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56)화 (56/425)

남궁마제

부릅뜰 진(瞋) 재앙 화(禍) : 불청객 맞이(1)

어두운 방.

천천히 일어선 진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한 별채를 내어준 덕에 맞은편 현오 외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뭘 알고 싶었던 걸까?’

백소하가 맥을 짚는 것을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다.

몸에 흘러들어 온 백소하의 내공을 뇌기로 막았다면 되었다.

하지만 독에 쓰러진 사람이 갑자기 깨어나 있다면, 오히려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역천지체인 것은 알고 있다. 혈맥이 부족한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데 왜 굳이 내 맥을 짚어 본 것일까. 이전 환자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아니면…….’

진화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진화의 경지는 남궁세가에서 함구하기로 결정한 바였다.

나이에 비해 너무 빠른 성장은, 주변의 경계를 사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귀천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좋은 취급을 받기 힘들었다.

게다가…….

‘귀천성의 눈에 띄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광마제가 살아 있었다.

이전 생에도 진화의 존재를 집요하게 쫓아 진화의 주변을 모두 파괴한 그였다.

‘내 존재를 알게 된다면 전보다 더 빨리 날 노리겠지.’

진화는 이전보다 강해져야 했다.

그 전까진 남궁의 이름에 걸맞은 후기지수 정도가 딱 좋았다.

‘무엇보다 광마제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그놈이 나를 이용해 뭘 하려고 했는지 알아내야 하는데…….’

이전 생에서 백소하는 의선을 제자로, 의선을 도와 역천비록을 해석하는 데 공헌했다.

진화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뭘 확인하려 한 건지,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독의 기운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공으로 독 기운을 없앨 순 없었다.

‘곧 비영문 놈들이 올 때까지. 이번에야말로 진휘 형님의 곁에서 완전히 치워 버리겠다!’

비영문의 의뢰 철칙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그래서 의선문의 경계에 이토록 힘을 쓰는 것 아니겠는가.

죽을 자리지만, 반드시 올 것 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지붕 위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야. 괜찮아?

의선문으로 실려 오기 전, 진화는 남궁구에게 밤에 찾아오라는 전음을 남겼었다.

-난 이상 없어. 그보다 할 일이 생겼어.

-생겼다고?

-원래는 제갈소현의 움직임을 봐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바뀌었어. 사람을 시켜 백소하를 감시해 줘. 네가 직접 하면 더 좋고. 제갈소현은 남궁교명에게 맡기고.

-백소하? 왜? 무슨 일이야?

-몰래 내 맥을 짚고 갔어.

-뭐! 미쳤어? 왜 그랬대?

-그러니까. 왜 내 맥을 짚었는지 알아내야겠어.

-……알겠어.

진화의 말에 남궁구도 진지해졌다.

남궁구는 진화가 경지를 넘어선 것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몰래 무인의 맥을 짚는 건 위험하고 수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진짜 몸은 괜찮아? 제갈소현 짓이야?

-반쯤은. 날 미행하던 하인을 잡아서 미리 독을 교체했어.

-그럼 현오는?

-……내 만두를 훔쳐 먹었다.

-만두? 하하! 이 징한 땡중 같으니!

남궁구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현오는 세상모르고 숙면을 취하고 있었으니.

-백발마녀가 범인 색출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어. 만두라고 살짝 흘릴까?

-아니. 그러지 않아도 홍 사부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낼 거다. 열향화는 제법 귀한 약초거든. 그 전까지 제갈소현의 동태만 파악해 놔.

-너는?

-제갈소현이 또 하인이 심어 놨을 수도 있고. 여기서 쉬면서 그놈들을 기다리려고.

-너 설마…… 비영문 놈들 만나려고 일부러 독을 먹은 거야?

-겸사겸사. 일거양득이지. 비영문도 잡는 김에 제갈소현도 잡고.

진화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미친놈.

남궁구가 툭 던지고 지붕에서 사라졌다.

마치 도망치듯.

* * *

갑 조의 백의생, 정확하게 남궁의 소공자와 마소승 현오가 의선문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 온 무학관에 퍼졌다.

“중독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중독? 홍 사부의 독?”

