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벼락 진(震) 될 화(化) : 드러내다(4)
남궁진휘는 최대한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했지만, 어쨌든 인력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양청현에는 제갈세가의 눈이 곳곳에 있었고, 정의무학관에도 마찬가지였다.
눈에 불을 켜고 남궁진휘를 주시하고 있던 제갈후현의 눈이, 사람들의 움직임을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내일이라고?”
“예. 내일, 금의생과 은의생 중심으로 이뤄진 임무조가 꾸려졌는데, 임무란에 ‘수행’이라고만 되어 있답니다.”
“수행이라…….”
관도회의 임무 관리는 매우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이런저런 제약을 붙이다 보니, 행정과 규율 집행이 매우 투명해진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번에도 남궁진휘 측에서는 기밀을 유지했지만, 제갈후현 쪽에서는 ‘기밀’ 혹은 ‘수행’이라는 것만으로 어렵지 않게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제갈후현은 ‘수행’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남궁진휘가 직접 움직이나?”
“그것까진 알 수 없었습니다.”
“알 수 없다고? 임무를 받은 녀석들이 있을 텐데?”
“그게…… 남궁 쪽 사람들로만 이뤄져 있습니다.”
제갈용성의 말에, 제갈후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제갈용성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제갈용성을 압박한들,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은의생들까지?”
“그렇습니다.”
“새로 포섭한 애들도 있을 텐데?”
“마찬가지입니다.”
“하! 남궁진휘, 이 귀신같은 새끼!”
제갈후현은 기가 차다 못해 감탄까지 나오는 듯했다.
“하루가 다르게 그렇게 은밀하게 포섭하는데, 그걸 다 파악하고 있다라? 이 정도면…… 어디서 새어 나가고 있는 거 아니야?”
“아, 알아보겠습니다.”
“밑에 놈들 단속 잘해. 그리고 포섭 방식을 좀 바꿔 봐. 대체 왜 그렇게 잘 걸리는 거야?”
“소, 송구합니다.”
포섭 방식은 제갈후현이 지시한 대로였다.
하지만 제갈후현은 일이 잘 안 풀릴 때에,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은 그 화살이 제갈용성에게 향했다.
제갈용성도 그걸 잘 알았다.
“남궁진휘가 직접 움직이는 거면 일이 복잡해.”
“탈취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차라리 단천문에 정보를 흘리는 것이…….”
“허! 남궁진휘가 단천문 따위를 신경이나 쓸 것 같아? 죽은 놈들 어미 아비를 깔아 놔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놈이야.”
“그럼…….”
“태워.”
“예?”
“다 태워 버려. 그 그림자 놈들이 아직 여기에 있던가?”
“……!”
제갈후현의 말에 제갈용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좀처럼 제갈후현과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던 그였기에, 지금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혀, 형님, 그자들은…… 위험합니다. 특히 남궁진휘가 직접 나선 거라면…….”
“그러니까 우린 더 안전해지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짓을 해서든, 받은 돈의 대가를 치르는 놈들이니까.”
제갈후현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이러다 남궁진휘가 뒈져 버리면 더 좋고. 꺼림칙한 놈들을 두 놈이나 치울 수 있겠군.”
“…….”
“황금 준비해라.”
제갈용성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렸다.
하지만 결국은 제갈후현의 명을 수행할 것이다.
* * *
비영문(悲影門).
대가만 준다면 무슨 일이든 해 주는 해결사 단체였다.
귀천성과의 전쟁 때도 그들은 대가에 따라 편을 가리지 않고 일을 받았다.
‘그림자의 목숨은 오로지 황금으로만 계산한다.’는 그들의 철칙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신념과 철칙에도 대가는 따랐다.
그들은 귀천성을 도왔다는 명분으로 정의맹에 쫓겨났다.
아니, 그들이 다시 사파나 귀천성을 도울 것을 염려하여, 사냥당했다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게 비영문은 전쟁의 슬픈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다.
