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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41)화 (41/425)

남궁마제

넉넉할 진(賑) 될 화(化) : 입관 시험 중 소소하게(5)

‘모르긴 몰라도 저걸 다시 설치하려면 돈깨나 들 테지?’

천하오대세가를 천하 오 대 거부라 불러도 좋을 금력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조금 약한 곳을 꼽자면, 바로 제갈세가였다.

귀천성의 공세 속에 세력을 보전하기 위해 많은 곳을 버린 터라, 잃어버린 자금원이 꽤 되었기 때문이다.

‘제갈가주가 정의맹 권력에 집착한 이유 중 하나였지.’

진화는 이전 생에서 세가의 수입과 지출을 하나하나 챙기던 제갈가주를 떠올렸다.

공들인 장치가 박살 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꽤나 짜증을 낼 것이라.

소소한 상상만으로도, 진화가 기분 좋게 웃었다.

* * *

계단을 올라가자, 붉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미부인이 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부인 발견한 진화가 잠시 멈칫거렸다.

‘정의무학관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른데?’

혼란스러운 듯 흔들리는 눈동자.

기분 좋게 걷던 걸음도 주춤주춤 변했다.

‘여기, 진짜 뭐 하는 곳이지?’

그래, 마라승 각우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명망 높은 소림의 무승이니까.

그다음, 혈랑도 사진명을 봤을 때는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혈랑도를 뽑지 않고 앉아 있으니, 제법 멀쩡한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무사부로 나타난 아름다운 미부인.

‘백화선녀, 아니, 백발마녀 홍채연.’

의선의 사제였지만,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데에 더 능하다 알려진 죽음의 의원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정의무학관의 무사부들이…… 철사장이 아니라 사람을 갈아 버린다는 각우에, 정의맹이 푼 미친개 사진명, 거기다 귀천성도들을 수단과 방법을 골라서 죽인다던 백발마녀 홍채연이라고?’

이전 생에서 진화를 비롯한 사왕(四王)들이 전쟁 후반기에 정의맹의 영웅으로 떠올랐다면, 이들 세 명은 그 이전부터 귀천성의 저승사자로 유명했다.

어쩌면 귀천성도들보다 잔인하고 살벌한 손 속에, 영웅이 되지 못한 진짜 영웅들이이었다.

전쟁터에서는 더없이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존경하는 선배들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을 만난 장소랄까.

진화가 알기로, 이 사람들은 사람을 가르치기보다 죽이는 데 더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대체 뭘 가르친다는 거지? 게다가 백발마녀의 시험이라니.’

진화의 걸음이 조금씩 더 느려지고, 눈동자는 더 빨라졌다.

* * *

백화선녀 홍채연은 조금씩 느려지는 소년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귀여운 아가가 사뿐사뿐 오다가, 왜 나를 보고 주춤거리지?’

아, 낯을 가리는가 보다!

홍채연은 소년의 경계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소년이 아예 멈춰 섰다.

‘흠흠, 경계심이 높은 소년이네.’

하지만 이제까지 세 번째 관문에 앉아 있느라 지루했던 홍채연은, 빨리 시험을 끝내고 싶었다.

“어서 오세요. 시험을 치르느라 수고 많았어요.”

홍채연이 티 안 나게 재촉하듯 소년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에 소년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나갔나요?”

소년이 경계심을 가득 담고 물었다.

그런데 어째…….

‘왜 전부 죽었냐고 묻는 거 같지?’

소년의 물음에, 홍채연은 왠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홍채연이 싱긋 웃었다.

“흠, 이름이 어떻게 되죠?”

그 말에 소년이 크게 움찔했다.

‘내 미모가 애들한테는 안 통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홍채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벌써 마흔이 넘었지만, 미모는 이십 대라.

그녀가 사르르 웃어 주면 열에 여덟, 아홉은 따라 웃었다.

표정을 공감할 정도로 누구나 호감을 가지는 외모는, 그녀의 큰 자부심이었는데…….

의선은 노처녀의 발악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호호호! 이름이?”

“나, 남궁진화입니다!”

“호호호, 그래요.”

