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행 화(禍) : 남은 여죄는(2)
정의무학관은 학년이 바뀌기 전, 매 구월 초에 무학제를 통해서 무위를 겨뤘다.
백청홍의생의 경우에는 다른 과목의 평가를 취합한 성적이 우수한 자들이, 동은금의생의 경우엔 실전에서 받은 평가 점수로 무학제에 나갈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금의생들은 달랐다.
그들은 올라갈 학년이 없으니 더 이상 의생장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보통은 금의생으로 올라설 때쯤 정의맹 요직에 진출한 사람들은 가려진 상태였다.
더 이상의 평가가 무의미한 상태.
그래서 남은 무학제가 더 중요했다.
이제는 평가가 아니라, ‘누가 이번 기수에서 가장 강한 자인가’ 결론을 내리는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없었다.
금의생들에겐 경쟁자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휘이이익--!
발은 표범처럼 가볍게 땅을 박차고, 깃털처럼 날아오른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갔다.
타다닥, 탁-!
소리 없이 날아간 비도가 나무 기둥 위에 일렬로 박혔다.
북남으로 다섯 개의 비도가 흐트러짐 없이 한 치만큼 날이 들어갔다.
자국도 없이 옮겨진 발걸음.
쉐에에엑--!
펑-!
가볍게 몸이 띄워진 상태에서 내지른 손날이 정확하게 목각 인형의 가슴을 뚫었다.
펑! 펑!
힘 있게 내딛는 걸음마다, 손날에 부딪힌 목각 인형에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 걸음.
바위로 된 표적 앞에서, 제갈후현이 양 손바닥을 뻗었다.
하늘 천(天) 자를 그리는 듯 안정된 자세로, 지금까지 움직여 온 속도가 그대로 다리와 등을 타고 손바닥에 전달되었다.
응혈신조(凝血神操)-!
퍼어어어엉!
집채만 한 바위에 손바닥 자국이 깊게 파였다.
“……후우.”
온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다.
차분하게 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제갈후현이 돌아서자.
쿠르르르응---!
그의 손이 거친 나무와 목각 인형, 바위가 모두 가루가 되어 내려앉았다.
만족스러운 위력.
잔뜩 상기된 얼굴과 두 손을 내려보는 눈빛엔 희열이 가득했다.
‘됐어! 이길 수 있어!’
두근! 두근!
심장이 계속 뛰고 싶어 하는 듯했다.
제갈후현은 숨을 가다듬으며, 달아오른 몸을 진정시켰다.
그때, 바로 옆에서 박수 소리가 났다.
짝짝짝짝-!
“대단합니다, 형님!”
제갈용성이 눈빛을 반짝이며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수련을 엿보는 건 부모 자식 간에도 피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제갈후현이 제갈용성을 불렀다.
그리고 제갈용성은 제 눈으로 다시, 제갈후현의 무위를 확인했다.
제갈세가의 천기미리보는 은밀하기는 하나 힘을 싣기에는 부족했고, 소천신장 또한 위력이 파괴적인 무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후현이 펼쳐 낸 그것은, 천기미리보가 만들어 낸 은밀함을 힘으로 전달하며 소천신장의 위력을 배가시켰으니.
심지어 마지막 응혈신조는 소림의 금나수에 비견될 정도였다.
제갈세가의 무공을 연계하며 서로 상생의 힘을 만들어 내는 것.
이 또한 제갈후현이 가진 신체와 그의 창의성이 만들어 낸 성과라, 과연 제갈세가에서 수백 년 만에 태어난 무재라 칭할 만했다.
“후우, 말은 전했나?”
“예. 최근 연학원의 출입 관리가 까다로워져서, 원장님이 밖으로 나오시는 날짜에 밖에서 뵙기로 했습니다.”
“그래…….”
제갈용성의 말에 제갈후현이 말꼬리를 늘였다.
그의 머릿속엔, 일전에 제게 경고를 보내던 제갈가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뭔가 눈치채신 건가?’
두근두근.
본래도 속을 알 수 없는 분이었지만, 최근에는 특히 저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그때 이후, 제갈후현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아니야. 약에 대해선 알 수 없어. 누가 연학원장의 품을 뒤지지 않는 이상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괜한 의심이야. 아버지께서 실망 운운하시니, 그래, 그래서 괜히 위축된 것이다! 돌아오는 무학제에서 남궁진휘를 이기고 나면, 전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제갈후현이 생각에 빠진 사이, 제갈용성은 아직도 열기를 품고 있는 제갈후현의 몸을 보고 있었다.
신이 섬세하게 조각한 것처럼 다듬어진 근육질의 몸.
자신도 단련하고 있지만, 제갈후현과 같이 커다란 근육과 알토란같이 박힌 잔근육이 골고루 잘 만들어지진 않았다.
타고난 모양과 발달이 다른 탓이다.
목과 팔, 골반에 이어진 혈관 하나까지 제갈용성의 동경과 질투가 닿았다.
