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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65)화 (65/425)

남궁마제

고할 진(診) 허물 화(禍) : 술래잡기(6)

진화가 제갈소현을 찾은 것은 죄책감 때문이다.

당연히 제갈소현을 향한 죄책감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남궁세가가 지금 시점에 제갈세가와 대적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대체 거길 가서 뭘 하려고?”

“제갈소현을 추궁하러. 비영문은 직접 의뢰 아니면 안 받아. 그러니까 비영문과 연결 방법을 알고 있겠지.”

“알면? 도련님을 죽이려 한 년이야. 잘도 도련님한테 가르쳐 주겠다! 고문이라도 하게? 그냥 슥삭 하고 오는 게 낫지 않아?”

남궁구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일전에 남궁진휘가 한 말처럼, 어찌 되었든 제갈소현은 비영문과의 끈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죽이는 건 다음 문제였다.

“작은 송골매의 의견인가?”

“그런 거 아니야! 아, 자꾸 아는 척하지 말라고!”

남궁구가 질색 팔색을 하며 앞서 나갔다.

그 뒤에서 진화가 피식 웃으면서, 당연하다는 듯 숙청관 담벼락을 넘었다.

제갈소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움직이면서 경계를 서는 호위 무사들과 달리, 대여섯이 정문과 창문을 지키고 있는 별채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발정기 고양이 두 마리의 격렬한 싸움으로 호위들의 주의를 돌린 사이 안으로 들어온 진화와 남궁구.

그들이 발견한 건, 침상에서 몸을 비틀며 숨을 잃어 가는 제갈소현이었다.

“……뭐, 뭐야?”

“글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

일단, 진화가 제갈소현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마비혈부터 집었다.

옆에서 남궁구가 황당하다는 듯 진화를 보았다.

“죽이러 온 거 아니라며?”

“그렇다고 살릴 필요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

이미 숨이 완전히 넘어가고 있었다.

“히이, 히이…….”

필사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숨을 몰아쉬며, 제갈소현이 진화와 남궁구를 보았다.

간절하게 애원하는 눈빛.

“자살은 아닌 모양이네.”

“누가 봐도 그래.”

남궁구가 뭐라 하든 말든, 진화는 죽어 가는 제갈소현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독인가? 가문의 여식을 죽여서까지 입막음을 한다고?”

정의맹에서 제갈소현을 제대로 심문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제갈소현을 입을 막아야 할 정도라면…….

“일말을 가능성조차 없애야 할 정도로 큰 비밀이 있는 거겠지.”

“히이. 히이……. 꺼억. 꺽!”

눈의 핏줄이 터진 듯, 제갈소현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쟤 죽겠는데?”

“알아.”

덤덤한 진화의 대답에, 남궁구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제갈소현이 죽어 가는 게, 그녀를 살려 줄 이유는 되지 못했다.

당장 해약도 없거니와, 오히려 제갈소현의 죽음으로 제갈세가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터였다.

‘제갈소현이 알 만한 비밀이라면, 비영문과 연결시켜 준 사람이 제갈후현이라는 것 정도겠지. 그렇다면 범인은 제갈후현일 가능성이 높다. 고작 비영문과 제갈소현을 연결시켜 줬다는 것으로 친동생을 죽이진 않았을 거고…… 지키려는 건 자기 자신. 역시, 제갈후현의 짓이었던가!’

진화의 눈동자에 푸른 번개가 내리쳤다.

첫 의뢰 그리고 두 번째 의뢰.

모두 단천문의 시신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칠산가의 비약’이라는 약과 관련된.

그리고 두 번의 의뢰 모두, 남궁진휘가 죽을 뻔하였다.

“끄어, 어!”

진화의 푸른 번개와 마주하며, 제갈소현이 더 이상 숨을 삼키지 못했다.

* * *

다음 날, 곧바로 제갈소현의 죽음이 알려졌다.

“자살이라…….”

제갈세가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제갈소현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타살을 의심할 정황이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남궁세가가 비영문 관련으로 정의맹에 조사를 요청한 참이었다.

제갈소현도 그렇지만, 제갈세가 또한 남궁세가와 정의맹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과 비영문과 연관되었다는 좋지 않은 여론에 신경이 쓰일 참이었다.

하지만 제갈소현의 죽음으로 여론이 달라졌다.

제갈소현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면, 정의맹이 굳이 더 조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제갈세가에서 노린 것이겠지요.”

“자식의 죽음마저도 유리하게 이용하다니, 딱 제갈 놈들답구나.”

남궁조가 치가 떨린다는 듯 고개를 털었다.

