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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44)화 (44/425)

남궁마제

누를 진(鎭) 액화 화(禍) : 서열 정리(3)

“야, 일어나.”

조용히 깨우는 소리에, 이불 속에 있던 벌레가 꿈틀거렸다.

“끄으으으…….”

“…….”

퍼-억!

“아악!”

이불 속에서 남궁구가 허리를 붙잡고 파닥거렸다.

“좀 곱게 깨우면 어디 덧나냐!”

남궁구가 벌써 자리로 돌아간 진화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안 떠지는 눈을 겨우 게슴츠레 떴다.

“흣차!”

“흣차!”

숙청관 앞에 있던 비석 바위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희미하게 숙청관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저게 왜……?’

남궁구가 비몽사몽간의 눈을 비볐다.

“응? 하하하! 구, 일어났나?”

“게으른 놈.”

아침 일찍 일어나 수련을 하고 온 현오와 남궁교명이 남궁구를 타박했다.

아니, 수련을 한 건 남궁교명이고 현오는 고기만두를 입에 물고 있었다.

“팽수, 팽신, 다 쓰고 나며 비석은 다시 꽂아 놓게.”

“알았다!”

“그거 먹어도 됩니까?”

“오, 이건 자네 몫일세.”

“아! 고맙습니다.”

진화가 현오와 함께 고기만두 봉투를 뜯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들.

“뭐야? 나 모르는 사이에 한 삼 년 지났어?”

남궁구는 제가 아직도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구, 가자!”

“어딜……?”

“아직 잠 덜 깼어? 아침 식사하고 첫 수업 가야지.”

진화의 말에 남궁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대망의 정의무학관 첫날이었다.

일정표에 따라 진화의 반은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연무장에는 그들과 같은 일정으로 움직이는 다른 반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소공자님!”

관서겸이 진화 일행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백의생들은 여섯 명씩 성적순으로 방을 배정받았는데, 관서겸의 방이 진화의 방 다음 순위자들이었다.

“일진들은 때깔이 다르긴 하군?”

관서겸이 진화를 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하지만 진화는 관서겸의 말에 어리둥절 고개만 갸웃거렸는데, 남궁구가 나서서 설명을 했다.

“성적순이니까 같은 방을 한 조로 묶는 거야. 하-암! 갑을병정무, 상위 다섯 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십이간지로 조 이름이 정해져 있는데, 다들 그냥 갑(甲) 조를 일진, 을병정무는 이진이라고 불러.”

“아…….”

그제야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화 외에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렇군.”

“음음.”

“일진은 이진에게 뭘 시킬 수 있나? 가령 아침 만두라든가.”

“……소림에서 양아치를 키운 건가?”

팽수와 팽신이 진화의 옆에 붙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남궁교명은 현오를 비난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갑 조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군.”

관서겸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 같아서 다행입니다, 소공자.”

“관 소협…….”

이전 생에서 동경하던 사내가, 지금은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니.

큰형님처럼 흐뭇하게 말하는 관서겸의 모습에, 진화가 살짝 감동을 받았다.

옆에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못 볼 걸 본 사람들처럼 시선을 돌렸다.

화기애애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사실 을(乙) 반에서 진화 일행에게 다가온 사람은 관서겸이 유일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몇몇은 진화도 아는 얼굴들이었다.

‘저자는 제갈소현의 옆에 붙어 있던 제갈성이고, 저자들도 정의무학관에 왔을 줄은 몰랐군.’

제갈성 외에 눈에 띄는 두 사람.

무명 백의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옥 장식이 달린 백건을 두른 사내와 못지않게 화려한 금잠으로 머리를 장식한 사내였다.

그들도 진화의 시선을 느꼈는지, 저들끼리 진화를 보며 수군거렸다.

결코 좋은 시선은 아니었다.

‘황보정과 단승호.’

진화는 이전 생에서 관 내 유명한 망나니였던 두 사람이 우수한 성적으로 정의무학관에 온 것이 무척 의외였다.

특히 황보정은 제갈소현과 혼인한 이후에도 전 무림에 망나니 파락호로 이름을 떨치던 자였다.

황보정이 제갈소현과 같이 정의무학관에 있다라…….

‘남궁을 몰락시킨 제갈세가와 남궁의 자리를 노리던 황보세가, 혼인 동맹의 당사자들이 함께라니……. 이것 참, 공교롭구나.’

진화가 황보정과 단승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황보정과 단승호는 진화를 무시하듯 콧방귀를 뀌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 * *

잠시 뒤, 마라승 각우가 왔다.

빛나는 두상과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듯, 이번엔 아예 웃통까지 벗었다.

각우가 찬찬히 관도들을 얼굴을 살피는데, 팽신의 뒤에 숨어 있던 현오에게 조금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오늘은 첫 수업인 만큼 정의맹의 기본 전략법대로 사고하는 법을 익히도록 하겠다.”

