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부릅뜰 진(瞋) 재앙 화(禍) : 불청객 맞이(4)
예상치 못한 임무 중의 사고(事故).
이전 생에 남궁진휘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였다.
천하의 제왕검과 남궁세가가 눈에 불을 켰지만, 범인은 찾지 못했다.
범인이 뭔가.
어떤 임무였는지, 어떤 사고였는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었다.
다만, 남궁진휘의 장례식에 의선이 참석했었다.
‘늦으면 안 돼! 늦어선 안 돼!’
남궁진휘의 죽음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도 남궁진휘를 구해야 했다.
소중한 가족.
든든한 형님.
진화는 남궁진휘의 곁에 서면 든든한 큰형을 두고 기세를 펴는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진화가 얼마의 시간을 거슬러 왔든 상관없이.
“진화야!”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검시방 건물 안에 불꽃이 튀는 걸 보는 순간, 진화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형님-!”
진화의 눈에 푸른 번개가 내리쳤다.
그리고 번개가 그의 전신을 관통하듯, 온몸에 천뢰기가 가득 폭발했다.
휘이익--!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남궁진휘의 손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콰----앙!
시신을 보존하고, 검시하는 약품이 불과 기름을 만났으니.
퍼-엉! 엉-!
의선문 검시방 건물이 터지고, 무너지는 굉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초의 폭발이 터진 입구에는 거대한 불길이 용트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진휘가 있는 곳엔, 불씨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번개가 내리치는 거대한 기막이 입구의 모든 충격과 불길을 막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닥. 파지지직--!
떨어지는 돌 조각이 번개에 부서져 먼지가 되고서도, 가루 하나 안으로는 떨어지지 못했다.
쾅! 쾅!
폭발음이 먼 곳의 이야기처럼 고요한 기막의 안.
“진……화야?”
“형님.”
모든 시선들이 진화를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모두 넋이 빠진 듯 진화가 만들어 낸 번개의 장막을 보고 있었다.
진화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보여서 좋을 것이 없는 무위를 내보이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남궁진휘가 무사하기만 하다면…….
“진화야.”
“형님, 괜찮으십니까?”
살아 있는 남궁진휘의 목소리.
그걸 들으면서도, 진화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글쎄.”
“어, 어디 불편해요? 다쳤어요?”
“그런 것보다, 이 형이…… 설렐 것 같구나.”
“……네?”
진화는 그제야 마치 애정 소설처럼, 제가 중심을 잃은 남궁진휘를 품에 안고 내려다보고 있는 자세임을 깨달았다.
당황하는 진화의 모습에, 남궁진휘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덕분에 난 괜찮다. 내가 일어설 수 있게, 형 좀 놓아주겠니?”
“아, 형님!”
진화가 소리를 지르며 남궁진휘를 일으켜 세웠다.
남궁진휘의 농담에, 잠시 멍했던 정신이 확- 깨는 듯했다.
하지만 어쩌다 함께 보호를 받게 되었던 적호단주 팽치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뭣들 하나! 비명문도를 모두 제압하고, 검시방의 불을 꺼라-!”
그만한 폭발과 불길.
심지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팽치조차 순간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아마 당했다면 아무리 그라도 온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팽치의 시선이 진화를 향했다.
‘……번개가 치는 기막이라.’
팽치는 그러한 기막을 아주 옛날에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이걸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건만.
‘백의생이 기막이란 말이지?’
팽치가 진화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차차 또 기회가 생기리라.
“저항하는 놈들은 모두 죽여라!”
“안으로 들어가지 마! 불길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불이 번지지 않게만 해라! 연기 마시지 않게 조심해!”
팽치와 남궁진휘가 상황의 정리에 나섰다.
검시방은 이제 더 이상 폭발하거나 불길이 치솟진 않았다.
대신 잦아드는 불길 속에 모든 것이 검게 탄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
“미친 새끼들!”
비영문도들은 모두 죽을 생각을 한 것인지 격렬하게 저항했고, 검시방을 지키지 못한 적호단과 정의무학관 관도생들은 분노에 싸여 그들을 죽였다.
‘결국 비영문이 의뢰에 성공했군.’
진화는 검게 탄 검시방 안에서 격렬하게 죽어 가는 비영문도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그때.
쉐에에엑!
뒤에서 들리는 기척에 몸을 돌리고, 그대로 반대쪽으로 손을 뻗었다.
툭. 툭툭-!
진화는 저를 맞히지 못한 단검이 바닥에 꽂히는 걸 확인했다.
