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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47)화 (47/425)

남궁마제

벼락 진(震) 될 화(化) : 드러내다(2)

“오, 맛있는 냄새. 웬 만두입니까? 저도 좀…….”

찰싹.

“아야!”

“어딜 손대.”

남궁진휘가 뜬금없이 뻗어 오는 손을 냉정하게 쳐 냈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만두 봉투를 내밀어 자랑하는 건 뭔가.

“전부 혼자 먹을 거다.”

“와, 만두 가지고…… 어? 이거, 오성반점 거네요? 이야, 여기 새벽에 일찍 줄 서야만 살 수 있는 맛집인데!”

“하하하, 우리 진화가 이 형님을 위해 준비했다지 뭐야?”

찰싹!

“그러니까 꿈도 꾸지 마.”

다시 손을 맞은 사내, 호현기가 신기한 듯 남궁진휘를 보았다.

오성반점은 이 근방에선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었지만, 남궁진휘라면 오성반점을 사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보고도 마저 듣지 않고 굳은 얼굴로 뛰어가더니, 지금은 한껏 우쭐대는 표정이 아닌가.

“소공자님이 드린 게 그렇게 좋습니까?”

“세가에 말했다면, 가주님께서 정의무학관 식당에 오성반점 주방장을 데려다 놓았을 거다. 그런데도 진화가 새벽부터 줄을 서는 걸 택한 거다. 날 위해서! 만두 하나에 이런 성의와 애정을 보여 주는 동생, 있나?”

“……아마 제 동생이 제일 먼저 소공자님을 위해 주방장을 납치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동생이 호명기, 이번에 들어온 백의생 맞지?”

호현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가주님 따라서 동생 얼굴 본 지가 어언 삼 년이 넘었는데, 학관에 와서 단 한 번도 형님을 찾지 않은 자립심이 뛰어난 놈이죠.”

결코 자랑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예쁜 동생이 걱정돼서 보고도 듣다 말고 가셨습니까?”

“일단 애부터 챙겨야지.”

“이번에 그 동생분께서 식당에서 동기들 다섯을 박살 낸 것도 듣고 가지 그러셨습니까?”

“뭐? 그런 일이 있었어?”

“휴우…….”

놀란 얼굴로 묻는 남궁진휘의 모습에 호현기가 한숨을 쉬었다.

남궁진휘가 저렇게 과장스럽게 표정을 짓는 건, 진심으로 전혀 안 들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호현기의 반응에 남궁진휘가 피식 웃었다.

“걱정할 일만 걱정해야지. 어디서 몸이 다쳐 올 아이는 아니야. 할아버님도 인정한 무재니까.”

“제왕검께서 말입니까?”

“나와 진혜도 재능이 있다 하셨지만, 진화 정도는 아니었어.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칠 거야.”

“안 그래도 단천문 소문주의 코뼈가 나갔답니다.”

“하하하하!”

“어째 점점 듣던 것과는 다릅니다. 듣기에는 꽃같이 곱다고 했는데……. 제갈후현의 부름을 단번에 거절한 것이나, 벌써 동기들을 휘어잡으려 드는 것이나.”

유쾌하게 웃는 남궁진휘 옆에서 호현기가 한숨을 쉬었다.

제발 남궁진혜 같은 사고뭉치는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참, 그것보다 낙양 임무 수행 중이던 동의생들 중 사망자가 나왔답니다.”

“뭐?”

이번에는 진짜 놀랐다.

남궁진휘의 눈빛이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그러게 보고 좀 끝까지 듣고 가시지.”

“현기.”

“예. 침입자가 있었고, 죽은 이 두 명 모두 단천문 소속입니다.”

“침입자라고?”

“워낙 암살자가 빈번한 곳이라 그건 놀랍지도 않죠. 다만,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이번 해에 들어서며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주시 중이던 이들이었습니다.”

호현기의 보고에 남궁진휘의 눈빛이 깊어졌다.

“암살자들의 침입 과정에 대해 살피라고 해.”

“네? 거긴 원래 사흘돌이로 침입자가 있었지 않습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인데요.”

“공교로워서 그래. 하필 내가 정의맹에 간 때에, 우리가 주시 중이던 인물만 두 명이 죽었다는 게.”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제갈후현 쪽이 바빠졌습니다……. 동의부장 오개를 다시 보낼까요?”

호현기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 자못 심각해졌다.

“남들 눈을 피해서 의선문에 협조 요청도 부탁해. 암살자들의 시체는 우리가 확보 중이지?”

“예. 그런데 죽은 단천문 소속 동의생들은 벌써 단천문에서 시신 요청이 왔습니다.”

“그 시체도 무조건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 해. 의선문에 협조 구해서 그쪽 시체를 꼭 확보하도록 해.”

“충.”

남궁진휘의 말에 호현기가 고개를 숙였다.