그런데 그 비영문이 다시 나타났다.
아니,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들은 잠시 어둠 속에 스며든 것뿐이라는 듯, 황금이 부르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에 버젓이.
어둠보다 한 층 더 어두운 공간.
“일 처리는 틀림없겠지?”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황금 다섯 관. 목숨값이다.”
“…….”
드르르르르-.
수레로 실고 와야 했던 금 다섯 관이 검은 그림자들의 손에 이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갈후현이 한숨을 쉬었다.
돈을 받았다는 건, 의뢰를 받아들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갈후현이라도 비영문을 상대하는 건 조금 꺼림칙했다.
‘죽여도 죽지 않는 버러지 같은 놈들.’
무색무취의 불길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만큼 뒤탈 없는 자들도 흔치 않았으니.
전쟁 때, 정사 연합과 귀천성이 그들에게 손을 뻗은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제갈후현과 그의 뒤에 죽은 듯 있던 제갈용성이 돌아갔다.
제갈 형제의 모습이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림자가 불쑥 솟았다.
“제갈의 일에 끼어들 생각인가?”
“의뢰니까.”
“그나저나, 저 아해는 여전히 제갈후현의 곁에 붙어 있는군.”
“저 되다 만 사갈들은 매번 서로 잡아먹으려고 지랄들이지.”
“어쨌든 잘됐군. 저 아이가 계속 저렇게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제갈세가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이참에 제갈후현의 신뢰를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꿩 먹고 알 먹고지. 우리 일도 처리하고, 저놈들에게 돈도 받고. 안 가길 잘했잖아. 큭큭큭!”
“흔적을 남기면?”
“제왕이 제갈을 쌈 싸먹으려고 지랄하겠지.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크흐흐흐!”
“우리 쪽은 모두 철수시키겠다. 양주에서 남궁경이 날뛰고 있다는군.”
잠깐 대화를 나눈 뒤, 한 그림자가 날아가듯 사라지고 다른 그림자는 땅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 * *
달이 뜨고 별이 많아서, 다른 때보다 밝은 밤이었다.
병사들이 아닌 횃불을 든 무인들이 성문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벽과 큰길에는 이미 등불이 있어서 그리 어둡지 않았다.
잠시 뒤, 큰길에서 세 사람이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회주님?”
십수 명의 무인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등불 아래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창천신룡 남궁진휘와 호현기 그리고 처음 보는 백의 서생이었다.
“의선문에서 나왔습니다. 백소하입니다.”
“아……!”
백의 서생, 백소하의 소개에 많은 이들이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입고 있는 백의가, 앞치마를 한 듯 독특한 외투가 있는 의선문의 복식이었다.
게다가 백소하라는 이름은, 의선의 후계자로 다들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했다.
“이곳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의선문을 갈 것이다.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해라.”
“충.”
남궁진휘의 말에 무인들이 각자 등을 돌려 사방을 경계했다.
‘아무래도 시신들에 범상치 않은 사연이 있나 보군.’
백소하는 남궁진휘와 정의무학관 관도들의 행동을 보며 긴장감을 높였다.
잠시 후, 먼 숲을 뚫고 나온 관도에서 불빛이 보였다.
“저기! 대장군부의 깃발입니다.”
호현기가 하후대장군부의 깃발과 함께 기다리던 이들이 오는 것을 알렸다.
“신원-!”
“하후대장군부에서 왔다. 문을 열어라!”
병사들의 검문이 있고, 성문은 금세 열렸다.
히이이잉-!
척. 척.
성문을 들어와 절도 있는 모습으로 말에서 내린 사내가 남궁진휘를 알아보며 포권을 했다.
“현위 조사운이오. 대장군부의 명을 받아 시신을 인계하러 왔소.”
“불초 남궁진휘라 합니다. 대장군부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현위 조사운은 자신을 남궁진휘라 밝힌 청년을 살폈다.