한층 올라간 홍채연의 웃음소리에, 진화가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답했다.

“호호호, 올라오느라 많이 힘들었나 보군요. 긴장 풀어요. 차라도 한잔하겠어요?”

홍채연은 눈꼬리를 더 진하게 접으면서, 차를 따라 진화의 앞에 놓아주었다.

진화는 그 찻잔을 멀뚱멀뚱 보았다.

“목 좀 축여요.”

홍채연이 차를 권했다.

“아, 괜찮습니다.”

진화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사양했다.

‘다른 사람은 어디 있지? ……밖?’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진화가, 홍채연의 뒤로 커다란 문을 발견했다.

그 건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진화의 눈이 반짝였다.

“저기로 나가는 겁니까?”

“아…… 호호, 세 번째 관문이 끝나면 저 문으로 나가면 됩니다. 어려울 것 없어요. 저와 대화를 나누는 거랍니다. 뭐 해요? 차가 식는데…….”

밖으로 나가지 못해 안달 난 강아지 같은 모습에, 당황한 홍채연이 재차 차를 권했다.

“아, 차는 괜찮아요.”

단칼에 거절당했다.

“…….”

홍채연이 진화를 보았다.

온갖 불신으로 가득한 눈이, 잘 보이려는 노력도 없고 대화의 의지도 없어 보였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홍채연은 살짝 당황했다.

‘차를 마시는 게 시험인데……!’

차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

세 번째 관문은 독과 함정을 벗어나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고 정신을 잃으면 탈락.

차를 마시고도 문 밖을 나갈 때까지 견뎌 내면 통과.

문 밖에는 해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차’ 자체를 거절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윗사람의 차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심지어 응시자가 시험을 감독하는 무사부가 권하는 차를 거절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게 거절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함정이었는데…….

“……진짜 안 마시겠다고요?”

“네.”

단호한 진화의 대답에, 백화선녀 홍채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날카로워지는 홍채연의 눈빛에, 진화는 슬쩍 의자까지 빼고 있었다.

여차하면 튀겠다는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결국, 억지로 차를 먹일 수 없었던 홍채연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통……과예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진화가 활짝 웃으며,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하! 만만치 않은 신입이로군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진화의 모습에, 홍채연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사진명이 두 번째 관문을 정리하려다 포기하고 올라왔다.

“어허, 저걸 어쩐다? 곤란하게 되었군. 오, 홍 의원, 마지막에 곱상한 애 보았는가?”

“……갔어요.”

“뭐라?”

“벌써 나갔다고요!”

사진명이 물음에 홍채연의 대답이 뾰족하게 쏘아졌다.

* * *

진화가 밖으로 나가자, 세 번째 관문까지 모두 통과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사람들이 전부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진화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에 쾌재를 불었다.

‘백발마녀가 주는 차 따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진화는 곳곳에서 신음하는 통과자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여, 여깁니다, 소공자님……!”

관서겸이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웃으면서 진화를 불렀다.

남궁 선발대회 입관 지원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관서겸을 제외한 스물한 명이 모두 누워 있었다.

그들의 숫자를 세던 진화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들 무사히 통과하셨군요!”

“끄으…… 통과는 했는데, 무사하진 않아.”

남궁구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이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하…… 하아.’ 힘겹게 웃어 보였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니, 멀쩡한 얼굴로 서 있는 사람이 몇 없었다.

‘팽가 형제와 당혜군…… 나하연이라고 했던가?’

진화가 그들을 보는 동안, 그들 또한 진화를 보고 있었다.

‘누구?’

‘작네.’

‘왜 멀쩡해 보이지? 해독제의 약효가 벌써 돌 리도 없고, 내공으로 독기를 날린 건가?’

‘음, 좋군.’

어째 제대로 된 경계의 눈빛은 하나밖에 없는 듯했지만, 기분 탓이리라.

심지어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 하나를 피해 진화가 일행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근데…… 무슨 독이었어?”

진화가 남궁구에게 슬쩍 물었다.

사실 진화는 아직 정확한 시험 내용을 알지 못했다.