‘시체라…… 왜 그 소식을 들었을 때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부터 들었을까.’

올해에 들어, 비약적인 성장을 보인 관도생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들에겐 아무런 성장 요인이 없었고, 무공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왜 하필, 제갈세가와 가까운 이들일까. 영약 거래라도 하나?’

아니, 세상에 영약이 그렇게 흔해 빠졌다면 그게 영약일까.

스스로 생각해 놓고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에, 남궁진휘는 쉬이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 * *

정의무학관 두 번째 수업은 백화선녀 홍채연의 수업이었다.

독과 함정 그리고 약간의 의술을 배우는 수업으로, 통칭 생존술이라 불렸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갑 조 일행 사이에선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왜 그래?”

“몰라서 묻냐?”

“응.”

남궁구의 말에 진화가 당연한 듯 대답했다.

남궁구는 그제야 왜 진화 혼자 태연한지 깨달았다.

“아! 넌 독차를 안 마셨다고 했지?”

남궁구의 말에 일행이 일제히 진화를 보았다.

다들 입관 시험 세 번째 관문에서, 홍채연이 주는 차를 먹고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던 이들이었다.

장이 비틀리는 데는, 힘센 팽가 쌍둥이도 예외는 없었다.

“아니, 무사부가 주는데 그걸 거절했다고? 놀라운 보살일세.”

“마녀의 면전에서.”

“마녀의 청을 거부하다니.”

현오와 팽가 쌍둥이가 진화에게 엄지까지 들어 보였다.

“어쨌든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긴장하고 있는 거지. 해독제를 먹고도 폭풍 설사를 하는 꼴은 피하고 싶거든.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새어 나올까 봐 필사적이었던 걸 생각하면, 마녀가 주는 건 전부 피하고 싶다.”

남궁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 설사라…… 그래서 다들 그때 배와 엉덩이를 잡고 뒹굴고 있었구나.’

진화는 세 번째 관을 나오자 다들 누워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수업을 위해 마련된 강당으로 가자, 여섯 명의 여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을 조가 아닌 병(兵) 조와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하나같이 무림에서 손에 꼽히는 재녀들이라, 여인들만 모아 놓은 조지만 결코 성적에서 밀리지 않는 강자들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독심화 당혜군과 용수권 나하연이었다.

마른 체형이 위태로우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기세를 뿜고 있는 당혜군은, 입관 전부터 남궁진혜, 나하린, 제갈지현과 함께 무림 사화로 손꼽히는 미녀였다.

장미처럼 화려하고 당당한 자태를 자랑하는 나하연 또한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곧 무림 사화가 아니라 무림 오화가 될 거라 말이 나오는 미인이었다.

두 사람 외에 제갈소현과 손여진, 유혜정, 하후미미 또한 무림에서는 손에 꼽히는 명문 출신의 재녀들이었다.

일반적인 젊은 남성들이라면 이 여인들에게 눈을 떼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갑 조원들은 그저 눈짓으로 인사하고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미에 미친 남궁구와 복수에 미친 남궁교명, 수련에 미친 팽가 쌍둥이에 남은 하나는 스님이라.

심지어.

‘저 여인들도…….’

진화의 머릿속엔 수업 전 들었던 말이 아직 맴돌고 있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나하연이 진화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대, 어제는 잘 들어갔나?”

“……?”

진화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하연을 보았다.

제가 언제 나하연을 만났던가.

너무 당당한 태도라 진화마저 기억을 더듬어 볼 정도였다.

‘뭐야, 둘이 만났다고?’

제갈소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시선이 둘을 향했다.

뭔가, 강당의 집중력이 화악 올라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어제 꿈속에서 그대의 손을 놓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꿈이란다.

다음에 나온 말에 모두 맥이 풀린 얼굴들이었다.

“혹시 지금 저를 희롱하시는 겁니까?”

‘으잉?’

다시 집중력이 올라갔다.

“아니다. 나는 정당하게 수작을 거는 거다. 혼인을 전제로 좀 찝쩍대도 되겠는가?”

‘오오오-!’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강당에 퍼졌다.

진화의 눈이 커졌다.

혼인이라니, 이전 생부터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혼인을 한다면, 남궁에 도움이 될 사람으로 어른들이 결정해 주는 대로 따를 생각이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라, 집안 어른들이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오오, 은근한 거절!’

“걱정 마라. 집안을 통해 이미 청혼서를 넣었다.”

‘빠, 빨라!’

“그럼 본가의 전갈을 받는 대로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아, 허락이 떨어진다면, 혼인을 전제로 교제를 신청하겠다.”

진화의 대답에 나하연이 씩씩하게 선언하듯 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오오오-! 대놓고 교제래!’

강당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남자 주인공이 지나치게 순하고 여자 주인공이 지나치게 늠름한 것만 빼면, 저자의 남녀상열소설보다 실감나는 상황에, 다들 아닌 척 흥분하고 있었다.

