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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64)화 (64/425)

남궁마제

고할 진(診) 허물 화(禍) : 술래잡기(5)

남궁조와 남궁진휘, 남궁진혜가 심각한 얼굴로 진화를 불렀다.

“몸은 좀 괜찮으냐?”

“예.”

남궁조의 걱정스러운 눈길에 진화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궁조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어휴, 썩어 문드러질 년. 이런 놈한테 뭘 먹여?”

“내가 그년 머리털을 전부 뽑아 버렸어야 했는데!”

남궁조와 남궁진혜가 진화의 머리와 볼을 쓰다듬으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남궁진휘의 표정도 그렇게 좋지 못했다.

“좋지 못한 소식이구나. 잡아 놓은 비영문도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눈을 크게 떴다.

“귀천성의 소행입니까?”

“글쎄. 그럴 것이라 예상만 하는 거지, 전부 죽어서 정확히 알 길은 없구나.”

정의맹, 그것도 감찰당 뇌옥이 뚫린 사건이라 연맹회의에서도 시끄러웠다.

이미 제갈세가와 남궁세가의 일로 내부 분위기가 민감한 때였다.

진화와 제갈소현의 일로, 남궁조는 제갈가주에게 살인자를 키웠다며 퍼붓고, 제갈가주는 남궁조의 억측이라 주장하며 부딪혔다.

그 와중에 정의맹 뇌옥이 뚫리다니.

책임 소재와 경로 파악 문제로 여러 문파와 세가가 편이 갈린 상태였다.

물론, 남궁세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진화의 일이었다.

“독살 시도에 있어서는 확실한 증거와 증인을 확보했다. 게다가 일이 어찌 되었든 연이어 널 암살하려 했던 비영문의 뒤에 귀천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제갈소현의 유죄를 끌어내기엔 충분할 거다.”

남궁진휘가 단호한 눈빛으로 진화에게 말했다.

“저 때문에 제갈세가와 대척하다니요. 안 될 말입니다.”

진화가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아, 이 착해 빠진 녀석.

진화를 보는 남궁진휘와 진혜, 남궁조의 눈빛이 말랑해졌다.

“신경 쓰지 마. 원래도 좋지 않은 관계야.”

“얌생이 같은 놈들! 태상가주님 때부터 그놈들이랑은 영 맞질 않아.”

“그래, 진화야. 진혜가 해 놓은 짓도 있고, 숙부님도 어제 회의장에서 제갈가주에게 찻잔을 던졌으니.”

어차피 글러 먹은 관계란다.

마지막으로 남궁진휘가 해탈한 듯 말했다.

무림은 남궁세가와 제갈세가가 천하제일 세가의 패권을 두고 다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남궁세가는 전쟁터를 피하는 제갈세가를 싫어했고, 제갈세가는 가문이 발전하는 길을 족족 막고 있는 남궁세가 때문에 환장하는 관계랄까.

평소의 관계를 생각하며 한마디씩 진화를 달래는데, 모두의 생각보다 진화는 훨씬 단호했다.

“아웅다웅하는 것과 진짜 날을 세우는 건 다르지요. 물고 늘어진다 한들 제갈소현 외에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감히 널 건드렸어!”

“그래.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정말로 괜찮습니다. 저들에게 티끌만 한 피해를 주려고 우리가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럼, 제가 무슨 낯으로 할아버님과 가주님을 뵙겠습니까.”

“진화야…….”

아니 될 말이었다.

진화는 저로 인해 남궁이 티끌만 한 손해라도 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화가 애원하듯 남궁진휘를 보았다.

팔자 눈썹에 툭 튀어나온 입술이라니.

남궁진휘가 안타까운 듯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이번엔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넌 남궁세가의 직계다! 감히 남궁의 직계를 건드렸음에도 그들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이야말로 태상가주님과 가주님, 남궁의 명성에 흠이 될 일이다.”

남궁진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작 제갈소현 때문에 이 사달이라니.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린 탓에, 진화의 얼굴이 침울하게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보는 남궁진휘와 진혜, 남궁조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쳇, 이럴 줄 알았어. 진화는 착해 빠져서 이럴 거라고, 내가 진화 몰래 죽여 버리자고 했잖아!”

남궁진혜가 툴툴거렸다.

이미 남궁진혜는 제갈소현을 죽이려 밤중에 복면을 썼다가 남궁진휘에게 빼앗긴 전적이 있었다.

남궁진휘가 푹 한숨을 쉬었다.

한 녀석은 남궁의 명성을 떠나서 도무지 말릴 수 없는 들소고, 한 녀석은 남궁세가 직계라는 자각도 없이 그저 착해 빠졌으니.

정의맹에서 야근이나 할 걸 그랬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네 일도 네 일이지만, 귀천성이 관련되었다. 포로들마저 죽어 버린 시점에서, 제갈소현은 비영문에 연결된 유일한 끈일지도 모른다. 쉽게 놓아줄 수 없단다.”