“너…… 안 마셨어?”

대체, 누가, 시험관이 주는 차를 안 마신단 말인가!

남궁구의 말에 일행 모두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진화는 왠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함부로 먹는 게 아니다.”

“……미친놈.”

기껏 나온 변명이 그거라는 데에, 진화도 일행의 눈을 피하고 말았다.

* * *

입관 시험이 끝나고 정의무학관 수석 무사부들이 모였다.

입관 시험에 대해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올해는 통과자가 제법 많더군요.”

“정확히 백두 명입니다. 흥미로운 이들이 꽤 있더군요. 허허허!”

“몇몇 눈에 띄는 참가자들도 그렇지만, 전반적인 수준이 좋더라고요. 제법 교육시키는 맛이 쏠쏠하겠어요.”

“그럼 올해 순위도 뽑아 볼까요?”

“…….”

각우의 제안을 끝으로, 다들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무작정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는 법.

각우가 먼저 나섰다.

“첫 번째 관문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팽가 팽수와 소림 현오, 그리고 나하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무공의 상극을 이용해서 나한들의 약점을 가장 잘 공략한 사람은, 남궁세가의 남궁진화였습니다.”

말을 하는 각우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한 사흘 정도 정양이 필요한 나한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진명이 말했다.

“예상대로 제갈세가 놈들이 대체로 빨랐지만, 나한진을 돌파하는 건 무공이 따라 줘야 하는 것이라……. 두 번째 관문을 가장 빨리 통과한 이는 현오와 당혜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관문의 목적은 기문진식의 파훼를 시험하는 것이니, 그런 면에서는 남궁세가의 남궁진화가 가장 완벽했습니다.”

사진명은 시종일관 유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떨떠름한 얼굴의 홍채연의 차례였다.

“독의 해독 면에서는, 역시 당문의 당혜군이 우수했습니다. 효과가 즉각적인 복통과 설사를 유발하는 독임에도, 해약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함정은, 피할 수 있으면 아예 피하는 것이 좋지요.”

각우와 사진명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홍채연을 보았다.

홍채연이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입술을 한번 깨물고 말했다.

“남궁진화는 차를 마시지 않았어요! 알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

“허허허허! 역시 흥미로운 아해로군요.”

“그럼 순위는 그렇게 결정하겠습니다.”

간혹 무사부들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번 입관 시험 순위는 오랜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곧 각 문파와 세가의 장원에 통과자 명단과 입관 시험 수석, 차석의 이름이 전해졌다.

* * *

남궁세가 정의맹 지부.

남궁조의 웃음소리가 장원이 떠나가라 울렸다.

“크하하하하하! 수석? 거기다 전원 통과라고? 하하하하!”

“수석이라니, 참 장하구나.”

남궁진휘가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진화의 표정은 영 미심쩍었다.

“형님, 제가 시험을 그렇게 잘 치른 것 같지는 않은데…….”

“입관 시험은 전적으로 수석 무사부들의 평가로 정해진단다. 관주님조차 이견을 달 수 없지. 이 형은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본가에 소식을 전했으니, 어른들도 무척 좋아하실 게다.”

남궁진휘의 말에도 진화의 얼굴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상하군. 본가의 이야기라면 얼굴부터 활짝 피는 아이인데…….’

남궁진휘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진화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런데 형님, 제가 시험 기물과 진식을 상하게 해서 걱정입니다. 가문에 폐를 끼친 건 아닐까요?”

세가와 관련된 것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터라.

그 당시 사진명에게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내 찜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화의 걱정을 들은 남궁진휘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하하하! 그걸 걱정하고 있었더냐? 걱정 말거라, 그건 전혀 아닐 거다.”

남궁진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그가 가리킨 곳엔.

“우하하하하하! 황금이 한 관이란다! 소림에서 공동으로 처리한다는 걸 거절해 놓고, 청구서 들고 부들부들 떨던 꼴이라니! 하하하하!”

남궁조가 배까지 잡고 웃고 있었다.

마침 남궁조의 손엔 제갈세가에서 언제 찾아가면 좋을지 묻는 전서가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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