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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54)화 (54/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누구냐(4)

어쨌든 진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무단으로 숙소를 벗어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명문 세가에서 가문의 일이 우선인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일종의 특권이었지만, 비영문의 이름이 나오고 모든 것이 묻혔다.

오히려 비영문과 전투를 벌인 백의생으로, 다른 관도생들의 동경의 눈길을 받았다.

정작 진화의 관심사는 만두였지만 말이다.

“내일 묘시 알지?”

“그럼요.”

“정시가 되기 전에 나가야 해, 사람들이 줄을 서거든.”

“아침부터 만두를 먹으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다니…… 아, 물론 그럴 만한 맛이긴 했습니다.”

“아침 한정판 고기만두는 피도 얇고 안에 육즙이 일품이라고. 아! 물론 지금 가는 점심 만두도 굉장해. 마늘이랑 숙주, 부추가 듬뿍 들어가거든.”

진화가 만두에 반한 것은 진심이었다.

오늘도 진화는 현오와 함께 점심 만두를 먹으려고 정의무학관을 나온 참이었다.

“참, 생존술 과제는 실행했나?”

“아…….”

“잊고 있었구나? 그러다가 중독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현오야말로 괜찮습니까?”

“흐흐흐, 나는 걱정 없지.”

진화의 말에 현오가 뱃살을 두드리며 웃어 보였다.

“나는 한번 먹어 본 것에는, 절대 탈이 안 나거든.”

“독인데요?”

“독은 뭐 먹는 거 아닌가? 그때도 시원하게 한탕 싸고 끝이었다고.”

“현오는 숙수가 되어야 하는데, 승려가 된 듯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몇 번 산문을 넘었는데, 매번 사부님이랑 사형들 손에 잡혀 왔어. 이제는 포기야.”

‘뭐?’

진화가 놀라서 현오를 보았다.

소림 무승, 그것도 마라승의 제자가 산문을 넘었다니.

아니, 그러고도 멀쩡하게 다니고 있다니.

쉽게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현오의 눈을 보니 진심이었다.

‘하긴, 스님이 당당하게 고기만두를 사는데 파계 안 당하는 것을 보면…… 일탈을 눈감아 줄 정도로 무재가 뛰어나다는 건가?’

느긋하고 생각이 없는 듯하지만, 현오는 백의생 전체 차석을 차지한 수재였다.

매 수업 때에도 진화 다음으로 빨리 과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

푸근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은 인재인 것만은 인정해야 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기도 하고, 각우 같은 승려가 독문 제자를 얻는 것도 쉽진 않으니까.’

그럼에도 진화는 현오의 피둥피둥한 뱃살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오성반점의 점심 특선 만두도 한 다경 정도 기다려야 했다.

“어이쿠, 현오 스님, 또 오셨습니까? 반 푼어치 맞지요?”

“예! 한 푼 같은 반 푼어치 자비롭게 주십시오.”

“하하하! 무슨 그런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을요!”

능청스럽게 상인과 말장난을 한 현오가 먼저 만두 한 보따리를 손에 쥐었다.

다음은 진화의 차례였다.

“자, 그쪽 도련…… 허!”

진화의 얼굴을 마주한 오성반점의 주인이,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잠시 말을 잃었다.

“만두 주십시오, 많이!”

진화가 만두를 향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단언컨대 요 근래 중에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만두…… 드, 드려야죠!”

오성반점의 주인이 뭔가에 홀린 듯이 만두를 쓸어 담았다.

그 모습에 현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찌나 많은 양을 담았는지, 다섯 보따리 가득이었다.

진화는 그걸 말리지도 않고 지켜보다가 물었다.

“얼마입니까?”

“예? 어…….”

오성반점 주인도 당황했다.

얼마나 살지 묻지도 않았고, 얼마나 담았는지 기억도 안 났기 때문이다.

그때, 진화가 슬그머니 은화를 내밀었다.

“이렇게 하면 대충 맞지요?”

진화가 현오의 만두와 동전을 보고 대충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과했다.

잘사는 평민 가정의 한 달 식비가 은자 네 냥이었다.

오성반점 주인이 반짝이는 은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현오가 그 손을 막았다.

“남궁 시주, 그걸 다 가져가실 거요?”

“예! 이왕 이렇게 많으니, 남궁 장원에 가져가서 나눠 먹으면 될 듯합니다.”

