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61)화 (61/425)

남궁마제

고할 진(診) 허물 화(禍) : 술래잡기(2)

뇌호공자(雷護公子).

남궁진휘를 구하기 위해 세웠던 기막에 대해 퍼지면서, 진화에게도 별호가 생겼다.

‘남궁을 수호하는 번개.’

남궁진휘를 감싸며 만든 푸른 기막이 사람들에게 퍽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이전 생에서 진화가 얻었던 첫 별호는 뇌왕이었지만, 진화는 지금의 이 별호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래. 왕 따위는 필요 없어. 나는 남궁의 아들로…….’

진화가 기분 좋게 별호를 곱씹는 그때.

“으읏차--!”

진화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놓……치면 안 된다!”

“으읏차--!”

“…….”

한쪽 옆을 본 진화는 잠시 멍하니, 방을 둘러보았다.

숙청관, 갑 조의 방이 맞았다.

다시 한쪽 옆을 보았다.

“으읏차--!”

“끄으으. 포기하지그래?”

“흥, 나는 아직 끄떡없다!”

숙청관 바위를 뽑아 와서 신체를 단련하던 팽수, 팽신 형제.

그런데 전에는 둘이서 들던 바위를, 이제는 각자 하나씩 들고 있었다.

심지어 바위 위에는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한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서 버티고 있었다.

“……왜 바위가 두 개지?”

“으읏차! 당연히 인내관에서 빌려 왔다!”

누구에게.

아니, 그 전에, 저게 빌려주고 빌려 받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으읏차-!”

“포기하라고!”

“흥! 포기는 너나 하시지!”

팽가 쌍둥이가 들고 있는 바위 위에서 싸우고 있는 남궁구와 남궁교명을 보자니, 더 이상 묻고 싶진 않았다.

진화가 기막을 펼쳤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변한 것 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시선, 진화의 별호 그리고 갑 조의 아침 풍경.

갑자기 호의적으로 변해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경계의 눈초리로 보거나 진화를 피하게 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진화의 가장 가까운 경쟁자라 할 수 있는 갑 조 조원들은 대놓고 스스로의 단련을 높였다.

“……저게 도움이 될까?”

“돼.”

진화의 혼잣말에, 옆에서 꾸물대며 일어나던 현오가 대답했다.

“내력이 만들어 내는 힘을 견디는 신체도 중요하다는 게, 우리 사부 말씀일세. 죽도록 굴리고 나서 운기하면, 회복도 빨라. 안 죽더라고.”

현오가 슬픈 눈으로 한창 단련하고 있는 이들을 보았다.

진화는 현오에게 어떤 슬픈 사정이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베개에서 뻐걱- 하며 바위 쪼개지는 소리를 들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오전에 자율 수업이죠?”

“사진명 사부의 수업이 있었는데, 그 사부님이 혼자 실전을 가졌으니까. 하암, 그럼 나는 조금 더 저세상에서 구도를 구해 볼까.”

그렇게 말을 하며 현오가 자세를 바꿔 잠을 청했다.

현오는 비영문도들이 진화를 집요하게 노리던 것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진화에게 쏠렸을 때, 현오는 마치 그 일을 모르는 사람처럼 본래 게으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벌써 잠이 들어? 잠꼬대로 염불을 왼다니, 희한하군.’

진화가 현오를 이상한 눈길로 보았다.

“혹시, 만두…….”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한가?”

현오가 잔 적 없던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진화는 속에 있던 의구심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 * *

“허허허허허!”

만두 가게에서 진화, 현오와 마주친 중년인이 유쾌한 듯 웃었다.

“한 녀석은 만두에 탄 독에 중독되어 실려 갔고.”

진화가 중년인의 눈을 피했다.

“또 한 녀석은 그 만두를 훔쳐 먹다가 같이 실려 가 놓고.”

“아니, 훔쳐 먹은 건…….”

현오가 민망한 듯 변명했다.

하필, 오랜만에 온 만두 가게 앞에서 혈랑도 사진명을 만날 줄이야!

“만두 먹다 죽을 뻔한 녀석들이, 퇴원한 다음 날에 다시 만두 가게를 찾을 줄이야, 허허허, 재밌는 녀석들이구나!”

“죄송합니다!”

“난 범인 색출을 위해 조사차 왔다만, 너흰 진짜 만두를 먹으러 왔겠지? 고생하는 사람 따로 있고, 처먹는 놈들은 또 처먹는구나.”

“죄, 죄송합니다!”

진화와 현오가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허허, 되었다. 반농담이다.”

사진명이 자상하게 웃으며 진화와 현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한쪽에서 수레 하나가 빠져나왔다.

진화와 현오가 무심코 눈으로 수레를 좇았다.

그런데 그 수레 밖으로 사람의 발 두 개가 삐져나와 있지 않은가.

“……!”

누가 봐도 시체였다.

