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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58)화 (58/425)

남궁마제

부릅뜰 진(瞋) 재앙 화(禍) : 불청객 맞이(3)

현오와 함께 있느라 의선문에 있으면서도 무료한 줄 몰랐건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진화는 정말로 현오에게 미안해졌다.

독을 먹은 것과 위험한 의선문에 있게 된 것.

그의 존재 때문에 마음껏 싸우지 못하는 것도, 현오에게는 미안해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진화의 착각이었다.

뻐—억!

“아우! 아미타불!”

뻐—어억!

“관세음보살!”

놀랍게도 베개를 휘두르는데, 바위가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진화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현오를 보는데,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은 베개가 비영문도의 머리를…… 부수고 있었다.

스님이 저래도 될까 하는 의문은 둘째 치고, 현오가 꽤 신나 보이는 건 착각일까.

“허!”

쉐에엑! 퍽퍽!

헛웃음을 친 진화는 자연스럽게 제 목으로 들어오는 비도를 빼앗고 그대로 비영문도의 급소를 찔렀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공격을 피하고, 상대를 치고 찔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방 안의 비영문도들은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남궁구의 목소리였다.

백소하를 감시하던 남궁구가 진화에게 온 것이다.

남궁구가 입구에서부터 비영문도들의 뒤를 공격함으로써 그들이 흩어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화가 움직였다.

처음 비영문도가 흘린 단검을 주워 든 진화가, 어둠 속에서도 푸른 번개를 번뜩였다.

쉐에에엑!

파팟팟팟팟팟--!

천뢰제왕검법 낙엽(落燁).

단검에서 여러 갈래로 쏟아진 번개가 천장에 있던 비영문도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쿵! 쿵

푹! 퍼어억-!

때를 놓치지 않고 현오가 떨어진 비영문도들을 베개로 내리쳤다.

그리고 진화는 벽을 타고 달려 창문에 붙은 비영문도의 목을 잡고 당겼다.

쿠-웅!

목이 부러져 죽은 비영문도의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뇌기의 흔적이 남았다.

휙! 휙! 휙!

진화가 물러섰다.

창밖에 있던 비영문도들이 진화를 향해 비도를 날렸기 때문이다.

채—앵!

안에 있던 비영문도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창밖의 이들이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잠깐의 틈을 쫓아 남궁구가 진화의 곁으로 왔다.

“이놈들이 왜 여기에 있어? 왜 널 노리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남궁구의 물음에, 진화도 당황스러운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크아아악!”

“막아! 안으로 들어간다!”

밖, 특히 검시방이 있는 쪽의 상황이 다급해 보였다.

진화가 자신의 방 안에 남은 비영문도를 둘러보았다.

게다가 창 밖에 달라붙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이들의 기척도 늘었다.

휙-! 휙휙-!

챙-!

조금만 방심해도, 창 밖 건물 벽에 붙은 비영문도들이 비도를 던졌다.

창을 통해 방을 탈출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입구를 뚫자니 그쪽으로 얼마나 몰려들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결국 남궁구를 슬쩍 돌아본 진화가 결심을 굳히고, 손끝에 천뢰기를 모았다.

지지직!

구름 사이에 내리치는 번개처럼, 비영문도들의 어지러운 공격을 피하는 진화의 손끝에 새파란 기운이 번뜩였다.

그때.

“남궁구 안으로!”

진화가 다급한 목소리로 남궁구를 부르고, 진화와 현오의 팔이 남궁구를 잡아당겼다.

콰-----앙!

굉음과 함께, 창문에 있던 방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거기에 붙어 있던 비영문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투툭. 툭. 쿵.

푸-욱!

앉아서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모를 비영문도의 가슴을 뚫고 칼날이 솟았다.

“이 개쌍노무 새끼들이, 지금 내 동생 때렸냐?”

남궁경에게서 흔히 듣던 걸쭉한 욕을 뿜으며, 뿌연 먼지 속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님?”

“헉!”

“진화야!”

남궁진혜가 비영문도를 발로 차서 검을 빼며, 진화를 향해 웃어 보였다.

* * *

“……저기 혹시…….”

“아니, 누가 봐도, 도련님이 죽이고 있었어. 정말 여전하시네, 저 마녀도.”

참 한결같이 일방적이라며 남궁구가 감탄을 뱉었다.

하지만 어릴 적과 눈에 띄게 달라진 것도 있었다.

쉐에에엑--!

콰-앙!

웬만한 남자만큼 큰 키에 건강한 밀색 피부.

