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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60)화 (60/425)

남궁마제

고할 진(診) 허물 화(禍) : 술래잡기(1)

해맑게 웃고 있는 진화를 보며 남궁진휘가 말을 잃었다.

진화의 말에 따르면, 진화에게 독을 먹여 죽이려고 한 놈이 있단다.

그게 제갈세가란다.

“제갈소현이 하는 일에, 소가주인 제갈후현이 거든 것 같아요. 잡힌 하인이 소가주 쪽 사람이라고 했거든요. 제가 시켜서 약을 바꿨다는 소리는 어디 가서 못 할 거예요. 약 바꾼 거 알면 소가주한테 죽을 거라고 벌벌 떨었거든요.”

저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것일까.

누군가 가신의 목숨을 노렸다는 말을 저렇게 태연하게 하다니…….

아니, 제 손으로 독을 집어 먹다니!

이게 무슨 기함할 소리란 말인가.

“적어도 이번에 비영문이 절 노린 건, 제갈세가가 배후일 거예요.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였다고 해도 제갈세가 직계들이 직접 의뢰를 했을 테니, 그들의 행적을 좇으면 비영문이 나오지 않겠어요?”

이것으로 비영문의 덜미를 잡았으니, 참 잘되었지 않습니까? 일석이조입니다! 월척이에요, 형님!

진화가 정말 기분이 좋은 듯 눈을 반짝이며 조잘조잘 떠들었다.

남궁진휘는 진화의 말 어디에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가끔 동생들은 원수가 되기도 한다는데, 순진하고 착한 우리 진화가…….

“아, 하나 더! 약을 먹은 놈들, 잘하면 제가 구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천뢰제왕심공의 뇌기가 심장의 이상 박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진화야!”

이번에는 정말로 저 반짝이 눈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너 이 녀석, 그걸 말이라고 해? 아무리 그래도, 일부러 독을 먹는 녀석이 어디 있어!”

눈을 동그랗게 떠도 안 된다.

팔자 눈썹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남궁진휘는 정의맹까지 끼어든 위험천만한 일에 끼어든 동생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또 제갈이란 말이지…….”

남궁진휘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때.

“뭐가 또 제갈이야?”

남궁진혜의 목소리가, 남궁진휘의 바로 등 뒤에서 들렸다.

그 순간, 남궁진휘와 진화가 약속이나 한 듯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 * *

진화와 현오는 무사히 퇴원을 마치고, 정의무학관으로 돌아왔다.

진화와 현오가 복귀한 건, 오전 수업이 끝난 후였다.

진화는 곧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저 녀석이 그 녀석이지?”

“남궁진화.”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 관도생들이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인 탓일까.

관도생들이 몰려나오는 것과 딱 마주쳤다.

순식간에 관도생들의 시선이 진화에게 모아졌다.

“남궁세가의 그 양자 아니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잘생겼는데!”

“남궁에서, 소가주를 지키려고 키운 비밀 병기라는 소문이 있어.”

“기막을 펼쳐서 적호단주의 목숨을 구했다잖아. 목숨값으로 적호단 한자리를 약속했대.”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의 이야기는 벌써 무학관 전체에 퍼져 있었다.

다만 소문이라는 것이 맞는 말만큼이나 틀린 말들이 많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남궁 시주, 어째 사람들이 따라오는 것 같지 않나?”

“그걸 이제 눈치채셨습니까?”

“거참,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많이들…….”

“밥시간이니까요. 현오가 오전 수업은 듣기 싫고 점심은 놓치면 안 되니까 꼭 지금 와야 한다고 우겨서 이리된 게 아닙니까!”

진화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현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현오를 원망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호단이라니, 완전 출세가 보장되었군.”

“저만한 인물과 실력에, 양자면 어때? 남궁인데!”

“난 얼굴만 보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

“넌 꿈 깨! 쟤는 눈이 없대?”

호의적인 시선, 질투 어린 목소리.

듣기 민망한 노골적인 품평이 들리는 건 이전과 비슷했다.

그걸 듣는 진화의 속이 불편한 것도.

어쩌면 시비를 걸듯 쏘아 보내는 호승심 혹은 적의 어린 기세들이 차라리 편하다고 할까.

‘시비라도 걸면 쥐어 패면 그만인데.’

갑 조 방으로 들어가기 전, 진화는 노골적으로 저를 쏘아 오던 기세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태연하게 사라졌다.

“크읏!”

화산파 출신 구성일이 휘청거렸다.

그가 꾸준히 진화에게 기세를 흘리던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나, 설마 진화가 구성일이 휘청거릴 정도로 대응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듯.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출신의 인물들이 구성일을 비웃으면서, 동시에 놀란 얼굴들을 감추며 흩어졌다.

사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주요 문파 출신들을 통해 무학관에 퍼져 나갔다.

말에 말이 붙으면서 소문이 와전되고 왜곡되었지만, 적어도 주요 문파 출신들의 시선은 심상치 않았다.

“저 멍청한 녀석.”