산 사람을 저렇게 덮어 놓진 않으니까.

진화와 현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사진명을 보자, 그는 여전히 자상하게 웃고 있었다.

“아, 저거? 어쩌다 죽은 시체를 발견했는데, 마침 만두 가게 주인이 알아보더구나. 정말 운이 좋았지. 허허허! 나는 이만 가 볼 테니, 만두 맛있게 먹거라. 아! 내 수업 시간이었나? 내가 조사차 나오면서 자율 수련을 줬는데 너희는 만두를 먹으러 왔구나. 허허허!”

“죄송합니다!”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허허허, 반농담이다. 여기 만두가 맛있더구나.”

사진명이 수레를 끄는 동의생들을 데리고 무학관으로 돌아갔다.

진화와 현오는 수레 밖으로 나와 있는 시체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발바닥에 있는 검은 핏줄. 저건 내 음기에 당한 흔적이다. 그렇다면, 저 시체가 제갈세가의 그 하인이란 말인가?’

진화가 독을 바꾸라 지시한 사실을 아는 건, 지시를 받은 저 하인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과의 일을 발설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직 진화가 먹은 독에 관한 것은 제갈후현이나 소현이 알 리 없으니, 그 전에 입막음을 당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았다.

다만, 저 시체를 왜 발견되게 두었을까.

‘어찌 되었든 곧 저 하인이 사부들을 제갈소현에게 안내하겠군.’

진화의 눈빛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어쩌면 제갈소현은 이전 생보다 빨리 무림에서 사라질지도.

하지만 이미 살인의 영역에 발을 디딘 제갈소현에게 보낼 연민 따윈 없었다.

“……반농담이라는 건, 반은 진담이라는 거겠지?”

“어디가 농담이고, 어디가 진담일까요?”

“……불초 제자를 굽어살피소서, 아미타불.”

과연 부처님은 저렇게 하찮은 걸 비는 제자를 연민해 주실까.

* * *

“형님.”

제갈용성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명이 시체를 가져가는 건, 확인했나?”

“예. 만두 가게까지 찾아가더군요.”

“자칫하면 늦을 뻔했군. 그 늙은 개가 벌써 거기까지 찾았을 줄이야.”

“홍채연 사부가 독이 어떤 건지 알아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확인차 들렀겠지요.”

“흥, 그 미친개가? 하인 놈이 잘 찾는 도박장을 찾아서 시체를 줍고 만두 가게까지 들렀다면, 놈의 행적은 전부 찾은 거야. 우리가 늦었다면, 우리 모르게 그 하인을 빼돌리고도 남았겠지.”

제갈후현은 오만했지만, 결코 정의무학관 무사부들의 능력을 무시하진 않았다.

“우리 흔적이 남진 않았지?”

“예. 애초에 하인을 데려다만 주었지, 돈을 준 것부터 독까지 모두 소현이가 하게 두었습니다.”

“비영문…… 그놈들이 문제군.”

제갈후현이 골치가 아픈 듯 눈살을 찌푸렸다.

“놈들이 전부 실패해 버렸어! 단천문 놈들 시체를 날려 버리라니, 그놈들을 제외한 나머지 놈들만 날려서 일을 키우질 않나! 심지어 남궁진화 놈은 기막을 펼쳤다지? 허! 명성을 얻을 기회만 주었군. 이래서야 돈을 써서 남궁 좋은 일만 한 셈이야!”

제갈후현이 비영문의 실패에 대해 이죽거렸다.

비영문의 존재에 대해 알려 준 것은 제갈용성이었지만, 결국 그들을 찾은 것은 제갈후현의 결정이었다.

비영문의 실패는 제갈용성 탓은 아니었지만, 제갈용성을 탓한다 한들 반박할 수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제갈용성이 불안한 눈으로 제갈후현의 눈치를 살폈다.

“이참에 비영문 놈들까지 전부 날아가 버리게 해야 해.”

“예?”

“어차피 약에 대한 건 찾지 못할 거다. 문제는 비영문 놈들 중에 살아서 잡힌 놈들이 있다는 거지!”

“하, 하지만 뒤에 의뢰는 소현이의…….”

탕-!

“첫 번째 의뢰! 남궁진휘 놈이 나도 모르게 생존자를 빼돌렸어! 심지어 그 잡힌 놈들 중에 귀천성도가 있단 말이다!”

“네에?”

제갈후현의 말에 제갈용성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 귀천성도! 그자가 지금 정속마검 견강위의 손에 들어가 있어!”

“비, 비영문은 의뢰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발설하지 않는다고…….”

“그딴 걸 믿을 때가 아니야! 견강위의 손에 들어간 자는 하는 수 없어. 그자의 말 이외에는 증거도 없을 테고.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비영문을 날려 버려야 해!”

“소, 소, 소현이는?”

“……누군가는 화살 받이가 되어야지.”

제갈후현의 말이 냉정하게 떨어졌다.