“아니, 그건 아니고!”

“백발마녀가 성이 끝까지 나서, 범인 잡을 거라고 갑 조 방의 물건은 다 털었나 보더라고.”

“아아, 진화 공자! 내 그대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구려!”

소식은 당연히 제갈소현의 귀에도 들어갔다.

병 조 조원들이 저마다 어제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나하연은 진화를 생각하며 자책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제갈소현은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성공했나 보네!’

노리던 진화뿐 아니라 현오까지 중독되었다는 소릴 들었음에도, 제갈소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제갈소현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진화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갈세가 여인들의 자살용 독이라며! 대체 언제 죽는 거야!’

제갈소현이 입술을 깨물며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화와 현오가 무사히 회복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회복이라고? 말도 안 돼!’

참다못한 제갈소현이 밖으로 나갔다.

* * *

제갈소현은 그길로 곧장 제갈세가 본가로 향했다.

“그래, 우리 동생이 왜 외출 시간도 아닌 때에 이 오라버니를 찾았을까?”

제갈후현이 자신의 거처에서 웃으며 제갈소현을 맞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제갈소현이 제갈후현을 보자마자 뾰족하게 소리를 질렀다.

제갈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막 숙청관 백의생 두 명이 의선문에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던 참이었다.

순간 울컥했지만, 막냇동생의 무례를 한 번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렴. 일은 잘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안 죽었냐고요!”

“음?”

“왜 안 죽었어요? 벌써 회복 중이라는 소문이 들린다고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독을 제대로 쓴 게 맞아요? 그 하인, 일을 똑바로 한 게 맞냐고요!”

자신을 질책하는 듯한 제갈소현의 모습에, 제갈후현의 인내심도 다했다.

결국 제갈후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리 소현이, 많이 급한가 보구나. 좀…… 진정하는 게 어때?”

제갈후현이 매서운 기세로 제갈소현을 내리눌렀다.

무려 다섯 살 넘게 차이가 나는 친동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제갈후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정되었으면, 앉아.”

냉정한 제갈후현의 명령에, 제갈소현이 쭈뼛쭈뼛 자리에 앉았다.

“아, 아니, 오라버니, 분명 쓰러졌는데…… 효과는 확실하다고 한 극독인데…….”

제갈소현이 우물쭈물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눈치를 보면서도 제 할 말은 하나도 참지 않았다.

‘이러다가 일을 망치면 안 되지.’

제갈후현의 기분이 더 상하기 전에 제갈용성이 나섰다.

“소현아, 정의무학관의 홍채연 사부는 독에 관한 중원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다. 의선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극독이라도 홍 사부가 이른 시간에 당도하고, 곧바로 의선문에 옮겨졌다면, 살아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그럼 어떡해요!”

제갈용성이 좋게 타일렀지만, 제갈소현은 오히려 기세가 올랐다.

제갈후현보다 만만한 제갈용성에게는 눈치를 볼 생각도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제갈용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물러났다.

‘멍청하고 버릇없는 년! 애초에 독은 네년이 구해 온 거잖아!’

제갈용성 또한, 제갈소현을 달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제갈후현이 진짜 냉정을 찾을 시간을 번 것뿐이었다.

처음부터 이쪽이 원하는 것은 남궁진화가 크게 다치는 데에 제갈소현의 손을 빌리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제갈소현이 가진 재산을 빼앗는 것이었다.

제갈소현이 제 손으로 독까지 구해 왔으니 얼마나 쉬운가.

제갈후현은 그게 어떻게 구한 독이든 상관치 않았다.

제갈후현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제가 원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갈용성은 그게 누구의 생각인지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어차피 세 남매 중 누구든 걸려 넘어지면 그만이니까.

제갈용성의 생각대로, 제갈후현은 잠깐 사이에 인내심을 회복했다.

그는 지금부터 자신이 원하는 나머지를 얻을 참이었다.

“독으로 한 번에 죽이기는 어렵지. 하지만 언제나 방법은 있단다.”

“그게 뭐예요?”

제갈소현이 다급하게 물었다.

