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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45)화 (45/425)

남궁마제

누를 진(鎭) 액화 화(禍) : 서열 정리(4)

정의무학관은 첫 수업부터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백의생들은 그저 무사히 끝이 났다는 데에 만족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갑 조의 백의생들은 모두가 걸어서 십팔나한진을 나왔다.

첫 번째로 나섰던 팽수, 팽신 형제는.

퍼-억!

“윽!”

신음이 나한들 사이에서 나왔다.

팽수와 팽신 형제는, 두 손을 맞잡고 서로의 몸을 방패삼아 한 걸음씩 전진했다.

가뜩이나 온몸이 무기인 사람들이 서로의 몸을 봉처럼 휘두르는 데, 나한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연결을 떨어뜨리려고도 해 봤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나섰던 사람은 남궁교명과 현오였는데, 두 사람은 의외로 좋은 호흡을 보였다.

“크아앗-!”

남궁경과 남궁진혜에게서 보았듯, 남궁세가의 제왕무적검은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무공이었다.

중검을 조화롭게 다루기 위한 팔 힘부터, 단단한 광배와 복근, 그걸 지탱하는 하체의 힘까지.

그래서 남궁세가 또한 소림이나 팽가만큼 신체 단련을 중요시하는 편이었다.

남궁교명은 손날을 검처럼 사용하면서 날카롭게 나한들의 빈틈을 찔렀고, 그사이 현오는 유연한 동작으로 나한들의 공격을 피해 가며 생문을 찾았다.

“저, 저기!”

현오의 다급한 손가락질을 따라 남궁교명이 파고들었다.

물론 나한들이 겹겹이 둘러싸서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헉…… 헉…… 우에엑!”

현오가 나한진을 뛰쳐나오며 헛구역질을 했고, 뒤이어 남궁교명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빠져나와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으로 도전한 사람은 진화와 남궁구였는데, 그들은 굳이 나한진과 부딪히지 않았다.

“옴!”

진화를 알아본 몇몇 나한들이 바짝 긴장한 가운데, 먼저 나선 사람은 남궁구였다.

“자, 뚫어. 특기잖아.”

“대체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남궁구가 질색하는 얼굴로 진화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남궁구가 움직이자,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와아-!”

개중 제일 놀란 사람은 남궁교명이었다.

그는 남궁구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궁구는 선발대회 때에도 보여 주지 않았던 신출귀몰한 몸놀림을 보이며, 마치 바람이 숲을 헤치듯 나한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진화는 그런 남궁구의 뒤를 따라서 별문제 없이 나한진을 나왔다.

가장 빨리, 그리고 상처 없이.

“이번 녀석들이 그래도 이 수업의 요지를 가장 잘 이해했군. 오늘 죽은 녀석들은, 다음 시간까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생각해 내라! 다음 시간에도 그걸 모른다면, 또 죽어야 할 테니까!”

두 사람을 모두 칭찬했지만, 각우의 시선이 진화에 더 오래 머물렀다.

“특이한 아이로구나.”

칭찬인지 아닌지.

어쨌든 첫 수업에서 개인적으로 감상을 얻은 것은 진화뿐이었다.

현오와 관서겸, 제갈성 또한 진화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특히 제갈성은 수업을 마치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진화를 힐끔거렸다.

‘남궁세가의 경신술이니 미리 알고 있었다고 쳐도, 대체 어떻게 된 몸놀림이지? 앞 사람이 찍어 놓은 발자국을 그대로 밟다니……. 게다가 같은 속도로! 내 몸의 속도를 상대에 맞추지 않는 한 불가능한 몸놀림이야. 입관 시험 두 번째 관문을 파괴하면서 검기를 보였다는데, 진짜였나?’

제갈성은 그때의 일로 제갈소현에게 완전히 내쳐진 상태였는데, 진화를 보자니 오히려 제갈소현과 멀어진 것이 다행한 일이다 싶었다.

그렇게 진화의 일면을 알아보고 놀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각우의 수업을 비웃다가 망신을 당했던 황보정과 단승호는, 진화가 같은 남궁세가 사람의 비호로 너무 쉽게 첫 수업을 넘겼다고 생각했다.

“그놈에게 하는 말 들었어? 수하의 뒤만 쫄래쫄래 따라갔다 나온 녀석에게 뭐?”

황보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보며, 단승호가 이죽거렸다.

그리고 황보정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말을 받았다.

“차별이야! 그런 것도 남궁의 직계라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우리 둘을 꼭 집어서 제일 먼저 하라고 했겠어?”