준수한 생김에 곧고 단단한 기세.
거기에 양주 일대를 잡고 있는 남궁세가의 후계자라.
양주에선 남궁의 위세가 자사부를 넘길 정도라는데, 그곳의 후계자는 무척 침착하고 겸손해 보였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고. 제왕검의 아래로 남궁에서는 인물만 나오는군.’
조 현위의 눈빛이 호의적으로 변했다.
대장군부의 위세에 버금가는 집안의 후계임에도, 현위인 자신에게 진심으로 예를 취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시신들을 확인하겠습니다.”
“물론이오.”
남궁진휘의 말과 동시에, 호현기가 횃불을 들고 움직였다.
수레에 있는 검은 관 속에는 소금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날이 풀리지 않아 시신의 상태도 온전했다.
“맞습니다.”
호현기의 확인과 함께 백소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신에 이상이 없음을 본 것이다.
그들의 확인에 남궁진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 정의맹과 정의무학관의 정식 인장이 찍힌 서신입니다. 대장군의 호의에 감사를 전하기 위함이니, 전해 주십시오.”
“안전하게 전하겠소이다.”
아직 세상이 흉흉하고 난세는 끝나지 않았으니.
관부와 정의맹의 협력 관계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정의맹의 무인들은 일당백 이상의 전력이라, 불안한 황실의 치세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대장군부에서 정의맹에 호의를 보인 것도 이 같은 협력을 이어 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럼, 갈 길이 멀어서 우리는 다시 출발하겠소.”
“밤이 늦었는데, 하룻밤 머무르시지 않고요?”
“그리 멀지 않은 길이오. 군인이 근무지를 두고 오래도록 이탈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럼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모쪼록 무탈하게 가십시오.”
“회주도, 하려는 일이 잘 풀리길 기원하겠소. 낙양에 온다면 연락 주시오.”
조 현위와 남궁진휘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조 현위와 온 군인들은 다시 말을 달려 관도를 달려 나갔다.
그리고 정의무학관 금의생과 은의생 들은 각자 맡은 위치로 이동했다.
백소하와 금의생 하나는 수레를 몰고, 누군가는 그 주변을 경계했다.
“우리도 가지.”
남궁진휘와 호현기가 앞장선 가운데, 시신 호송이 시작되었다.
* * *
성문에서 의선문까지 가는 길.
숲을 통과하는 관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아직도 불야성처럼 떠들썩한 저잣거리가 나온다.
반각.
아니, 경공을 전력으로 펼친다면 이 다경 만에 지날 길이었다.
하지만 사방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고요함을 넘어선 적막함 그리고 뒤에 실린 시신.
일행 사이로 긴장감이 높아졌다.
멀리 보이는 대낮같이 환한 저자를 보며, 금의생과 은의생 들은 사방의 칠흑 같은 어둠을 이겨 내려 애썼다.
“에고, 저기서 노는 놈들 좋겠다.”
“왜, 너도 놀고 싶냐? 아, 그러고 보니, 너 곧 혼인 아니냐?”
“닥쳐.”
“며칠 전까지 헤벌쭉해 있더니. 왜, 이제 네 좋은 날이 다 갔다 싶냐?”
“아, 닥치라고.”
이제 곧 새신랑이 될 금의생을 향해 짓궂게 놀리는 친우.
그들의 농담을 들으면서, 일행은 애써 긴장감을 풀며 숲길을 지났다.
속으로는 어서 이 길을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그때.
앞에서 호현기가 멈춤 신호를 보내 왔다.
그리고 조용히 올라간 손가락 하나.
전투준비 신호였다.
‘젠장, 어쩐지 불길하다 했어!’
모두 검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쉐에에엑-!
남궁진휘의 청명한 검기가 수풀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퍼-엉!
나무가 쓰러지고.
휙-! 휙! 휙! 휙!
그 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솟아올랐다.
“습격이다! 수레를 지켜라!”