마음을 숨길 생각도 못 하는 제갈소현을 보며, 제갈후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얼마나 더 쓸 수 있느냐?”

제갈후현이 덫에 걸린 제갈소현에게 마침내 독니를 드러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하던 제갈소현이 멈칫했다.

그녀는 이미 제갈후현에게 하인을 빌려 쓰면서, 수중에 있던 돈을 전부 쓴 참이었다.

근신 때문에 부릴 수 있는 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연환상단의 지분과 자신 소유의 자화상단뿐.

연환상단의 지분을 쓸 수 없었다.

그건, 제갈세가의 직계로서 그녀가 가진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놈을 드디어 내 손으로 치우려나 싶은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그때의 굴욕.

남궁진화가 나타나는 모든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비참한 처지.

심지어 이렇게 재물을 쓰게 된 것도, 그놈 때문이었다.

모두 제갈소현의 언행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정작 제갈소현은 억울하기만 했다.

‘그놈을 치울 수만 있다면……!’

다시 이전의 위엄 있는 제갈세가 영애로서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방법…… 정말로 있어요? 난 꼭 그놈이 나보다 더 비참하게 죽는 걸 봐야겠어요.”

제갈소현의 눈이 독하게 빛났다.

동시에 제갈후현의 눈도 빛났다.

“방법을 말해 줘요. 그럼…… 제 상단의 절반을 드릴게요.”

제갈소현도 차마 연환상단의 지분은 내어놓지 못했다.

다만 그것만으로도 제갈후현은 만족스러운 듯 화통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 시작하면 끝을 봐야, 제갈답지.”

‘바보같이 자존심만 높은 동생을 함정에 빠뜨리고, 즐거운 듯 웃는 네 모습이야말로 제갈답구나.’

제갈용성은 서로를 물고 늘어지는 후현, 소현 남매를 보며,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멈칫.

‘……그 독이 그렇게 회복이 빠른 독이었나?’

대충 독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던 제갈용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현재 의선문은 삼엄한 경계 속에 있었다.

비영문도들의 시체도 그렇지만, 죽은 단천문 소속 제자들의 부검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환자들을 위해 문을 열어 놓던 의선문이,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외당에서만 환자를 받고 다른 곳은 출입을 엄금했다.

늦은 밤에는 경계 인원을 제외한 사람들의 통행도 제한했다.

그건 애초에 경비를 요청한 남궁진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진화가 독에 당해 의선문으로 실려 왔다는 걸 들었지만, 의선문의 문이 닫히고 난 뒤였다.

그래서 남궁진휘는 날이 밝고 중요한 일을 처리하자마자 의선문으로 달려왔다.

“진화야!”

남궁진휘가 다가오자, 자고 있던 진화가 눈을 떴다.

“형님.”

현오를 의식해서 목소리를 낮췄지만, 진화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정의맹에서 네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열이 끓긴 하지만 몸에는 큰 이상이 없고, 잘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열 때문에 붉게 달아오른 진화의 얼굴에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의선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셨고, 의선문의 해독제가 잘 듣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체 누가 네게 이런 짓을……!”

“홍 사부님이 나서 주시고 있답니다. 곧 잡히겠지요.”

“인석아, 그게 그렇게 태연할 일이냐!”

남궁진휘가 핀잔을 하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난으로라도 어린 동생을 때릴 순 없었다.

이렇게 불현듯 확인하게 되는 남궁진휘의 진심에, 진화는 그저 웃고 말았다.

‘죄송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형님께서 자꾸 이 일에서 나를 빼놓으시니, 이렇게라도 형님 가까이 있을 수밖에.’

진화는 다시 비영문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는 곳에 남궁진휘를 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영문이 아니라 네가 이 우형을 죽이겠구나.”

“그렇게 많이 놀라셨습니까?”

남궁진휘의 너스레에 진화가 기분 좋게 웃었다.

하지만 남궁진휘는 농담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진혜가 오고 있단다.”

“누……님이요?”

“무학관 안에서 네가 이리된 걸 알면 기필코 날 죽일 거다.”

진지하게 하는 말에, 진화는 이것도 농담으로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코 남궁진혜의 귀엔 일부러 독을 먹었다는 말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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