“양은 충분한가?”
“충분합니다. 숙부님 말씀으론 다음번에는 만들지 못할 것이라, 이번에 좀 많이 가져오셨다 합니다.”
“다음은 상관없어. 이번에 충분하면 돼.”
줄곧 심각하던 제갈후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황보세가의 후계가 단승호와 친하다고 했던가?”
“예, 그렇긴 합니다만…….”
“소현이가 그리되었으니, 황보세가와는 다른 끈을 만들어야지. 이왕이면 우리 쪽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도록. 다음번에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어 봐.”
“예.”
제갈후현이 음흉하게 웃었다.
‘황보라고? 그 약 때문에 친동생을 죽이고, 이제까지 실컷 부려 먹는 나한텐 한 알 가지라 소리도 않더니, 고작 황보 따위에게 줄 건 있다는 건가? 징글징글한 인간!’
제갈용성은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방금 혈관이 도드라진 모습마저 동경하던 것도 잊고, 이젠 그것이 불뚝거리는 게 징그럽기까지 했다.
* * *
행정회계학 과목에서 갑 조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먼저, 현오의 사업 수완이 장난이 아니었다.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과 양, 가격의 균형점이 아니겠는가.
조금 모자란 맛을 절묘할 정도로 약간 싼 가격과 합리적인 양으로 잡았다.
게다가 양청현은 소림 본산이 있는 곳 아니겠는가.
불심 깊은 사람들의 마음을 직격하는 ‘극락왕생’ 만두는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거기에 남궁구의 호객 기술이 주효하게 먹히고, 남궁교명의 철두철미한 성격이 완벽한 장부를 만들었다.
게다가 놀라운 사실은, 팽가 쌍둥이가 만든 만두가 맛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육즙이 쥐어짜질 정도로 다져진 만두와 쫀-득할 때까지 치대진 만두피만으로, 심심한 만두 맛을 덮고도 남았다.
남은 것은 진화.
어찌 보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또 어찌 보면 손님들 태반이 진화를 보러 왔으니.
결국 결론을 짓지 못한 왕 사부가 진화를 불렀다.
“갑 조가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
“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느냐?”
“장부를 작성하고 남은 재고를 파악한 뒤, 보고를 하면 됩니다.”
“옳지!”
막힘없는 대답에 왕사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보고를 하고 나면?”
“네?”
“네 수중에 이익금이 남았구나. 이제 그것으로 뭘 할 것이냐?”
왕사부의 질문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진화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삶에서도 그랬고, 웃전에 보고한 후에 자신이 돈을 가지고 뭘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돈이 생기면 뭘 했더라.
“……만두요?”
“만두를 팔아서 남은 돈으로 다른 만두를 사겠다고? 이이, 돈이 썩었구나!”
결론적으로 진화는 갑 조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진화는 성적에 대해 별로 걱정 하지 않았다.
남궁진휘, 진혜가 졸업하고 난 뒤, 관도회 따윈 어떻게 되든 별 관심이 없을뿐더러, 다른 과목의 성적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라승 각우의 전술학은, 매번 실전과 비슷한 임무 상황을 주고 나한들과 겨루는 형식이었다.
실전과 같은 상황에, 진화보다 능숙한 관도생은 없었다.
“현오, 오른쪽.”
“부처님, 제자를 굽어살피소서! 아미타부우우울-!”
진화의 명에 따라, 현오가 오른쪽으로 몸을 굴렸다.
팽가 형제들이 양쪽을 막아서고,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빠져나오는 나한들을 저지하고 있는 터였다.
결국 이번에도 갑 조는 인질인 진화를 데리고 탈출하는 임무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다른 관도생들은 그저 나한들과의 부침에 힘들어했지만, 진화는 각우가 주는 상황들이 상당히 익숙했다.
특히 탈출, 요인 보호, 기습과 맞대응 부분에선 진화의 경험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고, 진화는 자연스럽게 갑 조 다른 동기들을 지휘하며 최고점을 획득하고 있었다.
“자, 다음 수업은 편백림에서 할 것이다. 그곳에서 기습 상황에 대해 공격과 방어를 나눠서 조별로 겨룰 것이다. 진 쪽의 점수를 감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준비해라!”
“예!”
각우의 말에 갑 조와 을 조 백의생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는 것으로 수업이 끝이 났다.
* * *
수업이 끝나고, 황보정이 더러워진 옷을 신경질적으로 털었다.
“망할!”
마라승 각우의 전술학은 언제나 그렇듯 백의생들의 관복을 까맣게 물들이고서야 끝이 났다.
특히 황보정을 비롯한 을 조는 갑 조와 함께하면서 비교를 당하는 일이 많았으니, 수업이 끝나고서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병신같이. 지고서 뭐가 좋다고 실실대고 있어?”