“백의장 되자마자 사고 쳤다더니, 성깔이 보통이 아니네. 그나저나 기막이라…….”

“중요한 건, 저 녀석이 익힌 것이 천뢰제왕신공이라는 거지.”

“천뢰제왕신공으로 절정 이상이라니. 남궁이 더 강해지겠군!”

“그보다 이번 백의생들 의생장전은 치열하겠는데?”

진화와 직접 붙을 일이 없는 청의생이나 홍의생의 시선은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백의생들의 눈길은 달랐다.

“천뢰제왕신공으로 초절정이었다고?”

“아름다운 꽃이 향기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지.”

경계의 눈빛으로 진화를 보던 당혜군이, 태명하게 감탄하는 나하연을 한심하게 보았다.

“넌 그렇게 한가하게 감탄이 나와?”

“그럼, 내가 뭘 더 해야 하나?”

“……하아.”

멀뚱멀뚱하게 저를 보는 나하연의 모습에, 결국 당혜군이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알 수가 없네. 진짜 저놈이 좋아서 감탄을 하는 건지, 아니면…… 의생장전에서 실력으로 이길 자신이 있는 건지.’

서주 삼대 천재, 용수권 나하연.

당혜군은 그녀를 살피기 위해 가까이했지만, 어째 점점 더 속을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비영문은 먼 이야기지만 경쟁은 목전의 일이라.

경쟁자들의 눈에 경계의 빛이 짙게 어렸다.

물론 경쟁자가 아닌 적에게도.

“왜, 왜! 망할 것들! 그렇게 대단한 척을 하더니 그놈 하나를 못 죽여?”

제갈소현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짜증을 내었다.

남궁진화와 관련되고부터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그때, 갑자기 강한 힘이 그녀의 머리를 잡아채서 끌어당겼다.

“꺄아-!”

쿵!

머리채가 잡혀 끌려온 제갈소현이 벽에 몸을 부딪쳤다.

“뭐…… 컥!”

제갈소현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그녀를 끌고 온 손이 이번에는 그녀의 코와 입을 막았다.

제갈소현의 발끝이 땅에 간당간당하게 닿을 정도로 몸이 들렸다.

“읍, 읍읍…….”

제갈소현이 놀란 눈으로 올려 보자, 상대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상대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태연하게 웃었다.

“안녕. 나, 남궁진혜.”

“……읍!”

제갈소현이 경악했다.

그리고 뭔가 말을 하려고 소리를 내는 순간.

남궁진혜의 손이 숨이 막히도록 제갈소현의 입과 코를 내리눌렀다.

그리고 사납게 구겨진 얼굴을 제갈소현의 앞에 들이밀었다.

“네가 내 동생한테 막말을 지껄이고, 고작 금 덩어리 몇 개로 치웠더라고. 언제부터 제갈 따위가 남궁을 모욕했지? 싸울 줄도 몰라서 뒤로 숨은 겁쟁이들이!”

꽈아악.

남궁진혜가 제갈소현의 턱을 부술 듯 힘을 주었다.

“읍-! 으으!”

제갈소현이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 보는 아픔이었다.

숨도 막혔다.

무엇보다 겁이 났다.

결국 제갈소현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소가주께서 넘어가셨으니 이번엔 하는 수 없지. 이건 그냥 인사야. 하지만 또 만나면 그땐, 진짜 네 머리털을 죄다 뜯어 놓을 거야.”

“……헉!”

남궁진혜가 제갈소현을 놓아주자, 제갈소현이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남궁진혜는 그런 제갈소현을 보지도 않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남은 제갈소현은 안도와 서러움에 눈물을 쏟다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 * *

세상에는 차마 다 알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약과 독이 있었다.

천하는 넓었고 각각 다른 기후와 환경에 따라 자생하는 동식물도 달라서, 화타나 편작이라도 전부 다 알진 못했을 것이다.

특히,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독을 섞어 놓으면, 그것을 분석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해약을 만들 때에는 독보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처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화와 현오가 의선문으로 오게 된 이유였다.

당금 천하에서, 의선문은 가장 많은 약과 독을 가진 곳이었다.

그중에서 백화선녀 홍채연은 의선문 안에서도 최고의 독의였다.

“청색이로군.”

홍채연이 자색으로 변한 물을 확인하며 허리를 폈다.

감히 자신이 있는 무학관에서 제자들이 독에 당했다.

그 뒤로 홍채연은 잠도 자지 않고 사흘 밤낮으로 독을 알아내는 데에 몰두했다.

“허허, 열기를 유발하는 것들은 모조리 뒤진다더니……. 그래서 결과가 나왔더냐?”

“사형.”

의선이 홍채연의 연구실에 방문했다.

“열향화, 자형거미의 독, 토복령. 그 외에 조잡한 약재들이 열일곱 가지 섞였어요.”

“허! 하나같이 양기가 강한 것들이로구나. 누가 보면 칠십 노인이 새장가 가는 줄 알겠어.”