“충!”
이미 사전에 역할과 임무에 대한 전달이 왔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그게 천하의 정의무학관 금의생, 은의생 들이 숲길에서 잔뜩 긴장했던 이유였다.
쉐에에엑-!
퍼어어억-! 쿵! 쿵! 쿵!
제왕무적검은 특징은 ‘강력함’이라.
남궁진휘의 검기에 숲의 나무들이 옆으로 넘어졌다.
휙! 휙!
위로 솟은 검은 그림자들에겐 호현기를 비롯한 금의생들의 검기가 곧바로 쏘아졌다.
하나같이 절정을 넘어선 고수들이라.
이제 곧 정의맹에 들어가 정도 무림을 이끌 동량들의 실력이었다.
휘이이이익-!
“죽어라!”
호현기의 검이 나무 그림자에 숨어들던 인영 둘을 베었다.
툭.
죽은 이에게서 붉은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때.
“이런, 미친……!”
호현기는 숲에서 끝없이 밀고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를 보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모여! 방어진을 펼쳐라-!”
호현기의 명에 퍼져 있던 금의생과 은의생들이 수레 주변으로 모였다.
그들의 앞으로 남궁진휘가 섰다.
사방에, 나무가 사라진 틈으로 새어 오던 달빛마저도, 검은 그림자들이 빼곡하게 가린 상황.
절망감이 맴도는 듯한 순간.
피요요용-!
펑! 펑펑-!
갑자기 쏘아진 불꽃에, 남궁진휘와 일행뿐 아니라 검은 그림자 몇몇의 고개도 하늘로 향했다.
붉고, 노란 불빛이 하늘에서 몇 번 번뜩거리고 하얀 연기를 뿜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신호에 시선이 쏠렸을 때.
검은 그림자를 뚫고 누군가 황급히 남궁진휘의 곁으로 달려왔다.
“누구냐!”
“저요!”
“저요? 아니, 넌, 구가 아니더냐!”
남궁진휘가 크게 놀라며 남궁구를 보았다.
남궁구가 검은 옷들 속에 있다가 신호를 쏘고 달려온 듯한데…….
주섬주섬 복면과 옷을 벗고 있는 모습이 몹시 황당했다.
“아, 얘들은 왜 죄다 검은 옷을 입고 난리야! 갑자기 옆에 검은 놈들이 서는데……. 그것보다 형님 검기에 맞을까 봐 엄청 긴장했어요.”
남궁구가 땀을 닦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도 습격자들 속에서 얼마나 긴장했겠는가.
남궁구가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그들인 척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남궁진휘와 몇몇 일행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참지 않으면 웃음이 샐 것 같았다.
“네가 어떻게 여길 왔느냐? 대체 그 꼴은 뭐고? 대체 언제부터……!”
남궁진휘가 남궁구에게 질문과 질책을 쏟아 냈다.
하지만 그때…….
“저기요, 소가주님, 후배님.”
호현기가 끼어들었다.
“긴장들 하죠, 쟤들 화가 많이 난 모양인데.”
호현기의 말처럼, 검은 그림자들이 곧 공격을 쏟아 낼 듯 일렁이고 있었다.
남궁구의 황당한 행동에 절망감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남궁진휘와 일행이 잔뜩 긴장한 채 사방을 노려보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양쪽을 살피던 호현기가 태연하게 하늘로 신호를 쏘았다.
펑-! 펑펑펑-!
“……!”
“뭐, 뭐야?”
“뭐냐니요? 우리도 지원은 불러야죠.”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태도.
너무 대담해서 뻔뻔하게 느껴지는 호현기의 말에, 남궁진휘가 고개를 저었다.
“너 때문에 쟤들이 더 열 받을 거 같은데?”
“일이 잘못되면 다 선배 탓입니다!”
실제로 정의무학관의 지원 요청 신호가 전투 개시 신호가 된 듯.
검은 그림자들이 일행에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