각우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기본 전략이지, 기본 전략법대로 사고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전투라는 것이 경험을 쌓는다고 완벽해질 수는 없다. 매번 상황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얻을 수 있는 있는 것도 있다. 바로 살아남기 위해 찾아야 할 것들이다.”

각우의 말에 백의생들이 점점 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진화만은 덤덤하게 각우를 보고 있었다.

“이상한가?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법부터 배우는 것, 그게 딱 지금 너희 백의생들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각우의 말에 몇몇은 노골적으로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을 조의 황보정과 단승호는 각우를 비웃기까지 했다.

‘멍청한 놈들!’

진화는 감히 각우를 비웃은 황보정과 단승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황보세가와 단천문의 부와 힘이 천하오대세가를 견줄 정도로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소림의 이름은 돈과 권력으로는 잴 수 없는 것이었다.

각우는 그들의 태도를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

황보승과 단승호의 건방짐을 일일이 상대해 주기에, 각우와 소림의 명성이 너무 높았다.

그리고.

‘곧 혼쭐을 내 주려 벼르고 있든가.’

진화는 첫 번째 관문에서 보았던 백팔금동나한들이 연무장에 오고 있는 광경을 보며, 각우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깨달았다.

“내 말을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 다들 나름의 자부심을 품고 있을 테니까. 두 명씩, 이전과 같이 십팔나한진으로 들어가라. 나한진을 뚫으면 된다.”

각우의 말에 황보정과 단승호의 비릿한 웃음이 더 짙어졌다.

사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별로 걱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다들 첫 번째 관문에서 열여덟 명의 나한들의 벽을 뚫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너희가 할 일은, 살아남기 위해 길을 찾는 것이다! 너희 두 명, 먼저 나서라!”

각우가 가장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황보정과 단승호를 가리켰다.

“아, 중요한 말을 잊었군. 내 전략 수업에선 무기와 내공을 사용할 수 없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지. 지시에 따르지 않고 큰 사고를 일으킨다면, 네발로 기어서 정의무학관을 나가게 될 것이다.”

각우가 황보정과 단승호를 경고를 하듯 사납게 웃어 보였다.

잠시 후, 황보정과 단승호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자신들의 실수를 후회해야 했다.

* * *

퍽! 퍽! 퍽! 퍽!

“으악! 아니, 잠깐! 악! 아악-!”

금동칠을 하지 않은 나한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발밑에 떨어진 단승호를 밟아 댔다.

황보승은, 단승호가 걸린 틈을 타서 도망치려 했다.

“젠장! 비켜! 아니, 악!”

아까의 비웃음이 무색할 정도로 비겁하고 약삭빠른 행동이었으나, 그조차도 소용없었다.

나한진의 기본적으로 방어진이지만, 진 안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곱게 내보낼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았으니.

첫 번째 관문에서 만났던 근육질의 나한들이, 두 번째 관문의 목각 인형들처럼 손발을 뻗기 시작하자, 백의생들은 그제야 나한진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우의 말도.

“사람이 하는 건 다 다르다. 그때그때의 판단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네놈들의 알량한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각우의 말에, 이제는 모두가 수긍했다.

“이제 저 두 놈은 죽었군. 내보내라!”

퍼-억!

쿵!

각우의 말과 동시에, 나한들 사이에서 너덜너덜해진 황보정과 단승호를 던졌다.

“자, 다음은 누가 들어가 볼 텐가.”

한쪽에서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 *

“으악! 악-!”

마치 건장한 개미들에게 휩쓸려 굴로 끌려가는 메뚜기처럼, 나한들 틈을 빠져나오려던 구성일과 제갈성이 다시 끌려 들어갔다.

퍽. 퍽. 퍽!

사람을 때리는데, 어째 이불에 먼지 터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이라고 다 자비로운 건 아니군.”

“말도 마십시오. 마구니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궁구의 깨달음에, 현오가 맞장구를 쳤다.

나한들을 욕하는 현오의 모습은 뭔가 쌓인 것이 잔뜩 있어 보였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다들 현오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십팔나한진의 위력이 백의생들의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입관 시험을 생각했던 이들은 혼쭐이 나고 있었다.

“정해진 경로에 따라 움직이던 목각 인형과 달리, 상대에 따라 판단하고 움직이는 나한진은 매번 생문과 활로가 변하니까 일일이 대처하기 힘들군.”

“내공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한들 개개인의 외공도 문제다.”

“차라리 목각 인형에 두들겨 맞는 게 낫지. 저건…….”

남궁구와 남궁교명, 관서겸이 고개를 내저었다.

퍼-억!

“으악!”

특히 다음 차례가 예정된 관서겸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퍼-억! 쿵! 쿵!

나한들이 빈 껍질을 뱉어 내듯, 구성일과 제갈성이 던져졌다.

