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46)화 (46/425)

남궁마제

벼락 진(震) 될 화(化) : 드러내다(1)

“거절했습니다.”

제갈성렬은 차마 제갈후현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뭐?”

조금 뒤늦게 되묻는 소리.

제갈성렬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바, 바쁘다고 합니다. 시, 실제로 당시 약간의 사고가 있기도 했고…….”

누가 말을 자른 것도 아닌데, 제갈성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그때.

타-앙!

“싫다고 한 거지. 빌어먹게 천한 놈이 오라버니의 부름을 거부했어.”

제갈소현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제갈성렬이 몸을 빼고 얼마 안 있어서 식당을 나온 그녀는, 곧장 관도회를 찾았다.

“그런 놈이야. 제갈후현이든 누구든, 제 주제도 모르고 지껄이는.”

“하!”

제갈소현의 말에 제갈후현이 헛웃음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재미있네! 싫다고? 다른 핑계고 뭐고 없이 싫다? 하하하하!”

“오, 오라버니?”

제갈소현은 제갈후현의 반응이 제 생각과 다른 것에 당황했다.

“건방진 것이 남궁진휘와 똑 닮았군. 예전에 그놈도 그렇게 말했었지. 이유도 말하지 않고 ‘싫은데요.’ 이렇게! 핏줄과 상관없이 형제는 형제야. 안 그래? 하하하하!”

제갈후현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 모습에, 제갈소현은 점점 화가 치솟았다.

“오라버니, 지금이 웃을 때야? 그 천한 놈이 제갈세가의 소가주를 무시한 거라고!”

제갈소현이 제갈후현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뚝 하고 제갈후현의 웃음소리가 그쳤다.

어느새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후현이 싸늘한 눈길로 제갈소현을 내려다보았다.

“……야.”

“오, 오라버니, 그게…….”

“소가주인 내가 괜찮다는데, 네가 왜 무시니 어쩌니 하는 거지? 그딴 걸 네 마음대로 판단하도록, 내가 허락했던가?”

서늘한 눈길 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제갈소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헙! 오, 오라버니……!”

“소현아, 어차피 주제 파악을 하든 못하든 상관없는 이들과 너는 다르잖아? 너는,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해야지.”

“죄, 죄송해요. 제, 제가 말실수를 했어요.”

겁에 질린 제갈소현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숙여야 했다.

자존심과 목숨을 저울에 올린다면, 당연히 목숨이 아니겠는가.

제 오라비는 여동생을 팔아 치우는 것만이 아니라, 언제든 물어 죽일 수 있는 살모사 같은 작자였다.

제갈소현의 등이 땀으로 젖을 때에야 겨우 제갈후현이 시선을 거두었다.

“그건 그렇고, 일이 꼬였다는 건 뭐야?”

“저, 그것이…….”

둘째인 제갈용성이 눈치를 보며 한쪽 구석에 있던 제갈지현을 눈짓했다.

그에 제갈후현이 대수롭지 않은 듯 혀를 찼다.

“괜찮다. 어차피 다 우리 형제인데, 그냥 말해라.”

“아, 예, 예.”

방금 제갈소현을 압박하는 것을 보아서일까.

제갈후현의 말에도 불구하고 제갈용성은 형님이 아닌 상사를 모시는 듯 절절맸다.

그때.

드르륵-.

침묵을 깨고, 제갈지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됐어. 나 나가고 말해요. 오라버니의 행사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 않으니까.”

“하! 우리 셋째는 쌀쌀맞기도 하지.”

냉정한 제갈지현의 말에, 제갈후현이 이마를 치며 과장되게 웃었다.

제갈지현은 제갈후현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직도 창백하니 질려 있는 제갈소현에게 눈을 돌렸다.

“너는, 계속 여기 있을 거니?”

“응? 아, 아니. 나, 나도 가 볼게요!”

제갈소현은 마치 구원의 손길을 받은 듯 제갈지현을 따라 관도회실을 나갔다.

제갈지현과 제갈소현이 나간 뒤.

제갈후현의 눈이 다시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지현이 저년이 뭐 하고 다니는지, 잘 지켜봐.”

“네? 하지만 지현이는 무학관에 들어오고 쭉 수업과 숙소, 그리고 관도회실만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날 끔찍하게 싫어하는 년이 뭐가 좋다고 여길 꼬박꼬박 오겠어?”

“지현이가 보기보다 정이 많지 않습니까. 방금 소현이 일도 그렇고.”

제갈용성이 제갈후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제갈용성의 말처럼 제갈지현의 행동에는 수상할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제갈후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찝찝했다.

“계집애가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눈깔이야. 할 수만 있다면 눈깔만 파 버리고 싶군.”

“혀, 형님!”

“알아. 아버님이 총애하는 여식이지. 그러니까 잘 지켜봐. 내가 저 앨 다치게 만들지 않도록.”

“예.”

제갈후현의 말에, 제갈용성의 눈짓을 받은 제갈성렬이 급히 대답했다.

제갈지현을 감시하는 것은 같은 홍의생인 제갈성렬의 임무로, 그는 급히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다.