“지금 그게 시집도 안 간 사제한테 할 소리예요!”

“혼수로 넣어 줄까? 지금이라도 좀 가련?”

“사형!”

홍채연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의선이 허허 하고 웃었다.

그러다가 웃음소리가 한숨 소리로 변했다.

“허어, 고약하구나. 그걸 백의생에게 먹이다니.”

“하필 가장 어린 남궁진화와 스님인 현오였죠. 양기를 잃은 노인에겐 약이지만, 두 아이들은 자칫 신열을 앓다 심장이 멈출 수도 있었어요.”

의선문의 약이 아니었다면 쉽게 두 아이들의 열을 가라앉힐 수 없었을 것이다.

홍채연이 이를 갈며 말했다.

“들키지 않으려고 독이 아니라 약으로 죽이려 들었어요. 그것도 모자라, 내가 아이들을 의선문으로 보낼 줄 알고 비영문 놈들까지 보내다니!”

자칫하면 제 손으로 제자들을 비영문도의 손에 넣은 꼴이 될 뻔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머리털이 쭈뼛거렸다.

“찾아낼 수 있겠니?”

“망개사슴 수놈이 짝짓기 때마다 혀를 파랗게 만들려고 먹는 것이 열향화였습니다. 그 열향화가 있다는 걸 알아내었으니, 잡는 것은 시간문제지요. 혈랑도가 나설 것입니다.”

홍채연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곧 무학관에는 혈랑도 사진명이 벌써 범인 색출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 * *

제갈세가의 장원.

정의맹 수장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성진이 소가주인 제갈후현을 찾았다.

맹주인 운현대사가 자신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총군사인 자신도 모르게 ‘정체불명의 약’이라는 것을 조사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은 밝혀지게 되어 있는 것을, 쓸데없이!’

정쟁과는 담을 쌓은 데다, 소림의 자산을 함부로 쓸 수 없는 맹주?

애초에 제 상대가 아니었다.

다만 제갈가주를 불쾌하게 하는 것은, 그 일의 시작이 남궁세가라는 거렸다.

‘그 불에 덴 곰 같은 남궁조 녀석이 뒤로 맹주와 그런 수작을 부렸다는 거지? 하!’

제갈가주의 윗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같은 가주도 아닌 남궁조 따위가 저와 맞먹으려 드는 것이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비영문의 일에도 남궁세가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찾아 계셨습니까, 아버님.”

제갈후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소현이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보거라.”

“예?”

“비영문 놈들이 검시방뿐 아니라 남궁세가 양자 놈을 노렸다. 남궁세가 놈들이 길길이 날뛰고 있어.”

제갈가주가 회의에서 길길이 날뛰며 본가를 운운하던 남궁조의 모습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남궁조가 날뛰는 꼴도 보기 싫었지만, 남궁세가 두 형제가 나서는 건 단지 골치 아픈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남궁세가의 양자를 노렸다는 것이 걸리더구나. 비영문은 사소한 시비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괜한 의심을 살 것은 치워 놓는 것이 좋다.”

“예.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제갈가주의 말에, 제갈후현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이리될 것을 예상하지 않았던가.

이제 골치 아픈 약과 비영문의 문제는, 이대로 흐지부지되거나 문제가 되더라도 제갈소현이 안고 사라지면 될 것이었다.

“참, 의선문의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검시방이 날아가면서 시신을 전부 잃었다 들었습니다.”

“아, 맹주가 혼자 진행한 일이 그렇지. 쯧. 다행히 의선이 중요한 증거들과 시신 일부를 따로 보관해 두었더구나. 약에 대한 수사는, 그것을 토대로 문제없을 것이다.”

제갈가주의 말에, 이제껏 시체가 없어졌다고 안심하고 있던 제갈후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가 간신히 돌아왔다.

‘또 실패했다고? 망할 놈들!’

제갈후현의 속이 뒤집어졌다.

“비영문의 그놈들 입만 열면 되는데, 그걸 못하니. 하긴 귀천성도들 독한 것이야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예?”

“음? 아, 너는 몰랐나 보구나. 하긴 총군사인 내게도 입을 다물었으니, 남궁의 소가주가 네게 알려 줬을 리 없지.”

“귀천성도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처음 습격 때에 남궁의 소가주가 놈들 몇을 생포했다는구나. 그중에 귀천성도로 보이는 놈도 있었어. 그놈이라면 비영문의 은신처에 대해 알고 있을 법한데, 아직 입을 열지 못한 모양이더구나. 하지만 정속마검 견강위가 나섰으니, 시간문제겠지.”

“……!”

제갈후현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는 척 고개를 숙였다.

표정 관리를 못 할 정도로, 그의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귀, 귀천성이라니!’

제갈후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제갈후현이 눈이 재빨리 제갈가주를 살폈다.

아직은 평온한 얼굴.

하지만 비영문과, 귀천성과 연관이 된 걸 알면, 아무리 저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라.

이제는 정말로, 불똥이 튀기 전에 약과 비영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손수 친동생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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