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넉넉할 진(賑) 될 화(化) : 입관 시험 중 소소하게(4)
두 번째 관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지막 남궁세가 선발대회 출신 통과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첫 번째 통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미소년.
‘저 양자가 제일 처음이라고? 생각보다 빠르네.’
독심화 당혜군이 의외라는 듯 진화를 보았다.
그녀 또한 진화의 외모만 보고 무공으로는 그리 기대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혜군의 눈이 점점 커졌다.
“저, 저기!”
당혜군뿐 아니라, 대기 중이던 모든 이들이 놀란 얼굴로 계단을 보았다.
남궁진화가 종을 치는 것이 신호인 양, 계단에서 줄줄이 남궁 선발대회 입관 지원자들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댕- 댕- 댕- 댕-!
“뭐, 뭐야……?”
쉴 틈 없이 울려 대는 종소리에, 모두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댕-댕-!
드디어 계속되던 종소리에도 끝이 보이고, 몇몇 사람들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당혜군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전부, 몇 명이었지?”
“열일곱입니다.”
당혜군의 질문에 당가 무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답했다.
하지만 곧, 누군가가 끼어들어 그의 답을 정정했다.
“……아니, 이제 스물두 명이야.”
“뭐?”
용수권 나하연의 말에, 당혜군이 급히 계단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늦게 다섯 명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물두 명, 전원 통과로군!”
마치 신음하는 듯한 말투였다.
실제로 종을 치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는 남궁 선발대회 첫 번째 관문 통과자들을 보는 당혜군의 얼굴이 몹시 좋지 못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남궁세가의 선전을 반기진 않았다.
“다른 때에도 남궁세가 출신들의 성과가 좋긴 했지만, 이번엔 첫 관문부터 전원 통과라니……. 놀랍군요.”
“오 년 전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 아닙니까?”
“오 년 전이면, 무려 창천일룡 남궁진휘와 청명화 남궁진혜가 입관 시험에 도전했던 해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이 그분들을 뛰어넘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건 당연하죠. 이번 해 지원자들이 뛰어난 것을 가지고, 괜한 억측들 맙시다. 운이 좋았던 거지요!”
몇몇 이들은 양자라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대놓고 진화를 깎아내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하연의 얼굴에 서늘한 비웃음이 걸렸다.
“운? ……하긴, 그대들은 계속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네.”
“뭐, 뭐요?”
“쓸데없는 인원들이 금방 줄겠군.”
나하연의 말에, 진화를 깎아내리던 이들은 당혹스럽고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하연에게 따지고 들지도 못했다.
용수권 나하연은 낙양에서 치러진 당가 선발대회 우승자이자, 사주 삼 대 천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하연처럼 나서진 않았지만, 보는 눈이 있는 이들은 남궁의 성과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당혜군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멍청하긴. 천하의 마라승이 키운 나한들이야. 운으로, 그들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
진화를 보는 당혜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남궁진화라…… 두고 볼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개중에서 진화를 보는 눈이 가장 날카로운 이는, 역시 제갈소현이었다.
제갈소현은 일행과 웃고 있는 진화를 노려보며 분을 참고 있었다.
“재수 없는 자식!”
“영애,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 말처럼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럼, 우리 제갈세가는 얼마나 운이 나빴기에, 제갈소천대 출신들이 겨우 스무 명밖에 합격을 못 한 거야!”
제갈소현이 아무리 안하무인에 천방지축이지만, 그래도 사태 파악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괜히 나서서 화만 돋운 소천대원이 물러났다.
하지만 그 제갈소현의 옆은 금방 다른 소천대원으로 채워졌다.
“염려 마십시오. 다음 시험은, 제갈세가가 관리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뭐가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
두 번째 관문을 떠올린 제갈소현의 얼굴이 금세 풀렸다.
“후후, 제깟 놈이 어디서 신기제갈의 신묘함을 겪어 보았겠어?”
진화를 보는 제갈소현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 * *
잠시 뒤.
사람들의 시선 속에 진화와 일행이 순번표를 받으러 나섰다.
‘뭐지?’
그저 책상에 앉아 순번표를 나눠 주는 직원인가 했는데, 어쩐지 기세가 평범치가 않았다.
단정한 옷차림에 문사건까지 한 중년인은 외모마저도 청백리한 학사 같았는데, 어째 다가갈수록 짙은 혈향이 느껴졌다.