“끄으…….”
“의뢰가 다 성공한 게 아닌 모양이구나.”
진화가 제 손에 목이 잡힌 채 부르르 떨고 있는 비영문도를 보며 입꼬리를 말았다.
남궁진휘도, 진화도 무사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번엔 놈들을 지옥 끝까지라도 쫓을 것이었다.
파지지직-!
진화의 손에서 뇌기가 번뜩이고, 비영문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상황은 모두 정리되어갔다.
비영문도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적호단의 분노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쌍놈의 새끼들이!”
퍼어어억--!
“감히 누굴 노려!”
남궁진혜가 불을 밟은 들소처럼 날뛰고 있었다.
“우리 진화 털끝이라고 다쳤기만 해 봐, 내장이 튀어나올 때까지 패 버릴라니까!”
퍽! 퍽! 퍽!
“끄어어억!”
검에 얻어맞은 비영문도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 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남궁진휘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저거, 시집은 갈 수 있을까?”
“이미 내장이 터질 때까지 패고 있는데, 또 패겠다는 건 누굴까요?”
“…….”
남궁구의 물음에 아무도 답이 없었다.
다만 진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궁진휘를 보고 있었다.
* * *
비영문의 의선문 기습은 크게 화제가 되었다.
검시방이 무너지면서 거의 모든 시체가 훼손되거나 없어졌지만, 비영문도를 모두 죽이거나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일이 커지고, 정의맹에 수장회의가 열렸다.
맹주인 운현대사를 비롯해서 각 문파의 가주나 그 대리인, 그리고 정의맹 당주와 무단주 들이 자리했다.
전쟁 지역에 나가 있는 사대무단주를 제외한 모두가 자리한 것이다.
제일 먼저 반응한 곳은 단천문이었다.
단천문에서는 제자들의 시신을 잃은 일로 격하게 항의해 왔다.
사문과 유족들이 수차례 시신 인계를 요청했지만 남궁진휘가 독단으로 이를 무시했고, 결국 그들의 시신을 잃었다는 이유였다.
“정식으로 제소하겠습니다! 절대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소!”
“안 넘어가? 당연히 안 넘어가야지! 우리도 바라는 바야.”
“뭐요? 지금 세가의 위세를 빌어 겁박하는 것이오?”
단천문의 사람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남궁조에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탕-!
남궁조의 눈 속에 일렁이는 것은 분노를 넘은 살의였다.
“겁박? 이게 겁박으로 들렸다면 잘 들은 거야. 그럼, 감히 남궁세가 소가주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고, 우리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
남궁조가 당장이라도 단천문의 사람들에게 검을 휘두를 듯 으르렁거렸다.
그때, 남궁조와 함께 있던 팽치가 나섰다.
“단천문은 앞으로 비영문 발본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뭐요? 우리가 비영문과 무슨 상관이라고 나서야 한단 말입니까! 우린 엄연한 피해자입니다! 제자를 둘이나 잃었는데 시체도 찾지 못한단 말이오!”
단천문 사람들이 남궁조의 눈치를 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몇몇 이들은 눈을 뻘겋게 붉히며 곧 울음을 터뜨릴 듯 분한 얼굴이었다.
팽치가 한숨을 쉬었다.
조용히 있던 남궁진휘가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단천문을 향해 싱긋이 웃어 보였다.
“저, 저……!”
상대가 남궁세가 소가주만 아니었어도, ‘저런 쳐 죽일 놈!’을 외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진휘가 상자에서 유리병을 하나씩 꺼내 올리자.
“저……!”
“저건! 헉!”
단천문의 사람들이 입을 벌린 그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남궁진휘가 올린 유리병엔, 의선이 따로 떼어 놓았던 비정상적인 심장과 간을 비롯한 혈관들이 하나씩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단천문 제자들의 시신이라면, 다행입니다. 그래도 주요 장기들은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뽀르르르.…….
유리병에 붙어 있던 두 개의 눈알이 떨어지며, 눈동자가 단천문 일행을 향했다.
“히익!”
기겁하는 소리가 들리자, 남궁진휘가 픽- 하고 웃었다.
옆에서 팽치가 작게 “미친놈.”이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유리병을 보며 할 말을 잃은 사람들의 앞으로 의선이 나섰다.
“심장이 비대해졌고 혈관이 망가졌으며, 간과 신장이 상했습니다. 피부 곳곳에 혈관이 터진 흔적이 있으며, 눈알엔 독약을 먹은 사람처럼 변색된 흔적이 있습니다.”
