데려온 사람은 진화였고, 그 아이가 식탁에서 실수를 한 것을 제갈소현은 그저 너그럽게 넘기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화의 말에 휘말린 제갈소현은 어느새 지켜 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화까지 내는 악독한 권세가의 영애가 되어 버렸다.

“고작 음식 하나 쏟아지고, 의복을 조금 버렸을 뿐입니다. 부모를 잃고 굶주린 아이에게, 그런 것조차 너그럽게 넘어가지 못하다니, 제갈세가의 아량에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

결정적이었다.

제갈소현은 이제야 상황이 돌아가는 바를 알아차렸다.

저 양자가 감히 저를, 제갈세가를 비난한 것이다.

“가, 감히!”

제갈소현은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누구도 제갈세가를 비난하지 못했는데,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저 때문이라니.

분노가 차오르는 동시에, 수치심과 걱정,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감히, 감히 너 따위가 뭔데 제갈세가에 실망을 논하는 거야! 똑같이 천하디천한 출신이라 동질감이 들기라도 하는가 보지?”

“여, 영애!”

제갈상이 당황해서 나서 보았지만, 제갈소현은 이미 고삐가 풀린 망아지였다.

“허! 운 좋게 남궁세가에 입양되고 나니, 너 따위가 뭐라도 된 거 같아? 그래 봐야 천한 양자야! 그런데 감히, 출신도 모르는 천한 양자 놈이 제갈이 어쩌고 저째? 사과해! 내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영애!”

소리를 지르는 제갈소현의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아뿔싸!

가주의 철부지 막내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제갈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제갈세가가 모욕을 받았는데! 꿇려! 어서 저 거지새끼들과 천한 양자 놈을 내 앞에 꿇리라고!”

이제 제갈소현은 주변의 눈초리가 점점 사납게 변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라가 혼란한 만큼, 무림의 오대세가라 불리는 대세가들이 왕이나 제후 못지않은 권세와 부귀를 누리는 세상이었다.

게다가 제갈가주는 정의맹의 총군사의 자리에 있었으니, 그 위세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고삐가 풀린 제갈소현은, 제갈상조차 쉽게 말릴 수 없었다.

‘다른 자식들은 이렇게 얕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갈가주가 자식 농사 중 하나는 완전히 망쳤군.’

진화는 분을 주체 못 해 되는대로 내뱉고 있는 제갈소현을 보며 고소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왕이나 제후 못지않은 권세를 지녔던들, 명문 정파에게는 절대로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명분이었다.

퍼-억!

“꺄-악!”

“크억!”

남궁구가 제갈소현과 호위들 쪽으로 탁자를 엎었다.

“감히! 남궁세가 직계 소공자에게 무슨 망발이냐-!”

남궁교명이 검을 빼 들었고, 그와 동시에 남궁세가 일행이 모두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진화가 제갈소현을 향해 말했다.

“참으로 무도하고 무례하시군요! 소저야말로 무도한 언행에 대해, 당장 사과하십시오!”

진화의 일갈에, 제갈소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방에 푸른 무복을 입은 이들이 검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며,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듯했다.

‘늦었어. 네 아비의 잘난 정치질도 이번엔 힘들 거다!’

진화의 눈이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제갈소현을 향해 빛났다.

어느새 가까운 객잔에 있던 제갈세가 입관 지원자들이 도착해서 남궁세가 일행과 대치했다.

객잔 안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겁에 질린 아이들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남궁구가 겁에 질린 아이들을 한쪽으로 내보냈다.

그때, 진화가 구해 준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남궁구를 붙잡았다.

“저기…… 저 예쁜 형은…….”

남궁구는 아이의 눈에 어린 불안과 죄책감을 보곤, 눈을 찡긋하며 능글맞게 웃었다.

“괜찮아. 저기 공주가 그냥 나쁜 년이면, 우리 공주는 완전 미친년이야. 우리가 이겨.”

남궁세가 일행은 남궁구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