허둥지둥 나가는 제갈성렬을 보던 제갈후현이, 다시 제갈용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이 꼬였다는 건 뭐야?”

“금의부장 남궁진혜, 은의장 모용혁, 동의장 현각과 부장 팽위, 오개 등이 복귀하고 있답니다. 관도회주의 명이랍니다.”

“뭐? 그게 언제 결정인데?”

“어제 전갈이 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동의장과 부장들은 낙양에 있던 터라 복귀가 빠릅니다.”

“갑자기 그 녀석들을 복귀시킨다고?”

제갈후현의 눈이 매섭게 돌아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로는, 남궁진휘만 한 놈이 또 있을까.

제갈가주조차도 털끝만큼은 감정 변화를 내비치는데, 남궁진휘 그놈은 정말 어떤 변화도 없었다.

내내 웃으면서 저를 보는 눈빛에는 경멸을 담고 있었다.

‘장장 오 년 동안이나!’

탕!

제갈후현이 탁자를 내리쳤다.

“이유 없이 움직일 놈이 아니다. 뒤져. 털끝만큼이라도 꼬투리가 될 만한 게 있는지 뒤져 봐.”

“예!”

“그리고 백의생 중에 똘똘한 놈 없나?”

“이번에 제갈소천대 출신인 제갈성과 제갈진이 들어와 있습니다. 제갈성은 세가에서도 다음 소천대주로 촉망받는 기대주고, 제갈진은 아버지가 우장로입니다.”

제갈용성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제갈진에게 들르라고 해.”

제갈용성의 말을 듣고 조금 생각하는 듯하던 제갈후현이 말했다.

그의 선택은 제갈용성에게 조금 의외였던 듯했다.

“제갈성이 아니라요?”

“신분 탄탄하고 재주 출중한 놈들은 대가리도 단단하지. 자기주장 있는 놈들은 필요 없어. 이런 일일수록, 출세를 위해 시키는 일은 뭐든 하는 놈들이 낫다. 아비가 우장로라면 눈치 빠르고 싹싹하겠지.”

‘바로 너 같은 놈.’

제갈후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스쳤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갈용성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당장 불러 오겠습니다.”

“아, 아니야. 그냥 네가 전해. 남궁진화였나? 놈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 오라고 해. 남궁진휘 놈이 아끼는 동생이라니, 때를 봐서 주제 파악을 좀 도와줄 필요가 있겠어.”

“예. 바로 전하겠습니다.”

제갈용성은 살짝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제갈후현은 집요한 눈빛으로 제갈용성의 표정을 관찰했다.

하지만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제갈용성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갈 때까지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동복동생인 지현, 소현과 달리 유일한 이복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제게 충성을 맹세하고 손발을 자처하고 있으니.

‘내가 아는 한, 제일 징그러운 놈은 바로 너다. 육 년, 아니 열 살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발톱 하나 드러내지 않았으니. 살기 위한 선택인지, 내 목을 물기 위한 처신인지……. 부디 앞으로도 지금처럼 들키지 않길 바란다.’

제갈후현은 개성적인 동생들을 생각하며 웃음을 짓다, 곧 수련장을 향했다.

* * *

관도회실을 나선 뒤.

제갈지현은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제갈소현과 한적한 정자로 향했다.

큰 키에 경직된 듯 꼿꼿한 자태, 거기에 조금 나른한 듯 처진 눈은 제갈소현의 그것과 달라 보였다.

오히려 이복 남매인 제갈용성과 더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제갈소현은 제 언니가 늘 멀게 느껴졌다.

“왜, 왜 보자는 건데?”

“이제 네가 어떤 멍청한 짓을 했는지 좀 알겠니?”

“지금 그걸 비꼬려고 불러낸 거야?”

제갈소현이 눈을 치켜뜨고 제갈지현을 노려보았다.

소가주인 제갈후현에게는 겁에 질렸지만, 언니인 지현에게는 지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제갈지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비꼴 가치는 있고?”

“뭐야!”

제갈소현이 뾰족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제갈지현이 돌연 제갈소현의 손을 잡아당겼다.

누가 보면 화가 나서 잡아당기는 사람처럼 갑자기.

“뭐, 뭐야?”

제갈소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제갈지현이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전부 다 빼앗기고 비참하게 팔려 나가기 싫으면, 네가 직접 해.”

“뭐, 뭐?”

“독사 같은 후현 오라버니가 그것들만 뺏고 끝낼 것 같아? 그러니까 네 건 네가 지켜. 네 일도 네가 처리하고.”

제갈지현의 적나라한 말에 제갈소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녀라도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나더러 어쩌라고! 호위 하나 없이 손발이 다 묶였는데!”

제갈소현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에 제갈지현이 주변을 살피며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여주관에게 가 봐. 쓸 만한 걸 내줄 거야.”

“쓸 만한 거?”

“무색무취, 누구도 모를 거야.”

제갈지현이 은밀하게 전하는 말에 제갈소현이 침을 꼴깍 삼켰다.

“어, 언니가 왜 이런 걸 가르쳐 주는 건데?”

