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52)화 (52/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누구냐(2)

관도회.

정의무학관 관도생들의 자치기관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한 학생들이 아닌 만큼, 관도회 또한 단순한 자치기구가 아니었다.

정의무학관의 관도생들은 삼 년 동안 무학관 내에 머물며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동의생부터는 대부분 정의맹에서 주어지는 임무를 받아서 외부로 나가거나, 일부만이 정의무학관과 정의맹에 남아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관도회는 관도생들의 규율을 단속하고, 임무 배정과 평가에 관여했다.

관도회가 가진 가장 중요한 권한은, 규율 단속과 임무 평가 결과에 따라, 관도생에 대한 자체적인 조정 징계권이었다.

* * *

정의무학관 본관에 딸린 삼층짜리 별관.

정의무학관 관도회실이었다.

일 층과 이 층에 집무실이 있었고, 삼 층에는 회주 집무실과 총회의실이 있었다.

집무실 또한, 동기에 대한 징계권과 함께 의장과 부장들이 가진 특권이었다.

“불만이 많겠는데요?”

건물 내부를 둘러보며, 남궁구가 혀를 내둘렀다.

육 인 일 실의 숙소를 생각하면, 백의생의 눈에 개인실은 충분히 호사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호현기에겐 충분히 우스웠다.

“큭, 불만 많지.”

“왜 그렇게 웃습니까?”

“아, 아무리 방계라도 남궁이다. 창서각주의 아들이면 이보다 더한 호사 속에 컸을 텐데, 뭐 벌써 그렇게 백의생에 적응했냐?”

“아, 진화 놈 옆에서 하도 굴려지다 보니…….”

호현기의 말에 남궁구가 머쓱한 듯 머리를 만졌다.

“불만들 다 누르려면, 진휘 형님이 고생이 많겠어요.”

“아무리 정의롭게 움직여도 불만은 생기지. 게다가 여기도 인간들이 모인 곳이다. 다들 자신의 문파나 가문의 계산에 따라 모이고 대치하지.”

“그럼 어떡해요?”

“불만이 없으려면 방법은 한가지야.”

“방법이 있어요?”

남궁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능구렁이 같던 그가 놀라는 모습에, 호현기는 이제야 남궁구가 막냇동생과 동갑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불만이 있어도 못 뱉게 하는 거. 각 학년의 의장과 부장들은 매해 성적 상위 순위자들끼리 비무를 통해,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뽑힌다. 졌으면 주둥아리는 닥쳐야 무인이지.”

참고로 우리 소가주님이 홍의장을 따내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호현기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남궁구의 눈이 자연히 총회의실을 향했다.

* * *

습격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총관도회의가 소집되었다.

탁자에 회주인 남궁진휘를 중심으로, 금의와 은의, 동의와 청의, 홍의와 백의를 입은 이들이 세 명씩 마주 보고 앉았다.

백의장인 진화와 부장인 현오, 당혜군은 처음으로 이들을 보는 자리였다.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온 듯,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어젯밤 시신 이관 임무 중 습격을 당했습니다. 습격자들의 정체는 비영문으로 밝혀졌습니다.”

남궁진휘의 말에 총회의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비영문?”

“그자들이 아직 남았다니!”

“미쳤군!”

지난밤 습격에 대해 몰랐던 이들은 더 크게 놀랐다.

정의맹의 구역에서 정의무학관의 행사를 습격해 온 것도 놀라운데, 그 습격자들이 비영문이라니!

비영문은 한때 무림의 공적이 되어 몰살당했었다.

그런데 그 비영문이 정의맹 본부가 있는 양청현에 나타났다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아마도 지금쯤 정의맹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의선문에서 시체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죽은 동의생들의 상흔을 살피는 것은 물론, 파견지 습격자들과 비영문 놈들의 시신을 분리해서 살필 것입니다.”

남궁진휘의 눈이 제갈후현을 향했다.

“파견지 습격자와 비영문 놈들 사이의 연관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 정의무학관에서 조사에 들어갈 것이고, 그것과 별개로 정의맹에서 비영문 놈들을 찾을 겁니다.”

남궁진휘의 시선이 사람들을 향하는 척, 집요하게 그를 살피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

제갈후현은 정의무학관에서 조사를 맡는다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안도의 미소를 보였다.

“우리가 조사를 한다면, 조사단은 어떻게 결성할 생각입니까?”

제갈후현의 물음에 회의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제갈후현 또한 이걸 기회로 여기는 듯했다.

“멍청하긴.”

남궁진휘의 바로 옆에 있던 제갈후현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

“아, 들렸습니까? 혼잣말입니다.”

남궁진휘의 태연한 변명에, 제갈후현의 입매가 부르르 떨렸다.