한정판인 점심 만두를 이렇게 많이 팔아 주면 그걸로 좋은 일이었다.

진화는 다 같이 나눠 먹을 생각에 신이 났다.

이전 생엔 소소하게 세가의 무사들과 교류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오와 오성반점 주인의 시선은 달랐다.

‘대체 어떻게 스님보다 세상물정을 모르지?’

‘이, 이 도련님, 혼자 보내도 되나?’

그들은 신난 듯 만두 보따리를 챙기는 진화를 걱정스레 보았다.

하지만 진화의 주머니엔 은자밖에 없었고, 진화는 거스름돈만큼 다음에 또 만두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 * *

양손 가득 만두를 들고 조금 신나서 옮기는 발걸음.

진화가 걸을 때마다 지나는 행인들이 모두 길을 멈추고 진화를 보았다.

하지만 어릴 적 환골탈태를 한 후로, 시선을 받는 건 익숙해졌다.

집요하게 얼굴을 향하는 시선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거나 걷는 내내 따라붙는 시선.

저를 보는 멍한 눈빛이나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의 반응까지.

오히려 평범한 반응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무심한 관찰.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렇게 않게 지나는…… 연기가 자연스럽네.”

“저, 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상대가 놀란 눈을 뜨고 저를 보았다.

진화는 사내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게 아니라 ‘무슨 말입니까?’ 했어야지. 자리를 옮길까?”

진화가 발끝으로 사내의 신발을 밟고, 살기를 퍼부었다.

현오와 함께 만두 가게를 나서는 때부터, 진화는 미행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사내는 뒤따르는 사람들 속, 다른 가게의 손님들 속, 마주 오는 인영 속에 제법 자연스럽게 몸을 숨겼다.

하지만 정작 미행 당사자를 너무 몰랐다.

바로 곁에서 경공을 쓰고, 경지를 넘어선 고수를 속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른쪽으로 붙어.

사내의 등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진화의 살기가 사내를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음이 아니더라도, 진화는 살기를 조절하여 사내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 골목.

어둡고 좁은, 훤한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골목.

사내는 겁을 먹고 걸음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모세혈관을 조여드는 살기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진화의 기감이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때, 사내를 멈춰 세웠다.

퍽!

진화가 사내를 벽으로 밀고 강제로 눈을 맞추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네 생사가 결정될 거다. 그러니까 한 번에 제대로 대답해. 누구야?”

“그…… 헉!”

진화와 눈이 마주친 사내는 감히 숨을 내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진화의 눈동자 속에 푸른 번개가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다르잖아! 이게 어딜 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야!’

처음 보는 광경도 광경이었지만, 그 번개가 당장 제게 내려칠까 두려웠다.

“대답이 늦군.”

진화가 사내에게서 한 발 떨어졌다.

그리고 차갑게 내려다보는 눈빛.

동시에 땅에 있는 음습한 음기가 사내의 발밑을 파고들었다.

사내가 갑작스러운 오한에 몸을 떨었다.

양팔을 감싸 보았지만, 뼈까지 시린 쨍-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진화를 보는 사내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흐으. 사, 살려…….”

“대답.”

인간의 고통에는 한계가 있지만, 인간이 느끼는 공포에는 한계가 없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원하는 것을 위해 어느 정도의 고통은 견뎌 내려 하지만, 동시에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상이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킨다.

그리고 진화는, 인간이 공포에 질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알았다.

‘보통은 감정을 느끼고 반응을 보이지만, 반응을 주고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지.’

땅을 통해 진화가 보낸 음기가 사내의 몸을 타고, 심장을 자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의 동공이 커지고,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제, 제갈소현입니다!”

사내는 자신에게 엉터리 정보를 준 제갈소현을 원망했다.

“네 정체는?”

“제, 제갈세가 장원 해소각 소속…….”

“제갈세가의 하인?”

“예, 예!”

사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진화의 입에서 헛웃음이 세었다.

‘허! 이것 봐라?’

진화가 다시 사내에게 물었다.

“신분은 증명할 수 있나?”

“예! 예! 모든 하인의 인적은 별관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

진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저를 몰랐다지만, 겨우 하인을 시켜 미행을 하다니.

게다가 본가 인적부에 기록된 하인이란다.

이건 주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갈소현, 제갈소현…… 네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진화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썩은 가지지만, 쳐 낼 때는 나무도 조금 아프리라.

“그래서, 제갈소현이 시킨 건 뭐지?”