진화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런 진화를 보며 싱긋이 웃는 중년인.
‘요것 봐라?’
중년인의 눈이 빛나는 순간, 진화는 오싹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런 진화를 보며 중년인이 유쾌하게 웃었다.
“허허허허! 재미있는 아해로구나!”
진화가 경계심을 품고 중년인을 보았다.
그때, 진화의 눈에 중년인이 의자 옆에 지팡이처럼 세워 놓은 것이 들어왔다.
‘혈랑도! 그럼……?’
진화가 중년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붉은 늑대가 입을 벌리고 도를 물고 있는 형상의 특이한 도.
그것의 주인은 도 이름 그대로를 별호로 가진, 혈랑도 사진명뿐이었다.
다만 한눈에 그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가 진화의 기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너무…… 멀쩡한데?’
한창 전쟁이 벌어진 시기에 무림에 나왔던 진화가 기억하는 사진명은, 봉두난발에 온몸에 피 칠갑을 한 광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진짜 미친 것은 아니었지만.
진화가 신기하게 사진명을 보는 동안, 사진명도 눈에 이채를 띄고 진화를 보았다.
그렇게 사진명과 진화가 눈싸움을 하는 사이,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궁구가 곁으로 왔다.
아니, 오기 전에 딱 멈췄다.
“으힉, 혀, 혈랑도?”
남궁구도 단번에 혈랑도를 알아보았다.
“호오? 이걸 알아본 건, 네가 네 번째로구나. 흥미로워.”
“하……하…….”
사진명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남궁구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사진명의 시선이 끈덕지게 남궁구를 따라붙었다.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본 늑대처럼, 혀로 입술을 핥는 모습에 남궁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아는 척하지 않길 다행이군.’
진화는 다시 한번 겸손의 미덕을 알아 갔다.
“허허허허! 올해 남궁엔 인물이 많았나 보군. 일차에 전원 통과라니.”
“운이 좋았습니다.”
진화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사진명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래? 각우의 시험을 운으로 통과했다라…….”
사진명의 물음에 짙은 혈향이 풍겼다.
“이번 시험도 저 동굴을 통과하는 것일세. 단, 이번엔 각자일세. 번호표를 뽑도록.”
개인별 도전이라는 소리 때문인지, 사진명의 분위기 때문인지.
일행은 긴장한 표정으로 상자에서 순번 구슬을 뽑았다.
“이백칠.”
진화의 구슬에 적힌 숫자였다.
“호오, 자네가 마지막이로군.”
사진명이 진화의 번호를 듣자 눈빛을 번뜩였다.
각우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순번은 같이 움직이며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흐, 너무 걱정 말게.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걸세.”
“……?”
사진명의 말에 진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우아아악-!”
동굴 안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탈락인가 보군. 저 안에서, 단 한 걸음만 잘못 걸어도 곧바로 산을 내려가게 될 걸세. 흐흐흐!”
사진명이 유쾌하게 웃었지만, 진화와 일행은 누구도 사진명과 같이 웃지 못했다.
* * *
사진명의 말처럼 순번은 빠르게 줄어 갔다.
거의 마지막 번호를 배정받은 남궁 선발대회 입관 지원자들도, 슬슬 동굴 안으로 준비를 할 때였다.
첫 번째는 관서겸이었다.
“하하하,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음 관문에서 만나지요.”
관서겸이 그답게 호탕하게 웃으며 출발했다.
그리고 하나둘, 다른 사람들도 사진명의 신호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전의 사람들과 같은 큰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남아 있는 사람은 단둘.
“먼저 가 있겠다.”
남궁교명이 진화를 슬쩍 봤다가, 툭 한마디를 던지고 출발했다.
그런 남궁교명의 뒷모습을 보는 진화의 표정이 조금 미묘했다.
‘……헷갈리게 하는군.’
잠시 뒤, 진화의 차례가 되었다.
사진명이 다정한 표정으로 진화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치 손이라도 잡고 가자고 할 기세라, 저도 모르게 진화가 물러섰다.
“허허허허, 이제 가 볼까?”
“…….”
