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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6)화 (36/425)

남궁마제

진짜 진(眞) 재앙 화(禍) : 이 구역의 진짜 미친년은 놈이다(3)

‘가주님과 아버진 정의맹에 알리기만 하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릴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쯤 정의맹은 총군사인 제갈가주가 막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제갈가주가 장악한 정의맹은 상상 이상으로 글러먹어서, 힘이 없으면 순리는커녕 상식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야 힘이 있으니 남궁세가가 독야청청한들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남궁의 힘이 약해진 순간, 우린 방어할 힘도 없이 이리 떼에 물어뜯길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었다.

이전부터 제갈세가를 비롯해서 정의맹 요직에 앉은 문파들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소 문파의 무사들을 사병처럼 쓰다 버렸다.

귀천성과의 경계선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이미 자신들의 기반을 빼앗긴 아미파, 청성파, 곤륜과 공동파를 비롯한 수많은 힘없는 문파들과 함께 최전선으로 갔다.

자기들 좋을 대로 명분을 붙이고, 그게 안 되면 정의가 아니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소위 정의맹, 동맹이라는 문파들이 힘없는 문파를 고기 방패로 두고, 자기들은 안전한 곳에서 부귀영화를 탐하며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겼던 것이다.

이전 생에서 남궁세가 또한 가주님이 흔들리자, 정의맹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무사들이 말 그대로 갈려 나갔다.

진화 또한 제갈세가의 역천비록을 지키는 데에 동원되었고, 그 과정에 많은 수하들을 잃었다.

나중엔 누대를 이어 온 남궁세가의 근간마저 빼앗기 위해, 각종 이권을 담합하고 수틀리면 강의 위아래를 틀어막고 물류를 흔들었다.

그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남궁세가의 몰락은 제왕검과 가주님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지만, 남궁세가의 멸문은 남궁도 일파와 정의맹에 의해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가주님이 건재하고 남궁도가 한발 물러섰으니,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남궁진휘를 지키지 못하면, 앞으로 또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진화는 이제 정의맹의 정의를 믿지 않았고, 놈들의 정치질에 휘둘리는 거라면 치가 떨렸다.

그런데 그런 진화의 앞에, 정의맹에 단단하게 똬리를 튼 제갈세가의 꼬리가 나타났으니.

진화는 그 꼬리를 흔들어 볼 참이었다.

* * *

다른 손님들이 모두 나간 후 대치 상황.

‘젠장……!’

제갈상은 제갈세가에서 손에 꼽히는 후기지수로, 제갈소현과 함께 정의무학관 입관하여 쭉 호위로서 임무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임무를 마친 후에는 순조롭게 제갈소천대의 대주 자리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의 탄탄대로에 이상이 생겼다.

“뭣들 하나! 아가씨부터 보호해!”

제갈상이 제갈세가 소속의 입관 지망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에 다른 일행이 모두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왔다.

남궁과는 다르게, 제갈세가 입관 지원자들은 모두 제갈세가 출신이거나 휘하 중소 문파 출신이었기에, 명을 받는 모습이 퍽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의 입꼬리에 비소가 걸렸다.

“다른 사람을 방패삼아 숨는 것이, 제갈세가 직계의 모습입니까? 당장 앞으로 나서서 사과하십시오!”

당당한 진화의 일갈에 제갈세가 일행이 술렁거렸다.

제갈소현은 아무 말도 없었다.

게다가 남궁공자의 말처럼, 앞으로 나선 남궁공자와 달리 제갈소천대의 틈바구니에 완전히 숨은 듯한 제갈소현의 모습.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에 사기마저 깎여 나갔다.

앞을 보고 있던 진화가 남궁구과 남궁교명을 돌아보았다.

“죽이면 안 되는데, 다치게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때?”

진화가 묻는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실수는 제갈소현이 먼저 했지만, 칼은 이쪽에서 먼저 뽑았다.

결국 이기는 놈이 장땡인 것이다.

“가뜩이나 속이 안 풀렸는데, 좋네.”

“그놈의 ‘어때’는. 남궁을 모욕했으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자, 잠깐-!”

