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누구냐(3)
제갈세가의 직계는 사 남매다.
후현, 용성, 지현, 수현.
이름에서 보듯 제갈용성만이 항렬 돌림자를 받지 못한 서자였다.
제갈용성의 어머니는 가모인 서상아의 몸종 출신으로, 그가 어릴 적에 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 제갈용성은 큰 부침 없이 자랐다.
제갈용성은 형인 제갈후현을 각별하게 따랐고, 제갈후현 또한 그를 가장 가까이 두었다.
제갈지현, 소현과도 크게 나쁠 것이 없는 관계였다.
“끄응. 하여튼 성질머리 하곤.”
제갈용성이 뼈가 잡히는 어깨를 문지르며 말했다.
거칠게 투덜거리는 말투와 달리, 팔자 눈썹을 한 표정은 자못 불쌍해 보일 정도라. 멀리서 그를 보고 허리를 숙이는 하인들은, 제갈용성의 표정만 보고도 ‘소가주님께 혼이 났구나.’ 할 뿐이었다.
그러면 제갈용성은 보란 듯이 어깨를 문지르며 잔뜩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걸어갔다.
왜소한 체격에 아무리 먹어도 빈한한 체질.
검술에도 크게 재능이 없었지만, 다행히 섭선이나 암기술은 쓸 만한 수준.
게다가 이번 대 은의생들의 수준이 다른 때보다 낮아, 운 좋게 은의부장까지 되었다.
여기까지가 제갈용성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였다.
박한 듯하면서도, 나쁘지는 않은 애매한 평가.
사실 제대로 하자면, 제갈후현에게 딸린 곁다리가 더 완벽한 설명일 것이다.
건장하고 용맹한 제갈후현과 지혜로운 제갈지현, 막내인 제갈소현과 달리 아무런 특색 없는 곁다리.
실제로 제갈용성이 하는 일이라곤 제갈후현의 명을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제갈용성이 제갈세가 총관과 주관들의 집무실인 해소각(諧小閣)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도,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공자님,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정문 옆에 앉아 있던 퉁퉁한 덩치의 여인이 반색하며 제갈용성을 반기며 일어섰다.
“아, 하하. 급히 전할 일이 있어서…….”
“어머, 그러세요? 시키실 일이 있다면 얼른 해 드려야죠.”
애매하게 웃는 제갈용성에게, 하녀들을 관리하는 주관이 살갑게 웃었다.
“매번 미안한데…….”
“어인 말씀을요.”
“하녀 하나를 급히 숙청관에 보내야겠어.”
“숙청관에요?”
“소현이에게 소가주전에서 점심 하잖다고 전해.”
“아. 아무렴요. 얼른 전갈하겠습니다.”
“그럼, 여주관만 믿을게. 내가 좀 바빠서……. 하하.”
제갈용성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다.
여주관이라 불린 여인은 곧바로 사람을 불러 제갈용성이 말한 일을 전하러 보내는 듯했다.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사람 하나를 더 보냈다.
본가의 후문.
제갈용성은 본가 후문의 문턱을 넘는 하녀 둘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공자님을 뵙습니다.”
“아, 으, 응. 수고해.”
후문은 가솔들이나 다니는 길이지만, 제갈용성이 이 앞에 있다 한들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귀한 신분이지만 자신들과 하는 일은 별다를 것 없는, 소가주의 시중이라.
심지어 여주관은 다른 직계들에게 하던 인사조차 제갈용성에겐 생략했었다.
제갈용성도 그런 여주관의 태도를 모르지 않았다.
“돼지 같은 년. ‘해 드려야지요?’ 감히 종년 주제에 뉘에게 선심을 베풀어? 건방진 것! 지현이 년 종달새 노릇을 하고 있으면 언제까지 모를 줄 알았대?”
습관처럼 불만을 거칠게, 하지만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창백한 얼굴은 항상 팔자 눈썹에 곤란한 웃음을 달고 있었다.
마치 벗겨지지 않는 가면처럼.
거친 중얼거림은, 벗을 수 없는 가면을 견디기 위한 그만의 해소구 같은 것이었다.