황보정은 그들이 가장 심하게 당한 이유를 제일 처음에 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잘난 남궁세가의 위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먼저 들여보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인 다음, 다른 녀석들을 움직이게 했다고! 이게 뭐겠어? 거기 있는 놈들은 다 구파일방에 오대세가 출신들이니, 우릴 희생양으로 삼은 거지!”

황보세가는 제갈세가나 사천당문보다 자금력이 풍부하고 가문의 세도 강성했다.

게다가 현 황보세가의 가주인 강룡불패 황보문성은 무림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남궁세가에 처박혀 있는 남궁가주보다 훨씬.

그런데도 왜 황보세가가 정의맹이나 무림에 나오면 늘 오대세가의 뒷전이란 말인가!

황보정은 첫날부터 잘난 명문 세가의 후계들 앞에서 당한 망신에, 좀처럼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허! 그 소림 땡중이 뭘 모르네. 황보세가의 직계와 단천문의 후계가 남궁세가의 양자 따위에 비할라고!”

단승호는 분을 참지 못하는 황보정을 보며 같이 맞장구를 쳤다.

그 자리에는 명문 직계인 팽가 형제나 현오도 있었고, 명문과 상관없는 관서겸도 있었다.

하지만 황보정과 단승호는 그런 것 따윈 모르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그들에겐 진화가 남궁이고, 양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듯 보였다.

* * *

첫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같은 방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려던 진화는, 자리에 앉지 못했다.

“이야, 누군 좋겠어? 집에서 우수한 하인들이 따라와서 보호해 주고.”

“남궁은 진짜 대단하긴 하네. 양자한테 호위를 둘이나 보내고.”

황보정과 단승호의 목소리가 진화와 일행의 걸음을 붙잡았다.

“생긴 거 봐라. 어쩌면 다른 걸 걱정했을지도 모르지. 큭큭큭!”

“아, 그럼 차라리 방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병(兵)으로? 하하하하!”

그들 외에도 몇몇 모르는 목소리가 섞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었다.

“미친……!”

“쪽팔린 줄도 모르고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얼굴이 대번에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들이 황보정과 단승호를 노려보자, 황보정과 단승호가 깜짝 놀란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서 진화를 조롱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이쿠, 호위님들 쳐다본다!”

“누군 좋겠네, 호위들이 일일이 지켜 줘서.”

그들도 남궁세가의 남궁진화가 수석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하지만 막상 남궁진화를 보니, 그들보다 작고 여리여리하게 생겨서는, 항상 곁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보호를 받는 샌님이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진화쯤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누군 호위 둘 돈이 없어서 맨몸으로 들어온 줄 알아?”

“씨발, 남궁의 위세 한번 대단하네! 수석도 만들어 낼 정도면.”

진화가 황보정과 단승호를 보았다.

진화의 시선은 장작에 불쏘시개를 넣은 듯 황보정과 단승호를 더 날뛰게 했다.

“왜, 아니야?”

“뻔뻔도 하지. 귀천비지 출신이라 부끄러운 것도 없나?”

그들은 누가 봐도 작정을 하고 진화에게 시비를 걸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작태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진화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이런 조롱이나 불합리한 멸시 따윈, 이전 생에 신물이 나도록 겪어 본 것이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저차원적이군.’

진화로선, 이전 생에서 가족들을 걸고 협박했던 남궁교명이 훨씬 고차원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남궁교명이 진화의 옆에서 가장 크게 분노하고 있었으니.

‘참 이상도 하지.’

하늘의 행사가 참 이상하다.

아니면 사람이라는 것이 본래 이리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진화는 황보정과 단승호 일행의 조롱을 일거에 무시하곤,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오히려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당황했다.

“뭐야? 이대로 넘어가게?”

“남궁에 대한 모욕이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펄쩍 뛰었지만, 진화는 당장 일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그때, 진화의 곁으로 또 다른 인물이 다가왔다.

백의생들 가운데, 그가 입은 홍의는 눈에 확 띄었다.

“이봐, 네가 남궁진화인가?”

진화가 한숨을 쉬고, 홍의생을 보았다.

“보자는 분이 계신다. 따라와라.”

다짜고짜 용건을 말하는 고압적인 태도에, 다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발끈하려는 순간이었다.

“싫습니다.”

“그래…… 뭐?”

진화의 거절은 생각도 못 했는지, 상대가 되물었다.

그에 진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제갈세가 사람입니까?”

어디서 보았던 반응이라 생각해서 물었다.

그런데 상대는 진화의 말에 다른 생각을 한 듯.

“제갈세가 사람은 맞지만, 그, 그런 용건이 아니다!”

아무래도 홍의생은 진화가 제갈소현의 일로 거절을 한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제갈성렬이다. 너를 찾는 분은, 제갈세가의 소가주이자 관도회 금의장이신 제갈후현 선배다.”