그 모습에 남궁진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의맹에 조사 요청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럴 것을 노렸지 않습니까.”

“크흠, 우리가 노린 건 있지만, 설마설마했지. 독한 놈들. 흐흐흐!”

“처음부터 우리 남궁이 원한 것은 제갈소현의 목숨이었습니다.”

장난스럽게 웃는 남궁조에, 남궁진휘도 슬쩍 웃음을 흘렸다.

애초에 제갈후현에게 협박을 하듯 정속마검의 이름을 들먹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으나, 제갈후현이 거래를 하려 하면 할수록 남궁진휘는 그가 제갈소현을 버리려 한다는 것에 확신을 얻었다.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차차 알아 가면 그만이었다.

중요한 건, 감히 남궁세가의 직계를 건든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여론이 이러니 정의맹 조사는 물 건너갔구나. 오랜만에 제갈성질 놈 약을 올리나 했는데.”

남궁조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졌다.

그에 남궁진휘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글쎄, 그럴까요?”

“응? ……야, 너 진짜 그렇게 웃지 마라. 누가 성이 형님 아들 아니랄까 봐. 되게 음흉해 보인다.”

“숙부님.”

남궁진휘가 슬쩍 남궁조에게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도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남궁진휘의 손에는 본가에서 온 전서가 있었다.

“남궁도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돈을 움직인다고 합니다. 엉덩이 무거우신 양반이 직접 움직이는 게, 약을 사려는 거겠지요.”

“호오.”

“황철방의 금이 움직일 겁니다. 제가 아는 정속마검과 적호단주는, 제갈소현의 죽음에 연연할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지요.”

남궁진휘가 답장을 써서 다시 전서응에 매달았다.

제갈소현의 죽음이 본가에 전해질 것이었다.

* * *

신기제갈(神技諸葛).

남궁세가에 제왕검 남궁강이 있다면, 제갈세가에는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있으니.

제갈길현은 귀천성에 맞서 정의맹을 만들었고, 사패천과 관의 협력을 구했으며, 현재의 잠정적 평화를 이끌어 낸 대반격을 설계했다.

현 정의맹의 체계를 만들고 정도 무림의 머리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와는 다르게, 제갈세가는 제갈길현이 만들어 낸 명성을 지키지 못했다.

현 가주인 현우수사 제갈성진이 정의맹의 총군사로 역할을 다하고 있었고, 가문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었지만, 그만큼 악명도 함께 쌓아 가며 헌헌했던 명성과 존경을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갈세가, 돈제갈, 탐제갈, 만금수사 등등 요즘 제갈세가와 가주 제갈성진을 수식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가주 제갈성진은 아무렇지 않았다.

누구도 제갈가주의 면전에선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금 무림의 그 누구도, 제갈세가를 건들 수는 없었다.

그게 바로 현 제갈가주가 만들어 낸 제갈세가의 아성이었다.

제갈소현의 죽음으로 제갈세가 장원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날 별채를 지킬 무사들이 징계를 당하고, 세가의 모든 사람이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할 정도로 몸을 사렸다.

제갈소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막내딸을 잃고 식음을 전폐한 제갈가주의 눈치를 보는 것뿐이었다.

탕-!

“잘 해결한다 하지 않았더냐! 이게 네 해결 방식인 게냐!”

상복을 입은 제갈가주가 탁자를 내리치며 화를 토했다.

식음을 전폐하며 조금 수척해진 얼굴은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 보였다.

“송구합니다. 소현이가 자살을 택할 줄은…….”

제갈후현이 자책감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제갈가주의 형형한 눈빛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입을 막고자 했다면 입만 막았어야지! 누가 일을 이렇게 키우라고 했더냐! 이제 황보세가와의 거래는 어찌할 게냐!”

식음을 전폐한 제갈가주조차 제갈소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낙심한 아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제갈가주가 걱정하는 것은 황보세가와의 약속이었다.

“……지현이에게…….”

“갈-! 그리 허비할 아이가 아니다!”

제갈가주의 호통에 제갈후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제갈소현이 그저 막내라서 사랑받는다고 알려졌다면, 제갈지현은 그야말로 제갈가주가 각별히 키운 딸이라.

제갈후현 이외에 제갈가주가 아끼는 유일한 자식이었다.

“그 아이는 오왕가에 보낼 것이다!”

제갈가주의 말에 제갈후현이 놀란 눈을 떴다.

‘오왕가? 황가에 보낼 거였다고?’

제갈후현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오왕이 무림 세가와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한다. 황권이 강해지니 무력이 필요한 거겠지. 그 핑계로 성사되는 혼약이다. 다행히 그쪽이 지현이를 마음에 들어 한다. 만약 무사히 혼사가 성사되면 우리는 장강 수로의 상권과 유통권을 얻는다.”