경식 비단 무복의 양팔에 있었을 천은 어디 날아가고 없고, 대신 이두근과 삼두근이 꿈틀거렸다.

퍼—억! 푹!

짙은 푸른색 검기만큼이나 선명한 검은 머리칼이 한길로 높게 묶여 흩날리고.

“조금만 기다려.”

크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미인이 활짝 웃자, 눈 밑의 점과 붉은 입매가 사뭇 유혹적이었는데.

파팟---! 푹!

곧바로 피가 튀어 한쪽 얼굴을 적셨다.

어릴 적보다 많이 성장한 신체만큼, 이제는 상대를 죽이는 데에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남궁구와 현오가 눈이 마주쳤다.

결국 진화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저기 누님,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검시방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떽! 우리 진화는 여기 누워서 쉬고 있어! 누님이 이 떨거지들 얼른 치워 줄 테니.”

남궁진혜가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튄 피를 보며 진화는 어쩐지 크게 혼이 나고 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남궁진혜의 검에 어스름하지만 단단하게, 푸른 검강이 맺혀 있었다.

‘누님이야말로 천재 중에 천재셨구나!’

심지어 한 손으로 목을 꺾은 비영문도를 던지는 모습까지.

“저게 여자 힘이냐?”

“부처님 아래에 모두가 평등함을 진정 실현하시는 분입니다.”

남궁구와 현오가 감탄하는 말에, 진화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남궁가주와 남궁진휘가 남궁진혜에 대해 ‘들소’ 혹은 ‘껍데기만 다른 남궁경’이라 말하며 한숨을 쉬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버지 남궁경을 꼭 닮은 힘 있는 검세와 망설임 없는 결기.

“짜져 있어, 새끼야! 대가리부터 가랑이까지 쪼개 버릴라니까!”

아버지 남궁경과 목소리만 다른 듯한 말투까지.

진화의 입가로 미소가 맺혔다.

저런 검세와 결기로, 이전 생에서 남궁진혜는 목이 잘리고서도 검을 쥔 채 서서 죽었었다.

남궁진혜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진화는, 감격에 겨운 눈으로 남궁진혜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비영문도들은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고, 진화와 남궁구, 현오도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켜야지, 지금의 남궁을!’

진화의 눈동자에 푸른 번개가 쳤다.

파지지직---!

콰앙!

진화의 양손에는 어느새 사라지지 않는 천뢰기가 번뜩이고, 진화는 검은 구름을 헤치듯 비영문도들의 속을 헤집었다.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남궁진휘가 있을지 모를 검시방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입구 쪽에서 검시방 쪽과 비견될 정도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깨서 이쪽 별채에 이토록 많은 인원이 왔을까.

지금 당장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날 노리는군.’

싸움이 불리해지자, 비영문도들의 움직임도 집요해졌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진화가 움직이는 방향마다 비영문도들이 달라붙었다.

‘설마, 귀천성이 벌써 날 노리는 건가?’

쿵-!

한차례, 심장이 내려앉았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진화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아직,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퍼-억!

비영문도들 사이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퍼엉-!

진화의 손끝에 닿을 때마다 푸른 번개가 번적이며 비영문도들이 튕겨 나갔다.

그리고 진화의 손이 뻥 뚫린 입구로 들어오는 이들을 향하자.

콰광—쾅-!

천둥소리가 들린 듯.

양손에서 쏘아진 눈부신 섬전이 비영문도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죽이고 또 죽여도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이들.

비영문도들의 모습에서, 이전 생에 집요하게 저를 쫓던 귀천성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렇게 죽이고 또 죽이며 저항했는데, 결국은 진화의 소중한 이들만 모두 죽었었다.

‘다시 그렇게 둘까 보냐!’

남궁진혜를 공격하던 비영문도의 머리로 낙뢰가 떨어졌다.

남궁진혜 또한 진화를 노리는 비영문도에게 검을 휘둘렀다.

“대가리를 쪼갠다고 했지-!”

쉐에엑--!

남궁진혜의 제왕검형이 비영문도 셋의 가슴, 목, 머리를 한 번에 날려 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남궁진혜와 진화에게 쏟아졌다.

“진화야!”

“남궁 시주!”

남궁구와 현오가 놀라서 진화를 찾는데, 진화의 손끝에 불꽃이 튀었다.

쓰러지고서도 공중으로 피를 뿜어 대고 있는 시체들.

진화는 그 핏방울에 뇌전을 담았다.