“글쎄.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 딱 한 번, 알려 주는 것뿐이야. 다음은 없어.”

제갈지현이 ‘딱 한 번, 마지막’을 강조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 때문에, 제갈소현의 눈이 흔들렸다.

“나머지는 네가 직접…… 알겠지? 그럼 내 말 명심하렴.”

제갈지현의 말에 제갈소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쁜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제갈지현은 종종걸음으로 달리듯 걸어가는 제갈소현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좋다고 달려가는 꼬락서니라니.

“고작 상단을 들고 거래를 하겠다면, 오라버니가 덥석 잡을 줄 알았나? 저렇게 멍청하니, 이렇게라도 알려 줘야지.”

제가 알려 준 것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여주관이야말로 자신을 키운 유모라, 일이 잘못되어도 제 이름을 말할 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저 혼자 저질러도 좋고, 오라버니 바지 자락이라도 더럽히면 더 좋고. 후후후.”

별 기대는 없었다.

다만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으니, 조용히 지켜만 보면 될 일이라.

제갈지현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자리를 떴다.

* * *

의약방을 들렀던 황보정은 분을 참지 못했다.

“젠장! 빌어먹을 자식!”

“우, 우리가 갑자기 기습을 당해서 그래! 검도 없었고!”

단승호가 옆에서 자기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황보정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했다.

황보정이 늘 명문을 이기고 싶어 할 정도로 열등감이 있었지만, 그건 그만큼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질 만큼 나름 실력도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어. 보고도 피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고! 게다가 그 이상한 힘은 뭐지? 눈에 번개가……!’

찌릿.

오른쪽 어깨에서 찌릿하면서 홧홧한 통증이 밀려왔다.

의원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의원조차 이런 화상은 처음 보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놈 대체, 정체가 뭐야?’

황보정은 남궁진화에 대해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정아, 왜 그래?”

“음? 아, 아무것도 아니야.”

황보정은 제 상처를 숨겼다.

콧구멍에 솜을 쑤셔 넣고 붕대까지 붙인 단승호의 꼴도 우습지만, 제 속이 그보다 더 많이 다쳤다는 걸 알려 주는 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홧홧거리는 통증에 잠을 설친 황보정이 밖으로 나왔다.

그때 뒤뜰 나무 기둥 뒤에서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깜깜한 어둠인데, 무언가가 있는 느낌.

황보정이 뒤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됐다. 그런 걸 기대…… 앞으로 잘…….”

수군거리는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거기, 누구 있어?”

황보정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 그림자.

새까만 어둠과 그늘을 뚫고 나온 건, 황보정이 아는 얼굴이 맞았다.

“왜, 왜 나왔어?”

단승호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황보정에게 다가왔다.

“아, 난 잠이 안 와서. 누구야?”

단승호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황보정이 궁금한 듯 묻자, 단승호가 코 옆을 긁적였다.

“아, 아는 형님이신데, 야간 당번 중에 내 상태가 궁금해서 오셨더라고.”

“그래?”

정의맹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금은동의생들 중에는 야간 경계 임무를 맡은 이들도 꽤 있었다.

단승호의 말에 황보정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만.

‘향냄새?’

단승호로부터 전해지는 향냄새가 은근히 기억에 남았다.

* * *

한편.

자신이 없는 사이에 제갈후현이 진화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남궁진휘는 급히 진화를 찾았다.

“진화야, 괜찮으냐? 다친 곳은 없고?”

“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진화를 이리저리 살피는 남궁진휘의 모습에, 진화가 어리둥절한 듯 눈을 깜박였다.

“제갈후현이 찾았다더구나.”

“아, 그거…… 식사 중이라 안 갔어요.”

“그래? 참 잘했구나!”

남궁진휘가 반색했다.

제갈후현이 찾았다는 소식만 듣고, 거절당했다는 소식은 못 들었었나 보다.

진화는 그만큼 다급하게 찾아 준 남궁진휘가 고마웠다.

“잠시만요, 형님!”

남궁진휘의 얼굴을 보자 무언가 생각난 듯 진화가 급히 숙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진화가 움직이자, 사람들이 급히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내리깠다.

사실 지나가던 사람들뿐 아니라 갑 조 사람들 모두 문간에 붙어서, 그 유명한 남궁진휘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현오, 그것 좀 주십시오.”

“아! 음…… 대신 내일 아침에 같이 가 줘야 하네. 돈도 남궁 시주가 내줘야 하네?”

“그러겠습니다.”

진화가 고민하는 현오에게 확답을 주고 작은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형님, 이거요.”

“응? 이게 뭐니?”

“완전 맛집 것이랍니다.”

진화가 수줍게 웃으며 요즘 푹 빠진 고기만두를 건넸다.

남궁진휘는 고기만두와 진화를 번갈아 보다가 둘 다 품에 안았다.

“아, 동생아, 부디 이렇게만 자라다오.”

들소 같은 여동생에게선 느껴 보지 못한 애틋함이라.

남궁진휘는 진화에게 고기만둣값을 잔뜩 안기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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