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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55)화 (55/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누구냐(5)

서서히 때가 다가오자, 숙청관에 긴장감이 흘렀다.

요즘 숙청관의 모든 관심사는, 백화선녀 홍채연이 내어준 과제에 쏠려 있었다.

“아우, 쫄려 죽겠네.”

“밑에 조들은 벌써 난리가 났던데.”

“그거 들었어?”

“뭐? 조원들 전부 중독되는 바람에, 수업이 있는 날까지 해약 없이 버틴 조원이 있는 쪽이 승리했다는 거?”

“와, 어떤 독한 놈이 그걸 해약도 없이 버텼지?”

“독에 버티는 것도 능력이라니까. 나 같으면 다른 수업에 벌써 지렸을 텐데.”

이번 생존술 과제는 총 세 가지 과제 중 하나로 배점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홍채연이 내어준 독을 경험해 본 백의생들에게, 그건 더 이상 배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한테 그거 먹인 놈, 가만히 안 둔다. 그건 진짜…… 내 존엄에 관한 문제라고!”

“아, 너, 의약방 가서 이름 쓰기 전에 지렸댔지?”

“……꼭 복수할 거다.”

동정의 눈길을 받으며 백의생 하나가 굳은 다짐을 했다.

하지만 복수를 다짐하는 이가 어디 그 백의생 하나겠는가.

백의생들은 폭풍 설사를 부르는 일명 ‘똥독’을 통해, 복수와 복수, 은원으로 얼룩진 무림을 배우고 있었다.

더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활함도 함께 말이다.

“무학관 식당에 독 푸는 건 피해라. 대숙수가 소림 출신이야.”

“하아.”

다음 수업이 코앞에 닥친 백의생들은 더 마음이 급했다.

결국 밤에 상대를 기습하거나, 대놓고 서로의 입에 독약을 들이붓는 공격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건, 상위 조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습격이다-!”

“입구 막아!”

예민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가장 먼저 기척을 알아차렸다.

남궁교명의 말에 팽수와 팽신이 침상을 끌어서 문을 막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시간이 없다. 다 죽어! 아니, 마셔라-!”

퍼—엉!

나하연의 발길질에 문과 함께 형제의 침상이 날아갔다.

병 조 조원들이 대장군처럼 밀고 들어왔다.

“오냐! 우리도 잘됐다!”

사실 갑 조는 병 조의 숙소에 차마 침입할 수 없었다.

병 조의 기습은 오히려 기다렸던 바였다.

“다 같이 마시고 죽자고-!”

남궁구가 진정한 성 평등을 실현하듯, 약병을 들고 같이 달려들었다.

“꺄앗-!”

남궁구가 병 조 하후미미의 입에 약병을 털어 넣었고, 그 틈에 당혜군이 던진 독 구슬을 삼키고 말았다.

“어딜!”

남궁교명이 당혜군에게 달려들고, 다른 쪽에서는 다른 병 조 조원들과 팽수, 팽신 형제가 얽혀 있었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라.

물론 그 속에서도, 좁은 공간을 움직이며 벌어진 입들을 향해 쏙쏙 독 구슬을 날리는 당혜군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

진화는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결코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때, 당혜군의 독 구슬이 진화의 살짝 벌어진 입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안 돼!”

나하연이 맨손으로 그 구슬을 잡아챘다.

“무슨 짓이야!”

당혜군은 진화의 앞을 막아선 나하연에게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하연은 당당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긴 안 된다! 아직 방귀도 트지 않았는데 설사병은 너무 과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혼약의향서의 답신이 오기 전까진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진화야말로 묻고 싶은 말이었다.

복통을 부르는 독 따위는 천뢰기로 태워 버리면 그만이라, 처음부터 방어할 생각도 없던 진화였다.

그런데 진화보다 나하연이 더 적극적으로 막으니.

“너! 씨, 이럴 거면 여긴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결국 잔뜩 화가 난 당혜군이 나하연의 입에 독 구슬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폭주했다.

“으악! 팽수, 입 닫아라!”

“이런! 콧구멍으로 들어갔다!”

다른 병 조 조원들이 남궁구와 남궁교명, 팽수, 팽신에게 당하는 사이, 당혜군의 독 구슬이 그들의 벌어진 입과 다물 수 없는 콧구멍으로 쏙쏙 파고들었다.

용독(用毒)과 관련해서 사천당문의 직계를 당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당혜군도 방심하고 있는 사이, 독을 먹고 전사한 척하고 있던 현오에게 당하고 말았다.

파국(破局)이라.

진화를 제외한 모두 전멸이었다.

* * *

드디어 홍채연의 수업 시간.

“음. 말하지 않아도 승자는 모두 알 것 같군.”

홍채연의 독은 독성 발효가 즉시였다.

반면 해약은 약효가 돌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의약방에 가서 이름을 쓰고, 약을 먹고 약효가 돌 때까지의 시간.