결국 남궁진휘는 진화를 위로해 줄 말을 찾으며,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포로로 있던 비영문도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일까.

제갈소현의 일로 제갈세가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비영문 관련 증인도 없겠다, 이 기회에 제갈소현의 일도 마무리를 짓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제갈후현이 거만한 얼굴로 문서 하나를 내놓았다.

“불미스러운 일에 우리 가문의 이름이 오간 데에 유감이군. 하지만 도의적 책임은 지지. 황금 두 관 어떤가?”

“하하하하!”

제갈후현의 제안에 남궁진휘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지?”

“오랜만에 들은 참신한 헛소리라서 말입니다.”

남궁진휘의 말에, 제갈후현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탕-!

“이봐!”

제갈후현이 탁자를 치며 소리를 쳤다.

하지만…….

탕-!

“왜?”

남궁진휘 또한 ‘손은 너만 있냐’는 듯 탁자를 쳤다.

게다가 평소 칼같이 지키던 존대도 없었다.

“용의자는 죽은 하인이고, 이미 여주관도 소현이가 가져간 독과 남궁진화가 먹은 독이 다르다고 진술하지 않았나? 대체 뭐로 우리 소현이를 엮으려는 거지?”

홍채연이 독을 밝혀낸 것은, 오히려 제갈세가에 유리한 일이 되어 버렸다.

애초에 진화가 이 일로 제갈소현을 징벌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제갈세가는 참…… 뭘 제 손으로 하는 게 없더군요. 무가답지 못하게 검을 쓸 일도 돈을 쓰니.”

남궁진휘가 비꼬는 말이 제갈세가의 열등감을 제대로 직격했다.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제갈후현의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그 하인이 죽기 전에, 지화상단의 전표를 도박장이고, 어디고 잘도 뿌렸더군요. 전표이니 오가는 사람 이름은 다 적혀 있고, 코딱지만 한 상단에 그만한 돈이라 그런지 상단주의 인장까지 떡하니 찍혀 있더군요.”

“부리던 하인이 곤란한 상황이라 하여 잠시 자금을 융통해 준 것이다. 그걸 하인이 오해한 듯하군.”

“그런 것치곤 도박장 동료들이 너무 세세하게 알더군요. 미행에, 홍 사부가 밝힌 열향화가 들어간 독까지. 심지어 사진명 무사부가 그 하인이 우리 진화의 뒤를 밟는 것을 본 목격자도 확보했습니다.”

‘그런 놈들이 있었다고? 젠장. 당했군!’

도박장 동료나 목격자에 관한 것은 제갈후현이 몰랐던 일이었다.

관도회에 나갈 수 없는 사이, 남궁진휘가 제갈후현의 귀를 철저하게 막은 탓이다.

“……네 말대로 떠벌리기 좋아하는 하인의 말을 어떻게 믿지?”

“열향화는 고관대작들이나 쓰는 귀한 약재죠. 도박 빚에 쪼들리는 하인 놈이 건드릴 것도 못 되지만, 그걸 팔았으면 팔았지 독살에 쓸 이유도 없죠. 그런 의미로, 귀한 열향화의 출납을 몰랐다는 여주관의 증언 또한 믿을 수 없습니다.”

팽팽하게 맞섰지만, 이미 무게추가 남궁진휘 쪽으로 기울었다.

전표와 증인, 심지어 그들이 미행부터 세간에는 나오지도 않은 열향화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제갈소현이 독을 사주했다는 혐의 입증에 결정적이었다.

“하아, 어차피 독살을 사주한 것도 아니고 어린애의 치기였어. 열향화라며? 징계 정도로 끝내지. 그러면 중독 사주는 고려해 보겠다.”

제갈후현의 목소리에 슬쩍 힘이 빠졌다.

어차피 진짜 전쟁이 아니라면, 명분 싸움이었다.

제갈후현은 이 일에 제갈세가의 이름을 남길 생각은 없었지만, 거래를 할 생각은 얼마든지 있었다.

거기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존재했다.

남궁진휘는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제갈소현의 목숨을 내놓으시죠.”

탕-!

“이런 미친!”

제갈후현이 발끈했다.

하지만 남궁진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비영문에서 발견된 금. 금괴에 이름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제형하는 곳마다 특징이 있죠. 사진명 사부께서 황철방에서 지화상단으로 넘어간 금괴임을 확인했고, 비영문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하다는 것도 인증받았습니다. 제갈소현은 암살 미수만이 아니라 이적 혐의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정의맹에 조사 요청 할 사항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황철방은 나라의 인정을 받아 정의맹에서도 거래하는 곳이다. 세상 어디에나 널려 있는 것이 그들의 금괴인데, 지화상단에 조금 들어간 게 뭐 어떻다는 거냐!”