제갈용성이 입만 벌린 채,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애초에 그럴 계획으로 제갈소현을 끌어들였으나, 실제로 벌어질 줄은 몰랐던 듯.

“자금 흐름은 어떻게 되었어?”

“……소현이 쪽으로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도박장까지 찾았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소현이가 잡히면 딱 잡아뗀다. 독은, 잡혀가도 여주관 그년만 잡혀가겠지.”

“……!”

제갈용성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년이 지현이 사람인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제갈후현이 놀라고 있는 제갈용성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툭툭 어깨를 두드렸다.

“너, 지현이 년이랑 나 사이에서 한 번만 더 줄타기하면, 다음엔 죽여 버릴 거다.”

“혀, 형님!”

제갈용성이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여주관에게 슬쩍 소현이가 위험하다고 흘려. 지현이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자고.”

제갈후현이 무릎을 꿇은 제갈용성을 내려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명을 내렸다.

마치 네가 뛰어 봐야 손바닥 안이라는 듯.

제갈용성은 그저 머리를 조아렸다.

곧 제갈소현이 바닥으로 내쳐질 것이다.

그런 처지에 비한다면, 지금 납작 엎드리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평생 저 남매가 불행해지길 기다렸는데, 하나라도 성과가 보이지 않은가.

* * *

불야성을 이룬 저잣거리.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게 밖까지 흘러나오고, 길거리에서 많은 이들이 갈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조짐도 없이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갑자기 붉은 단복을 입은 적호단이 나타나 저자 골목골목을 막아서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적호단을 향했다.

하지만 그들이 골목 입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대부분의 이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유흥으로 돌아갔다.

“이거 확실한 것 맞아?”

“계속 같은 말 반복하시면, 저희끼리 합니다.”

여기서 저희끼리란 정의맹도, 무학관도 아닌, 남궁세가 지부를 말하는 것이었다.

적호단주 팽치는 능숙하게 뒷골목을 헤치는 창궁무애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남궁엔 인재가 많단 말이야. 대체 무슨 근거로 찾은 거야?”

“나중에 알려 드리죠. 어차피 단주님도 이전 은신처 전부를 다 뒤지는 거 귀찮았잖아요? 저희끼리 하려다가 끼워 드린 겁니다.”

“너, 전에 나 시체 사이에서 재운 거 찔려서 그러지?”

적호단주 팽치의 마지막 말에 남궁진휘가 슬쩍 말을 돌렸다.

“지금쯤이면 밖의 쥐새끼들은 우리가 온 걸 전했을 텐데…….”

“쥐새끼들은 일단 겁이 나면 더 깊게 기어들어 간다고. 차라리 불을 지르자니까.”

“양청현 저자 한복판에서요?”

“뭐 어때서?”

남궁진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묻자, 팽치가 오히려 되물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팔을 휘둘렀다.

“어차피 밀어 버릴 건데!”

파파파파파팟---!

팽치의 건곤신장(乾坤神掌)이 뒷골목의 낡은 집들을 쓸어버렸다.

동시에.

쉐에에엑--!

푸른 검기가 어두운 하늘을 베었다.

남궁진휘의 서늘한 시선이 양단되어 떨어지는 것들을 향했다.

파팟---!

쾅! 콰---앙!

“쥐새끼 하나 놓치지 마라-!”

일대를 날려 버리는 적호단주 팽치의 외침에, 사방에서 적호단이 달려들었다.

곳곳에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이 들어왔다.

“움직이는 모양이니, 이제 가죠.”

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쥐 굴을 뒤집어엎을 시간이었다.

“창궁무애단은 들어라!”

“충!”

“보이는 전부를 사살한다!”

“존명!”

검은 바다에 보이지 않게 일렁이는 파도처럼, 어둠 속에 있던 창궁무애단의 푸른 무복이 비영문의 은신처로 추측된 곳을 향해 밀려들어 갔다.

성난 파도는 거침이 없었다.

“장관이네. 아 참, 다 죽이면 곤란한데.”

“하하, 그거야 선배님 사정이죠.”

“야!”

“남궁은 적을 살려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서두르시죠.”

창궁무애단의 행사에 감탄만 하고 있던 팽치를 향해 남궁진휘가 얄밉게 웃어 보였다.

다급해진 팽치가 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야, 너, 두고 봐!”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네요.”

안에서 들리는 팽치의 목소리에 남궁진휘가 샐쭉 웃었다.

곧 안에서 건물이 흔들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검은 그림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쉐에에엑---!

투툭. 툭!

남궁진휘의 검 아래로,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떨어졌다.

건물 안에서 비릿한 혈향이 퍼져 나갔다.

아니, 이미 뒷골목 전체가 짙은 피 냄새로 가득했다.

쿠쿵-! 쾅!

“거참, 살살 하시지. 그나저나 우리 진혜야말로 살살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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