파박! 파바바바박-!

비명문도들의 위로 정신없이 불꽃이 튀었다.

그때를 노려 진화가 소리쳤다.

“어서 검시방으로 가야 해요!”

“진화야!”

뚫린 벽 쪽으로 진화가 검시방을 향해 몸을 날리고, 남궁진혜 또한 진화를 부르며 나갔다.

“아니, 우리도!”

“잠깐, 시주들!”

남궁구와 현오도 급히 뒤를 따라 나갔다.

비영문도들이 끈질기게 그들의 뒤를 따라붙었다.

* * *

“그쪽, 막아라!”

쉐에에엑--!

정의맹 소속 무단인 듯 사신수 문양을 어깨에 새긴 이들이 비영문도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다급하게 터지는 목소리와 달리, 그들은 비영문도들을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퍼---억!

“크억!”

검시방 안쪽에서 폭풍 같은 기운에 밀려난 비영문도들이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퉤엣! 귀찮게 하는군.”

거대한 그림자가 목을 꺾으며 느긋하게 밖으로 나왔다.

그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비영문도들조차 주춤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팔 척 장신에 입구를 전부 가릴 만큼 거대한 체격.

피처럼 붉은 머리칼이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쉬는 숨에서조차 사나운 기세가 풍기는 사내.

그의 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적호단 단주 경격권(硬格拳) 팽치.

정도 무림에 숨어든 귀천맹을 쫓는 사나운 호랑이[猛虎].

정의맹이 이번 비영문 사냥에 택한 사냥꾼이었다.

팽치가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의 뒤로 손 하나가 불쑥 나왔다.

“아이, 단주님, 더럽게 왜 입구에 침을 뱉어요?”

미간을 찌푸리며 팽치가 뱉은 침을 피하며, 남궁진휘가 밖으로 나왔다.

하긴, 이곳에서 천하의 팽치를 밀치고 할 말 다 할 인물이 남궁진휘 말고 누가 있겠는가.

남궁진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온 녀석들은 전부 몰아낸 듯하군요.”

“그 시체들 사이에 누워 있으라는 건, 누구 생각이었냐?”

“……글쎄요.”

중요한 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다 하는 거다.

불만스러운 팽치의 물음에 남궁진휘가 시선을 돌리며 답을 피했다.

지난번에 포로들을 관속에 넣어 오면서 ‘아무도 관 속은 의심하지 않는다.’라는 편리한 상식을 알아 버린, 남궁진휘의 생각이었다.

비영문이 노릴 것을 알았지만 시신들을 옮길 수는 없었다.

시신들의 보존을 위해서는 결빙고가 있는 검시방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들이 언제 어디서 습격해 올지 모르는 일.

결국 남궁진휘는 함정을 파기로 했다.

일부러 경계에 빈틈을 만들어, 비영문도들을 검시방 안으로 유도했다.

그리고 검시방에는 시신이 있던 관 안에 고수들을 숨기고, 부검실 냉고 안에는 팽치라는 확실한 고수를 배치했다.

즉 팽치는, 검시 중이던 모든 시신들과 함께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곳에서 한참 숨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남궁진휘는 검시방 건물의 포위를 위해 무사들과 함께 은신을 택했다.

“관이 좁아터져서, 아직도 어깨가 결리네. 어떤 놈의 생각인지, 잡히기만 해 봐라. 으드득!”

어깨가 결리는 건지, 이가 결리는 건지.

어쨌든 남궁진휘는 절대 팽치에게 자신의 계책이었다는 걸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상황이 거의 끝날 듯했다.

안쪽에는 팽치와 남궁진휘, 적호단원들이 버티고, 밖으로는 무학관 관도생들이 비영문도들의 도주로를 빠짐없이 포위한 상황이었다.

“이제 정리하시죠.”

“그래야지. 전부 죽인다!”

“충!”

이미 비영문 토벌에 나서 보았던 정의맹이었다.

비영문이 매번 은신처를 옮긴다거나, 의뢰자의 정체는 문주 이외엔 아무도 모른다는 것 등은 파악되었다.

포로를 잡아 얻을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챙-! 챙!

퍼어억--!

거의 일방적인 살육이 벌어졌다.

상황이 거의 끝나갈 무렵.

“형님-!”

남궁진화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응?”

고개를 돌린 남궁진휘가 얼굴로 바람이 스쳤다고 느낀 순간.

뒤에서 거대한 압력이 그를 밀었다.

그리고…….

퍼-------엉!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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