“금괴가 만들어지는 날짜에 따른 숫자가 적혀 있죠.”

“억지다! 그래 봐야 돌고 도는 것이 금이다! 주인의 이름이 써진 것도 아니고, 그 과정을 모조리 증명할 순 없어!”

“그건 해 보면 알 일이지요.”

제갈후현의 반박에도 남궁진휘는 좀처럼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제갈후현이 남궁진휘를 노려보았다.

“완전히 꼬였군!”

“오,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제 배알은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꾸준히 꼬여 왔는데 말입니다.”

“허!”

남궁진휘가 이죽거리자, 제갈후현이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남궁진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만 말하고 있었다.

“……정말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진화의 목숨이 상했으면, 조사 요청이 아니라 벌써 제갈세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제갈후현이었다.

“남궁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지. 조사 요청? 해 보자고! 하인? 과잉 충성에 불과해. 증인? 똑같은 왈패 놈들 말을 어떻게 믿지? 금? 하하하! 어디 잘해 봐. 황철방의 모든 금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증거는커녕 비웃음만 당하게 해 주지.”

제갈후현이 으르렁거리듯 남궁진휘를 향해 쏘아붙였다.

중독 사주에 대해서는 남궁으로 명분이 쏠리겠지만, 결코 징계 이상 떨어질 리 없었다.

금 또한, 정의맹이 나서서 뒤진다 한들 비영문도 숨은 마당에 그들의 금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여긴 양주가 아니라 양청현이었다.

제갈세가의 본가가 있는 곳이고, 정의맹은 제갈세가의 텃밭이라는 말이다.

제갈후현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남궁진휘는 싸늘한 얼굴로 제갈후현의 자신감을 비웃었다.

“정의맹 조사 요청 하면, 조사권은 정의맹 감찰당이 가지는 건 알고 있겠지요? 가뜩이나 포로들 다 잃고 서슬이 퍼런 정속마검의 손에, 귀 세가의 여식이 어찌 버틸지 두고 보지요.”

“……!”

감히 제갈세가의 여식을 두고 고문이 있을 리 없지만, 그것 외에도 사람을 심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아마도 제갈소현은 감찰당의 문턱도 넘기 전에 줄줄 불어 댈 것이라.

귀천성과 관련한 문제에서, 정속마검은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제갈후현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곧 따로 관도회의 징계 회의가 시작되겠군요. 정도 무림이 어느 쪽의 편을 들어 줄지, 그때 가서 봅시다.”

이번에는 남궁진휘가 먼저 자리를 떴다.

* * *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제갈소현은 의선문에서 제갈세가 장원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가주인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거나, 이전처럼 따귀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바짝 졸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맞은 것은 더 끔찍한 현실이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당분간 조용히 근신하고 계시라는 명이십니다. 이쪽으로…….”

아버지인 제갈가주는 물론 가족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제갈세가의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제갈소현을 맞은 것은 세가의 총관과 무사들뿐이었다.

“이럴 순 없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어! 오라버니들! 용성 오라버니, 아니 큰오라버니를 데려와!”

제갈소현이 소리를 지르며 분노했지만, 총관과 무사들은 냉정하게 제갈소현은 별채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갈후현과 제갈용성이 보고 있었다.

“……형님.”

“정의맹에 조사 요청이 들어갈 거다.”

“이제 어찌합니까?”

“정의맹이 나서 본들, 포로들이 모두 죽었고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

“아…….”

제갈후현의 말에 제갈용성이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제갈후현은 무사들에게 끌려가는 제갈소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제갈후현의 머릿속엔 남궁진휘가 했던 말이 남아 있었다.

“소현이가…… 정속마검의 심문을 견딜 수 있을까?”

“그, 그건…… 끄응, 소현이가 본래도 입을 조심하는 아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갈용성이 짐짓 곤란하다는 듯 망설이다 답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엔, 일전에 망설임도 없이 모든 것을 제 탓으로 돌리던 제갈소현을 떠올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 악연도 제갈소현의 입이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도 봐라.

자신들을 데려오라며 당당하게 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제갈후현이었다.

“……어쩔 수 없지. 억지로라도 입을 막는 수밖에.”

“혀, 형님!”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갈소현을 지키기 힘들다면, 가문의 명예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할 터였다.

그날 밤.

제갈소현이 갇혀 있는 별채에 손님이 들었다.

제갈용성은 반각 정도 머물렀다.

제갈소현은 제갈용성에게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풀었고, 제갈용성은 그런 제갈소현을 달래 주었다.

그가 돌아갈 때쯤에는, 별채의 호위들이 보기에도 제갈소현의 화가 많이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제갈소현은 점점 숨이 막히는 답답함 때문에 잠에서 깨었다.

“커헉! 컥! 히이……. 히이…….”

제갈소현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서서히 숨을 잃어 갔다.

그 모습을 진화와 남궁구가 가만히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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