“오빠라는 놈은 어린 동생을 벗겨 먹으려 하고, 언니라는 건 오라비에게 흠집 하나 만들려고 그 등을 떠밀어? 하하, 사갈 같은 것들.”
하지만 그들을 향한 비난은 제갈용성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저 또한 제갈지현을 이용하려고 모르는 척 여주관을 쓰지 않았던가.
그는 힘이 부족해서 참을 수밖에 없는 것뿐이었다.
“서로 물고 뜯으라고. 그럼 나는 너덜너덜한 너희들의 시체를 그자의 앞에 던져 주지!”
제갈용성은 가면을 벗고 사갈의 얼굴을 드러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요 며칠, 의선문의 검시방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들어온 시체의 수가 워낙 많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번 전투에서 죽은 비영문도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검시는 사망 원인보다 그들이 비영문도라는 사실 자체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체에서 비영문의 문신을 발견하면서, 그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음?”
의선이 부검실에서 나오다가 백소하를 발견했다.
백소하는 한 시신의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왜 그러느냐?”
“아니요. 그냥 이 시신이…….”
“남궁세가의 천뢰제왕신공에 당했구나.”
의선은 시신에 있는 거미줄 같은 핏줄 화상의 흔적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런 것쯤은, 백소하도 알아볼 만한 것이었다.
“아는 시신이냐?”
“아니요. 이 시신을 이렇게 만든 이를 알아보아서요.”
백소하의 말에 의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아버지, 그때 그 아이를 기억하십니까?”
“그 아이?”
“십여 년 전쯤, 남궁세가에서 치료했던…….”
“아! 그 아이…… 혹시 이것이?”
의선의 물음에 백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진화를 떠올린 의선이 감탄을 하다, 곧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의선 정도 되면, 죽은 시신의 형태만으로 무공의 경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시흔에 남은 진화의 경지가 결코 낮지 않았으니.
의선은 그때 아이를 남궁세가에 맡기길 잘했구나 싶었다.
“그 아이가 남궁세가의 천뢰제왕신공을 익혔나 보구나. 남궁세가에서 아주 잘 자란 모양이야.”
“예, 무공뿐 아니라 많이 아낌을 받으며 자란 듯싶었습니다.”
백소하는 진화를 걱정하며 살피던 남궁진휘를 떠올리며 말했다.
백소하에게도 진화는 꽤 기억에 남는 환자였다.
아주 어릴 때였지만, 그만큼 진화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혈과 맥이 많이 소실되었는데, 그만큼 무공을 익혔더군요.”
“남궁에서 많이 애를 쓴 모양이지. 소하야…….”
“네?”
“함부로 다른 문파의 무공이나 수련법에 대해 알고자 하면 안 된다, 함부로 유추해서도 안 되고.”
의선이 백소하에게 주의를 주었다.
무림 세가들에게 가문의 독문무공은 가보보다 귀한 보물이었다.
괜한 의원의 호기심으로 자칫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백소하는 의선의 충고에 알아들었다.
‘그런데 할아버님. 그 사람이 쓰는 무공 형태가, 제가 알던 천뢰제왕신공과 조금 달랐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지…… 그조차도 알고자 해선 안 될까요?’
백소하의 눈은 아직도 호기심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을 버리는 것도 의원의 수련이라.
의선은 백소하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모르는 척했다.
“남궁 회주에게 사람을 보내거라. 동의생의 시신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의선의 말에 백소하의 눈이 커졌다.
* * *
그날 밤.
의선문에서 뭔가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궁진휘와 호현기, 금의 부장 무현이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그들 또한 백소하처럼 놀란 눈을 하고 의선과 시신들을 번갈아 보았다.
“세상에 사람의 혈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무공은 없소. 독이든 약이든, 사람의 혈을 이렇게 모세 털처럼 좁혔으니. 이들의 사인은 습격자들의 공격이 아니라, 혈관이 터져 죽은 것이오.”
그들의 눈에서 끊어진 혈관과 흐물흐물 늘어진 혈관들이 보였다.
사람의 신체를 이렇게 세밀하게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한눈에도 정상적이지 않아 보였다.