“남궁 소공자의 해, 행적을 알아내서 보고를…… 헛!”

진화가 움직인 음기가 다시 사내의 뼈를 파고들자, 사내가 크게 움찔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뼛속까지 시린 그것이 심장을 향하는 느낌이 들자, 사내가 질겁했다.

“으허억! 제, 제발!”

결국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겨우 제갈세가의 하인이었다.

고작 이 정도 공포에 눈물을 흘리며 비는.

하지만 전쟁 때 진화의 손에 피육으로 부서진 첩자만 수백이었다.

그들처럼 강하거나 독하지 못하다고, 봐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남궁에 해를 끼친 자들은 구별 없이 쳐 죽이기로 하지 않았던가.

진화는 공포에 젖은 눈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모르는 건가?”

“제발! 사, 살려 주십시오!”

“말해. 제갈소현이 시킨 게 뭐지?”

“도, 독을 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따로 있는 때를 찾고 있었습니다!”

“독? 무슨 독인데? 설마 무학관 과제에 쓸 독을 풀려고 미행까지 시키진 않았을 거 아냐.”

“그, 그건…… 으아아악!”

답을 피하려는 사내에게 이번에는 두개골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 쏟아졌다.

“저도 그것까진 모릅니다! 저, 정말입니다!”

“글쎄, 정말인지 아닌지 그게 중요할까? 제갈세가의 여식이 또 남궁세가 공자의 목숨을 노렸는데.”

“제, 제발 살려…… 끅!”

사내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빌었다.

이번에는 진화의 음기가 사내의 심장을 조였다.

이전에는 뼈, 다음은 머리 그리고 이번에는 심장.

고통도 고통이지만, 사내를 지배하는 것은 죽음이 다가왔다는 위기감이었다.

그때, 진화가 사내의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진짜야. 말하지 않으면, 죽지도 못하고 계속 아프게 될 거다.”

“끄으…… 제…….”

“말해. 제갈소현을 던지고 누굴 숨긴 거야? 네 진짜 주인.”

천하의 제갈세가의 하인 주제에, 직계인 제갈소현의 이름을 너무 쉽게 불었다.

“으…….”

사내의 입에서 신음이 삐져나왔다.

진화는 아직도 사내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고, 사내는 이제 살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죽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 배신해라.’

진화의 냉담한 눈빛이 고통스러워하는 사내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끅. 꺼억…….”

생존 본능은 그 어떤 이성과 욕구에 앞서는 생명의 근원이라.

훈련을 통해 죽음을 택하도록 할 순 있어도, 영원히 억누를 순 없다.

“……아, 소가, 소가주님…… 커억!”

털썩.

사내가 거품을 토해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진화가 재미있다는 눈으로 쓰러진 사내를 보았다.

“소가주? 제갈소현이 아니라 소가주님이라……. 하! 재미있는 집구석이군.”

제갈세가에서 제갈소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귀하신 막내 영애?

그건 그저 겉으로만 좋은 말이었고, 실제로는 큰 거래를 하기 좋은 볼모 정도랄까.

같은 영애였던 제갈지현은 소가주 자리까지 올랐지만, 제갈소현은 그대로 황보세가와의 정략혼에 쓰였다.

게다가 지금은 제갈후현이 소가주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기에, 그녀는 경쟁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제갈후현이, 동생을 이용해서 날 치려는 이유가 뭘까?’

진화는 지난 회의에서 얼굴을 익힌 것 외에 제갈후현과 접점이 없었다.

그런 제갈후현이 뭐가 싫어서 저를 건드렸을까.

‘진휘 형님!’

남궁진휘를 떠올린 진화가 기가 찬 듯 웃었다.

‘허! 날 이용해서 형님을 건드리려 했다고?’

약점이란 결국 잡을 수 있어야 써먹을 수도 있는 법이다.

진화는 제갈후현의 수작이 가소롭기만 했다.

그 순간, 진화의 머릿속에 퍼뜩 무언가 떠올랐다.

“이거 어쩌면…… 써먹을 수 있겠는데?”

제갈후현은 제갈소현을 이용하고, 제갈지현은 그의 빈틈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다리를 걸고 박 터지게 싸워 보라지.

그 사이에서 진화는 얻을 것만 얻으면 되지 않겠는가.

진화의 입꼬리가 사르르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진화가 쓰러진 사내에게 뇌기를 흘렸다.

“이봐, 일어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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