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행 화(禍) : 남은 여죄는(1)
제갈소현은 죽음과 관계없이, 제갈소현에 대한 징계 절차가 열렸다.
악의적인 행동은 잘못이지만 어린 영애에게 죽음으로 몰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하는, 제갈소현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관도회주 남궁진휘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갈 소저가 그렇게 죽음을 택하시다니……. 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셨다니, 참담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아, 저는 정말 괜찮은데, 저 때문에 현오까지 휩쓸리고, 소림에도 볼 낯이 없습니다.”
진화의 말에, 임시로 징계 절차에 참석했던 제갈세가 대리인은 아차 싶은 듯 소림을 보았다.
모두 제갈과 남궁의 대립에 주목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 또 다른 피해자인 현오의 사문은 소림이라는 건 제시하는 바가 컸다.
“소림을 비롯한 우리 도문은 제갈 소저의 명복을 비는 것과는 별개로, 제갈세가가 정파다운 처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림은 물론이고 소림과 함께하는 구파일방의 사람들은, 사과도 없이 죽음을 택한 제갈소현과 제갈세가의 처신에 분노하고 있었다.
“증거와 증인이 일관된 신뢰성을 보이는 바, 본 관도회는 백의생 제갈소현의 백의생 남궁진화와 백의생 현오에 대한 중독 사주 혐의는 혐의 있음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백의생 제갈소현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한 강압은 없었던 것을 명명백백하게 합니다. 따라서 본 관도회는 백의생 제갈소현에게 불명예 퇴관을 명하는 바입니다. 여타 징계는 제갈소현의 죽음과 정의맹 조사를 이유로 보류합니다. 관도회의 징계에 불만이 있다면, 백의생 제갈소현을 대리하는 쪽은 삼 년 이내에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항소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결국, 제갈소현은 정의무학관의 불명예 퇴관생이 되었다.
제갈후현과 제갈용성이 모두 근신으로 인해 관도회에 참석할 수 없음으로 인해, 그 우호 세력이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림의 분노가 예상보다 컸고, 본래 양청현에 본산을 둔 소림과 도문이 제갈세가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기로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관도회는 작게는 정의무학관의 관도생 자치 기구에 지나지 않지만, 크게 보자면 각자 사문을 대리하는 정의맹의 축소판과 같았다.
이번에는 그것을 잘 활용한 남궁진휘의 정치력이 승리했다.
* * *
제갈소현의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 일을 잊어 갔다.
비영문에 대한 추적이 지지부진했고, 제갈세가 사람들마저 그 일이 잊히길 원하는 듯 언급을 삼갔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단, 정의무학관만 제외하고 말이다.
정의무학관 관도생들, 특히 이런 일이 처음인 백의생들은 이번 일로 관도회가 가진 본질을 실감한 듯했다.
관도회 일원들이야말로 미래 정파 무림의 중심이라.
이제 개인의 영달뿐 아니라 사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관도회에 들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관도회에 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매년 열리는 정의무학제에서 삼 등 안에 드는 것뿐이었다.
어려운 선발 시험을 통과한 만큼, 대부분의 백의생들은 스스로의 무위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백의생들이 무학제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정의무학관의 본질이 정의맹을 이끌 미래 동량을 키우는 것인 만큼, 기본 소양은 갖춰야 하는 법.
다른 과목 평가에서 상위 삼십 위 안에 들어야만 무학제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
백의생들은 이제야 어느 평가 과목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여깁니다, 여기! 구경도 여기! 줄도 여깁니다!
남궁구가 진짜 호객꾼처럼 천연덕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옆에는 팽가 쌍둥이가 기둥만 한 철봉을 휘두르며, 팽수는 밀가루 반죽을, 팽신은 고기 반죽을 패고 있었다.
사람들은 남궁구의 말솜씨와 팽가 쌍둥이의 괴력에 이끌려 줄을 서고 있었다.
결국, 손님을 다 빼앗기고 참다못한 당혜군이 불만을 뱉었다.
“옆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거, 너무하지 않아요?”
“그래도 현오보단 낫지 않습니까?”
“……저 망할 땡초!”
당혜군이 현오를 향해 이를 앙다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현직 소림승이 파는 극락왕생 만두! 한 입 먹으면 부처님 자비가!”
팽가 쌍둥이가 두들겨 만든 만두 따위에 부처님의 자비가 들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사기라고 따지기도 뭐한 게, 현오의 말재간이 사기와 덕담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혜군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따로 있었다.
“저거! 저건 진짜 반칙 아닌가요?”
당혜군이 가리킨 곳엔, 진화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진화를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꺄아-! 눈 마주쳤어! 어떡해!”
“뭘 어떡해! 나와, 이제 내 차례야!”
“뇌화공자래. 손에서 번개를 뿜는다나 봐!”
정확하게 뇌호(雷護) 공자였지만, 어쩐지 사람들에게 뇌화(雷花) 공자로 알려졌다.