“습격이 없었더라도, 이들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혈관만 이상이 있던 것이 아니오. 심장과 폐, 간, 어느 하나 괜찮은 곳이 없었소.”
의선이 시신의 몸을 열어 보여 주자, 남궁진휘와 호현기, 금의장 제갈후현을 대신해서 온 금의부장 청수검 무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허!”
“그럼 정말 이들이 독에 당했다는 말입니까?”
다른 건 몰라도, 검게 변한 간은 독에 당한 시신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행태였다.
하지만 의선의 답은 달랐다.
“영약도 악의를 담고 쓰면 독약이 되고, 독약도 선한 마음으로 쓰면 약이 될 수 있소.”
“……몸 안이 이리될 정도라면 본인도 증상을 느꼈겠지요?”
“그랬을 것이네.”
남궁진휘의 말에 의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의약방에 들르지 않고 의원도 찾지 않았다면…… 약으로 먹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남궁진휘의 말에 의선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의선 또한 그렇게 추측했기 때문이다.
무인은 자신의 몸에 민감했다.
조금만 흥분해도 심장이 아렸을 것이고, 뜬금없이 두근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안구의 색이 변하고 손톱, 발톱의 색이 변하는 건, 독약을 의심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의원을 찾지 않은 것은…….
“혹, 어떤 약이 갑자기 내공 운용을 빠르게 하거나 내공을 증진시킨다면, 그 부작용으로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음……!”
“혹, 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자를 진맥한다면, 복용 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인은 결코 쉽게 맥을 내어주지 않네.”
“그렇겠지요. 하지만 혹시 말입니다. 구분할 수 있는 겁니까?”
“자네, 이미 의심하고 있는 곳이 있는 것인가?”
남궁진휘의 눈과 마주한 의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남궁진휘의 검고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에서 거대한 피바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남궁진휘는 진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라…….’
남궁진휘가 결심을 굳혔다.
범인을 알아내는 것도, 공을 세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약으로부터 무림을 지키는 일이었다.
“현기, 정의맹에 가서 알려라. 즉시 무단 파견도 요청하고. 지휘권을 넘겨줘도 상관없다.”
“충!”
“무현, 정의무학관 관도생을 편성해서 이곳을 지켜라. 필시 놈들이 다시 이곳을 노릴 것이다. 반드시 이 시신들을 지켜야 한다!”
“예.”
남궁진휘의 명에 호현기와 금의부장 무현이 곧장 움직였다.
남궁진휘가 다시 의선을 보았다.
“어떤 약인지, 알아내실 수 있습니까?”
“흐음. 시간이 주어진다면, 안에 들어간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걸세. 어쩌면 정확한 약은 아니라도 그 비슷한 걸 만들어 낼 수도…….”
“하면 해약도 가능합니까?”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걸세.”
의선의 말에, 남궁진휘가 허리를 숙여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에 의선이 함께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네. 허허! 남궁이 아직 푸르러 다행이구먼.”
* * *
남궁세가에 있던 포로들은 다시 관에 잘 담겨서 정의맹으로 옮겨졌다.
그사이 남궁조는 비영문도들의 심문을 마쳤다.
“시체라…….”
진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약과 관련된 문제였나 보다.
“지부장님이 너 안심하라고 알려 주셨어. 누구 의뢰인지, 귀천성의 개입은 뭔지, 정의맹에서 알아내겠지.”
남궁구가 홀가분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진화의 표정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안심하기는 아직 일러. 진휘 형님이 그 시체를 지킬 테니까.”
“그럼 대체 뭐 하러 확실히 해야 한다고 했냐? 어차피 소가주님만 지키면 될 걸.”
“확실히 알아야, 어디에서 지켜야 할지 아니까.”
당연하지 않냐는 듯한 진화의 말투에, 남궁구가 질린 얼굴을 했다.
“거기 지금 무학관 선배들은 물론, 정의맹 무단에서도 지원 나와 있어. 한낱 백의생이 끼어들 틈 따윈 없다고.”
“어떻게든 의선문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봐야지.”
남궁구의 말에도 진화는 단호했다.
남궁구는 진화가 애를 써 봤자 백의생은 안 될 거라 고개를 저었지만, 방법은 의외의 기회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