남궁진휘가 일부러 저를 도발하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도발은 이다음부터였다.

“금의장은 조사단 결성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이번 회의의 안건은, 비영문의 존재가 아니라, 금의장의 늦장 지원으로 수십 명의 관도생들이 죽을 뻔했던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니까.”

제갈후현을 똑바로 마주하고.

남궁진휘가 제갈후현의 면전을 향해 ‘너의 징계를 논하겠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설마 면전에 대고 이럴 줄은 몰랐던 듯, 제갈후현도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싸늘한 침묵 사이로 몇몇 사람들의 눈빛이 빠르게 오갔다.

‘남궁 회주님이 제대로 열 받으셨나 본데.’

‘남궁이랑 제갈이 붙는 거야?’

‘에이, 이번에는 제갈이 못 배기지. 너무 명백하잖아.’

특히 제갈후현과 한배를 탄 것으로 여겨지는, 은의부장 당혜평과 제갈용성, 동의부장 팽위, 청의장 구격녕의 눈치가 빠르게 움직였다.

“긴급 지원 신호를 받고도 늦은 이유에 대해 변명할 시간을 드리지요.”

서서히 조여드는 뱀처럼, 남궁진휘가 제갈후현을 압박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당할 제갈후현이 아니었다.

“그 전에, 왜 시신 이관 임무에 외부인이 있었는지부터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제갈후현의 눈이 정확하게 제일 말석에 앉아 있던 진화를 향했다.

색색의 옷들 중 유난히 새하얀 백의가 잘 어울리는 소년이, 저를 향하는 시선들을 마주 보았다.

눈을 말똥말똥 뜨는 말간 얼굴이, 전날 비명문도들을 번개로 지져 죽였다는 소문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해(無害)해 보았다.

“외부인이라…… 진화야, 거기엔 어찌 왔느냐?”

남궁진휘가 다정하게 웃으면서 진화에게 물었다.

‘뭐, 뭐야? 방금 목소리, 환청인가?’

‘우아, 외소내광(外笑內狂) 남궁진휘 맞아?’

제갈후현을 갈아 마실 듯 웃던 것과 사뭇 다른 온기가 느껴졌다.

저 모습을 보자면, 남궁세가의 직계들이 양자를 애지중지한다는 소문이 틀린 것도 아닌 듯싶었다.

남궁진휘의 물음에 진화가 저를 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구의 신호를 보고 갔습니다. 그건 남궁의 긴급한 신호니까요.”

“오, 너는 남궁구의 신호를 보고, 이 형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빨리 왔구나.”

들었냐.

남궁진휘의 눈이 제갈후현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궁구도 외부인이지 않습니까?”

“남궁세가는 소가주의 안위에 대해 본가에 알릴 연락책 정도는 두고 있지요.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남궁진휘의 말처럼 다들 그러했다.

따로 호위를 둘 수 없게 되자, 많은 대세가와 문파에선 같은 관도생을 호위로 두었다.

특히 무학관 내 모든 제갈세가 소속을 손발처럼 부리는 제갈후현이 더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이제 다시 묻지요. 자랑스러운 무학관의 금, 은의생 지원조가, 한낱 숙청관의 백의생보다 늦은 이유가 뭡니까? 아니, 이유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남궁진휘가 다시 제갈후현을 몰아갔다.

‘역시 어쩔 수 없나.’

결국 제갈후현은 시원하게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려 했다.

사유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아는 눈치에 자칫 비겁해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제, 제가……!”

갑자기 제갈용성이 나섰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 날이 휴식일이라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습니다. 최초 보고를 받고 금의장님께 알리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제갈후현이 눈을 크게 뜨고 제갈용성을 보았다.

제갈용성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까지 꼭 쥐고 있었다.

‘저놈이! 대체 무슨 짓이야!’

이번에는 제갈후현도 정말 당황했다.

백면서생 같은 제갈용성이 만취라니.

주변을 둘러보자, 역시 제갈용성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갈세가와 우호적인 이들조차 ‘동생에게 책임을 떠넘겼구나.’ 하는 얼굴이었다.

남궁진휘는 제갈용성 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은의부장이 술을 마시고 잤다는군요. 금의장이 있는데 그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원래 동생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무능합니까?

“…….”

남궁진휘는 제갈용성의 말을 믿어 주는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튼 변명에 싸늘한 비웃음을 지었다.

“근무태만에 대한 징계로 석 달간, 책임자인 금의장 제갈후현과 은의부장 제갈용성은 모든 직무를 정지합니다. 다음엔 조금 더 그럴듯한 변명을 준비해 오시는 게 좋을 듯하군요.”

남궁진휘의 말에 제갈후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 * *

회의 후.