불만스러웠지만, 저들 사이에 나서서 정정해 줄 용기 따윈 없었다.
“아, 번개는 모르겠고, 진짜 꽃 같다. 만두는 맛없어도 용서가 될 것 같아.”
진화가 매우 다급한 눈으로 현오와 남궁구를 찾았다.
그들이야말로 진화를 이 자리에 가만히 앉혀 놓은 장본인들이었으니.
효과는 실로 탁월했다.
“자, 여기 있어요. 여기 줄 서서 찬찬히 구경하시고, 저기서 계산하면 됩니다.”
“아미타불, 복 받으실 겁니다.”
남궁구와 현오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신이 났다.
계산대에서는 남궁교명이 진화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당혜군이 발끈하긴 했지만, 병 조의 가게에도 영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의무학관 여관도생은 흔치 않아서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줄을 서라! 싸게 줄 수 없다. 노리개는 정량이다.”
“아, 자, 잠시만요…….”
“너무 빨라! 천천히 사라고 좀 해 봐요!”
나하연은 태연하게 손님들에게 명령조로 말하고 있었고, 다른 아가씨들도 어디서 노리개 포장 따위를 해 본 적 있을 리 없었다.
결국 한숨을 푹 쉰 당혜군이 두 손을 걷어붙였다.
당문의 손재간이야, 포장 속도가 비교 불가였다.
다만, 그녀 또한 소리를 치며 호객 행위는 하지 못했다.
“뭐, 뭐? 아무에게나 소리치는 건 품위 없는 짓이라고.”
“……누가 뭐랬나?”
당혜군의 수줍은 변명에 나하연이 슬쩍 웃었다.
갑 조와 병 조의 옆에는 다른 조들도 소리를 높여 호객 중이었다.
무림 전역에서 뽑은 백 명 남짓한 인재들이 저자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평가 점수 때문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산술, 회계학 사부인 홍등금판 왕진오가 백의생들에게 간단한 산술과 장부 정리를 가르친 후, 실제 점포에서 가게 운영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경영이나 물자 관리, 회계에 대해서는 잠깐이라도 실전만 한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것을 위해 정의무학관은 저잣거리 점포 십여 곳을 임대 중이었다.
“야, 왜 돈이 비어! 장부랑 숫자가 다르잖아!”
“망할 놈의 좀도둑 새끼들! 잡히면 죽여 버릴 거다!”
“재고! 재고가 없어! 복주머니에 끈이 없으면 뭐로 파냐!”
실제로 백의생들은 쉼 없이 돈이 오가는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앞으로 이레 동안, 백의생들은 장사 결과로 평가받게 될 것이었다.
이 또한 정의무학관이 있는 양청현만의 작은 축제라.
사람들은 귀한 백의생들을 구경하며 그들의 호객행위를 즐겼다.
* * *
소란한 저자와 달리, 제갈세가는 여전히 조용했다.
웃전의 심기를 헤아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제갈세가의 심처이자 비처는, 그런 분위기와도 동떨어져, 산세에 싸여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연학원(聯學院).
보통 무가의 심처에는 가문의 비급이나 신물을 보관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었지만, 제갈세가는 달랐다.
그들의 심처에는, 가문 학사들의 연구소가 있었다.
이곳에선 세가의 무공부터 전략과 전술, 약물과 기물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전쟁을 이끈 천수현인의 전략, 전술이 이 연학원의 연구 결과라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제갈세가는 연학원 학사들의 연구에 끊임없이 투자하고 그 어떤 것도 기밀로 보호했다.
특히 현 제갈가주의 관심이 각별하였다.
연학원은 큰 전각 건물의 한쪽 벽과 절벽의 동굴을 연결하여, 규모도 규모지만 안에 있는 서적과 약물, 기물 들이 늘 일정한 온도와 습도에 보관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제갈가주는 본가를 이전하면서 조사전이 있어야 할 자리까지 내주었다.
심지어 보름에 한 번 의무 휴식까지 규정하여 학사들의 관리에 힘쓰고 있었다.
오늘은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학사의 의무 휴식일이었다.
“학사님, 이제 나가십니까?”
“오, 전 학사, 오랜만입니다.”
“보름 만이시지요?”
“예. 벌써 그렇게 되었더군요.”
“그러나 건강 상하십니다. 이번에 나가셔서 좀 푹 휴식을 취하시고 오십시오.”
“허허, 그러겠습니다. 그럼, 학사님도 수고하십시오.”
중년 학사는 입구에서 출입을 기록하고 있던 동료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 날이 좋구나.”
오랜만에 보는 햇빛을 만끽하는데, 한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숙부님.”
“오, 이공자가 아니십니까?”
중년 학사는 제갈용성을 발견하고 놀라는 듯하다가, 이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허허허.”
“지난 보름에 보지 못했으니, 꼭 한 달 만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허허, 뭘요. 늘 하던 것을요.”