제갈상이 급히 나서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파파파팟-!

전화의 열 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푸른 기류가, 제갈세가 입관 지원자들의 검면을 때렸다.

“우앗!”

챙-!

퍼-억! 쿵!

놀라서 검을 놓치는 자들이 나왔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휘이이익-!

퍼-엉!

콰-광, 쾅!

남궁구가 일으킨 바람이 앞줄에 있던 제갈제가 입관 지원자 둘의 검을 날려 버리고, 남궁교명의 강압적인 검세가 남은 세 명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관서겸과 호명기까지 끼어들어, 제갈소천대 호위들과 검을 맞댔다.

채—앵!

명령하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 어떡해! 이제 어떡하냐고! 어떻게 좀 해 봐!”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제갈소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제갈상을 붙잡고 흔들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어떡하냐니.

제갈상도 방법이 없었다.

이미 선수를 빼앗긴 데다, 제갈소현은 등 뒤에 숨어 있기만 하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처음 그건 뭐였지?’

제갈상의 눈이 진화를 살폈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검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남궁세가의 검법이었지만, 진화의 무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니, 들어는 보았었다.

‘설마 저 양자가 천뢰제왕검을 익혔던 건가!’

제갈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때, 진화가 제갈소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와서 정식으로 사과하십시오! 가문의 일은 차후의 문제이나, 본인의 잘못은 직접 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림은 승자의 편이었다.

싸우기 전엔 서로 꼬투리를 잡고 다툴 수 있지만, 승패가 정해진 후에는 아니었다.

패자가 잘못을 한 것이다.

제갈소현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제갈소현의 눈이 제갈상을 향했다.

제갈상마저 고개를 젓자, 제갈소현이 숨을 들이켰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그녀가 잘못을 빌어야 한단 말인가.

“마, 말도 안 돼! 지금 나보고 사과하라는 거야?”

제갈소현의 말에 제갈상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스스로 어떤 것도 책임을 져 본 일이 없다는 것이, 이런 데에서 티가 났다.

그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제갈상일지 몰라도, 제갈상은 제갈세가를 대표할 자격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사태를 모면하려면 제갈소현이 나서야 했는데, 그녀는 끝까지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네, 네가 나가! 너 제갈소천대 부대주잖아! 전부 쓸어버리란 말이야!”

제 옷을 잡고 흔드는 제갈소현에, 제갈상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결국 제갈상이 앞으로 나섰다.

“남궁 공자님, 같은 정파끼리 피를 부르며 사태를 크게 키우지 않길 바랍니다.”

제갈상의 말에 남궁교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일견 그들을 협박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제갈상의 마지막 자존심, 아니 마지막 끈일 뿐이었다.

“제가…… 가주님께 보고하여, 웃전에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갈상은 지금 제 출셋길을 잘라 버린 느낌이었다.

제갈상의 말에, 제갈소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에겐 가장 끔찍한 결과였다.

그리고 진화에겐 꽤 괜찮은 결말이었다.

지금 억지로 제갈소현의 사과를 받아 낼 수도 있지만, 그걸 어디다 쓴단 말인가.

이대로 제갈소현의 한심함만 부각시키고 끝내는 것이 좋았다.

‘그래. 사과는 제갈가주가 직접 하는 게 좋지.’

진화의 눈짓에, 남궁세가 일행이 검을 치우고 진화의 뒤로 와서 섰다.

제갈세가 일행도 허락 없이 검을 내린 상태였다.

“끝까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군요. 하지만 같은 정파끼리 크게 다퉈 봐야 좋을 것도 없지요. 하지만 소저의 발언과 지금의 이 일까지, 모두 가문의 이름으로 사과를 받아 낼 것입니다! 부디, 입관 시험까지 다시 뵈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군요.”

진화의 말이 떨어지고, 진화와 남궁세가 일행은 그대로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남은 제갈세가 일행은, 진화가 다시 나오기 전에 이 자리를 떠야 할 것이었다.

계획보다 이르게 먼저 길을 나서든지, 아니면 다른 객잔으로 옮기든지.

그게 승자의 결론이었으니 말이다.