“아……!”

남궁세가가 제왕검의 대에 그리 좋지 않은 수완에도 부유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장강의 상권과 유통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원 전역에 전쟁이 일어나며, 굵직한 표물들이 수로를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유하다고 알려진 황금가와 패황권문, 사패천, 남궁세가는 모두 주요 수로를 장악하고 있는 곳이었다.

제갈세가도 한때 장강의 일부를 영역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귀천성을 피해 양청현으로 오면서 장강 유역을 잃어버렸다.

그 바람에 가문의 세는 보존했지만 금력은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갈가주는 그때 잃은 것들을 모두 되찾을 셈이었던 것이다.

“이번엔 남궁의 소가주에게 완전히 당했구나. 소현이가 중독을 사주한 혐의를 가지고 죽었으니 우리가 진 것이다.”

“하오나 여론이 뒤바뀌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없지. 조사 요청은 이미 들어간 것이고, 남궁에서 취소하지 않는 한 어떻게든 결론이 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소현이는 죽었지, 처음 남궁이 원한 대로.”

“……!”

그러고 보니 처음 남궁진휘가 원한 것이 바로 제갈소현의 목숨이었다.

“이번엔 남궁의 소가주에게 완전히 당했구나.”

제갈가주의 말이 제갈후현의 폐부를 찔렀다.

“이제 너는 황보세가와 엮일 다른 방법을 찾아, 네가 만든 손해를 보존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게다.”

제갈후현의 충격받은 표정을 보며, 제갈가주가 혀를 찼다.

‘망할 자식!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노린 거였다니!’

제갈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제갈후현을 보는 제갈가주의 눈은 냉담하기만 했다.

“포로들은 죽었고, 소현이도 없다. 비영문 건이라도 잘 처리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뭔가 아는 것인가.

제갈후현이 불안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너는 다시 내 실망을 샀다. 정의무학제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졸업 전에 한 번이라도, 남궁진휘를 이기는 것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그리하겠습니다.”

제갈가주의 말투가 달라졌다.

마치, 그때 남궁진휘를 이기지 못한다면 뭔가가 달라질 것 같은.

숙여진 고개 아래로, 제갈후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제갈후현이 나가고, 제갈가주가 은연당주를 불렀다.

은연당은 제갈세가 내부의 일을 감찰하는 곳으로, 당주 이외의 소속 인원은 제갈세가 내에서도 극비였다.

“후현이의 행적을 조사해.”

“이미 명하신 것과 별개로 말입니까?”

“아무래도 소현이에게 비영문을 연결시켜 준 것이 전부가 아닌 것 같군. 그 ‘비약’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야.”

“단천문과 따로 끈이 있는지, 연학원과 다른 연결점은 없는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용성이 그놈 뒤를 살펴봐.”

“존명.”

가문의 소가주를 조사하는 일이었지만, 가주는 제갈성진이었다.

은연당주는 망설임 없이 답하고 자리를 떴다.

제갈가주는 아직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후현이 일은 은연당주에게 맡기고, 연학원에서 원장과 함께 역천비록을 연구하는 놈들의 행적을 가져와라. 그런 약이 갑자기 튀어나오진 않았을 거다.”

-존명.

제갈가주는 어떤 불안도 남겨 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둠 속의 존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가주전을 나오며, 제갈후현은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더없이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

숨소리도 거칠었다.

탕---!

쾅! 쾅! 촤아아아!

“으아아아아!”

쿠-웅!

결국 빠른 걸음으로 처소로 돌아온 제갈후현이, 화를 쏟아 내듯 처소의 물건을 부쉈다.

한참 소란이 계속되고, 소가주전의 가솔과 호위들은 아무 일 없는 듯 침묵을 지켰다.

잠시 뒤, 제갈용성이 부름을 받고 찾아왔다.

제갈용성이 잔뜩 얼어붙어서 들어오다가, 탁자 위에 비어 있는 주머니와 바닥에 깨진 상자를 발견했다.

“혀, 형님!”

놀란 제갈용성이 제갈후현을 보았다.

그리고 더 놀란 얼굴을 했다.

보기 싫게 솟아 오른 혈관이 제갈후현의 얼굴과 목에서 불뚝거리고, 제갈용성을 노려보는 눈에는 핏발이 서서 붉게 변해 있었다.

제갈후현이 그대로 멈춰 선 제갈용성에게 말했다.

“약을 더 가져와라.”

으르렁대는 듯 사나운 목소리에, 제갈용성은 아무 답도 하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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