의선의 말에 정의맹 사람들 사이에서 동요가 잃었다.
정체불명의 약에 대해 알고 있던 맹주와 적호단주 팽치, 비선단주 금정신니를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특히 총군사 현우수사 제갈성진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독에 당했다는 말이오?”
“꼭 독이라 할 수 없습니다. 급작스럽게 몸의 힘을 끌어 내는 약이나 내공을 늘이는 영약도 이러한 부작용을 만들어 내니까요.”
“죽은 단천문 소속 관도생들은 지난해부터 상식적이지 않은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던 이들이라, 관도회에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의선의 설명에, 남궁진휘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들의 말과 상황을 종합하자면 결국, 독약보다는 수상한 약을 섭취했을 가능성이 큰 관도생들이 죽었고, 이들을 시체를 노리고 비영문이 무려 두 번씩이나 습격했다는 말이었다.
“마, 말도 안 되오! 이건 음모요! 야, 약이라니! 우리 단천문은 전혀 모르는 일이오!”
상황이 달라지자, 단천문의 인사들이 펄쩍 뛰었다.
이제까지 제자들의 시신 인계 어쩌고 하던 이들이, 이제는 ‘우리 단천문’은 쏙 빠지겠다는 태도였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니 잘됐네. 당장 그 유족들이라는 사람들부터 좀 불러 주시겠습니까?”
적호단주 팽치의 말에 단천문 사람들 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남은 문제는 비영문이었다.
정확히는 비영문의 뒤에 있는 배후.
“비영문도 중에 귀천성도가 있었다면서요? 비영문이 완전히 귀천성에 넘어간 것이랍니까?”
“귀천성 놈들에게 완전히 넘어간 것이라면, 큰일입니다. 놈들이 정의맹 코앞에 있었단 말입니다!”
“감찰부 외당에서 심문 중이나 쉽게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 죽지 못하니 곧 불겠지요. 조금 더 말미를 주시지요.”
“크흠, 흠.”
점잖은 중년 무인이 고개를 숙이며 답하자, 아무도 그를 채근하지 못했다.
감찰부 외당 정속마검(定屬魔劍) 견강위가 귀천성도들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지독한지, 모르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귀천성에 가진 증오심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도 저 단정한 얼굴 뒤로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정의무학관의 다른 관도생을 암살하려 했다는 건, 어찌 되었습니까?”
맹주 운현대사가 자상한 말투로 묻자, 남궁진휘가 나서 답했다.
“공격받은 이들은 남궁세가 출신의 남궁진화와 소림 나한각 출신 현오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이름의 등장에, 총군자인 제갈가주의 눈매가 움찔했다.
“남궁은 소가주부터 직계만 둘이나 습격을 당했습니다! 이 일은 우리 세가 차원에서도 꼭 범인을 찾을 것입니다! 본가에서 기별이 오는 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남궁조가 분통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남궁진화의 이름에 관심을 가졌을 뿐, 남궁세가의 행사에 토를 달진 못했다.
정의맹은 오로지 귀천성과의 전쟁에 관련한 일을 처리할 뿐, 세가의 직계와 관련한 일에 본가의 개입을 막을 명분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신과 관도생들을 노린 배후가 누구인지, 귀천성이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결국 모든 것은 비영문주를 잡고 비영문을 섬멸해야 해결될 일이군요. 적호단주.”
“예. 이미 사로잡은 비영문도와 과거 비영문의 행적을 대조해서 그들의 은신처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곧 대대적인 섬멸 작업에 들어갈 것입니다!”
* * *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남궁진휘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눈빛은 지금도 ‘아니라고 말해!’라는 듯했다.
하지만 진화는 이런 남궁진휘를 이겨 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팔자 눈썹을 하고, 최대한 남궁진휘와 눈을 마주치면 된다.
“며칠 전 제갈세가 하인이 제 뒤를 밟다가 들켰습니다. 그래서 원래 쓰려던 독을 제가 바꿔치기했습니다.”
“그거, 다행이었구나…… 뭐? 독을 네가, 뭐라고?”
자칫, 팔자 눈썹에 넘어갈 뻔했던 남궁진휘가 눈을 크게 떴다.
“절 죽이려 한 범인은 홍 사부님이 곧 찾아내실 터이니, 형님께서는 그 뒤를 추적해서 비영문의 흔적을 잡아내시면 됩니다.”
참 쉽지요, 형님?
경악하는 남궁진휘를 알지 못한 듯, 진화가 기쁜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