“아, 예.”

“그러니 지금 당장 나와 가자. 그분이 널 궁금해하신다.”

“거절하겠습니다.”

홍의생, 제갈성렬이 착각하는 것이, 진화에겐 제갈소현이나 제갈후현이나 별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둘 다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이, 이봐,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감히 금의장의 말을 거절하는 거냐?”

“……금의장이라는 게, 사사롭게 다른 관도를 부르고 안 오면 처벌하고, 그런 권한이 있는 겁니까?”

진화는 정말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갈성렬은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각 연차의 의장들은 다른 의생들을 관리하는 위치이고, 그중에서도 금의장은 최고…….”

“아! 그럼, 의장들은 같은 의생들을 관리할 수 있는 겁니까?”

진화가 제갈성렬의 말을 끊고 따지듯 물었다.

아니, 따지듯이 맞나?

“그건 당연한 의장들의 권한인데……?”

드르륵!

아무래도 따지려고 물은 건 아닌 듯했다.

진화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기 때문이다.

“의장의 권한이라니!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군요. 모처럼 잘됐습니다!”

진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얼굴이 살짝 질리는가 싶더니.

퍼—억!

진화가 던진 건 나무 국자였는데, 왜 주먹으로 때리는 소리가 난 걸까.

실제로 진화의 나무 국자에 얻어맞은 사람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황보정과 단승호가 경악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안 참아도 되나 보더라고.”

그 말을 끝으로 진화가 식탁 두 줄 정도는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정말 신나게 가는군.”

“섭식 공양 시간 끝나기 전에 끝내야 할 텐데.”

남궁교명과 현오의 말을 들으며, 남궁구는 젓가락을 들고 남은 녀석들의 옷자락을 꽂아 놓는 진화의 모습에 보고만 있었다.

“쟤는 진짜…… 역시 재미있어!”

아니, 간간이 감탄도 했다.

팽수와 팽신 형제는 이들 중 누가 더 잘못되었는지 따지기를 그만두었다.

* * *

식탁을 뛰어넘어 날아오듯 황보정과 단승호 일행에게 온 진화는, 식탁 위의 젓가락을 들어 내리꽂았다.

“으악!”

탁. 탁. 탁. 탁.

자신에게 꽂는 줄 알고 기겁하던 사내가 비명을 지르는 사이, 진화는 모두의 옷을 식탁에 박아 넣고 피식 웃었다.

“괜찮아.”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그걸 따지기도 전에 사내는 진화의 주먹에 단승호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것을 보았다.

퍽-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할 만큼,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퍼-억!

“컥!”

단승호의 머리가 돌아오기도 전에, 황보정이 명치를 붙잡고 몸을 반으로 접었다.

퍽! 퍽!

“크억! 억!”

멍하니 볼 시간도 없이 황보정이 식탁 위에 웅크렸다.

식탁에 옷자락이 꽂혀 있어서 바닥으로 쓰러질 수도 없었다.

그저 복부를 한 대 맞았을 뿐인데, 마치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크으…… 윽…….”

팽가만큼은 아니지만 황보세가의 체격이나 단단함도 무림에선 손에 꼽히는 만큼, 살면서 누군가에게 맞아서 쓰러질 거라곤 상상도 안 해 본 황보정이었다.

황보정은 자신이 그 비리비리한 남궁의 양자에게 얻어맞아서 이렇게 고통을 느낀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진화가 황보정의 얼굴 앞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집안에 폐가 될까 참았던 것뿐이야. 너같이 지킬 명예도 없는 놈과 달리.”

“무슨!”

‘번개……?’

황보정은 자신과 눈을 마주한 진화의 눈동자 속에, 새파란 번개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상상도 해 보지 않은 고통이 엄습했다.

“끄아아아아악-!”

황보정이 고함을 치다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단승호가 코피와 함께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대, 대테 므슨 지슬…… 으아아악!”

제대로 발음도 하지 못하는 단승호는, 진화가 그저 눈앞에서 손을 드는 것만으로 비명을 질렀다.

진화가 피식 웃으며 단승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그냥 정리 좀 한 거야. 의장은 너희를 관리해도 된대서.”

진화의 눈에선 여전히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내공을 쓰진 않았지만, 천뢰기는 아무도 증명하지 못할 테니 괜찮지 않은가.

사실 진화는, 이전 생에도, 지금도, 참고 싶지 않았었다.

정적.

고요한 정적이 식당에 흘렀다.

홍의생 제갈성렬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백의생들의 시선이 진화에게 집중되는데, 그 사이로 제갈소현이 입술을 깨물고 진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화가 있는 곳에 나타날 수 없는 제갈소현이지만, 그녀는 진화의 눈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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