황보정이 진화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관서겸과 호명기를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노려보고 싶은 쪽은 관서겸과 호명기가 아니라 그 앞에 선 진화라는 걸 모르는 이들도 있던가.
황보정 이외에도 뒤에서 진화를 험담하거나 운 좋은 양자라며 무시하던 이들이 많았다.
그들 모두, 진화가 초절정에 들어섰다는 소문이 듣고 몸을 사리고 있을 뿐이었다.
“놔둬. 저 녀석들 전부 남궁세가 출신이잖아.”
단승호가 황보정의 시야를 가리며 말했다.
그 또한 진화의 소문을 듣고 몸을 사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게다가 단천문은 제자들의 시신이 비영문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조사를 받고 있지 않던가.
여러모로 좋지 않은 때였다.
“양자 따위에게 실실대다니, 배알도 없는 놈들.”
황보정도 들리지 않게 구시렁거릴 뿐, 아직도 시큰거리는 코를 생각하면 다시 진화에게 시비 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뒤에서 욕하고 비꼴 뿐.
그때, 단승호가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봐야 양자야. 남궁진휘와 달리, 단지 성만 단 거라고. 알잖아?”
단승호가 여전히 진화를 비하하듯 말했다.
딴에는 친구인 황보정을 달래 주려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황보정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입조심해. 소문은 진짜니까. 적호단에 있는 가문 사람이 확인한 거야.”
“아, 그, 그래?”
황보정이 정색하는 바람에 단승호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걸 몰라서 한 말이야? 편들어 줘도 지랄이야.’
단승호가 입을 삐쭉거렸다.
하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 황보정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근하게 굴었다.
“참, 너, 그건 가기로 했어?”
“뭐?”
“제갈 소가주님이 내일 저녁 초대했잖아.”
“아, 그거? 글쎄.”
당연히 갈 거라는 대답을 할 줄 알았던 단승호의 예상과 달리, 황보정이 망설이는 듯한 얼굴을 했다.
급해진 건, 단승호였다.
“야, 왜? 좋은 기회잖아!”
“……좋은 기회인지 모르겠어서.”
“뭐? 말도 안 돼!”
조금 떨떠름한 황보정과 달리, 단승호는 마치 자신이 눈앞에서 기회를 놓친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너 평소에도 황보세가가 가진 힘에 비해서 정의맹에서 너무 홀대한다고 했잖아! 기득권들이 자신들 것을 빼앗길까 봐 경계가 심하다고. 제갈세가 가주님이 누구냐. 정의맹 총군사야. 발언권으로 치면 맹주님에 버금간다고. 이건 너희 가문에 좋은 기회야!”
“그렇긴 한데, 이번에 제갈소현의 일로 좀 복잡해. 제갈세가가 완전히 남궁이랑 돌아섰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양주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는데. 너희 가문에 유리한 쪽에 붙어야지!”
황보정의 망설임에 단승호가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야,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우리 단천문을 봐라. 우리는 아직 그놈의 조사 때문에 제자들 시체도 못 찾았다. 정의맹에 힘이 없다는 건 그런 거라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아. 남궁이랑 잠시 이런다고 해도, 어차피 다음 총군사가 누구겠냐? 손 내밀 때 잡아. 너희 가문은 물론 너한테도 좋은 기회야.”
지금 단승호의 말은 온전히 진심이었다.
잠시 티격태격하거나 마음이 상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친구였다.
서로 비슷한 처지,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한.
단승호는 진심으로 이 기회가 황보정에게 좋다고 생각했고, 황보정도 그런 단승호의 마음을 느꼈다.
“알아. 네 말대로 일단 나가 보기는 할게.”
“그래, 잘 생각했어.”
두 청년이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마주 웃었다.
그 풋풋한 우정은 아무래도 조심성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하!”
저들 딴에는 조심한다고 하는데, 경지를 넘어선 진화의 감각은 집중하면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진화는 중요한 정보를 흘리며 서로 좋아하고 있는 두 청년을 보며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진화가 갑자기 소리를 내어 웃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질색하며 떨어졌다.
“도련님, 넌 왜 또 그렇게 웃는 건데?”
“내가 어떻게 웃었는데?”
“꽃같이.”
“……왜 욕처럼 들리는 거지?”
진화가 눈을 게슴츠레 째려보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너희 둘, 요즘 사이가 좋네.”
“오해다.”
“그럴 리 없다.”
진화는 약속한 듯 동시에 격하게 부정하는 둘에게 방긋 웃어 주었다.
“짐승도 죽을 자리는 아는데, 꼭 짐승보다 못한 것들이 있지.”
말과 미소 짓는 얼굴의 괴리만큼 등짝이 서늘했다.
“우, 우리 말하는 거냐?”
“어쩌려고?”
“글쎄…… 내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
단순한 접근인가 아니면 약에 대한 것인가.
쫓아가 볼 필요는 있을 성싶었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혼란에 빠진 사이, 진화의 시선이 황보정과 단승호의 뒤를 따랐다.