관도로 갈 예정인 진화 일행을 피하려면 조금 돌아가야 하니, 입관 시험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일찍 출발하는 쪽으로 선택하게 될 것이었다.

실제로 입관 시험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갈세가 일행은 그날 오후 바로 여남현을 떴고, 진화 일행이 다음 날 노산으로 갈 때까지 그림자도 부딪히지 않았다.

* * *

여남현에서부터 남은 길은 평탄대로였다.

노산까지는 스무 일이나 되는 거리였지만, 중간중간 크고 작은 마을이 있어서 말을 갈아타거나 노숙 없이 객잔에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이제는 눈부신 꽃마차에 적응이 되었는지, 남궁구가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제갈세가가 어찌 나올 거 같아?”

한가하게 차를 따르며, 남궁구가 여상하게 물었다.

그에 진화도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과하는 수밖에 없겠지. 증거와 증인이 명백하니, 정의맹에 당도하는 대로 남궁세가의 이름으로 항의 서한이 갈 것이고, 제갈세가 또한 가주의 인장을 찍어서 사과를 해야겠지. 제갈소현이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면 그저 말실수로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이젠 그걸로 끝낼 수 없게 되었으니까. 제갈세가가 우리 남궁에 빚을 지게 된 것이지.”

“제갈세가가 순순히 사과할까?”

남궁구가 꺼림칙하다는 듯 말했다.

그에 진화가 피식 웃었다.

“안 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하게 될 거다.”

“왜 그렇게 확신해? 역시, 뭔가 있는 거지? 그렇지?”

진화의 반응에, 남궁구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에 진화가 남궁구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갑자기 객잔의 객주는 물론 점소이까지 손님을 두고 자리를 비웠어. 그리고 때맞춰, 아이들이 등장했지. 이렇게 아귀가 딱딱 맞는 일이, 저절로 될 것 같나?”

“그, 그럼, 그 아이들까지 미리 짠 거야?”

“모든 일엔 숨은 전략과 노력이 있는 법이다.”

“허! 숨은 모략과 음모가 아니고?”

남궁구의 턱이 턱 벌어졌다.

‘뭘 이 정도로.’

더한 것도 수두룩하게 겪었던 진화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쨌든. 실제로 여남현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제갈세가에 대한 원망이 있지. 아이들도 그냥 식당에 들어와만 달랬는데, 당돌한 녀석들이 먼저 나서더라고. 공짜 밥 먹을 생각 없고, 상대가 제갈세가라면 더한 것도 하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진화는 입안이 썼다.

호의를 받을 줄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어린 시절을 보았기 때문이다.

“제갈가주가 수작을 부리겠지만, 그들 모두 제갈세가에 감정이 좋지 못해. 게다가 남궁세가에서 십 년간 아이들의 식대를 대기로 했으니, 아무리 제갈세가라도 증언을 바꿀 수 없을 거다. 심증만으로 우길 수도 없을 거고, 결국 우리 쪽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 보라지.”

이전 생에서 제갈세가가 남궁세가에 써 먹었던 방법이었다.

사람들의 원망 대신 남궁세가의 책임감을 들쑤셨었다.

그래도 그때 남궁교명은 최소한 스스로 나설 배짱은 있었는데, 제갈소현은 그것도 아니었으니.

진화는 청순한 학사같이 단정한 제갈가주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질 것을 상상하며 비소를 머금었다.

“제갈소현만 불쌍하게 되었군.”

“글쎄. 상황은 내가 만들었지만, 결과를 이끈 건 본인이야.”

진화의 말에 남궁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소현만큼 허술하지 않을 뿐, 다른 자식들도 전부 똑같은 것들이었지. 약자의 고혈을 쥐어짜던,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교활한 뱀 같은 자들.’

다만 제갈가주 자체는 찔러 봐야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위인이었지만, 그의 자식들은 그렇지 못했으니.

진화는 앞으로 제갈을 어찌 상대할지 방법이 조금 선 것도 같았다.

뱀의 꼬리든, 머리든 어차피 한 몸이니, 꼬리를 흔들다 보면 머리도 흔들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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