그사이에 갑 조와 병 조 백의생들은 온몸의 진을 다 뺀 듯 초췌해져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멀쩡한 얼굴을 한 사람은 단둘.

‘내공으로 독기를 전부 태우지는 못했을 텐데, 정말 그걸 소화시켰다고?’

진화는 현오가 당혜군의 독 구슬을 삼키는 걸 보았다.

실제로 당혜군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현오를 보고 있었다.

“아예 중독을 피하는 것도 그렇지만, 의약방의 해약을 쓰지 않고 견디는 것도 능력이지. 승자는 갑 조다.”

홍채연의 선언에, 당혜군이 나하연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홍채연이 승자를 바꿔 줄 리 없고, 수업은 계속되었다.

“여기, 너희들이 먹은 독과 해약의 재료가 있다. 오늘은 너희가 몸소 경험한 효험을 바탕으로 재료를 다르게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법을 배울 거다.”

전장에서 더 유용한 것은 책에서 본 글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이다.

홍채연은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첫날에 던져 준 책으로 모두 전했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수업은 책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실전 지식을 전해 주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태학 출신의 한림선생은 글자를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글자부터, 다른 학생들에게는 법률과 행정 문서를 읽는 법을 가르쳤다. 

교재는 실제 정의맹의 공식 문서와 관부의 공문이었다.

홍동금판 왕진오의 산술과 회계 수업도 그랬다.

숫자와 계산법을 배우는 학생 이외에는 모두 정의맹이나 산하 상단의 장부를 보는 법을 익혔다.

별것 아닐 거라 생각했던 두 수업은, 의외로 매일 백의생들을 괴롭히는 복병이 되었다.

“으, 소림에선 사람 간에 물자는 따지지 말라 가르쳤는데…….”

현오는 산술 수업을 가장 싫어했다.

“만두 사 먹을 땐 셈을 잘하시면서요.”

“그러니까 내 말이! 사람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셈만 하면 되지 않나?”

“이후 정의맹으로 가시게 되면, 그 만두를 먹여야 하는 입이 훨씬 늘어나니까요.”

전쟁이라고 모두 검 들고 잘 싸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입는 것이라, 전쟁 중에 휘하 무인들이 먹는 식량과 무기의 보급은 무엇보다 우선해서 챙겨야 할 것들이었다.

어느 정도 개개인의 무공 실력이 입증된 정의무학관 관도생들에겐, 가장 필요한 지식이었다.

“사실 나는 나한각주보다 오성반점 후계자가 좋은데 말이지.”

“하하하! 각우 사부님이 들으시면 경을 칠 소리십니다.”

진지한 현오의 말에 진화가 웃었다.

아주 잠시, 오성반점 후계자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나저나, 넘보지 마십시오. 제 저녁입니다.”

진화는 은근히 제 품에 있는 만두를 노리는 현오에게 단호하게 대처했다.

홍채연의 수업에서 독초의 향과 맛을 보느라, 점심을 건너뛰었다.

맛을 본 건 극히 적은 양이었지만 모두 영 속이 좋지 못한 모습이어서, 진화도 그런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진화와 현오는 오후 무공 수련을 마친 후에야 겨우 만두 가게에 들른 참이었다.

“저녁으로 나오는 만두는 특히 고기 육향이 좋군요. 바닥은 바삭하고 위는 촉촉한 겉피도 좋지만, 육즙과 어우러짐이 환상입니다.”

‘비록 독이 들었지만.’

진화는 진심으로 만두에 감탄했다.

동시에 제갈세가 하인의 일 처리에도 감탄했다.

‘미행을 들킨 데다 충성심도 없지만, 그래도 오성반점 만두에 접근했다니 대단하군.’

진화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제갈소현이 쓰는 독을 바꿔치기하도록 지시해 놓았다.

몸에 심한 열이 오르겠지만, 치명적인 영향은 없는 독이었다.

하지만 순조로울 듯하던 계획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 * *

챙-그랑!

“윽!”

자리끼로 놔둔 주전자와 물 잔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현오가 배를 부여잡았다.

“아, 아파!”

슬슬 아플 준비를 하고 있던 진화가 놀란 얼굴로 현오를 보았다.

“현오, 왜 그래?”

갑 조 백의생들이 현오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하아. 하아…….”

“……!”

열이 오른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

가쁘게 내쉬는 숨.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현오가 슬슬 옷고름을 풀었다.

“더, 더워!”

긴가민가했지만, 현오가 하는 말과 증상에 진화는 그가 먹어서는 안 될 자신의 만두에 손을 댔음을 알아챘다.

‘스님이 도둑질을 하냐!’

황당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만두 도둑으로 뭐라 했다가, 진화가 독을 알고 먹었다는 걸 들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진화는 지금부터 아프기로 했다.

“윽!”

진화가 어설프게 휘청거리며 침상에 주저앉았다.

“야, 넌 왜 그래?”