한참 뒤.

흙바닥을 구르느라 많이 더러워진 관서겸과 당위가 기어 나오듯 나한진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말 그대로 빈틈만 보이면 허겁지겁 전진하면서, 겨우 나한들 사이에서 몰매를 맞는 것은 피했다.

“오오!”

처음으로 제 발로, 아니 제 손발로 나온 모습에 탄성이 나왔다.

이제, 을 조의 순서가 모두 끝났으니 갑 조가 나설 차례였다.

진화는 아직도 끙끙대고 있던 황보정, 단승호와 눈이 마주쳤지만, 가볍게 못 본 척했다.

그리고 남궁구, 남궁교명 그리고 현오와 함께 자연스럽게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응?”

“우리?”

누가 보면 팽수와 팽신이 앞으로 나선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 * *

“개망신이군.”

“제길, 망할 땡중이 일부러 우릴 골탕 먹인 게 분명해!”

황보정과 단승호이 숙덕거렸다.

각우는 그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갑 조나 을 조 누구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더,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벌써 끼리끼리 편을 먹었군.”

“망할 자식들! 이렇게 당할 줄 알고?”

황보정과 단승호는 마치 큰 모욕이라도 당한 듯 화를 냈다.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인데,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진화가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도 고개를 돌려 버렸을 때 그것을 확신했다.

“천한 양자 놈까지 우릴 무시해?”

“젠장…… 제 주제에 그래도 남궁이라 이거지?”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야! 불공평한 수업이라고!”

황보정과 단승호는 그들이 가장 형편없이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행색마저도 그들이 제일 더러웠으니.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이유를 자신들 이외의 곳에서 찾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업이 어디 있는가.

내공도 쓰지 못하고 검도 쥐지 못하다니!

게다가 수업에서 도망치는 법이나 가르친다고?

명문, 명문 하더니, 명문이라는 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이렇게 비겁하기 짝이 없다.

아니, 애초에 자신들이 제일 먼저 지목되었기에 제일 심하게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황보세가와 단천문을 경계하는 소림 출신 무사부의 횡포가 분명했다.

황보정과 단승호의 눈빛이 분노로 차오르며, 앞에서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 같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 그들의 시선이 진화에게 고정되었다.

“저딴 놈이 수석이라고?”

“남궁이 만들어 낸 수작이 분명해.”

그들은 곧 이어진 결과를 보며, 자신들의 추측에 확신을 얻었다.

* * *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가 쉽다.

“남궁진화를 말입니까?”

“왜, 문제 있나?”

“남궁진휘가 가만히 있을까요?”

“곧 백의장과 부장들 임명을 위해 관도회에 불러들일 거잖아?”

“…….”

제갈후현의 말에 동생인 제갈용성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마른 체구에 백면서생 같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딱 제갈세가다운 용모였다.

저와 달리 아버지를 많이 닮은 처진 눈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제갈후현이 혀를 찼다.

“쯧, 겁만 많아선. 어차피 얼굴만 보겠다는 거잖아. 게다가 오늘 남궁진휘는 정의맹에 들어가는 날이야.”

“그런데 갑자기 남궁진화는 왜 그러십니까?”

“소현이 그년이 거래를 하자더라고.”

갑자기 튀어나온 제갈소현의 이름에 제갈용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제갈세가에서 제갈소현은 조금 골치 아픈 이름이었다.

“데려와 무릎 꿇려 달래. 그러면 제가 가진 연환상단의 지분을 넘긴다는군.”

“……!”

제갈후현의 말에 제갈용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에 제갈후현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어때, 생각 있어?”

“하, 하지만 형님, 그건 소현이가 제 마음대로…….”

“죽여 주면 자화상단을 준다더군. 그거라면 소현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지.”

“그런……!”

제갈용성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일단 얼굴만 보게 데려와 봐.”

제갈후현이 지레 질겁하는 제갈용성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입꼬리에 비릿한 웃음을 달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면, 네가 갈래?”

제갈후현의 시선이 닿은 곳엔, 단아한 인상의 여인이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왜, 우리 중에 네가 제일 돈 좋아하잖아, 지현아.”

제갈후현이 셋째, 지당화 제갈지현을 향해 이죽거렸다.

하지만 제갈지현이 조용히 차만 마시자, 금방 흥미가 식어 버린 사람처럼 혀를 찼다.

“됐어! 장난이야. 벌써 다른 사람을 보냈으니, 곧 데려올 거야. 어떤 놈이 제갈세가에서 황금 두 관 어치를 뜯어냈는지, 구경이나 하자고. 다들, 그놈 낯짝이 궁금하긴 했잖아?”

제갈후현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문을 보았다.

곧 남궁진휘의 다른 동생이 나타나리라.

그러면 살짝 겁만 줘 보내리라.

하지만 제갈후현의 웃음이 서늘하게 굳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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