제갈용성은 중년 학사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중년 학사 또한 제갈세가 직계를 어려워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 중년 학사가 바로 연학원의 원장 제갈무진으로, 제갈가주와 형제나 다름없는 사촌지간이자, 가주와 가장 가까운 남자 혈족이었기 때문이다.
소가주를 비롯한 가주의 자식들도 제갈무진을 당숙이 아닌 숙부로 대하며 친근함을 표했다.
“그런데 둘째 공자께서 연학원 앞까지 오시다니요?”
“송구합니다. 형님이 좀, 마음이 급한 모양입니다.”
연학원장이 은근히 의아한 기색을 보이자, 제갈용성이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일전에 연학원장이 걸음을 조심하라는 뜻을 비쳤지만, 제갈용성이 조심하고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제갈용성의 입장에선 소가주 제갈후현이 재촉한다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학원장 또한 이해한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일단 제 처소에서 차나 한잔하지요.”
연학원장이 제갈용성을 처소로 데려갔다.
그들이 차를 함께하는 건 흔한 일이라,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연학원장의 처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지, 한 식경이 지났을 때.
제갈용성이 공손히 인사하며 연학원장의 처소를 떠났다.
제갈용성의 품에는 보이지 않게 연학원장이 챙겨 준 찻잎이 있었다.
“……따라붙은 이는?”
연학원장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의 뒤로 어느새 하인이 다가와 있었다.
“총관부에서 용성 도련님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흐음.”
연학원장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평소에도 곳곳에 있는 눈을 의식해서 평소에도 하인의 손을 빌어 찻잎을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주가 비밀에 다가서고 있었다.
“소가주 때문인가? 가주가 소가주의 행적이 수상함을 느낀 모양이군.”
“소현 아가씩의 죽음이 크게 작용한 듯싶습니다.”
“급했지. 제갈세가 사람치고 소가주의 성정은 너무 급해. 타고난 성정인지, 아니면 약 때문인지…… 가주의 그림자는 어찌 되었느냐?”
“세뇌가 느립니다.”
하인의 말에 연학원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제갈가주의 신임을 얻어 연학원장이 된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인간이라, 그의 심중까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갈 같은 놈이 설마하니 자기 자식을 의심할 줄이야. 흥, 덕분에 잘되었지. 이제까지 도무지 잡을 수 없었던 그림자를 사로잡았으니.’
연학원장의 입꼬리가 슬쩍 비틀렸다.
“핏줄도 안 믿는 인간이 그림자만은 신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제갈가주의 발밑으로 우리 사람을 집어넣을 절호의 기회야.”
“명심하겠습니다.”
당사자에게 틈이 없다면 주변을 공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제아무리 스스로 완벽하게 자제해도 주변 모두를 단속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제갈후현을 대신해서 제갈용성을 움직이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그나저나…… 계획이 많이 틀어졌구나.”
“송구합니다.”
“아니, 아니야. 남궁세가 소가주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집요했을 뿐이니. 방해물은 빨리 치워 버리면 그만이야. 남궁진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보았나?”
“송구합니다. 약점이라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흐음, 하긴 쉬울 리가 없지. 무려 오 년을, 그 흔한 주루조차 나서지 않는 놈이다. 지난 오 년간 약점이라 할 만한 것이 하나 있는 동생뿐이라니, 허허!”
연학원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에, 적이지만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이었다.
“이번에 새로 입학한 사촌 동생이 있습니다. 세간에 도는 말로는 남궁진휘가 그 아이를 친동생보다 아낀다 합니다.”
“사촌이라면 그 양자? 허, 그럴 리가. 천한 양자를 두고 여론을 모는 것이겠지.”
하인의 말에 연학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남궁진휘에게 가진 호의와는 별개로, 연학원장은 세간의 소문이란 것을 믿지 않았다.
“이제까지 정파의 위선자들이 소문을 어찌 다루는지, 소문 이면에서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듣지 않았더냐. 며칠 전 제갈의 어린 사갈은 제 허물을 덮고자 친동생까지 죽였다. 그런데 양자를 아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오나……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그 양자가 두 번이나 남궁진휘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거듭되는 하인의 말에 연학원장도 살짝 흔들렸다.
그러고 보면, 양자나 방계를 들여 어릴 적부터 그림자로 키우는 것 또한 대세가에선 흔한 일이 아니던가.
어린 나이에 소가주를 위해 두 번씩이나 목숨을 건 것을 보면, 친족을 약점으로 잡혔거나 그림자로 키워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양자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라. 귀천성과의 전투에서 구해진 것 외에,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해진 것인지, 남은 가족은 없는지 자세히. 어쩌면 그 양자가 남궁진휘의 약점이 될 수도 있겠지.”
“존명”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연학원장의 곁에 있던 하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홀로 바람을 맞으며, 연학원장의 눈빛이 복잡하게 얽혔다.
“귀찮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