“남궁진화!”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놀라서 진화를 살폈다.

독기를 풀어 내자, 진화 또한 현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아…….”

열이 오르면서 심장이 뛰고, 확실히 숨이 가빠 왔다.

크게 위험하지 않은 독이니, 현오도 의선문으로 이송된 이후에 독기를 없애 주면 될 일이었다.

“일단 홍 사부님 불러오자!”

“의약당으로 안 옮기고?”

“그게…… 둘이 똑같이, 예사로 아픈 것 같진 않다.”

남궁구의 말에 남궁교명과 팽가 쌍둥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이구, 배야!”

“홍 사부님 독도 멀쩡하게 소화시킨 놈인데…….”

현오가 배를 잡고 뒹굴자, 팽가 쌍둥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화는 답답했다.

‘아니, 대체 배는 왜 아프냐고! 그런 증상은 없는 독인데!’

독의 주재료인 열향화는 춘약에 들어가는 중요 재료라.

몸에 양기를 가득 불러일으키지만 복통을 일으키진 않았다.

‘혹시, 만두가 상했나?’

진화는 현오가 배가 아픈 것까지 따라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도련님, 넌 괜찮아?”

“아. 하아. 난 괜찮아.”

진화의 입에서 힘없이 더운 숨이 빠져나왔다.

그 모습에 남궁구가 심각한 얼굴로 진화를 침상에 눕혔다.

곧 홍채연이 달려오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지?”

“두 사람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문 닫고 밖의 인원들 모두 방에서 대기하라고 해.”

홍채연이 신속하게 지시를 내렸다.

소란을 구경하는 인원을 정리하며 백의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상황이 정리되는 것과 동시에, 홍채연은 빠르고 냉철하게 현오와 진화를 살폈다.

“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오장육부에 열이 가득 올랐군. 이 두 사람만 그런가? 언제부터지?”

“조금 아까 현오부터 쓰러졌고 이어서 진화가 증상을 보였습니다.”

남궁구의 말에 홍채연이 심각한 얼굴로 현오와 진화를 살폈다.

“끄응. 아이고, 배야…… 하아…….”

“…….”

같은 증상 같은데 다른 고통을 호소하는 두 사람.

“……하아…….”

이제 정신이 몽롱해진 듯 달뜬 숨만 내뱉는 두 사람, 아니 정확하게는 진화의 모습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결국 미간을 구긴 홍채연이 결정을 내렸다.

“중독이구나. 자양강장 종류인 듯한데…… 목숨이 위험하진 않으니, 의선문으로 옮겨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

“네!”

“송구하지만, 진화가 의선문에 가는 거라면 본가에 연락을 해야 합니다.”

남궁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 홍채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정의무학관에 적을 두고 있긴 하지만, 여기 관도생들 대부분이 명문 출신이었다.

게다가 하나는 세가의 중심이라는 남궁, 다른 하나는 구파일방의 거점인 소림 출신이라.

‘저 증상은 자양강장에도 쓰이지만, 춘약(春藥)에도 쓰이는 거지. 하필 소림과 남궁이라…… 사안이 생각보다 커질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것보다…….

“누구냐? 감히 내가 있는 무학관에서 약을 쓴 놈!”

홍채연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 * *

의선문으로 와서 현오와 진화는 해열제를 처방받았다.

“놀랍군.”

의선과 백소하가 현오를 보며 감탄했다.

“독이든 약이든 소화시키는 체질이라니…….”

“당문에서 알까 겁나는구나. 허허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백소하를 두고, 의선이 껄껄 웃었다.

해열제 약효가 돌기도 전에 벌써 독이 소화되고 있는지.

현오는 두툼한 배를 드러낸 채 대(大) 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아이는 참 오랜만이구나.”

“단번에 알아보시겠습니까?”

“어찌 모를까, 실로 오랜만에 보람 있는 환자였거늘.”

의선이 반가운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맥이라도 한번 짚어 보시지요?”

“아서라. 목숨이 달린 일도 아닌데, 허락도 없이 무인의 맥을 짚어서야 되겠느냐.”

백소하의 말에 의선이 웃으며 거절했다.

어쨌든 목숨이나 장기에 지장이 있는 독이 아니라, 열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의선이 곧 자리를 떴다.

하지만 혼자 남은 백소하는 쉬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망설이기를 잠시, 백소하가 기어이 진화에게 손을 뻗었다.

‘누구도 모르게 한다면…….’

백소하가 긴장된 표정으로 진화의 맥을 짚었다.

그리고 작게 내공을 흘렸다.

진화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지만, 백소하는 집중하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아!”

잠시 뒤, 백소하가 눈을 크게 뜨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백소하가 기척이 사라지고 조용해진 방 안.

스윽.

가만히 누워 있던 진화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덤덤한 얼굴로 제 손목을 보았다.

“백소하라…… 괜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건만.”

백소하가 나간 문을 향해, 진화의 눈빛이 시리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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