그때, 흥분을 참지 못하고 끼어든 여인이 있었으니.

“고리타분하군! 요즘 것들은 연애를 몰라! 일단 뜨겁게 교제부터 하고, 부모님과 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반도주 정도는 해 줘야지!”

백화선녀 홍채연이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고작 그거 찝쩍일 거였으면 이제까지 기다리지도 않았지! 시시하긴. 책이나 들어!”

제시간에 도착하고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던 홍채연이 신경질적으로 가져온 책을 하나씩 던져 주었다.

* * *

긴급술기서(緊急術技書).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책을 살폈다.

“말 그대로 긴급술기서. 전장에서 독에 당했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쓸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의술을 적어 놓은 것이다.”

홍채연의 말에 책을 보는 눈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자, 목록에는 ‘독을 알아보는 법’, ‘지혈과 해독에 필요한 약초’, ‘지혈 방법’, ‘뼈를 고정하는 법’, ‘환자를 다루는 법’ 등이 전부였다.

“전장에서 제일 중요한 의술이 무엇인 것 같으냐? 너, 말해 봐라.”

“자상이 많을 테니, 역시 지혈이라 생각합니다.”

“너는?”

“교활한 귀천성도를 가정하면, 지혈과 해독에 필요한 약초를 알아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넌?”

“저도 독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홍채연의 독에 당한 기억이 있는 이들은 모두 독에 대해 경계했다.

하지만 홍채연은 싸늘하게 그들을 비웃었다.

“틀렸어. 너희들이 독에 대해 공부해 봤자 얼마나 한다고. 평생 독공만 파 온 자들, 여기 당혜군만 해도 당장 해독하지 못한 독만 백 가지는 더 말할 수 있을 거다.”

홍채연의 눈짓에 당혜군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이들이 모르는 독이라면 천 가지, 만 가지도 댈 수 있지만, 홍채연조차 당장 해독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백 가지 정도가 다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적은 숫자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라.

독이란 무릇 쓰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상성에 따라 독이 아닌 것들도 얼마든지 독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니 독공을 연구하는 이들도 평생 다 하지 못한 방대한 양을 이제 시작하는 이들이 따라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혈도 마찬가지야. 살가죽이 아니라 근육과 내장, 뼈까지 들어간 자상은 고작 약초와 붕대로는 절대 피를 멈출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의술은, 의원에게 데려갈 때까지 시간을 버는 의술이다.”

백의생들의 얼굴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홍채연은 그런 백의생들의 면면을 보며 짙게 웃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가르칠 것이 없다.”

“……!”

“책을 달달 외워! 붕대 감는 것이나 약초를 보는 것 정도는 잠깐잠깐 연습해 보는 것으로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거다. 그러고도 의원이 올 때까지 못 버틸 상처라면, 의원이 온다고 해도 죽을 거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백화선녀 홍채연.

의선의 하나밖에 없는 사제로 그녀 스스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의였지만, 사람을 살리는 의원보다 죽이는 의원으로 명성이 높은 그녀의 일면을 본 느낌이었다.

“죽기 살기로 익혀야 할 거야. 왜냐면, 내 수업에선 그걸 반드시 써 먹어야 할 거거든.”

홍채연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독과 함정은, 미련하게 탈출할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피하는 것이다.”

백의생들의 눈이 일제히 진화를 향했다.

“내 첫 번째 수업. 입관 시험의 세 번째 관문을 재연하라! 갑 조와 병 조의 경쟁이다. 지금부터 이 주 후 다음 수업에 맞춰서, 누구라도 먼저 상대 조의 일원을 중독시키면 가산점, 그때까지 스스로 살아남으면 성공이란다.”

모든 이들이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정의무학관의 수업이 실전형이라는 건 들었지만, 이렇게 상대를 함정과 독을 적나라하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독을 쓰는 적은 시기를 맞춰 필요에 의해 상대를 죽인다. 적어도 나의 죽음이 아군에 피해가 가도록 하진 않아야겠지?”

홍채연의 말에서 전쟁의 비정함이 느껴져, 잠시 숙연해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홍채연의 말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세 번째 관문에서 보았던 그 독이다.”

“……!”

홍채연이 작은 병들을 하나씩 백의생들에게 주자, 그걸 본 백의생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핼쑥해졌다.

“사용량에 따라서 독의 발현 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이걸 분석해서 해독약을 만들어도 좋고, 상대에게 몇 번이고 먹여도 좋아. 하지만 그 전에, 본인이 살아야겠지? 후후.”

홍채연의 웃음소리와 함께, 갑 조와 병 조 백의생들을 벌써부터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다.

백의생들 중 웃고 있는 사람은 제갈소현뿐이었다.

그녀는 즐겁다는 듯 어딘가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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