진화는 같이 가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진명의 눈을 보자면, 뇌왕이라 불렸던 시절이라 한들, 혈랑도에게 할 말을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 * *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야명주를 밝힌 불그스름한 광경은 첫 번째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단의 입구 앞까지, 빼곡하게 목각 인형이 채워져 있었다.
진화는 그것들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소림나한진인가?’
소림의 나한진은, 이전 생에서 정의맹을 방어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익혔던 방어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흐흐, 먼저 가 보겠나? 자네의 시험이니.”
사진명이 들뜬 기색으로 진화를 재촉했다.
그에, 진화가 씨익 웃었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자신 있게 한 발 내딛자마자.
드르르르르륵-!
탕!
목각 인형들이 생명이라도 받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화를 놀라게 한 것은, 목각 인형들 사이로 자욱하게 끼기 시작한 하얀 연기였다.
‘안개?’
진화의 눈이 꿈틀거렸다.
음과 양의 기운이 기묘하게 뒤틀린 것이 느껴졌다.
이것 또한 진화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퍼-억! 팟! 팟!
잠깐 사이 목각 인형들의 공격을 쏟아졌다.
하지만 진화는 어렵지 않게 목각 인형들의 공격을 막아 내며 앞으로 나갔다.
‘요것 봐라?’
같이 따라오고 있던 사진명은, 처음보다 조금 더 진지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목각 인형의 공격을 전부 막아 내는 것 정도는 일정한 수준만 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관문을 통과한 이들 중 몇몇도 해냈었다.
하지만 ‘해답’이 있는 경로를 향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답을 미리 알고 있던 제갈 놈들만 할 수 있었던 일이었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까. 제갈은 갈수록 더러워지는군. 쯧쯧.’
두 번째 관문의 기관진식은, 제갈세가에서 주장하여 만든 것이었다.
입관자 수를 늘리려고 편법을 쓰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제갈세가는 기관진식이라는 점을 들어서 재화와 권력으로 밀어붙였다.
모두 공평하지 못하다는 걸 알았지만, 눈을 돌렸다.
‘그나저나 남궁의 직계가 제갈연환진을 안다고?’
사진명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때, 진법의 한가운데에 온 진화가 사진명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혈랑도 님.”
“……뭔가?”
갑자기 제게 말을 거는 진화에, 사진명의 얼굴이 냉정해졌다.
시험에 대한 것을 묻는다면 이대로 탈락시켜 버리리라.
하지만 진화의 물음은, 사진명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혹시 목각 인형이 상하거나 하면 남궁에 청구하는 것입니까?”
“응? ……허허허허! 그게 궁금한 겐가?”
분명 시험에 대한 것이긴 했으나, 실로 허를 찌르는 물음이었다.
진화의 질문에 유쾌하게 웃은 사진명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당연히 아닐세. 이 관문은 제갈세가에서 관리하는 것일세. 천하의 신기제갈이, 입관 지원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진 않지.”
“아! 다행입니다.”
진화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검을 빼 들었다.
“……!”
사진명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진화의 검에 뇌기가 번쩍이는 것을 보고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진화가 검과 함께 푸른 뇌기를 땅에 박았을 땐, 그저 턱을 벌리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파파파파파팟-!
진화가 천뢰제왕검법 낙뢰를 머금을 검으로 땅에 내리치자마자, 사방으로 번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콰쾅! 쿵. 쿵. 쿵!
땅이 갈라지고, 목각 인형들이 쓰러졌다.
하얀 안개는 순식간에 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쿵! 쿵!
퍼-엉!
그리고 마침내.
바닥에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번개의 흔적을 남기고, 모든 목각 인형이 그냥 나뭇조각이 되었다.
“허……!”
모든 상황이 끝나고서야, 사진명은 참고 있던 감탄을 터뜨렸다.
그의 시선에, 진화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얼굴로 아수라장을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나한의 팔궤 안에 연화팔궤를 숨겨 놓은 것은 제법 교묘했어. 하지만 안개를 내기 위해 음양의 조화를 깨뜨린 건, 너희들의 실수다.’
진법이란 결국 음양과 팔궤의 조화를 깨드리고 변화시키는 것이라.
하지만 그것도 들키지 않아야 쓸모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갈세가가 단지 나한의 팔궤에 숨긴 진법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진화는 누구보다 부조화에 민감한, 아니 부조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혼돈지체가 아니던가.
지금도, 이전 생에도.
진화가 진법에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