모든 업무와 권한이 정지된 제갈후현과 제갈용성은 제갈세가 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갈후현은 기다렸다는 듯 분노를 쏟아 냈다.

“왜에-!”

제갈후현의 고함에 제갈용성이 눈을 번쩍 떴다.

“혀, 형님!”

“대체 왜 그딴 변명을 늘어놓은 거야!”

“하지만 형님께서 책임을…….”

“책임을 져야지! 내가 책임자니까!”

제갈후현이 노도처럼 분노를 몰아쳤다.

그는 제갈세가답지 않게 좀처럼 분노를 참아 내는 법이 없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제갈후현이 한순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책임을 두려워해선 아무도 안 따른다.”

이 또한 믿어서는 안 됐다.

“죄, 죄송합니다.”

제갈후현이 다가오자 제갈용성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툭. 툭.

겁먹은 제갈용성을 보며, 제갈후현이 먹이를 죄는 뱀처럼 그를 내려다보았다.

“네 충성심을 증명하는 것도 좋다만, 상황을 봐야지. 아니면, 일부러 날 병신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그랬나?”

“아, 아닙니다! 천부당만부당입니다, 형님!”

어깨를 붙잡힌 제갈용성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제갈후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툭! 툭!

“그럼 왜 그랬어? 나 엿 먹이려는 거 아니면, 대체 왜!”

제갈후현이 제갈용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까짓 남궁진휘 죽으라고 좀 늦었다고 하지!”

퍽!

제갈용성이 움츠러들 정도로 강도가 세졌다.

“난 그래도 돼! 남궁의 맞수니까!”

퍼억!

“혀, 형님…….”

결국 제갈용성이 휘청거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갈후현은 그조차 용납하지 않고 내려가는 어깨를 우악스럽게 쥐었다.

“용성아, 좀 더럽고, 좀 나빠도, 무능한 건 안 돼. 무능한 놈을 따르는 놈은 없단 말이다, 이 병신아!”

꽈아아악!

잠시 식어 보였던 건, 더 크게 쏟아 내기 위해 힘을 비축한 것일 뿐이었다.

“크읏, 혀,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갈용성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잘못을 빌었다.

그러나 제갈후현에게 중요한 건 제갈용성의 반성이 아니었다.

제가 남궁진휘의 앞에서 얼마나 꼴이 우스워졌는지!

회의 후, 당혜평과 구격녕, 팽위가 그에게 어떤 눈빛을 보냈는지!

“감히 이 제갈후현에게 징계? 허! 할 테면 하라지!”

제갈후현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제갈후현에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제 기분, 제 입장이었다.

제갈용성이 꼴을 우습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제갈후현은 남궁진휘의 반응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며 오히려 비웃었을 거였다.

“가만두지 않겠어!”

“으윽. 혀, 형님!”

제갈후현은 어느 정도 분이 풀리고서야, 고통에 신음하던 제갈용성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물었다.

“우리 흔적은?”

“지, 직접 처리하셨잖습니까. 없습니다.”

“돈은 깨끗한 거지?”

“예. 틀림없습니다.”

“살아남은 놈들은 없겠지?”

“그때 확인했을 때엔 전부 시체였습니다. 비영문이 그런 건 확실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황금을 받은 이상, 얼마가 죽어나든 칠 주야 내로 흔적 없이 의뢰를 마칠 겁니다.”

“그래. 혹시 모르니 정의맹 쪽 추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귀를 열어 둬. 그리고 당장 남궁진휘 쪽에 밀어 넣을 놈도 하나 구해!”

“충.”

제갈후현은 완전히 냉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제갈후현은 불같이 속에 것을 쏟아 내고, 또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그는 그래도 되는 자였다.

당금 무림에 남궁진휘를 제외하고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후계자.

제갈후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귀천성과의 전쟁, 혹은 천재지변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너무 잘 알았다.

‘칠 주야. 황금을 받은 일이라면, 그게 무슨 일이든 달이 차기 전에 일을 끝낸다. 그게 비영문의 철칙이니까.’

“참, 비영문을 태워 죽인 게 남궁진화라고 했나?”

제갈후현은 진화를 보며 다정하게 웃던 남궁진휘를 떠올렸다.

“거슬리는군.”

또 속에 것을 뱉어 냈다.

그리고 마침 좋은 것을 떠올린 듯 비릿하게 웃었다.

“……소현이 년은 아직도 그놈을 죽이고 싶어 하나?”

남궁진휘 놈에게 조금 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제갈후현의 눈이 잔인하게 빛났다.

제갈용성이 제갈후현의 처소를 도망치듯 나왔다.

허둥대는 모습이 시선을 끌었지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 하하. 아파 뒈지겠네, 멍청한 게 힘만 세서는.”

제갈용성이 구겨진 어깨를 털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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